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66
966화 어색한 기류가 흐르다
상대의 모습에 진양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수도사를 보아왔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보통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게 되면 얼굴의 때깔부터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이제 아홉 다경 남았소.”
“글쎄 그건 급한 게 아니라니깐요. 당신을 부른 건 다른 일 때문입니다. 당신 같은 인재가 도대체 왜 북두성종에 들어가려는 겁니까? 도대체 거기가 뭐가 좋다고?”
“이제 여덟 다경 남았소. 시간이 된 것 같으니 진법에 변화를 일으키도록 하겠소. 살펴볼 시간은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 믿소.”
왕백강은 진양의 말은 완전히 무시한 채 자신의 말만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적당히 구슬려 녀석을 한패로 끌어들일 생각이었으나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희망이 없을 듯했다.
‘어쩔 수 없지. 싫으면 말고!’
진양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었는지 곧장 성낙진판을 꺼내 들었다.
왕백강의 시선이 성낙진판으로 향했다.
그러나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진도 수도사들의 싸움은 주로 포진(布陣)과 파해로 이루어진다.
진법으로 진법을 압도하는 것도 파해법의 일종이다.
진양은 무심하게 성낙진판을 하늘로 던졌다.
그러자 진판은 유성이 되어 밤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이어서 진법이 펼쳐지며 두 개의 진법이 치열하게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밤하늘에 일어난 빛의 경계선은 점점 더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성낙대진이 강제로 원래 있던 진법을 밀어내는 것이었다.
상고 잔월에선 힘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왕백강의 소성투살진에서 흘러나오는 힘은 걱정할 것도 없었다.
“강제로 나의 진법을 파해하려는 것이오?”
왕백강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진양이 손에 결인을 맺자 성낙진판은 빠른 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진법의 약점이 뭔지 아십니까? 너무 복잡하고, 너무 엉망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진법을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조금씩 파해하는 건 상당히 비효율적인 방법입니다.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고요.
겉보기에는 복잡하게 얽힌 힘 때문에 매우 강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간에 상성은 썩 좋지 않습니다. 단독으로 꺼낼 수 있는 부분도 너무 많고, 이런 식으로 꺼내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약해지게 되겠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결인에 변화가 일어나며, 어느덧 펼쳐지기 시작한 성낙진판이 쾅- 하며 흔들렸다.
그러자 상공 잔월에서 공급되던 힘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일반적인 진법이었다면 이런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양의 성낙진판은 전체적으로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수십 개의 도기를 진안으로 삼고 있는 만큼 이 정도 반서쯤은 충분히 버틸 수 있고, 오히려 더욱 많은 힘을 필요로 한다.
내부의 힘이 부족하면 자연스럽게 외부의 힘을 끌어오게 되는 법.
진양은 상고 부문 하나를 만들어 소성투살진에 흘려 넣었다.
그러자 밤하늘에 떨어지던 유성우가 강제로 성낙대진이 만들어낸 빛의 경계선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긴 했으나 핵심적인 부분에까지 미치지는 못하는 작은 약점이 드러났다.
하지만 작은 틈 하나로 인해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마치 눈덩이가 불어나듯 더욱 많은 약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밤하늘의 한쪽 구석이 무너지며 소성투살진에 공급되던 힘은 강제로 성낙대진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진법에 공급되던 힘이 전부 강제로 성낙대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게다가 그 속도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르게 높아지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별들은 빠르게 빛을 잃어 갔고, 겨우 일 다경도 채 지나지 않아 깔때기의 형상을 한 채 떨어져 전부 성낙대진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왕백강의 소성투살진도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힘이 유실되니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잠에서 덜 깬 듯한 모습이던 왕백강의 눈이 번쩍 뜨였다.
놀란 그는 멍한 얼굴로 입을 쩍 벌렸고, 압도적인 상황에 저항마저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여기서 더 이상 저항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봤죠? 복잡한 진법인 만큼 작은 부분 하나만 공략하면 충분하다고요. 그리고 핵심 부분에 적당히 부문 하나만 끼워 넣어주면 진법 전체를 무너뜨리기엔 충분하고도 남죠.”
진양은 혀를 끌끌 차며 검지를 흔들어 보였다.
그런데, 왕백강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진지한 얼굴로 진양에게 큰절을 올렸다.
“무지한 제게 훌륭한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진양이라고 합니다.”
진양도 진지한 얼굴로 포권을 취했다.
“그래도 꽤 실력이 있으신 분이니 제가 당신을 직접 죽이진 않겠습니다. 스스로…….”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왕백강은 또다시 넙죽 절을 올렸다.
“…….”
상대의 반응에 진양은 당황했다.
그러나 뭐라고 할 틈도 없이 왕백강은 옥으로 만든 조악한 부적 하나를 양손으로 건네왔다.
“진 형,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이건 저희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신물입니다. 받아주십시오. 앞으로 평생 진 형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이쯤 되니 그가 어떤 식으로 이곳저곳에 붙어먹었는지 알 것 같았다.
살다 살다 이렇게 낯짝이 두꺼운 인간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낮은 자세로 나오니 다른 진법사들도 차마 그에게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문득 어쩌면 그가 수작을 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을 진법 안까지 끌어들여 놓고 패배했으면 죽어야 마땅한 것 아닌가?
죽이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진양은 상대가 건네는 부적을 받지 않았다.
대신 가까이 다가가 두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금방 끝납니다.”
뿌득-
왕백강의 머리가 등 뒤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직 능력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뭐야?’
그때, 왕백강의 몸이 왜곡되는 듯하더니 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변하여 멀리 어느 산꼭대기로 날아갔다.
그곳에는 왕백강이 서 있었고, 진양은 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놀란 건 왕백강도 마찬가지였다.
진양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죽일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런 징조도 없었다.
그는 목이 비틀어지고 나서야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말의 살기조차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는 법상을 사람의 형상으로 바꾸어 자신인 척 내보냈다.
사실상 본존은 따로 숨어있었던 것이었다.
미리 방비를 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숨통이 끊어졌을지도 모른다.
한편, 허공으로 떠오른 진양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뭐야? 법상이었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게다가 법상을 하나의 법보 비슷한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걸로 보아 법상 수도사 중에서도 중상급에 해당하는 고수인 듯했다.
보통 법상으로 화신을 만드는 건 법상 수도사 중에서도 하급 수도사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런 식으로 만든 법상은 기껏해야 화신으로 사용하는 게 전부이고, 본연의 전투력과는 상관없이 본체의 힘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법상이 죽기라도 했다간 본체에 심각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화신의 전투력을 추구하는 건 하급 법상 수도사들에게만 해당된다.
그나마 조금 급이 높은 자들은 자신의 몸에 맞는 법상을 화신으로 만들어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며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는 정도로 사용하는 게 전부다.
법상을 화신으로 만드는 것만 해도 여러 종류로 나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법상은 하급 법상에 속한다.
진정한 법상 고수가 만들어낸 법상은 중급이나 상급에 속한다.
그들은 법상을 법보로 만들어 사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보는 정상적인 법보와는 다르며,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로 세분화된다.
만약 본명(本命) 법보를 만들어 법상과 일체화시킨다면 본래 본명 법보가 낼 수 있는 힘보다 이 할이나 더 되는 위력을 뿜을 수 있다.
이러한 길이 잘 맞는 강자의 경우, 그들이 가진 본명 법보는 심지어 오 할이나 더 되는 위력을 뿜을 수도 있다.
증가된 위력은 단순히 양이 증가한 게 아니라 질적으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일부 수도사들은 본명 법보를 만들어내지 않고 법상을 법보의 형태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건 법상으로 하나의 신통력을 만들어낸 것과 같다.
직접 싸워보지 않고 상대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법상을 법보의 형태로 만든 대부분의 경우엔 형태만 보고도 대략적인 용도를 알 수 있다.
가장 큰 예로 대윤의 대국공을 들 수 있다.
그의 법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그리고 책마다 신통력이 기록되어있었다.
많은 신통력이 있긴 하나 일부 신통력은 최고봉에 올라야만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대국공이 그렇게 많은 신통력을 전부 다 최고봉의 경지까지 수련해놨을 리는 없다.
때문에 묵록처럼 순간적으로 발동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법상으로 만든 책 덕분에 그는 이러한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능력은 수도사 본연의 능력의 극한을 뛰어넘는 현묘함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표지에 적힌 이름을 보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왕백강의 법상서(法相書)는 도무지 파악이 불가능했다.
십삼만 팔천 년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름을 보고 어떻게 능력을 유추해낸단 말인가?
확실한 건 엄청난 경지까지 수련했을 리는 없다는 점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가 북두성종을 찾아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북두성종에서 제발 들어와달라고 찾아와 빌어도 모자랄 판이었을 테니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 중인 가운데,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왕백강은 겉으로는 덤덤한 모습이었으나 속으로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비록 경지로만 따진다면 그가 한 수위긴 하나 그가 직접 진법을 파해하는 방법을 보니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진판이 무엇이고, 무슨 진법을 펼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자신의 소성투살진에 비해 훨씬 강력한 진법이라는 점이다.
이 외에도 진양을 쉽게 얕잡아볼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홀로 진법을 파해하겠다고 나설 만한 실력을 갖춘 자들 중에 진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오직 하나뿐이다.
왕백강의 실력으로 진양을 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설령 그럴 만한 실력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덤벼들 수는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진양을 죽였다간 북두성종이 펄쩍 뛰며 그와의 관계에 선을 그어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히려 그를 추살하려 들지도 모른다.
진양이 대영의 여제와 어떤 사이인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만약 진양을 잘못 건드렸다간 여제의 분노를 사게 될지도 모른다.
목숨을 내던질 생각이 아닌 이상 진양을 건드리는 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