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880
880화 졸렬하고 간사한 놈
비주에서 내린 진양은 히죽거리며 위흥조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진양은 견례를 생략한 채 위흥조에게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 저를 이곳에 부르신 건 대인 아니십니까? 제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서 부르신 것 아니었습니까? 어째서 그런 표정을 하고 계신 겁니까?”
위흥조의 표정은 잔뜩 구겨졌다.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개자식! 하여간 역겨운 놈인 건 여전하군.’
그러건 말건 진양은 속 편하게 히죽거리며 의자를 하나 가져와 위흥조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넓게 다듬어진 땅 가장자리에는 뇌격형대(雷擊刑臺)가 세워져 있었다.
이따금 한 번씩 굵직한 번개가 번쩍이며 형대 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번개는 금세 모습을 감춰버렸다.
거대한 참수도(斬首刀)는 번개가 내려칠 때마다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
이것은 번개의 힘을 모으는 과정이었다.
앞으로 한 시진 뒤, 거대한 참수도가 강력한 위력을 내뿜으며 죄인을 목을 베는 순간.
죄인은 영혼과 이성이 동시에 소멸되며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죄인은 형대 아래에 묶인 채 곧 자신이 맞이하게 될 미래를 지켜보게 된다.
번개가 내려치고 칼날이 번쩍일 때마다 절망감은 더욱 높이 쌓여갔다.
만약 죽고 싶지 않다면 칼날이 목을 치기 전에 쓸 만한 정보나 물건을 내놓아야만 한다.
그리고 시간을 끌수록 내놔야 하는 정보나 물건의 가치는 점점 더 높아진다.
현재 가짜 몽의는 형대 아래에 온몸이 속박된 채 붙잡혀있었다.
거기에 몸에 봉인까지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도망치는 건 결코 불가능했다.
순간 그는 진양이 왔다는 것을 느꼈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을 가려주던 천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텅 비어버린 눈으로 진양과 위흥조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했으나 이내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숙여버렸다.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오시를 넘기고 있었다.
회색이던 구름은 점점 더 까맣게 물들며 하늘을 가리기 시작했다.
검게 물든 구름 사이로 번개가 폭우처럼 마구 쏟아지며 굉음으로 귀를 괴롭게 만들었다.
산맥으로 떨어진 번개는 산을 따라 형대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힘은 고스란히 거대한 참수도에 축적되었다.
진양은 느긋하게 다리를 꼰 채 앉아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때, 검은 구름 사이로 수 리에 이르는 거대한 손이 나타나더니 평평하게 형대 가까이 다가왔다.
위흥조는 손이 나타난 걸 보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 같았다면 곧바로 몸이 먼저 반응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거대한 손 위로 ‘아군’이라는 글씨가 떠올랐던 것이었다.
위흥조는 소매 속에 넣어둔 옥패를 만지작거렸다.
그것은 진양에게 받은 것으로, 아군과 적을 구분할 때 쓰는 물건이라고 했었다.
처음에는 어떤 식으로 적아를 구분하는지 의문이었다.
다만, 진양이 그런 용도로 쓰는 물건이라기에 연화를 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진양이 굳이 설명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옥패를 만지작거리니 거대한 손에 나타난 글씨는 한층 더 선명해졌다.
위흥조는 마치 커다란 가래가 목에 걸린 듯 답답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괴로웠던 것이었다.
“가라.”
위흥조가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순간 위흥조의 뒤로 완전히 무장한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흑철로 만든 투구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강력한 기운을 내뿜으며 거대한 손을 향해 하늘로 솟구쳤다.
“죽여라!”
이들의 주먹과 거대한 손이 맞부딪칠 때마다 격렬하게 영력의 파동이 일어났고, 사방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늘에선 번개가 내려치며 마치 날카로운 검처럼 순식간에 방원 수십 리 내의 땅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갑옷을 입은 자들은 형대가 세워진 평지 위로 떨어졌다.
그들의 오른쪽 팔에서는 실체화된 살기가 검은 연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거대한 손에서도 강력한 음기와 귀기가 뿜어나오고 있었고, 놈은 검은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때, 흑포를 입고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이들이 평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십여 명의 도궁 강자들이 한 곳에 얽혀 싸움을 벌이며 평지 위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그러나 애초에 위흥조가 데려온 호위병들은 별로 많지 않았고, 형부에서도 예의상 몇 사람을 보낸 게 전부라 이들은 금세 열세에 몰리게 되었다.
위흥조는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며 도장을 꺼내 들었다.
그가 힘차게 발을 굴리자 평지 위로 수많은 부문과 도문이 나타났다.
산맥을 따라 이어진 쇠사슬은 붉게 달아올랐다.
마치 산맥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웅- 하는 소리와 함께 신조의 강력한 힘이 위흥조가 데려온 사람들과 형부 사람들, 그리고 진양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위흥조는 제자리에 선 채 미리 준비해두었던 대로 신조의 힘을 끌어모았다.
그러자 강력한 힘이 압도하며 죄수를 탈출시키기 위해 몰려온 자들은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나타났을 때와는 달리 전부 비실비실해져 버리고 말았다.
처음에 비하면 기운은 칠 할 정도로 줄었다.
도궁 경지에 오르면 삼 할의 실력 차이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
그만큼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적들은 신조의 힘 앞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심지어 누군가는 피를 토하며 쓰러지기도 했다.
그때, 멀리 산맥 너머로부터 한 발의 살신전이 빠른 속도로 위흥조를 향해 날아들었다.
위흥조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더욱 강력한 신조의 힘을 이끌어냈고, 매서운 눈빛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살신전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에는 투명한 유리 같은 막이 형성되었다.
날아든 살신전은 투명한 막을 꿰뚫었다.
투명한 막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균열이 일어났다.
그러나 살신전의 속도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느려졌다.
쾅-!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살실전에 남아있던 모든 위력이 발산된 것이다.
그러나 살신전은 위흥조가 아닌 위흥조의 도장을 향해 날아갔다.
모든 힘을 방출한 살신전은 퍼석- 하며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살신전에 맞은 위흥조의 도장도 균열이 일어났다.
빛이 일렁이며 위력도 원래보다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그러자 주변을 압도하던 힘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순간 가장 큰 위험에 처한 건 위흥조 본인이다.
스스로를 방어할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흥조의 눈은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복면인들의 몸 위로 ‘아군’이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보였던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옥패를 가지고 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운도 느껴졌다.
그러나 살신전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과연, 진양의 말이 맞았구나.’
만약 진양에 대한 의심을 진작 거두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이 진양이 꾸민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살신전이 날아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한 줄기의 빛이 빠른 속도로 형대로 날아왔다.
그에게선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위흥조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고수가 황급히 앞으로 튀어가며 상대를 맞이했다.
“위 대인, 조심하십시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진양이 다가와 위흥조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나 위흥조는 미처 반응할 틈이 없었다.
순간 뒤통수에서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웅- 하는 소리와 함께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진양의 양손에는 각각 흑옥 신문과 호양보종이 들려있었다.
이어서 진양은 호양보종을 들어 위흥조를 조준했다.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위흥조를 향해 날아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과광-!
폭발과 함께 위흥조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발아래 펼쳐져 있던 평지에는 방원 수십 장, 깊이 수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구덩이 가장자리에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쇳물이 구덩이 안쪽으로 뚝뚝 떨어졌다.
진양은 조용히 구덩이 안쪽을 바라보았다.
‘위흥조의 실력이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거야. 게다가 미리 얘기도 해 줬고, 일부러 회복부터 하라고 귀한 약까지 줬었잖아.’
그때, 싸움을 벌이던 이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진양! 어째서 이런 짓을…….”
정신없이 전투를 벌이던 서정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양은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이들은 무시한 채 형대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쇠사슬을 풀고 가짜 몽의를 내려주었다.
가짜 몽의는 다 쉬어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도대체 어쩌자고 여길 온 게…….”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고 나서 얘기하시죠.”
진양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절대로 진양이 상대가 가짜라는 걸 눈치챘다는 사실을 알도록 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되도록 대화는 최소한으로 하는 게 좋다.
* * *
같은 시각, 구덩이 아래.
위흥조는 바닥에 누워있었다.
그의 몸 주위로는 구형 방어막이 둘러싸고 있었고, 머리 위로는 두터운 쇳물이 뒤덮여있었다.
주위에는 부분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는데, 그의 기운을 감추기 위한 용도인 듯했다.
“쿨럭!”
위흥조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새까맣게 타버린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며 분하다는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진양! 이런 개자식!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도대체 왜 진양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습격을 하겠다고 한 것인지, 죄수를 탈취하려고 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유는 단 한 가지뿐.
공적인 명분을 내세워 사적인 복수를 하려는 게 분명했다.
진양이 이런 옹졸한 방법으로 복수를 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만약 상처가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었다면 아마 진양의 공격에 빈사 상태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위흥조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일단은 끝까지 진양에게 협조해야 했다.
중상을 입은 척하며 멍청하게 이곳에 누워 전투 불가능 상태에 빠진 것처럼 연기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뒤통수에 난 혹이 화끈거렸다.
손으로 쓰다듬어 살펴보니 검은 피가 묻어나왔다.
위흥조는 다시 한번 바득 이를 갈았다.
“참으로 졸렬하고 간사한 놈이로구나.”
* * *
한편, 가짜 몽의를 둘러업은 진양은 멀리 보이는 먹구름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수도사들이 계속해서 쏟아져나오며 위흥조의 부하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도궁 강자들도 있었고, 신문 수도사도 있었다.
검은 구름 사이로 누군가 변개를 일으키며 지면으로 내리꽂고 있는 모습도 어렴풋이 보였다.
진양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진양이 부른 사람이 아니다.
진양이 위흥조를 습격하고 죄수를 구출하는 순간.
이미 상대의 계획에 걸려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이들은 진양이 무사히 가짜 몽의를 데리고 이곳을 탈출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도울 것이다.
이로써 진양의 정체는 만천하에 밝혀지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진양을 속이며 함정에 빠뜨리려는 자들은 무사히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