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876
876화 반란이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지
진양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함경을 시전했다.
그리고 온전히 육신의 힘만으로 사방을 옥죄여오는 힘을 밀어냈다.
오랜 시간 육신을 단련해온 사람에게만 느껴지는 깊은 기운이 느껴졌다.
이어서 진양이 손을 뻗자 세 가지 물건이 탁자에 나타났다.
귀신령, 서심고, 그리고 삼생귀류였다.
진양은 한층 더 진지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여족의 소주(少主)입니다.”
위흥조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눈을 감아버렸다.
그의 추측은 전부 틀리고 만 것이다.
여족의 소주가 대제희를 위해 움직인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답이었다.
느껴지는 특유의 기운은 결코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그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오직 무함경을 익힌 연체 수도사만이 감옥을 옥죄여오는 강력한 기운을 강제로 밀어낼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탁자에 올려진 신물 또한 결코 가짜가 아니다.
그렇다면 결코 만들어낸 가짜 신분이 아니라는 뜻.
유령 선장은 충분히 도문의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황천마종의 제자 역시 도문의 사람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두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라도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족의 소주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문득 남쪽 국경지대와 남만의 마찰이 크게 준 게 떠올랐다.
그리고 대제희가 순방을 다닐 때도 남만과 여족 모두 고분고분했었던 게 떠올랐다.
순간 모든 조각들이 끼워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위흥조는 굳은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진 대인,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조사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군주의 명에 복종하는 것은 신하된 자로서 당연한 도리 아니겠습니까?”
진양도 예의상 포권을 취하며 한마디 했다.
진양이 자리를 떠나기 위해 일어나는 순간.
위흥조가 의미심장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대인, 앞으로 일주일 뒤면 묘지기는 참수될 겁니다. 보러 오시겠습니까?”
“시간 없습니다.”
진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휘휘 내저으며 자리를 떠나버렸다.
진양이 떠난 뒤.
위흥조가 손을 뻗자 벽이 다시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언어 전문가가 걸어 나왔다.
“그가 뭐라고 하던가?”
“사실 그가 떠나기 전에 족히 열 가지가 넘는 암호를 사용하긴 했습니다만. 저희가 알아본 건 겨우 세 개에 불과합니다. 다만, 세 가지 다 같은 의미였습니다만…….”
“질질 끌지 말고 말해 보거라. 뭐라고 하더냐!”
“그게……. 감히 말씀드리긴 그렇습니다만. 대인보고 멍청하다고…….”
“허!”
위흥조는 굳은 표정으로 또다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옆에 있던 벽이 사라지며 내부가 드러났다.
그곳에는 탁자 위에 정천사의 초시고경이 올려져 있었다.
“뭐라도 나온 게 있느냐?”
“없습니다. 그가 했던 말은 전부 다 진심이자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했던 암호까지 전부 말입니다.”
“…….”
위흥조는 수하를 한참 동안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마음 같아선 녀석들을 전부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저 자신의 일에 충실한 수하들을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려 손을 댈 수는 없는 법.
그는 화를 눌러 참으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진양의 작은 행동, 말투, 눈빛.
이 모든 것이 암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암호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단순한 소통을 위한 암호부터 복잡한 소통이 가능한 체계를 갖춘 암호까지.
그 종류가 셀 수 없을 정도다.
위흥조는 여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상황이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영제는 진양을 두고 올라온 그 어떠한 고발 내용도 믿지 않고 있었다.
추호도 믿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도문은 이미 오랜 시간 사방으로 뻗어왔다.
이걸 전부 다 찾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이 세상에 도문의 힘이 뻗치지 않은 곳을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쩌면 매일 조정을 드나드는 관리들 중에도 도문의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외부에서 제자를 받아들이는 문파들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분명 이들 내부에도 도문이 깊게 침투해있을 것이다.
심지어 폐쇄적인 여족에도 도문 세력이 침투해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족의 소주가 도문의 사람일 리는 없다.
이런 의심을 하는 것 자체가 지능 수준이 낮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애초에 도문이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심을 거둘 수는 없었다.
아직은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믿었다.
묘지기 후계자가 했던 말이 가짜일 리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진양에게 형 집행일을 알려주었고, 구경을 오도록 권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렇게 위흥조가 한참 고민에 빠져있을 때.
한 수하가 황급히 달려왔다.
그의 얼굴엔 핏기가 전혀 없었다.
명치에는 커다란 발자국이 남겨져 있었고, 가슴은 아예 움푹 꺼져있었다.
누군가에게 발로 차인 게 분명했다.
“대인, 큰일 났습니다! 대제희께서 부하들을 이끌고 정천사로 강제 진입을 시도 중이십니다.”
* * *
주왕은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진양을 상대할 계획을 세워두었었다.
다만, 그가 아직 움직이기도 전에 누군가 먼저 나서서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이로써 원래 계획은 실행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전조 세력의 도움 덕분이 훨씬 더 좋은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도문의 묘지기는 아무리 전조 대제의 법신이라고 해도 쉽게 궁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다.
잡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죽이는 것도 불가능한 그야말로 까다로운 상대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상황을 이용하여 일거양득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웠다.
도문의 이념과 진양을 이용하여 묘지기가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고, 반대로 묘지기를 이용하여 진양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게 만드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핵심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며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되었다.
바로 도문의 배반자였다.
사실 백 년 전부터 그를 찾고 있었으나 아무런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그를 찾을 수 없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동궁에 숨어있었던 것이었다.
죽은 태자의 곁에 그림자 같이 붙어 막료 행세를 했던 것.
우여곡절 끝에 힘겹게 그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과거 사라진 오십 개의 살신전은 바로 그가 유출시킨 것이었다.
묘지기를 끌어내는 데 사용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깊숙이 숨어있는 진양을 속여 끌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오직 진짜 도문의 핵심 인물만이 이러한 일을 해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진양뿐만 아니라 정천사도 함께 속여야 한다.
사실 이 계획은 대제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그런데, 소문이 와전되다 보니 어느새 대제희에게까지 불이 번지게 된 것.
이에 염려는 느낀 주왕은 뒤늦게 대제희를 위한 함정을 준비했다.
지금 이 시기에 움직이는 건 대제희가 곧 이도에 도착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진양이 잡혀가기 무섭게 대제희의 귀에도 이 소식이 들어가게 되었다.
묘지기 후계자는 죽었고, 묘지기는 산 채로 붙잡혔고, 진양은 정천사로 끌려갔다는 소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영제가 직접 보낸 근위대 고수들까지 나서서 진양을 직접 정천사 감옥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진양의 첩신호위는 사라지고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어딘가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정천사 감옥은 한 번 들어가면 웬만해선 살아서 나오기 어려운 곳으로 악명이 자자한 곳이다.
그런 곳에 진양이 끌려가다니.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사실 처음 헛소문이 돌 때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애초부터 이것은 진양이 퍼뜨린 소문이니 스스로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영제도 이 소문을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급박하게 돌아갔다.
정천사 감옥이 어떤 곳이란 말인가!
그곳은 멀쩡한 사람도 한 번 들어갔다 오면 바보가 되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게다가 진위 여부와는 상관없이 위흥조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혐의든 뒤집어씌울 수 있다.
뒤늦게 소식을 듣게 되었으니 지금쯤이면 진양이 감옥에 갇힌 지도 꽤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거기다 첩신호위도 없이 혼자 그곳에 들어갔다고 하니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진양을 구하려면 정천사로 쳐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희는 곧장 이도로 향했다.
이도에 도착하니 자란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란은 빠르게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가희가 먼저 접했던 소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보고를 들은 가희는 이를 바득 갈며 궁성을 바라보았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도대체 뭐가 무서워 눈앞에 있는 모든 이를 죽이려 한단 말이냐! 도대체 뭐가 그리도 두렵단 말이냐!”
가희는 한 손에는 비난령을, 나머지 한 손에는 화염장검을 들었다.
순간 발아래에서 강렬한 화염이 화륵- 하고 가희를 감쌌다.
화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긴 치마를 입고 있던 가희는 어느새 갑옷을 입은 장수의 모습으로 바뀌어있었다.
그녀의 몸에선 비범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도 반란이 두렵더냐! 좋다. 그렇다면 내가 반란이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도록 하마.”
어차피 지금은 영제의 본존도 자리를 비운 상태.
여기에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과 실력을 더한다면 아예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자란, 지금 당장 순천사를 소집하고 비난삼위를 재건한다. 이 외에 국경지대에 있는 장수들에게 그 누구든 감히 함부로 움직였다간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라고 단단히 경고하라.”
가희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자란은 황급히 가희를 말렸다.
“전하, 진정하셔야 합니다. 며칠 전에 진 선생께 저를 보내 소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을 때, 진 선생께서 정천사의 대문을 박살 내고 싶지 않으시냐고 물으셨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알아서 진 선생이 정천사 대문을 박살 내도록 상황이 흘러갈 거라고 말씀하셨었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가벼운 농으로만 생각했었습니다만. 지금 상황을 보면 진 선생께서도 모든 것을 예측하시고 대책을 세우신 듯합니다.”
“뭐라고?”
가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전하, 일단 진 선생을 먼저 구하시고 난 다음 생각해 보시는 것이 어떠시겠습니까? 일단 청란은 전하께서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언제든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겠다고 했었습니다.”
“……알겠다. 가자.”
지금 가희의 눈앞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일단 위흥조를 죽이고, 그다음에 주왕을 죽여도 늦지는 않는다.
가희는 곧바로 정천사 감옥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지면으로 내려온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정천사 감옥의 대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 뿜어 져나온 화염이 화염 새가 되어 감옥으로 날아들었다.
그러자 감옥의 벽돌에서 부문이 피어오르며 화염 새를 밀어냈다.
강한 폭발음과 함께 화염 새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가희는 손에 든 검을 또다시 휘두르며 감옥 벽에 피어오른 방어막을 베었다.
그녀의 몸에선 엄청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