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899
899화 결론은 윤제를 죽이는 것뿐
돼지는 대장로를 보고 비명을 꽥 질렀다.
‘왜 또 돌아온 거야! 너무한 거 아냐? 아무 힘 없는 잡요괴까지 직접 죽이러 오다니.’
돼지는 곧바로 오체투지 하며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려고 했다.
대장로는 녀석의 목덜미를 붙잡으며 일으켰다.
그의 표정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말해라. 네게 봉인을 새긴 건 누구지? 그 많은 사람 중에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도 안 돼! 이름을 대라. 이름을 대지 않는다면 넌 죽는다.”
돼지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버둥거렸다.
“이름은 저도 잘 모릅니다만 봉호는 알고 있습니다. 남해도군, 그리고 장해도군입니다. 사실 이외에 정천사에 붙잡힌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봉인을 당했습니다만, 그 사람들 이름을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합니까? 그나마 알고 있던 자들은 전부 다 죽었고요. 어차피 죽었는데 굳이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돼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장로는 그를 놓아주었다.
그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틀렸어. 정말로 틀렸어…….”
봉호도군의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이 일이 진양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봉인된 돼지 녀석이 이곳에 나타난 것도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
혹은 누군가 일부러 녀석을 진양에게 보냈을지도 모른다.
결국 간접적인 증거조차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의심의 대상이 진양에서 윤제로 바뀌게 되었다.
놈은 자신을 대영까지 끌고 와서 대영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영을 이용하여 윤제를 제거하고, 지름길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누구도 죽음의 세계에는 발을 들일 수 없게 된다.
최악의 결과라곤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최악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 * *
“다들 군기가 빠진 것 같아서 실전 훈련 좀 시켜준 거 가지고 뭘 그리들 난리입니까? 미리 알려주면 그게 실전 훈련이겠습니까? 다들 밖에서 적이 쳐들어올 거라고만 생각하지. 안에서 적이 나타날 거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잖아요.
이 틈에 제가 무슨 짓이라도 벌였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다들 막을 수나 있었겠어요?
이건 심각하게 볼 일이라고요!”
진양은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외후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기죽은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매우 당당한 모습이었다.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신다면 위 대인께 가서 따지세요. 이건 위 대인과 미리 얘기가 된 겁니다. 오히려 위 대인께서 잘 부탁한다며 제게 맡겨주신 일이라고요.”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 건 진양의 짓이었다.
굳이 깊게 조사를 할 필요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밝혀진 것이다.
그때, 위흥조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멀리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멀리 진양이 당당하게 떠들어대고 있는 걸 듣자마자 표정이 한층 더 구겨졌다.
그는 단 한 번도 진양에게 실전 훈련 같은 걸 맡긴 적이 없다.
하지만 부인을 할 수가 없었다.
진양의 말은 모두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 일로 지난번 있었던 대제희 습격 사건이 연상되기까지 했다.
진양의 말대로 모두들 외부에서 적이 침략해 올 상황에만 대비하고 있었을 뿐, 갑작스럽게 나타난 내부의 적에 대해선 아무런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위흥조는 나서서 자신이 부탁한 게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니 다른 외후들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괘씸하긴 했지만 진양의 말을 인정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위 대인, 우리 사이에 감사 인사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진양은 뻔뻔하게도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위흥조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부하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아마도 그들을 훈련 시키러 가는 듯했다.
진양은 씨익 웃으며 문고리를 툭툭 건드렸다.
“네 녀석이 함부로 외부인을 들인 건 비밀로 해 줄게.”
진양이 떠나고 난 뒤.
문고리 위로 환수의 머리가 쑥 튀어나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한참 진양이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고 있다가 다시 문고리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 난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그 누구도 정천사로 몰래 침입했던 적은 없는 거라고.’
진양은 다시 정자로 돌아와 느긋하게 차를 즐겼다.
환해 일족의 대장로가 직접 찾아오기까지 하고, 거기에 윤제 법신까지 언급되었다.
이 외에 눈앞에 펼쳐진 정황까지.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윤제 법신과 대장로는 서로 손을 잡은 게 분명했다.
대장로가 단순히 이장로와 환해찰나 두 사람 때문에 이곳까지 왔을 리는 없다.
아마도 탁자에 그려져 있던 그 그림, 산하도 때문에 이곳에 온 게 분명했다.
대장로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어쩌면 윤제의 법신도 이곳 근처까지 접근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아마 고도의 술법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접근한 게 분명하다.
여기까지 왔다면 분명 진양의 저택에도 방문을 했을 터.
문득 돼지가 떠올랐다.
‘아쉽군. 무한으로 즐길 수 있는 녀석이었는데 말이야. 그런 훌륭한 식재료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닌데.’
훌륭한 탕 재료를 잃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어쨌든 윤제 법신과 대장로가 손을 잡은 게 사실이라면 앞으로 활동에 더 큰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천년만년 정천사에 처박혀있을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일단 대장로에겐 충분히 해명했다.
그도 진양이 일전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지금쯤이면 수긍했을 것이다.
만약 믿지 못했다면 분명 산하도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것이다.
대장로는 다행히 진양이 산하도의 사본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괜히 언급했다간 정보가 새어 나갈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산하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면 진양은 난처해졌을 것이다.
실제로 사본을 연화시켜서 해안에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둘러댄다고 하더라도 눈치 빠른 대장로가 아무것도 모르고 넘어갈 리는 없다.
진양은 멀리 이도 바깥쪽을 바라보며 찻잔을 모두 비웠다.
‘의심의 씨앗도 충분히 심어줬겠다. 두 사람의 협력 관계도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파탄 나게 되겠지.’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뒤.
진양은 정자에 앉아 시원하게 바람을 쐬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대장로와 마주했을 땐 땀조차 함부로 흘릴 수가 없었다.
혹여나 작은 티라도 냈다간 즉시 발각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티를 내지 않았을 뿐, 진양은 극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상황은 결코 진양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윤제나 영제조차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상황을 진행시킬 수 없으니 말이다.
진양이 정천사로 숨어든 이유는 단 한 가지.
이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대장로가 모든 이들의 눈을 피해 정천사 안까지 들어온 것이다.
이도의 웬만한 저택 대문에는 문고리 환수가 자리 잡고 있다.
녀석들은 전부 환해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신조의 법보로서 사용되며 이러한 사실은 잊혀져 갔다.
때문에, 문고리 환수가 환해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문고리 환수는 단순히 대문을 지키기 위해 설치된 존재가 아니다.
결론만 본다면 환해 일족을 막기 위해 설치된 존재였다.
그런데, 정천사의 문고리 환수가 환해 대장로를 아무렇지 않게 안으로 들여보내 줄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나마 대장로가 살수를 펼치거나 진양에게 환술을 펼친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상황은 결코 지금처럼 평화롭게 마무리되진 않았을 것이다.
당시 진양은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화가 났었다.
심지어 대장로와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볼 생각까지 했었다.
아무리 환술을 펼친다고 해도 단숨에 진양을 제압하는 건 불가능하다.
적당히 버티다 보면 어차피 눈치를 챈 외후들이 몰려오게 되어있다.
정천사는 굵직한 대어를 기다리며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외후들이 득실거리는 곳인 만큼 대장로도 결코 무사하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윤제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생각을 바꾸었다.
괜히 목숨 걸고 대장로에게 도발을 했다가 정말로 죽기라도 한다면 결국 이득을 보는 건 윤제뿐이었다.
무엇보다 진양을 죽인 책임까지 대장로에게 완전히 떠넘길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게 되는 격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윤제 법신은 자신의 무덤과 환해가 연결되어있다는 사실과 통로의 존재에 대해 알아버렸다.
그렇다면 여기서 대장로를 함정에 빠뜨린다면 결국 큰 이득을 보게 되는 셈 아닌가?
그래서 곧바로 이간질 작전을 펼쳤다.
물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몇 번이나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대윤 신조 재건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윤제에게 딱 알맞은 상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두 사람은 앞으로 신나게 서로를 물고 뜯으며 늘어질 것이다.
‘물론 그러다 둘 다 죽어버린다면 그보다 완벽한 건 없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마냥 불구경만 하며 기다리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이제 얼마 뒤면 유령 경매가 열리게 되지만, 직접 참석하는 건 불가능했다.
윤제는 이미 대영 신조 안까지 발을 들여놓은 듯했다.
이렇게 되면 만법지서를 통해 유인하려는 작전은 써먹을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괜한 일을 벌인 건 아니다.
어차피 가지고 있어 봐야 짐만 되는 물건이니 이참에 방출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이제 남은 건 산하도.
이런 건 가지고 있어 봐야 크게 도움이 될 것도 없다.
빠른 시일 내에 물건과 함께 기억을 정리하는 게 앞으로도 도움이 될 듯했다.
* * *
같은 시각.
대장로는 씩씩거리며 진양의 저택을 나서고 있었다.
진양이 했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진양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과 봉인에 대한 일이 그저 우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순식간에 모든 것이 정리됐다.
만약 정천사에서 발각되어 목숨을 잃게 되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환해 일족은 이미 세 장로 중 두 사람이나 잃었다.
여기서 대장로까지 잃게 된다면 아마 큰 환난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윤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장로를 물리치고, 환해 일족도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로 윤제가 파놓은 함정이란 말인가?
확신이 들진 않았다.
하지만 윤제가 지금껏 벌여왔던 일을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애초부터 악의를 품고 있는 자였으니 말이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애매하게 이도 저도 아닌 선택지를 고를 순 없었다.
이렇게 되면 결론은 단 하나.
윤제를 죽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