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Royal straight flush (6)
배우 생활을 하며 도준은 거의 매해 에 초청받았다.
그러나 촬영이나 기타 다른 스케줄을 핑계로 참석만은 피해 왔다. 다른 방송사 시상식과 실제로 일정이 겹칠 때가 있기도 했고.
이유라면 많았다.
일단 매해 이 열리는 장소, 문화의 전당은 도준이 자살을 결심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렸던 곳이었다.
‘죽음을 선택한 건 정말 바보 같은 선택이 틀림없지만…….’
당시에는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실제로 도준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족과 꿈이 무엇 하나 도준에게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하늘이 도와 다시 한번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돈과 명예를 떠나서 연기를 하며 배우라는 직업으로 얻고 있는 행복을 생각해 보면 더욱.
아무튼 그렇게 삶을 버리려고 했던 곳을 다시 찾는 것이 꺼림칙했다.
‘지우고 싶은 과거인 게 사실이니까.’
그리고 은 SG 미디어가 큰 후원사이기도 해서 백정한 회장이 시상자로 나서는 곳이었다.
당시에는 백정한 회장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는 백천 사장이 시상자로 나섰다. 의미 있는 자리인 만큼 SG 그룹을 이끌어 갈 후계자라는 것을 대중에게 인식시키려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백 씨 일가와 최대한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을 피해 온 것도 있었다.
‘백정아가 먼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연락해 오지 않았다면 백 씨 일가와 마주치는 건 조금 더 나중이 되었겠지.’
그렇게 데뷔 5년여 만에 밟게 된 문화의 전당이었다.
의 경우 참석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도준은 에서 제대로 상을 받은 것이 없었다.
대한민국 내에서 권위 있는 시상식인 것은 맞았지만 어차피 다른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다시피 하는지라 도준은 상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유독 에 불참 소식을 알려 오는 도준에 대해 측에서 아쉬움을 가졌을 뿐이다.
‘백정아로 인해 SG 그룹과 사이가 틀어진 게 공공연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긴 하지만…….’
여전히 SG 그룹은 의 후원사이기는 했지만, 그 입김이 약해진 것은 물론이고 더는 죽은 백정한 회장을 포함해 백 씨 일가를 이곳에서 볼 일은 없었다.
‘백정한도, 백천도, 백정아까지도 이곳에 없어.’
은 그야말로 ‘폭망’했다. 방영할수록 온갖 개그와 조롱의 대상만 될 뿐이라 방송국이나 배우나 당분간 이미지 회복이 어려워 보일 듯했다.
사실 조기 종영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사전 제작이라 피드백을 할 수도, 조기 종영을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할 뿐이었다.
그나마 제작, 투자자로서도 인정받지 못할 상황이니 백천이나 백정아가 SG 그룹의 실세로 돌아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일단 백천은 당분간 감옥에 있겠지.’
도준은 생각하며 옥상 아래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엄호를 받으며 레드 카펫을 밟고 들어오는 백정한 회장이 없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그날 보았던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화려한 조명과 벤이 도착할 때마다 들려 오는 함성.
추운 날씨에도 많은 인파가 TV 속, 스크린 속 스타를 보기 위해 몰려들어 있었다.
물론 그중 절반이 도준의 팬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함성 가운데는 낯선 외국어도 섞여 있었는데 도준의 외국 팬들이 도준을 보기 위해 먼 곳에서부터 찾아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도준의 외국 팬의 숫자는 김은석의 팬 숫자와 함께 또 한 번 급속한 상승세를 보이는 중이었다.
“도준 씨, 준비되셨어요?”
스태프의 목소리에 도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옥상인지라 바람이 아래쪽보다도 많이 불었다. 도준을 비롯해 몇 명의 배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태프들의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김정호 씨 오케이랍니다!”
“황호석 씨도 오케이요!”
“박나희 씨 오케이요!”
“카메라?”
“카메라 스탠바이 됐답니다!”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무전기로 주고받는 소리가 옥상에 울려 퍼졌다.
이번 제작진은 다른 때보다도 배로 공을 들여 시상식을 준비했다.
도준을 비롯해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스타가 전년보다도 더 많이 참여해 그 관심도가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상 후보들이 무척이나 쟁쟁했다.
제작진은 그들을 위한 그림을 연출하기 위해 옥상에 그들만을 위한 레드 카펫을 깔았다.
하늘 위에는 드론 카메라를 띄우고, 폭죽도 준비해 놓았다.
생방 직전 그들의 등장 장면은 곧바로 편집되어 오늘의 대상 수상자가 누구일지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영상으로서 오프닝에 방영될 예정이었다.
“갑니다!”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연출의 사인에 맞춰 환한 조명이 켜졌다.
그리고 올해 영화와 드라마, 예능에서 활약한 각 부문 대상 후보들이 가운데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 * *
드론 카메라를 동원해서 찍은 오프닝 영상은 역대 시상식의 오프닝 중 가장 화려하다고 할 수 있었다.
각 부문의 대상 후보들, 그러니까 최소 최우수상을 타게 될 영광의 주역들이 한 명씩 걸어 나오며 모두 한자리에 모여 동시에 걸어가는 모습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이기도 했다.
뒤편으로는 커다랗게 폭죽이 터지며 장관을 연출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상식.
영상이 끝나자 영상과 이어지듯 대형 스크린에는 대기석에 앉은 배우들이 비쳤다.
“와아?!”
“꺄악!”
넋을 놓고 영상을 보고 있던 객석에서 환호가 터졌다.
“올해로 15주년을 맞이하는 ! 한 해 동안 국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별들로 그 화려한 막을 열었습니다!”
동시에 MC를 맡은 여자 배우가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멘트를 내뱉자 배우들이 앉은 대기석에서부터 객석에 이르기까지 열화와 같은 성원이 일었다.
“강도준!”
“강도준!”
그리고 카메라가 MC에서 다시금 배우들로, 그중에서도 도준의 얼굴을 클로즈업했을 때 객석의 한 무리가 도준의 이름을 연호했다.
도준이 톱스타가 된 이후로 시상식마다 있었던 일인지라 이제는 시상식의 이색 광경이 아닌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듯한 시간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모인 자리, 배우들은 익숙하다는 듯 가볍게 웃었고, 이러한 광경을 처음 현장에서 접하는 이들은 뒤쪽의 객석을 돌아보며 과장된 제스처를 취했다.
화면에 비친 도준은 클래식한 턱시도에 검은색 보타이를 하고 있었다. 도준의 깨끗한 얼굴에는 은은한 광채마저 감도는 듯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화답하듯 도준이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자, 그럼! TV 예능 부문 신인상 수상자 후보부터 만나 보시겠습니다.”
달아오른 열기 속에서 시상식은 진행되었다.
예능 부문인지라 후보를 소개하는 영상이 나갈 때마다 웃음소리가 터졌다.
오늘 시상식을 이끄는 MC는 15년 역사 중 10년 가까이 MC를 해 온 관록 넘치는 배우 강신희였다.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는 그녀의 입술이 시원스럽게 올라갔다. 어느 해보다 관객의 환호가 넘쳐 났다.
예능, 영화, 드라마…… 분야를 막론하고 흥행한 작품이 많았기에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오늘의 수상자를 모두 알고 있는 강신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도준과 그 옆의 황호석에게로 향했다.
* * *
TV 예능 부문 수상에 이어 TV 드라마 부문 수상으로 넘어가자 열기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
상의 무게도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드라마 부문의 압도적 수상팀은 당연하게도 팀이었다.
시작부터 우수상이었다.
십 년 만에 복귀한 김은석이 남자 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모여 자리하고 있던 팀 배우들이 기뻐하며 박수를 보냈다.
거기에 김은석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의 목소리가 상당했다. 문화의 전당 안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게 김은석의 인기를 증명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 선 김은석은 시상자에게 꽃다발과 트로피를 받으며 휘청거렸다.
“아…….”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놀란 것이 분명했다. 마이크를 앞에 두고 그는 준비해 온 수상 소감도 모두 잊은 듯 아연한 표정을 했다.
그가 너무 긴장해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도준은 김은석의 수상 소감을 지켜보았다.
‘십 년 만에 선 무대 위……. 어떤 기분일까…….’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지만, 근 십 년을 배우 지망생의 신분으로 살다가 처음 신인상을 받게 돼 시상식 무대에 올랐을 때의 기분이 새삼 떠올랐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랐었던 김은석이지만, 십 년 동안 다시 연기를 하기 위해, 다시 배우가 되기 위해 정말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도준은 괜히 뭉클한 마음이 됐다. 김은석의 사정을 알고 있는 옆자리의 윤이서 역시 울컥한 표정으로 김은석을 보고 있었다.
그의 안타까운 사연이 아니더라도 함께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동료 배우로서 벅찬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시…… 이…… 이 자리에 서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제가 아팠을 때…… 오래 기다려 주신 팬 여러분, 감사합니다…….”
극도로 긴장한 게 느껴지는 말투였다.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리고 눈가에는 눈물이 차올라 있었다.
그럼에도 김은석은 큰 문제 없이 더듬더듬 수상 소감을 읊어 나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부처님…… 아, 제발 한 번만 더 무대 위에 서게 해 달라고 빌었던 모든 신들께…… 감사하고…… 노윤정 감독님부터 함께해 주신 정지혜 배우님, 스태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상 받게 해 준…… 김진숙 작가님, 박준호 감독님, 함께해 주신 배우님들, 특히 도준 씨…… 고맙습니다.”
도준의 이름이 나오자 카메라는 한 번 더 도준을 비추었다. 김은석을 향해 웃어 도준은 웃어 보였다. 김은석도 마주 웃었으나 두 사람 모두 눈가가 촉촉했다. 두 배우의 끈끈한 우정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 가 아직 방송 중인데요.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김은석의 손은 트로피를 쥔 채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TV 드라마 부문 여자 우수상은 예상대로 윤이서였다.
김은석의 수상 소감으로 눈가가 촉촉해져 있던 윤이서는 막상 자신의 수상 차례가 되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느 때보다 해맑은 모습으로 무대 위에 섰다.
도준은 무대 아래에서, 김은석은 무대 한편에서 윤이서의 수상 장면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차례로 수상을 하고, 곧 각 부문의 최우수상과 연기 대상, 작품 대상만이 남았다.
“…… TV 드라마 부문 연기 대상! 의 강도준!”
도준의 이름이 불리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사실상 도준은 오늘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드라마 부문뿐 아니라 영화 부문에서도 연기 대상 후보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와 영화, 두 부문에서 대상을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영화 부문 연기 대상의 후보는 황호석과 도준이었다. 그리고 수상 소감을 위해 단상 위로 오르는 도준의 머릿속에는 얼마 전 만난 백정한 회장 개인 변호사와의 대화가 복기되고 있었다.
– 164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