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881
881화 실망스럽게도 아무도 없다
발아래 빛이 일렁이며 수십 겹의 지척천애 금제가 펼쳐졌다.
진양은 마치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며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갈랐고, 곧장 괴산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진양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물론 몽의의 지척천애 금제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수준이었으나, 온 힘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최대한으로 금제를 펼친다면 결코 둔광술에 뒤처지지 않았다.
과연, 죄수 탈출을 돕기 위해 몰려온 자들은 진양이 무사히 이곳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이들은 더욱 무자비해져 갔다.
어차피 모든 책임은 진양과 도문이 지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양은 겨우 일 다경 만에 전장을 뚫고 모든 이들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진양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이들은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이곳에 있는 위흥조의 사람들을 전부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위흥조는 여전히 시체처럼 조용히 뜨거운 쇳물 아래 누워있었다.
보호막과 닿은 쇳물은 어느덧 차갑게 식으며 거대한 쇠구슬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밖에는 총 세 무리의 사람들이 복잡하게 뒤엉켜있었다.
위흥조의 사람, 진양의 사람, 그리고 진짜 죄수를 탈출시키기 위해 몰려온 정체불명의 세력의 사람까지.
위흥조가 데려온 두 고수 중 한 사람은 태평살전을 익힌 자다.
그는 가장 먼저 거대한 손을 내뻗으며 공격해왔던 고수를 상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신통력과 공법이 아닌 오직 육신의 힘만으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미 자신들이 어느 쪽 사람인지, 또 지금 벌이고 있는 싸움이 연기라는 것까지 완전히 잊은 듯했다.
두 사람은 그동안 쌓여있던 무언가를 분출하듯 원 없이 싸움을 벌였다.
다른 이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관심조차 없었다.
이들은 그저 서로 주먹을 주고받는 것을 즐기고 있었을 뿐, 왜 싸우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또 다른 고수는 뒤이어 나타난 법상 고수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위흥조의 사람과 정체불명의 세력 사이에 벌어진 싸움이었다.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이야말로 무시무시한 살기가 피어오르는 진짜 싸움이었다.
대영 강자는 철로 만든 갑옷과 가면을 착용하고 손에는 삼 장이나 되는 거대한 창을 들고 있었다.
그의 상대는 챙이 큰 모자와 검은 장포, 그리고 바로 옆에는 수정으로 만든 해골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전투의 여파가 상당히 먼 곳까지 미쳤기 때문에 방원 삼십 리 내에는 그 누구도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법상 고수들의 싸움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도궁 수도사들의 싸움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진양의 사람과 정체불명의 세력이 한 패인 것처럼 보였다.
대영 쪽 사람들은 위흥조가 사라지고 난 뒤부터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며 상대에게 말려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검은 장포로 얼굴을 뒤덮고 있는 도궁 강자들의 실력은 상당히 무시무시했다.
동급의 도궁 강자들과 함께 놓고 봐도 단연 최강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전투가 치열한 것처럼 보이긴 해도 죽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진양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
허공에서 거대한 소 발굽 하나가 대영의 법상 강자와 정체불명의 세력의 법상 강자가 싸움을 벌이는 전장 위로 떨어졌다.
일 척 정도 되는 소 발굽은 두 사람의 기세를 단숨에 갈라놓았다.
도무지 피할 수 없는 현묘한 기운이 수정 해골을 가진 법상 강자의 뒷목을 정확하게 노리며 들어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기의 물결이 일어났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방어막, 그리고 기운들이 전부 강제로 짓밟혀나갔다.
검푸른색의 거대한 물소가 허공 사이로 걸어 나왔다.
그는 기절한 강자의 몸 위로 발을 올려두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제압한 것이었다.
그의 꼬리에는 아직 모습조차 드러내지 못 한 강자가 휘감겨있었다.
물소는 은은한 빛이 뿜어져나오는 눈으로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입을 쩍 벌리자 수정 해골이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입을 다물며 그것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순간 수정 해골에서 한 인간의 모습을 한 법상의 허상이 나타났다.
그는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소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버텨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물소는 마치 여물을 씹듯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것을 완전히 다져버렸다.
마지막에는 퉤- 하고 침까지 뱉었는데, 수많은 원귀들이 침에 뒤섞여 밖으로 튀어나왔다.
“원혼을 자신의 법상에 갈아넣는 바보가 있을 줄이야. 참으로 겁이 없는 놈이로구나.”
물소는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발 아래 기절해있던 강자를 뻥 차버렸다.
그 모습을 본 원귀들은 곧바로 귀곡성을 내지르며 날아가 강자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때, 물소와 거대한 창을 든 대영 강자의 눈이 마주쳤다.
대영 강자는 조용히 무기를 거두고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 뒤 한걸음 물러났다.
상대도 봐가면서 덤벼야 하는 법이다.
물소는 애초부터 습격할 의도가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공격을 했을 뿐인데 상대가 막지 못했던 것뿐이다.
이어서 그의 시선은 물소의 꼬리에 휘감겨있는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마 법상 강자였을 것이다.
물소는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한 게 아니었다.
애초부터 이곳에서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한 강자를 처치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느낀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물소는 원귀들에게 둘러싸인 강자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체내에 머물던 원귀들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강제로 밖으로 끌려 나왔고, 곧바로 물소의 한쪽 뿔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원귀에 의해 육신과 영혼이 갈기갈기 찢긴 강자는 처참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다.
애초에 이런 일을 당하고 살아남는 건 불가능하다.
물소는 흡족스러운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하하! 대영 신조까지 와서 아무런 후환도 두려워할 것 없이 마음껏 강자를 죽일 수 있는 날이 오다니.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네놈 모두 도망칠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게다.”
물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강자들은 우뚝 멈춰 섰다.
그들의 몸에선 짙은 귀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순간 주위의 공기가 빠른 속도로 차갑게 변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기운은 수십 배로 솟구쳐올랐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대영의 강자들을 노리지 않았다.
대신 함께 죄수를 탈출시키러 온 자들을 둘러쌌다.
물소는 흥미를 잃은 듯 거대한 구덩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꽤 흥미롭다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오호, 하마터면 잊을 뻔했군. 그물 사이로 빠져나간 고기가 있을 줄이야.”
구덩이 속에서 쥐 죽은 듯 숨어있던 위흥조는 그제서야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곤 곧바로 예를 갖추었다.
“신우 대인을 뵙습니다. 소인 위흥조라고 하옵니다.
신우 대인,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이런 일로 신우 대인을 놀라게 해드려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신우는 대답 대신 미간을 찌푸리며 콧김을 뿜었다.
맛있는 먹잇감을 놓쳐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그는 구덩이 아래 있던 사람이 위흥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한 것은 단순히 위흥조를 죽일 핑곗거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다만, 위흥조는 예상 외로 빠르게 반응하며 나오자마자 곧바로 그에게 예를 갖추었다.
한편, 위흥조는 흥미를 잃은 신우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흑여의 신우라면 결코 모를 리 없다.
그는 매우 신비로운 힘을 가진 존재로, 여족 내에서도 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과거 대영과 남만의 마찰이 최고조로 치달았을 때도 한 번 본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면으로 마주한 건 아니었고 신우의 힘에 의해 짓눌려 땅에 쓰러진 채 우러러보긴 했지만.
진양은 미리 흘누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다만, 진양이 원했던 건 귀신 악대의 도움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소식을 전해 들은 신우는 노발대발 화를 내며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고 했다.
그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남만에서의 삶에 실증을 느끼던 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대영 신조로 넘어가서 고수들을 학살하며 즐기고 싶었으나, 영제의 힘이 너무 강력하여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일종의 면죄부를 얻은 것이다.
영제조차 설령 그가 왔다는 걸 알아차린다고 하더라도 조용히 눈을 감아줄 것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신우가 놓칠 리는 없었다.
그리하여 흘누는 어쩔 수 없이 신우도 함께 데려가기로 한 것이다.
신우는 조용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꼬리에 두 개의 시체를 매단 채 여족 연체 수도사와 싸움을 벌이고 있는 대영 연체 수도사를 힐끔 바라보았다.
한참 전의로 불타오르던 그는 신우 쪽을 바라보고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어서 잔뜩 겁먹은 메추리 새끼처럼 벌벌 떨고 있는 위흥조를 발견하고는 조용히 손을 거두며 물러섰다.
결코 소꼬리에 매달린 두 개의 시신과 같은 꼴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어서 대영의 다른 고수들도 전부 손을 거두며 물러섰다.
귀신 악대는 매우 진지한 얼굴로 방원 천 리를 완전히 봉쇄시키며 죄수를 탈출시키러 온 자들이 빠져나갈 길을 철저하게 막아버렸다.
이제 이들을 정리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 * *
같은 시각.
전장을 벗어난 진양은 곧바로 비주를 타고 괴산으로 향했다.
비주에 오른 진양은 그제서야 가짜 몽의를 어깨에서 내려놓았고, 그의 몸에 새겨진 봉인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텅 비어버린 상대의 눈을 보고 있으니 절로 한탄이 흘러나왔다.
‘대단한 녀석이군. 아무리 완벽하게 연기를 하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그렇다고 멀쩡한 두 눈을 뽑아버릴 줄이야. 중상도 중상이지만 사숙님과 마찬가지로 평생 눈 없이 살아가야 할 텐데.’
“어째서…….”
“아무 말씀 마십시오. 일단 봉인부터 풀어야 합니다. 이제 곧 추적자들이 들이닥칠 테니까요.”
진양은 상대의 막을 막으며 계속해서 봉인에 집중했다.
봉인이라면 이미 돼지 녀석의 몸을 살펴보면서 질리도록 보아왔다.
무엇보다 돼지 녀석에게 걸려있던 봉인은 대영 신조의 봉인 전문가들이 설치했던 것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봉인도 그들이 걸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푸는 것도 크게 어렵진 않을 듯했다.
잠시 뒤.
몽의의 몸에서 진원의 파동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진양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대영 신조의 영토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진원을 거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어서 진양은 뒤를 돌아보며 몰래 동술을 펼쳤다.
비주 주변을 살피며 혹여나 추적자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아무도 없었다.
‘일부러 기회를 주었는데도 매복조차 해놓지 않다니. 녀석들, 설마 이 가짜 녀석이 날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만한 실력자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