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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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통화를 마친 박철우가 입을 열었다.
“그 당시 공장 관리자가 백정한 회장이라는데요. 당시 회장 아들인 거 숨기고 들어갔었는데 현장 경험 배울 겸······. 하.”
말하다 보니 더욱 재벌들의 행태가 고깝게 느껴진 박철우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도준의 말대로 고소를 당한 적 있어 경찰 쪽에서는 공장 관리자의 신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했다. 고소는 얼마 안 가 취하되었고, 큰 문제 없이 해결되었다고 설명했다.
‘고소 취하라······.’
합의를 본 것일지 협박을 당한 것일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도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임지유 팀장은 하필 도준이 찾는 공장 관리자가 백정한 회장인 게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무언가 더 사연이 있는 건지 묻고 싶어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백정한 회장님이라니······.”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 도준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분이라면 어디 계신지 알기는 쉬워도 만나기는 힘들겠네요.”
퍽 안타깝다는 태도로 말한 도준이 임지유 팀장이나 박철우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대화를 정리했다.
“아무튼 알아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부탁드리기를 잘했네요. 아니었으면 계속 찾아보려고 했을 것 같은데······.”
도준이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라 임지유 팀장도 생각을 멈췄다.
“이게 도움이 된 건지 모르겠네요.”
“아니에요, 너무 도움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후식 가져오라고 할까요?”
도준의 물음에 박철우가 끄덕였다.
“···대기업 다 그렇다지만 SG는 진짜 구린 구석이 많네.”
후식을 기다리며 박철우가 중얼거렸다.
부러움과 분노가 뒤섞여 한국의 대기업을 욕하는 일은 어느 모임에서나 잦은 일이었다. 그러나 박철우의 직업은 경찰이었다. 보고 듣는 얘기가 일반 사람들보다 더 많을 수 있었다. 특히 범죄와 관련해서.
“구린 구석이요?”
“아니 백 회장이 고소당했던 것만 봐도······ 솔직히 고소 취하가 그냥 됐을 리도 없고.”
박철우 역시 도준과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쪽 자식들도 문제 많은 것 같더라고요. 얼마 전에 그 딸이 사건 크게 터졌었지만, 아들도 정상은 아니라······.”
“당신이 자문해준다던 영화 얘기도 그쪽 얘기지?”
임지유 팀장의 물음에 박철우가 끄덕하며 간단히 답했다.
“꼭 SG 얘기라기보다는 이쪽 저쪽, 망나니 같은 재벌들 얘기 같던데. 난 경찰 수사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얘기해주는 거라······.”
“잘만 만들면 재밌겠다.”
임지유 팀장의 말했다.
‘SG 일가에 대한 영화···?’
도준에게는 꽤 흥미를 돋우는 주제였지만 어느덧 주제는 다른 곳으로 넘어가 있었다. 도준도 굳이 SG에 대한 관심을 과하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랐다.
***
이후에는 임 팀장 부부의 아이들 이야기가 오갔다.
화목하고 서로를 아껴주는 게 눈에 보이는 부부였다. 백정한과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애써 한구석으로 밀어둔 채 도준은 두 사람이 보기 좋다는 생각을 하며 미소 지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세 사람은 식당 입구 앞에서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각자 차를 둔 곳이 달랐기 때문에 인사를 나눈 후 헤어지려고 할 때였다.
길을 지나던 사내가 박철우 형사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왔다.
“어, 박 팀장님?!”
“······문 감독?”
사내는 뿔테 안경을 쓰고 니트 재질로 된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커다란 패딩에 청바지 차림.
선입견은 좋지 않은 것이었지만 사내는 이 동네 부근을 돌아다니는 예술한다 하는 업계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준의 집이 있기도 한 한남동은 워낙 관계자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기는 했다.
‘감독?’
의아한 점은 감독인 그가 배우인 도준보다도 박철우 형사를 먼저 알아보았다는 것이었다.
뒤늦게 박철우의 맞은편에 서 있는 도준을 발견한 사내가 깜짝 놀라며 “어!” 하고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도준을 가리켰다.
“아이고, 미안해요. 내가 너무 놀라서!”
얼른 손가락을 내리며 사내가 사과했다.
“아니, 박 팀장님이 강도준 씨랑 어떻게······.”
무척이나 얼떨떨해하며 묻자 박철우 팀장이 말했다.
“아, 우리 와이프 직장 소속 배우인데 이번에 같이 음식 대접하고 싶으시다고 해서.”
“네에?! 아니, 그럼 이분이 형수님?”
“어.”
“그런데 형수님이 무슨 일 하시길래······. 아니, 일단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문시열입니다. 영화 만드는 일 하고 있습니다.”
문시열 감독이 얼른 임지유 팀장 쪽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다른 영화감독들과 비교해 보면 꽤 붙임성이 좋아 보였다.
박철우는 일이 귀찮게 됐다는 듯 귀를 후비적거렸다. 간단히 오가는 대화만 들어서는 박철우와 문시열 감독의 관계를 추측하기 힘들었다.
‘문시열 감독? 어디서 들었더라······.’
임 팀장과 문 감독이 인사하는 것을 지켜보며 도준은 문시열 감독이 누구인지 떠올리려고 애썼다.
“아! 저는 소나무 엑터스 홍보팀 임지유입니다.”
자신을 소개하며 임지유 팀장이 가방에서 명함을 꺼냈다.
홍보팀 팀장답게 따로 챙겨 다니는 명함 지갑에는 자신의 명함이 두둑하게 들어 있었다. 명함을 건네받은 문시열 감독이 “와” 하며 과장되게 감탄했다.
“형수님이 이렇게 능력 있는 분이시라고 왜 말씀 안 하셨어요, 형님.”
“내가 언제부터 문 감독 형님이 됐어?”
“에이, 팀장님. 또 그런다.”
그렇게 박철우와 투덕거리며 문시열 감독은 도준을 힐끔거렸다. 도준에게도 제대로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문시열 감독이 도준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렇게 뵙게 되네요. 한 번쯤 뵙고 싶었는데, 반갑습니다. 문시열 감독입니다. 도준 씨 팬이에요.”
한 번쯤 보고 싶었다. 팬이다. 그 말이야말로 관계자들이 도준을 보면 한 번쯤 하는 말이었다.
“반갑습니다, 감독님. 의 문시열 감독님 맞으시죠?”
그사이 문시열 감독의 작품을 떠올리는 데 성공한 도준이 빙긋 웃으며 문시열 감독에게 악수를 청했다.
은 로 데뷔한 문시열 감독의 가장 최근작이자 흥행작이었다.
흥행작이라고 해 봐야 천만 가까이는 가지도 못 했지만 몇 년 전 아동 대상 범죄 문제를 사회 문제로 끌어올린 화제작이었다.
그러나 이후 2년 넘게 영화를 준비한다는 소문만 돌 뿐 소식이 없었다. 다른 유명 감독이 많았기에 문시열 감독은 관객들에게서 슬슬 잊혀가고 있었다.
“ 정말 감명 깊게 봤습니다. 다른 작품들도요.”
악수를 하던 문 감독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현재 도준은 클래스가 다른 배우였다. 그야말로 흥행 ‘보증 수표’였고, 긁으면 긁는 대로 긁히는 확률 99.999%의 복권이었다.
안면을 튼 것만으로도 기분 좋았는데, 인사치레일지라도 도준이 자신의 작품들을 감명 깊게 봤다고 하니 어깨가 치솟는 기분이었다.
한참 어린 배우의 칭찬 하나에 싱글벙글하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초라하다는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솔직히 웬만한 대작 감독 아니고서는 다 이런 기분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애초에 다들 어떻게든 도준에게 인사 한번 하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런데 저희 남편이랑은 어떻게······ 설마 자문해준다는 감독님이······?”
임지유 팀장이 문 감독과 박철우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박철우가 끄덕거렸다.
“비공식 자문이지만.”
“박 팀장님한테 신세 많이 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깨달은 도준이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치레가 아니라 을 인상 깊게 본 도준은 문시열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보았었다.
데뷔작인 은 보다는 더 음습하고 어두운 내용의 영화였다. 주제도 역시나 살인죄와 관련돼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사건을 파고드는 집요함과 냉철한 시선 같은 게 무척 마음에 들었다.
문시열 감독의 작품을 보던 중 의외였던 작품은 라는 문시열 감독 작품 중에는 딱 하나뿐인 코미디 영화였다.
설 연휴에 TV로 방영된 적도 있는 가볍고 전형적인 가족 코미디 영화였는데, 생각보다 개그 센스가 살아 있었다.
‘사회 문제를 주로 다루었던 감독이어서인지 특히 블랙 코미디가 일품이었달까.’
아예 제대로 사회 풍자 코미디를 찍어도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SG 일가를 주제로 한 작품이라······.’
SG 일가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는 이가 문시열 감독인 것을 알게 되자 도준은 더욱 흥미로워졌다.
어떤 방향으로 시나리오를 집필 중인지 궁금했다.
“어디 가는 길이었어.”
인사를 모두 마친 문시열 감독에게 박철우가 물었다.
“아, 저 그냥 근처에서 혼자 커피나 마실까 하고······. 혹시 세 분 시간 되시면 같이 커피 마시면 좋을 텐데.”
어두운 영화로 많이 알려져 감독 자체도 어둡고 혼자만의 세상에서 사는 사람일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문시열 감독은 꽤 친화력이 좋고 심지어는 세속적인 면도 있는 사람이었다.
사회 고발적인 영화를 찍는다고 해서 세속적이지 말라는 것도 편견이었다. 돈 잘 벌고자 하는 게 범법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문시열 감독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감독 일을 10년 정도 하다 보니 결국 감독도 제작사와 배우들에게 시나리오 파는 영업사원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처음부터 천재 소리 들으며 데뷔하는 감독 아닌 이상 상업 영화를 계속 찍으려면 인맥을 구축해 놓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고 했던가.
도준과 친분을 쌓아두어 나쁠 일이 하나도 없었다. 도준을 캐스팅하고 싶은 욕심도 감독이니 당연히 있었지만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고, 도준과 친분 있는 배우들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었다.
‘웬만한 톱급 여자 배우들이랑 전부 호흡 맞췄는데 다들 한 번 더 같이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좋다고 난리일 정도니······. 소개받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혼자 머릿속에서 설레발을 치며 큰 그림까지 그린 문시열 감독이었다.
물론 도준이 거절하면 다 지워질 그림이었다.
박철우가 임지유 팀장과 도준의 의사를 확인하려 고개를 돌렸다. 임지유 팀장은 연예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편이 영화감독과 친하게 지내니 평소에도 감독을 궁금해했었다.
문제는 도준이었다.
“도준 씨는 바쁘시면 편하게 가 보셔도 돼요. 어차피 지금 헤어지려던 차라······.”
임지유 팀장이 센스 있게 도준이 자리를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던 도준이 웃으며 말했다.
“아, 저도 시간 괜찮습니다. 오늘 하루 두 분이랑 밥 먹는 것 외에는 스케줄 다 비워 놨었거든요.”
“그래요?”
임지유 팀장이 웃으며 되물었다. 물론 그 순간 가장 기쁜 것은 도준과 대화할 기회를 얻게 된 문시열 감독이었다.
끝
ⓒ 천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