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865
865화 제대로 작정을 한 모양
서정강이 떠난 뒤.
진양은 본격적으로 기능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의문은 가득했으나 아무런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기능서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일단 위풍이 남기고 간 자금색 광구에는 상당히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하나씩 살펴본다고 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러나 가장 눈길이 가는 게 있었다.
바로 삼신술이었다.
진양은 그것을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한참을 거쳐 내용을 모두 살펴본 진양의 마음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 삼신도군이 천하에 있는 모든 수도사들에게 공격을 받아 죽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만약 진양이 그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토벌대에 합류했을지도 모른다.
삼수신이나 삼음신, 삼신보술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정신 나간 공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한술 더 뜬 공법이 존재했다.
바로 삼명술이었다.
이건 지금까지 손에 넣었던 삼신술과는 차원이 달랐다.
예전에 얻었던 삼신술은 영혼을 분리하고 타인을 연화시켜 자신의 삼신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이것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방법은 스스로를 삼신으로 만들어버렸던 해요선자의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지금까지 보아온 방법들 중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삼명술은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자신의 육신과 영혼을 모두 포기하고, 자신의 모든 것, 목숨까지도 상대에게 바친다.
그리고 상대가 원래의 목숨을 거두는 순간 삼신술은 마침내 완성된다.
그러니까 일종의 약점 하나 없는 탈사법(奪舍法)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상대의 육신, 영혼, 기억, 능력, 심지어 사소한 습관까지도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유일하게 남는 건 이성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목숨을 바친 자의 힘과 능력까지 그대로 계승된다는 것.
삼명신에서 명이 가리키는 건 원래 몸의 목숨 이외에 수명도 함께 포함된다.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일부가 사라지기 때문에 최대 두 번 정도만 쓸 수 있다.
삼명술을 익히기 위해선 가장 먼저 빼앗아야 할 신분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것.
이것이 바로 첫 번째 명신이다.
예전에 위풍을 성불시켰을 때가 떠올랐다.
그는 전조의 함정에 빠져 연나 가주에게 죽임을 당했다.
당시에는 몰랐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위풍이 일부러 죽어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명신을 완성하기 위해선 자신 스스로를 제물로 바쳐 첫 번째 명신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연나 가주의 손에 죽은 위풍은 연나의 신분을 얻게 되었고, 이어서 연나 신분으로 허공진경 전수자에게 죽음을 맞이하며 허공진경 전수자가 되었다.
이로써 완벽하게 전조 세력의 핵심 위치에 접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위풍의 삼명신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수명이 끝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때문에, 설령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 운명이었다.
그는 애초부터 모든 뒷일을 계산하고 움직인 듯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진양의 습득 능력까지도 알고 있었던 듯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최대한 많은 것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완전히 전도인의 신분을 넘겨준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이상 도문이 망하도록 가만히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제는 진양이 도문(道門)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양이 계속해서 살아남는 이상 그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쯤 되니 도문(道門)이 도문(盜門)이라는 가명을 갖게 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매번 만신창이가 되어 목숨이 간당간당한 것처럼 보여도 암암리에 오늘날의 경지까지 발전해온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문주가 없는 상황에선 전도인이 실질적인 문주나 다름없다.
단순히 위풍과 몽의가 스스로 주장하던 수준의 실력만으로는 오늘날의 도문을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일부러 약한 척한 게 아니라 기준 자체가 달랐던 것이었다.
설령 자신이 어떤 것에 정통하다고 하더라도 최소 몽의처럼 지척천애를 마음껏 다룰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야만 정통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많은 걸 할 수 있더라도 그저 잡다한 수많은 기술 중 하나에 불과한 것.
기준을 바꾸어 생각해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벌어진 현실이 어떻든 위풍이 죽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믿어지지 않았다.
설령 직접 성불을 시켰다고 해도 말이다.
어쨌든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마꾸 떠오르긴 했으나, 딱히 어디가 이상한지는 짚어낼 수가 없는 것만은 확실했다.
* * *
사흘 뒤.
가희로부터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괴산에 있던 전조 세력의 본거지가 완전히 소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대영의 고수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있던 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남은 건 허공진경 전수자 한 사람뿐이었다.
허공진경 전수자는 수많은 금술(禁術)을 펼치며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그가 수많은 금술을 동시에 펼치는 것을 본 사람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무려 네 명이나 되는 법상 강자가 덤벼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은 죽었고, 한 명은 폐인이 되어버렸고, 나머지 둘은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심지어 허공진경 전수자는 네 명의 법상 강자가 두 눈 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마흔여덟 명의 도궁 수도사들 중 무려 스무 명이나 죽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허공진경 전수자는 마지막 남은 생명을 끌어모아 도망까지 가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의 행방은 묘연하다고 한다.
소식을 들은 진양은 진심으로 놀랐다.
이것이 위풍의 진짜 실력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의 기준은 진양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았다는 얘기다.
이 외에도 한 가지 소식이 더 있었다.
허공진경 전수자가 도망간 자리에서 환심면구의 모구를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모구는 발견되는 즉시 이도로 보내졌다고 한다.
대략 시간을 계산해 보니 지금쯤이면 이미 이도로 옮겨져 조사가 진행 중일 듯했다.
이틀 전, 겨우 이게 전부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와서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국공은 계획을 위해 자기 자신조차도 희생시켰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계획을 완벽하게 성공시킬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주왕을 완전히 박살 낼 생각이 아니라면 대영 사람들이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모구를 찾아 파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는 일부러 환심면구를 위풍에게 넘겼던 것일까?
대국공의 계획을 막기 위해서라면 위풍은 환심면구를 파괴시켜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환심면구를 떨어뜨린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또 아닌 듯했다.
위풍은 진양이 대영에 잠입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삼명신 중 마지막 명신이 완성되는 반드시 죽게 될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진양에게 희망을 걸었으니 반드시 진양의 계획 위주로 움직였을 것이다.
주왕이 완전히 낙마하게 된다면 그건 곧 진양에게 이득이다.
환심면구를 흘린 이유,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 대국공을 죽여선 안 된다고 말한 이유.
위풍은 진양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이게 전부가 아닐 것이다.
성불까지 시켰는데 다시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수상한 사람은 여러 번 의심을 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어서 사흘 정도를 더 기다려보았으나 이도에선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심지어 환심면구가 이도로 옮겨졌다는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분위기가 다소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설마 중간에 누가 가로채기라도 한 걸까?’
한참을 고민하던 진양은 서정강에게 사람을 보내 술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서정강의 답신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귀신령이 반짝거렸다.
흘누였다.
귀신령에서 흘러나온 빛은 흘누의 형상을 이루었다.
형상을 갖춘 흘누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구를 가져가서 살펴보니 다소 놀라운 게 발견되었다네. 여러모로 기발하고 신기한 물건인 건 맞네만, 의외로 단순한 물건이더군. 누가 사용하든 오직 한 가지의 집념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효과를 가진 물건일세.”
“네? 그게 사실입니까?”
진양이 놀란 듯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쓰든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는 뜻인데. 그럼 이미 전조 세력에 의탁하기로 한 사람 역시 마찬가지란 뜻인가요?”
“그렇다네. 누가 쓰든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네.”
흘누가 면구를 들어 올리며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
“면구에 새겨진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되면 곧바로 그 효과가 발휘되기 시작한다네.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을 면구에 새겨진 생각과 같은 생각으로 바꾸어버리지.”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양은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만,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 * *
대화를 마치자 귀신령의 빛은 사그라들었고 흘누의 모습은 사라졌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주왕이 환심면구에 격한 반응을 보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주 제대로 작정을 한 모양이구나.’
그가 대영 신조에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확실히 면구에 격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전조 세력 쪽으로 기운 상태라면 면구를 쓰고도 그다지 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면구에 새겨진 생각과 같은 생각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주왕이 조금이라도 다시 대영에 충성을 다하겠다며 마음을 바꾼다면 면구는 격렬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즉,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마다 면구가 반응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상황에 따라 다른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현재 주왕에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은 오직 한 가지 경우뿐이다.
그 누구도 어느 쪽이 주왕의 진심인지 알지 못한다.
하필이면 환심면구에 대한 기록도 매우 적어서 아무도 이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 이런 쪽으로 잘 알고 있는 여족의 흘누 외에는 이러한 점을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여기까지가 전부다.
이보다 더 깊은 건 흘누조차도 아직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현재 이도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령 모구를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아내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주왕의 고육지책을 깨버릴 방법은 없을 듯했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을 때.
연락을 받은 서정강이 찾아왔다.
“환심면구의 모구가 이도로 옮겨졌다면서요?”
진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정강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마치 못된 짓이라도 하다가 걸린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한참을 살펴보고 나서야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