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eme Concept RAW novel - Chapter 3
2화.
“이, 이게 무엇이냐? 이 관짝에 들어가라고?”
“얼른 들어가. 이거 한 시간에 만원이나 한단 말이야.”
“만원? 그게 무엇이냐.”
“뭐긴. 세상 제일 중요한 돈이지.”
“어허. 아우. 돈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건 정도와 이치를 깨닫고 하늘과 땅을······.”
“개소리 그만 지껄이고 얼른 들어가라니깐.”
“어, 억! 무, 무엄하다!”
천마는 천강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덩치도 자기보다 훨씬 큰 동생의 힘에 밀려 캡슐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크흠. 절대 본좌가 힘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야.’
내심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캡슐 안에 들어온 천마. 약간의 진동이 느껴지더니, 이윽고 깜깜했던 어둠이 걷히고 밝은 빛이 그를 감싸 안았다.
“뭐, 뭣?”
마치 개안을 한 듯한 이 기분.
천마는 주변이 온통 밝은 별로 둘러 싸여 있는 우주 한 가운데에 서게 되었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분명 자신은 관짝 같은 곳에 들어갔는데, 어두컴컴한 곳이 순식간에 확 바뀌었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천마는 입을 쩍 벌렸다.
“바실레이아를 수호할 영웅이시어.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처음 시작하는 캐릭터는 닉네임을 정해야 한다.
천마는 버릇처럼 스스로의 이름을 밝혔다.
“내 이름? 본좌는 천마다.”
“본좌는 천마다, 이것이 맞습니까?”
“그래. 본좌가 바로 천마다.”
그 대답과 동시에 천마 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당신의 닉네임이 ‘본좌는 천마다’ 로 결정되었습니다.]“응? 닉네임이 뭐지?”
신기한 광경에 천마는 호기심과 의구심 가득한 눈동자를 띠었다.
“바실레이아를 수호할 영웅이시어. 신들은 당신의 앞길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앞으로 많은 선택을 해야 할 것이며, 모든 가능성 앞에 전진해야 합니다. 당신은 영웅이, 혹은 악당이 될 수도 있고 천사, 혹은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행동에 따라 신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며, 당신의 앞길이 결정될 겁니다.”
빛에 휘감긴 여성의 목소리는 온 우주에 퍼지는 것처럼 들려왔다.
“부디 당신의 길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잠깐. 이보시오 처자. 여기는 대체 어디······.”
샤아아악-!
첫 환영 멘트와 함께 바실레이아의 여신, 리브레는 사라지고 천마도 빛에 휘감겨 강제 이동됐다.
“응? 여긴 또 어디야?”
천마는 초보자의 마을이라 불리는 ‘엘리’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초보자 마을은 몇 군데가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곳이 바로 이곳 엘리였다.
“형. 그만 허둥지둥 대고 이쪽으로 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천마의 동생 천강이 그에게 손짓했다. 그는 형이 이곳으로 올 것을 미리 알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 목소리는 설마······.”
“그래. 나야. 천강이.”
“아니? 언제 이렇게 듬직하게 바뀐 것이냐? 그 파란 갑옷도 그렇고, 이 큰 검은 또 뭐야?”
천마가 알고 있던 천강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뭐, 외형 같은 건 나중에 형도 바꿀 수 있어. 거기다가 나는 형과는 다르게 레벨이 120 이거든.”
“레벨?”
천강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바실레이아의 시스템을 대충 설명해 주었다.
“오호. 그러니까 상태창이라는 것으로 내 정보를 볼 수 있다는 것이군.”
“응. 스킬부터 아이템도 형이 시스템에 명령만 하면 돼. 그런데 형 닉네임이 왜 그래?”
“닉네임?”
“형 이름. 이곳은 현실 세계랑 다른 곳이야. 이곳 가상현실에서 쓰는 형의 이름이 지금 본좌는 천마다 라고 되어 있어.”
“그 곱상하게 생긴 처자가 이상한 짓을 해 놓고 간 거 같군. 이런 건 못 바꾸나?”
“바꿀 수 있긴 해. 돈을 써야 되지만.”
“됐다. 본좌가 천마인 게 당연한데.”
천마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시스템 창을 보면 처음 듣는 용어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읽을 순 있다는 것이었다.
한글은 전부 읽을 수 있었고, 영어도 어느 정도는 읽기가 가능했다. 뜻을 몰라 헤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천마도 처음 보는 글자를 무의식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한글이라고 했던가? 정말 대단한 문자로군.”
“세종대왕님께 감사해.”
누군지도 모르는 왕이지만, 굉장한 천재라는 건 들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본좌의 레벨은 1이구나.”
“이제 막 시작했으니까.”
“으으. 형 이기는 아우 없다고 했다. 본좌가 기필코 네 레벨을 뛰어 넘어 주마.”
“그러시던가. 그런데 그 운기조식인가 뭔가는 안 해 봐도 돼?”
“아! 그렇지.”
천마는 제자리에 앉아 운기조식을 펼쳐 보였다.
천강은 그런 형을 못 마땅하게 내려다보면서 일단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참았다.
아무리 가상현실게임이라도 운기조식이라는 게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물론, 스킬 중에 명상을 통해 마력을 회복하는 건 있어도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초보자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
“되, 된다.”
“뭐?”
“된다! 된다고! 뭔가 내공과는 다른 것이 단전에서 느껴져. 처음 느껴보는 기운이지만, 내공과 비슷해. 이것들이 내 몸에서 운행하고 있어!”
천마의 말에 천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된다고?
뭘 착각하는 건 아닐까?“
“아주 미묘한 놈이로구나. 내공과는 뭔가 결이 다르나, 잘만 다루면 내공처럼 쓸 수가 있겠어.”
무공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천마의 얼굴에 함박 웃음이 피어올랐다.
천강은 처남의 말을 천천히 곱씹어보다 슬쩍 던져 보았다.
“설마 마나를 말하는 건가?”
“마나?”
“그래. 상태창을 보면 형 체력이랑 마나가 뜰 거야.”
“오. 맞아. 체력이 300. 마나가 300이라고 쓰여 있다.”
“그걸 느낀 게 아닐까? 근데 스킬을 배우지 않으면 느낀다고 해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스킬?”
“음. 무협으로 말하면 검법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바실레이아 온라인은 처음부터 정해진 특성이 없어. 맨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임이야. 어떤 선택을 하느냐, 또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서 캐릭터의 직업과 스킬이 결정 돼.”
다른 가상현실게임들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 바실레이아가 성공한 이유가 있다.
타사 RPG 게임들은 현질을 유도하며 캐릭터를 처음 만들 때부터 특성을 결정시켜 계속해서 캐릭터를 다시 만드는, 쉽게 말해 가챠 습성이 매우 강했다.
그러나 바실레이아는 다르다.
공평의 신, 리그루의 가호에 따라 모두가 평등하게 시작한다.
똑같은 능력치, 똑같은 체력과 마나.
현질 유도도 없고 현질이라고 해 봐야 스킨을 사는 것 정도다.
모두에게 공평한 플레이를 보장하며 무수히 많은 히든 직업이 숨겨져 있어 플레이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진로가 달라진다.
출시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정복해야 할 것이 많다.
“형도 생각을 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원하는 스킬이 있다면 그걸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면 돼. 직업을 선택하는 건데, 기본적으로 전사, 마법사, 격투가, 궁수 등이 있어. 그 외에도 음악을 연주하는 바드도 있고 원한다면 밭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도 될 수가 있지. 여긴 직업이 정말 다양해.”
다른 게임들은 어떤 직업을 해야 하는지 한정적이지만, 이곳은 무수히 많은 직업이 존재해 플레이어가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직업을 갖고 싶으면 그와 관련된 장소로 가서 그 직업을 가지면 되는 것이다.
그만큼 자유도가 높다.
“직업을 가진다는 건 정확히 무슨 의미지?”
“무슨 의미냐니.”
“일을 하는 건가?”
천마가 뭔가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천강은 깨달았다.
“아니야. 내가 말하는 직업은 어디서 일을 하거나, 뭐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야. 음······. 형의 특성을 살리는 거지. 각 직업마다 마스터가 있어. 그 마스터로부터 스킬을 배우고 퀘스트도 받아서 수행을 하는 거야.”
“마스터?”
“무협으로 말하자면 마스터는 스승이라고나 할까?”
“스승?!”
갑자기 천마가 두 눈을 부라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스승이라니! 이 하늘 아래 감히 본좌의 스승이 어디 있다고! 본좌가 곧 만인의 스승이며, 저 하늘마저도 본좌를 스승으로 모신다. 그런데 본좌가 스승을 갖는다? 하-!”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천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본좌는 스승 따위 필요하지 않다. 그러니 다시는 그런 말을 꺼내지 말거라. 본좌의 아우라고 해도 그런 모욕은 절대 용서할 수 없으니까!”
천강은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천마를 쳐다보았다.
심각하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정신병이라니.
차라리 여기 캡슐방에다 고려장이라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냐. 그래도 내 핏줄인데, 버리고 갈 순 없지.’
순간 울컥 하는 마음이 들었으나, 천강은 스스로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대신, 다른 방법을 쓰기로 결심했다.
‘바실레이아 대륙의 무서움을 보여 주어야겠군.’
무공이든 마법이든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직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직업을 갖지 않는다?
그건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소리와 같다.
그렇기에 천강은 왜 직업이 존재하는지를 제 형에게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따라와.”
“응? 어디를.”
“형이 마음껏 무공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오오. 그런 곳이 있단 말이냐? 역시, 아우 밖에 없구나!”
천강이 천마를 데려간 곳은 엘리 마을 바깥에 있는 늑대 사냥터였다.
초보 사냥터 수준이지만, 아직 레벨 1에게는 무리인 곳이다. 이곳은 기본 레벨 15는 되어야 사냥이 가능한 곳이니까.
그런데 천강이 천마를 이곳에 데려온 건 단단히 교훈을 주기 위해서였다.
‘여기 늑대들한테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 정신을 차리겠지.’
늑대들한테 몇 대만 맞아도 금방 죽어 버리는 게 레벨 1의 현실이다.
천강은 제 형이 거의 죽을 때쯤에 나서서 직업의 중요성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크르르.”
때마침 늑대 한 마리가 천마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감히 짐승 따위가 자신에게 눈을 부라린다는 것에 천마는 분노를 느끼며 늑대와 기싸움을 벌였다.
“본좌를 보고 감히 이빨을 드러내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로군.”
또 시작이다- 라고 생각하며 천강은 늑대와 천마가 싸우도록 슬쩍 뒤로 빠져 있었다.
아마 늑대한테 발톱으로 한 대 갈퀴어 보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크아아앙-!”
“이놈!”
뻐억-! 콰직-!!
그런데 천강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본좌가 우습더냐, 이놈!”
보기 좋게 달려들던 늑대가 천마의 주먹에 나가떨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 우연이겠지?’
아마 운이 좋았을 거라 생각하며 천강은 조금 더 지켜보았다.
“크아아앙-!”
“이놈이 끝까지!‘
사나운 늑대가 이리저리 발톱을 휘갈겨 봤지만, 천마의 몸에 스치지도 못했다. 그는 공격이 들어올 때마다 반격을 날려 늑대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크, 크어엉-.”
그로기 상태에 빠진 늑대.
저기서 몇 대만 더 치면 늑대는 죽고 만다.
이 타이밍이면 천강이 멋있게 나서서 제 형을 구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천마의 콧대만 더 높아지게 만드는 꼴이 되었다.
‘저거 우리 형 맞아?’
집에서 빈둥빈둥 놀기만 하고 운동이라고는 해 본적이 없는 몸치. 그런 사람이 아주 재빠른 몸놀림으로 늑대를 제압해 버렸다.
바실레이아 온라인은 가상현실게임인만큼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다. 즉 개인의 센스가 얼마만큼 있느냐에 따라 움직임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천마의 몸놀림은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레벨 1로는 절대 잡지 못 한다는 늑대를 두들겨 패 놓은 천마의 표정은 결코 좋지가 않았다.
“끙. 역시, 이 몸도 불편하구나.”
“뭐, 뭐가?”
“저런 늑대 하나쯤은 손가락 하나로도 찢어발길 수 있거늘······. 본좌가 이리도 약해졌단 말인가?”
“······.”
고작 레벨 1이 늑대를 저따위로 만들었으면서 그게 할 말인가?
다른 사람들이 이 장면을 봤으면 아마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천강은 순간적으로 정말 우리 형이 천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
하지만 방금 전 그 움직임은 대체 뭐였을까.
의문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거······ 뭔가 그림이 나오는데.”
특출난 몸놀림. 전투적인 감각.
그리고 본좌는 천마라고 지껄이는 저 캐릭터성까지.
삼박자가 모두 갖춰져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아이템이 될지도?”
천마를 바라보는 천강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