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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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은 문시열 감독이 가려고 했던 카페로 향했다.
종종 시나리오 집필을 하러 온다는 골목 끝의 카페에는 손님도 없이 주인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는 불친절한 얼굴로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사장이 불친절하긴 한데 커피는 정말 맛있습니다. 덕분에 조용하기도 하고요.”
문시열 감독이 세 사람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의 말대로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커피를 가져다 주는 주인의 입꼬리가 1mm만 올라가도 훨씬 장사가 더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모여앉은 네 사람이 공통적으로 할 수 있는 얘기는 역시 문시열 감독이 집필 중인 시나리오 얘기였다.
박철우와의 인연을 설명하며 문시열 감독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영화 얘기를 꺼냈다.
“2년 전이었나요. 경찰에서 대만 폭력조직인 대림방 일당을 잡아들인 게. 그때 그 인간들이 시가 4000억 원 어치 필로폰 130kg를 숨겨서 한국에 들여 왔다가 적발돼 뉴스가 된 적 있었어요. 그때 그 많은 필로폰을 어떻게 들여 왔나 했는데 LCD 모니터 액정 안
에 필로폰을 숨겼다는 거예요.”
“X-레이 검사를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거지.”
“기기가 발전하니까 마약 숨겨 오는 방식도 발전한 거죠. 흥미롭더군요. 그래서 마약 밀수에 관심이 생겼고 조사를 좀 했어요. 범죄도 머리가 좋아야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이 맞긴 한 게··· 정말 갖가지 방법을 쓰더라구요. 필로폰을 비닐에 싸서 빵을 굽지를 않
나······.”
문시열 감독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마약을 밀수하는 생각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이 많았다. 임지유 팀장과 도준은 흥미를 갖고 문시열 감독과 박철우의 이야기를 들었다. 집에서 자신의 직업 관련 얘기는 잘 하지 않는 박철우라 임지유 팀장도 처음 듣는 얘기들이었다.
“제일 많이 사용되는 수법은 아무래도 국제우편인데 과자 상자에 소량씩 숨겨오기도 하고, 주한미군용 국제우편도 사용된다고 하더라구요. 아, 이런 거를 영화화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마약을 밀수해 오는 과정과 그걸 잡는 경찰들 얘기.”
“그게 무슨 재미라고······.”
박철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에게는 ‘일’이니 사건이 재밌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문시열 감독이 소리 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때부터 제대로 시나리오 써 보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박철우 팀장님을 소개 받았어요. 마약사범 관련해서는 잔뼈가 굵으신 분이라고 하셔서.”
“이렇게 일 년 넘게 귀찮게 할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만나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박철우는 궁시렁댔지만 문시열 감독은 박철우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문시열 감독의 얘기를 들으며 도준은 문시열 감독이 왜 흥미를 느끼고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사건을 잘만 엮으면 괜찮은 작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자칫하면 스토리라인이 지나치게 단조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선과 악이 너무 분명하고, 결말도 일정 부분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구성을 어떻게 잡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 되겠네······. 그런데 단순히 마약사범과 경찰 얘기라면 아까 전에 박철우 팀장님이 했던 재벌가 얘기는······.’
도준이 조금 의아해하던 차 문시열 감독이 얘기를 이었다.
“그렇게 마약 제조, 밀수, 판매 과정 같은 것들 조사하던 중에 박 팀장님이 얘기해주신 사건이 또 기가 막혔어요. 필로폰을 아예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제조한 사건이 있었다는 거예요. 박 팀장님 전담 사건이었다는데······.”
“아, 저 그 사건 알아요. 이이가 일주일 넘게 고생한 사건인데. 호텔에서, 맞죠?”
임지유 팀장의 말에 박철우와 문 감독이 끄덕거렸다.
“맞아요. 중국인들이었는데 아예 호텔을 잡고 거기서 계속 필로폰을 생산해낸 거죠.”
“가 보니까 호텔방이 아니라 그냥 공장이더라. 등잔 밑이 어둡다지만 그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이제 마약 청정국이라고 불리기는 글러먹은거지 뭐.”
박철우가 씁쓸한 어투로 덧붙였다.
도준은 놀라고 흥미로운 얼굴로 얘기를 경청 중이었다. 도준이 계속해 관심을 보이자 문시열 감독은 조금 더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비공식적인 얘긴데······ 그 중국인들이 마약을 판매하려던 이들이 재벌가 사람들이었던 거예요.”
흥미 위주로 듣고 있던 도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거기까지 조사는 이루어지지 못했죠. 이유는······ 뭐 다들 아시겠지만.”
돈은 권력과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 경찰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어두운 일면이었다. 박철우는 입맛이 쓴지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깊게 쉬었다. 왜 박철우가 자신을 ‘비공식’ 자문이라고 했는지 알 만했다.
도준이 박철우에게 물었다.
“비공식이라지만 그래도 영화가 나오면 말이 나올 수 있는데 괜찮으신 겁니까?”
“안 괜찮을 만큼 정의롭게 공식 발언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수사를 하겠다고 날뛴 것도 아닌데요, 뭐. 영화 때문에 날 내쫓겠다고 하면······ 옷 벗어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럴 일 없게 조심할 겁니다. 박 팀장님.”
문시열 감독도 염려하던 부분 중 하나였기에 말했다.
임지유 팀장은 작게 한숨을 쉬었지만 이미 어느 정도는 각오한 부분도 있는 듯 보였다.
‘경찰······. 재벌가와 당연히 연결되어 있겠지.’
그 모습을 보며 도준은 잠시 맨처음 백정한 회장을 찾아갔을 때를 떠올렸다. 난동을 부렸다는 이유로 도준은 경찰서에 가야만 했다.
‘그때는 전혀 이상함을 못 느꼈지.’
도준의 신상 정보를 묻던 담당 경찰이 전화를 받고는 미묘한 눈으로 도준을 봤었다. 그리고 일이 있다며 한참 이유 없이 도준을 대기시켰다.
나중에서야, 유전자 검사까지 모두 마치고 도준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한 백정한 회장이 도준의 삶을 망치고 난 이후에서야 도준은 깨달았다.
경찰서에서 도준의 유전자를 얻기 위해 담당 경찰이 계속해 도준을 대기시키고 수상한 행동을 했었다는 것을.
“아무튼 미국에서는 마약을 한다고 하면 인생 버린 하층민을 많이들 떠올리지만 사실 한국에서 마약을 하는 이들 중에는 재벌가 사람들이 정말 많더군요. 돈은 많고 무서울 것 없는 사람들.”
신이 나 얘기하던 문시열 감독의 말투에도 씁쓸함이 묻었다.
“재한 그룹 차남은 아예 마약 중독자였고. 삼원 철강 막내는 마약책 노릇이나 하면서 살고 있거든요. 여기서부터는 클럽 MD 애 하나 꼬여서 캐낸 내용입니다. 보니까 그 무리가 정기적으로 여는 마약파티까지 있었고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의 자제들이었다. 도준이나 임지유 팀장 모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리게 됐다.
“마약 파티 관련해서 조사하다 보니 당연하게도 술, 여자, 폭력까지. 아주 줄줄이더군요. 중간에 SG 일가 사건이 터지는 걸 보고, 터질 게 터졌구나 싶었는데 백정아 전무의 ‘막말 논란’ 정도로 사건이 축소된 채 끝났습니다. 사실 그 백천 사장 얘기가 그렇게 묻
힐 얘기가 아니던데 말이죠.”
“아··· 그렇습니까?”
도준이 차분하게 되물었다.
“네. 제가 알기로 백천 사장도 마약 파티에 참여하던 이중 하나였거든요. 그쪽에서는 이미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비서 폭행도 사실이고, 다른 폭행 사건에도 수차례 연류되었었다고요. 백정한 회장도 그리 소문이 좋은 편은 아닌데 워낙 옛날 사람이라 저도 거
기까진 모르겠습니다만··· 백천 사장 하는 짓 보면 백 회장도 다를 바 없었겠구나 싶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문시열 감독은 도준이 SG나 재벌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 모두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연예인들 중 재벌가와 관련된 연예인도 많았지만, 도준이 그러한 부류가 아니라는 건 이 영화를 위해 많은 것들을 조사한 문시열 감독이라 더 잘 알았다.
이 영화의 캐스팅 목록에는 일련의 사건들과 무관한 배우들만 캐스팅할 수 있었기에 배우들에 대한 조사도 어느 정도 해놓은 상태였다.
“그런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집필하던 영화의 궤가 많이 달라졌어요. 마약 사범을 쫓던 경찰이 재벌과 엮이면서 권력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는 이야기로요.”
확실히 마약 밀수범과 그를 검거하는 경찰이라는 얘기 구조보다는 더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가능성이 컸다.
“주인공 캐릭터는 경찰이니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악역은 범죄 조직원이 아니라 여러 재벌들을 뒤섞어 놓은 캐릭터에요. 재벌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영감을 받은 인물이 있다면 SG 백천 사장이고··· 물론 영화 스토리를 위해 다른 재벌들의 행태도 덧붙이고
허구적인 부분들도 가미하겠지만요. 명예훼손을 피하기도 해야 하고요.”
문시열 감독이 하하, 하고 소리내 웃으며 말했다. 웃음의 끝이 씁쓸했다.
도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도준이 무너뜨리고 싶은 건 백정한 회장이었지 백정한 회장의 자식이나 SG라는 기업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깨닫고 있었다. 백천과 백정아는 백정한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었다. 백정한이 키운 괴물들.
SG 그룹은 그 괴물들의 요새화 되어있었다.
얘기를 듣다 보니 다른 재벌 일가들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마약과 같은 유흥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주가 조작을 하는 등 재벌들이 저지르는 위법 행위는 일반인들이 저지르고 저지를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들이었다.
아주 개인적인 일이었지만 백정한 회장에 의해 꿈을 좌절당했던 도준처럼 다른 곳에서는 또 다른 개인들이 커다란 권력에 의해 좌절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몫까지 복수하고 싶다는 정의감에 불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도준은 문시열 감독의 영화가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전 문시열 감독이 만들었던 영화들도 그랬고 시사고발 TV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영화의 제작진들이 경찰보다 나은 역할을 할 때가 있었다,
어두운 일면을 조명하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도움이 될 수 있기에.
‘그리고 아마······.’
도준의 복수에도 도움이 될 영화는 분명했다.
***
LA 중심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36층의 방에서 도준은 문시열 감독을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무사히 비자를 발급받고 LA로 날아온 게 벌써 한 달 반 전의 일이었다.
“시나리오 집필이 끝나시면 저도 한번 보고 싶네요.”
그날. 저녁 무렵이 돼서야 네 사람은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 도준의 말에 문시열 감독은 무척이나 놀랐었다. 시나리오를 한번 보고 싶다는 말은 조금만 과대 해석하면 출연을 검토해 보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준의 인맥을 바라 도준에게 영화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었지, 도준의 출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던 문시열 감독이었다.
할리우드 드라마까지 진출한 도준의 명성이나 위치를 생각하면 도준에게는 너무 작은 규모의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도준도 SG 일가 및 재벌가를 고발하는 내용의 영화라고 해서 무작정 출연할 의사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시나리오가 괜찮아야 도준도 출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나리오만 좋다면 규모와는 상관 없이 출연할 의사 또한 있었다.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가 될 수도 있었으므로.
삐삐삐삐-
이제 4월이었음에도 벌써부터 여름의 모습을 한 LA의 전경을 내려다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도준을 깨운 건 시계 알람 소리였다.
오전 9시. 이제 슬슬 촬영장으로 출발할 시간이었다.
오늘은 의 첫 촬영일이었다.
끝
ⓒ 천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