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eme Concept RAW novel - Chapter 177
87화.
천마는 자신에게 칼을 찌른 하륜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너······.”
“플레이어냐고? 맞아. 그러니까 지금 널 찔렀지.”
하륜이 플레이어라고?
천마는 발로 하륜을 걷어차 그를 떼어놓으려 했다. 그런데 황실 군대와 싸우고 있던 몇몇 무사들이 갑자기 천마에게 달려와 창을 찔렀다.
푸욱-!
섬뜩한 소리와 함께 하륜이 음흉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프지? 아니구나. 어차피 게임이라서 통증은 못 느끼지. 근데 못 움직이겠지? 이 하륜이라는 캐릭터의 특징이 한 번 베거나, 찌른 상대를 마비시킨다는 거야. 좋은 패시브지.”
하륜의 말대로 천마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것이 천마는 이상했다. 그의 몸은 만독지체로 이루어진 몸. 즉, 모든 독에 면역이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하륜의 마비독을 피하지 못 하다니.
“내가 너 다음으로 탑에 올라가는 데에 공을 많이 쌓았거든. 그랬더니 탑에서 보상을 주더라? 이번 층에서는 내가 역할을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해줬지. 아, 물론 천마 네 역할은 빼고.”
천마는 상대를 가만히 노려보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몸이 마비되어 입도 열리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측근이 되게 해 달라고 했지. 들킬 수도 있으니까, 그 역할의 정보도 달라고 했고.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하륜은 얄밉게 웃으며 천마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그거 알아? 나 너 보려고 탑에 들어온 거.
지금 널 찌르고 있는 애들한테도 인사해. 우리 길드원들이야. 저 애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 네 팬이거든.”
어느 정도 마비가 풀린 천마가 대답했다.
“팬이라는 거 치고 인사가 과격하구나.”
“원래 우리 애들이 좀 그래. 그리고 퀘스트가 퀘스트이다 보니, 포기하기 그렇잖아? 여기까지 왔는데 마지막 층이 어떤 꼬라지일지 구경은 해야 되니까.”
“그렇군.”
콰아앙-!
힘을 모으고 있었던 천마는 한꺼번에 그것을 터트려 그를 찌르고 있던 자들을 모두 밀쳐냈다.
“장난 아니네. 넌 다음 층 올라올 때마다 따로 보상이 없었지? 당연한 거야. 그 정도 힘에 보상까지 받으면 너무 사기니까.”
천마는 하륜의 역할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물었다.
“처음부터 본좌를 노리고 탑에 들어온 건가?”
“아까도 말했잖아. 너 보러 온 거라고.”
“놀랍지도 않군. 본좌는 이런 상황이 익숙해서 말이야.”
현재 천마를 포위하고 있는 건 약 100명 정도.
일반적인 플레이어들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전부 탑클래스 애들이야. 탑에 들어오려고 준비를 많이 했지. 그래서 전공 쌓은 것도 많고, 보상도 넉넉히 받았어.
”다음 층으로 올라갈 때마다 각 플레이어들이 쌓은 전공에 따라 보상이 정해진다.
역할을 정할 수도 있고, 무기를 얻을 수도 있고,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도 있다.
“형-!”
때마침 천마가 위기에 빠진 것을 보고 달려온 천강.
“뭐야, 너희들! 거기다가 당신은 왜 또 거기 있어?”
“우리 잘난 천마님의 동생분 오셨네.”
“뭐? 당신 설마 플레이어였어?”
“맞아. 여기 있는 애들도 전부 내 편이고.”
천강은 둘러싸여 있는 무사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이 정도 조직력이면 왠만한 길드가 아니라는 건데.”
“당연하지. 그런 버러지 같은 길드들이랑은 차원이 다르니까. 우리 네브레 길드가 왜 세계 랭킹 1위겠어?”
“네, 네브레?!”
판테온이 수장으로 있는 세계 랭킹 1위, 네브레 길드! 이들이 탑에 들어올 거라는 건 누구나 예상했던 거지만, 이렇듯 천마에게 가까이 붙어 있는 줄은 몰랐다.
“설마 판테온?”
“아냐. 우리 길드장은 지금쯤 신나게 정복 전쟁을 하고 있을 거야.”
모두 혼돈의 탑이라는 유혹에 휩쓸려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을 때, 판테온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정복 전쟁을 일으켰다.
당연히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혼돈의 탑 안으로 들어가 버려 대비를 하지 못 한 각 길드들의 영토가 판테온 손에 쉽게 들어갔다.
“난 네브레 길드의 부길드장 레이피드. 이름은 들어 봤지?”
“싸이피드?!”
평소 행실이 매우 싸이코 같다고 하여 싸이피드라고 불리기도 한다.
천강은 순간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닫고 입을 가려봤지만, 이미 늦었다
.
그래도 레이피드는 별로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뭐, 그렇게 부르는 애들도 있긴 하지.”
그들이 그렇게 시간을 끄는 동안, 전세는 점점 황실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천마와 네브레 길드원들이 전부 전투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어 보이는데, 얼른 끝을 내야지?”
“어리석구나. 본좌가 그까짓 마비독에 당할 줄 아느냐?”
“그건 해 봐야 아는 거고.”
레이피드의 신호에 따라 길드원들이 천마에게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뻗어 오는 공격에 천마는 바닥을 때려 기를 넓게 퍼뜨렸다.
쿠웅-!
쉬아아악-!
이윽고 그의 검에서 쏟아져 나가는 검강들이 마주오는 길드원들을 베어 버렸다.
천마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레이피드를 향해 달려가 그에게 일격을 가하려 했다.
하지만 천마가 다가올 거라 미리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레이피드는 옆에 있던 길드원을 붙잡아 당겨 대신 검에 맞게 했다.
“음?!”
그리고 그는 동료의 몸을 검으로 관통시켜 천마를 찔렀다.
‘또?’
비열한 레이피드의 공격 방식에, 천마는 어깨가 칼에 베였다. 그리 깊지 않은 상처이지만, 문제는 마비독이 몸에 퍼진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독이 자꾸 퍼지는 거지?’
만독지체인 몸에 독이 퍼진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그러자 그런 그의 궁금증을 레이피드가 풀어 주었다.
“무슨 일인가 싶지? 내가 볼 땐 아무래도 이 탑이 널 꼭 쫓아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나한테 네 정보도 몇 가지 주면서 이 검도 주더라고.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베거나, 찌르면 마비독을 주입하는 검이야.”
레이피드는 탑에서 받은 정보를 적극 활용했다.
“너, 여기 설정상 독에 면역이라며? 뭔 그런 사기적인 패시브가 다 있냐? 그런데 이걸 어째. 이 검은 네 사기적인 패시브도 뚫어 버리는데.”
그제야 천마도 이해가 됐다.
왜 마비독이 자꾸 퍼지나 했더니, 탑에서 레이피드에게 무기를 내어 준 것이었다.
“이제 반 피도 안 남은 거 같은데, 금방 끝내 줄게.”
레이피드는 다시 눈짓을 보내 길드원들을 움직였다.
“일단 저 옆에 있는 거머리부터 치워.”
“예.”
그는 천마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천강을 마크하도록 길드원들을 보내고 나머지는 전부 천마에게 투자했다.
“마무리 지어.”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네브레 길드원들!
그들 모두 탑의 보상을 받아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더 강해진 상태였다.그런데 천마는 그들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형-!”
천강은 도우러 가고 싶었지만, 그에게 달려든 무사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태.
바로 그때 천마가 검을 위로 뻗었다.
“응?”
“어?”
그와 동시에 그를 향해 달려들던 길드원들의 무기가 같이 딸려 올라가면서 모두 제자리에 멈췄다.
“이게 무슨······.”
상대를 공격해야 할 무기를 갑자기 빼앗겨 버린 길드원들은 당황하며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천마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칼을 휘둘러 그들에게서 빼앗은 무기들을 날려 보냈다.
퍼벅-! 콰직-!
그리고 원을 그리며 휘두른 검이 붉은 빛의 검강을 퍼뜨리면서 순식간에 수십 명의 무사들을 멀리 날려 보냈다.
금방 끝이 날 줄 알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거친 천마의 반격에 레이피드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그가 직접 나서려고 했는데, 바람처럼 천마가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엇-!”
천마는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말했다.
“그깟 무기 하나 얻었다고 본좌를 넘어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하-. 그러게. 이 정도로 사기일 줄은 몰랐는데. 아무리 그래도 탑이 밸런스 조절을 좀 이상하게 했네.”
“어리석은 소리. 지금 이 몸은 본좌의 진짜 힘에 1할도 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네놈들은 벌써 먼지가 되어 사라졌을 터,”
천마가 레이피드를 붙잡고 있자 길드원들이 그의 뒤로 달려왔다.
쿠웅-!
그러나 천마의 발이 땅을 때리면서 균열이 일더니, 그들이 달려오던 곳에 턱이 생겨나와 그들을 높이 날아 넘어뜨렸다.
“크윽-!”
“으으-.”
너무 단순하게 제압당한 길드원들을 보며 레이피드는 고개를 저었다.
“하아-. 쓸모없는 새끼들.”
푸욱-!
경멸스럽게 길드원들을 바라보는 레이피드의 눈빛에 천마는 그의 목에 칼을 찔러 넣었다.
“여기까지 널 위해 따라온 부하들을 그따위로 말하다니.”
“의외로 감성적인 구석이 있으시네. 저런 도구들한테 말이야.”
콰직-! 콰콱-!
천마는 수차례 더 레이피드의 몸을 베고 찔렀다.
“그래 봐야 소용없어. 알다시피 게임에서는 통증을 못 느끼잖아. 가끔 변태 같은 놈들이 느낄 수 있게 설정을 해 놓긴 하지만. 네가 그래 봐야 죽는 거 말고는 별 거 없어. 탑의 마지막 층을 또 못 간다는 게 아쉬울 뿐이지.”
그 말이 사실이다.
이곳에서는 레이피드에게 어떤 고통도 줄 수가 없다. 하지만 천마는 그의 이름을 기억했다.
“레이피드라고 했지. 그것도 네브레 길드의.”
“맞아. 탑 퀘스트가 끝나면 찾아 오려고?”
“너희 같은 놈들이 천하를 주름 잡으려 하다니.”
“원한다면 얼마든지 싸워 줄게. 여기선 내가 약하지만, 밖에서는 훨씬 강해져.”
천마는 끝을 내기 위해 레이피드의 몸에 깊숙이 칼을 찔러 넣었다.
“잊지 않겠다. 감히 본좌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료의 몸을 하고 나타나, 본좌가 그 몸을 찌르게 만들다니.”
“흐흐. 기억해 주면 나야 고맙지. 그리고 탑의 마지막 층으로 갈 땐 꼭 기억해. 헬라 이 미친년은 우릴 괴롭히는 걸 좋아하거든. 마지막 층은 네가 악몽으로 생각하는 걸 그년이 만들어 놓을 거야. 우리 때도 그랬거든.”
그 말과 함께 레이피드는 풀썩 쓰러져 버렸다.
천마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신경쓰였다.
악몽이라.
판테온도 천마에게 그와 같은 경고를 하지 않았던가.
“죽어라!!”
레이피드를 처리하고 난 후, 천마는 남아 있는 그의 잔당들까지 깔끔하게 쓰러뜨렸다. 하지만 이미 천강은 무사들에게 심한 치명상을 입어 쓰러진 상태였다.
“아우.”
“형. 미안. 아무래도 이건 회복이 안 될 거 같다. 먼저 나가 있을게.”
“······.”
그렇게 천강도 힘을 다 해 탑에서 자동 방출되었다. 이제 남은 건 천마와 퀘스트 뿐.
도대체 이 빌어먹을 퀘스트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천마는 아예 이 탑을 부셔버릴 작정으로 천마신교 무사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황실 군대를 향해 뛰어갔다.
“천마다!!”
“놈을 죽이면 우리가 승리한다!”
이들과 싸우면 한도 끝도 없이 싸워야 한다는 걸 천마는 알고 있었다. 즉,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천마가 퀘스트를 완수해야 한다.
“저쪽이다!!”
“놈이 못 가게 막아라!”
그래서 그는 아예 다른 방법을 썼다.
병사들이 몰려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무시하며 앞으로만 돌진하는 것이다.
그의 보법이라면 충분했다.
마치 하늘 위로 비상하듯, 병사들의 머리와 어깨를 밟고 다니며 무섭게 질주했다.
그를 쫓아 탑의 마지막 층으로 가려는 플레이어들은 서로 엉켜 버려 군열을 무너뜨리기 일쑤였고, 천마신교 무사들은 그 약점을 파고 들어 황실군을 붙잡아 두었다.
“지존. 가십시오!”
“여긴 저희들이 맡겠습니다!”
충직한 무사들의 외침에 힘입어 천마는 더욱 빠르게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멈춰라!!”
마침내 그는 그가 직접 불태웠던 황궁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 높은 성벽까지 어거지로 넘어서며 여기까지 왔다. 이미 그의 뒤로는 수십만이 넘는 추격군이 달라붙은 상태.
벌써 황궁 안이 시커먼 대군으로 가득차 버렸다.
“역적 천마! 감히 황제 폐하의 명을 거역하고 기어코 여기까지 왔구나!”
황제를 지키는 호위무사들이 그를 위협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마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머, 멈춰라!”
“당장 멈추지 못 하겠느냐!”
“다, 당장 놈을 막아!”
그를 막고자 여러 무사들이 달려들었지만, 단 일격에 모두 쓸려나가며 결국 황제와 천마 단 둘이 서게 되었다.
“네 부하들을 전부 제물로 바쳐 여기까지 왔구나.”
“원래 전쟁이라는 게 왕만 잡으면 끝난다는 거 모르느냐? 그리고 어차피 이곳은 가상의 세계니까.”
진짜 현실이었으면 부하들을 저렇게 놔두고 오진 않았을 것이다.
레이피드가 다시 한번 그 간극을 일깨워 주고 갔기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널 죽이고 탑의 마지막 층으로 가겠다. 도대체 뭘 위해 이런 짓까지 하는 건지, 본좌가 직접 보고 판단해 주마.”
“흐흐. 네 기대에 부응해야겠군.”
스걱-!
천마는 음흉하게 웃고 있는 황제의 목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 그러자 그를 잡기 위해 뛰어오던 플레이어들도, 치열하게 싸우던 병사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오직 남은 건 깊은 고요함과 어둠 뿐이었다.
이윽고 마지막 시험을 알리는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