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동작 그만 (2)
자산 파악에 들어간 공정위에선 연일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백화점에 20억.
슈퍼카 구매에 30억.
이름 대면 알 만한 유흥업소에 10억.
이 모두 대표 형제들의 개인 카드가 아닌 회사 법카로 이뤄진 결제 내역이었다.
“어떻게 법카를 다 이런 데에 썼지?”
더욱 절망적인 건 바이포인트의 사내유보금이었다.
충분한 재원이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것과 달리 이들의 사내유보금은 20억이 채 되지 않았다. 분쟁조정위원회엔 벌써 5만 명의 회원들이 몰렸고, 이미 피해액이 100억대를 훌쩍
넘는다.
지불 능력이 없다는 건 확실하다.
“팀장님. 이 자식들 진짜 정신 나간 놈들이네요. 김밥집에서 4천만 원을 결제했습니다.”
“보쌈집에선 6천만 원을 결제했고요.”
“알아보니 이 보쌈집과 김밥집은 전부 다 아버지 이름으로 낸 가게입니다.”
“가족들끼리 허위 업체 세워서 돈세탁해 놨네요.”
보고를 듣는 준철도 기가 찼다.
법카를 마음대로 긁는 건 남들 다 하는 일이라 쳐도, 이렇게 허위 업체 세워서 돈 빼내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이런 업체가 왜 세무조사를 한 번도 안 당했는지 의문입니다.”
“그 직원들 월급 내역은 어때요?”
“여기도 개판이죠. 전 직원 평균 연봉이 2억입니다. 인센티브까지 합하면 대기업 임원보다 높아요.”
“이 돈도 당연히 세탁에 이용된 거겠죠.”
“네. 어차피 일가친척이니 허위로 직원 등록하고 뒤로 다 빼먹었을 겁니다.”
진짜로 눈에 뵈는 게 없는 놈들이었구나.
무리한 판촉비로 생긴 회사 적자보다, 흥청망청 탕진한 회삿돈이 더 많았다.
상황이 이쯤 되니 분노보단 두려움이 더 앞선다. 놈들의 수중엔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미래도 없는 놈들이니 벌써 다 써 버렸을까?
‘아니야…… 이런 놈들이 더 악착같지.’
“반장님. 국세청에 이놈들 연말정산 자료 요청해 주세요.”
“연말정산은 왜……?”
“쓴 돈이 얼마였는지 알아봐야죠. 빼돌린 돈이랑 자기들이 쓴 돈 차액이 지금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일 겁니다.”
“그게 말처럼 될까요. 꼴을 보아하니 이놈들은 다 써 버렸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이런 부류들이 그런 문제엔 악착같아요. 분명 삥땅친 노후 자금 많을 겁니다. 모두 알아봐 주세요.”
반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질 때.
김민호 팀장이 초조한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어떻게 됐어, 이 팀장.”
“이게 지금까지 저희가 파악한 현황입니다.”
서류 검토를 마친 김민호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2…… 20억? 사내유보금이 정말 그것밖에 안 돼?”
“네. 사무실 보증금, 법인 차. 뭐 회사 자산 다 처분해도 30억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유흥업소에서 긁은 내역을 보니 이미 많이 탕진한 것 같아요.”
“젠장…….”
“분쟁조정위는 어떻습니까?”
“이번 주 내로 10만 명이 넘어갈 것 같아. 피해신고액은 벌써 150억 넘었어.”
김민호는 현실적인 수습 작업에 들어가 있었다.
놈들이 약속한 90% 환불엔 미련을 버린 지 오래다. 그래도 한 40% 정도만 환불해 줄 수 있다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의 이 보고로 그 꿈이 산산조각 났다. 이게 사실이면 10% 환불도 간당간당하다.
“진짜 끝난 건가…….”
“아직 좌절하기엔 이릅니다. 이놈들이 노후 자금도 안 챙겨 놓고 이런 일 벌였을 리 없습니다.”
“그 뒷돈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잖아…… 얼마인지도 모르고.”
“국세청에 연말정산 요청했어요. 빼돌린 돈에 연말정산 자료 빼면 지금 얼마 정도 있는지 대충 파악될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디 있는지는 모르잖아.”
“이제부터 이실직고하게 만들어야죠. 대표 형제들부터 구속시킵시다.”
그런다고 될까.
감옥살이를 두려워하는 놈들이 아닐 텐데.
“그리고 필요하면 더 많은 사람도 구속시켜야 할 겁니다.”
“더 많은 사람? 누구?”
“이놈들 아버지는 조력자가 아니라 진짜 공범인 수준이에요. 허위 업체 세워서 김밥을 몇천만 원어치나 팔았다네요.”
“그 문제는 나도 자문받아 봤는데…… 그냥 자식들 사업에 이름 몇 개 빌려줬다고 둘러대면 건드릴 수가 없대.”
“일단 한번 해 보겠습니다. 뭐 겁을 주면 돈 몇 푼이라도 더 나오겠죠.”
김민호는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겠어. 그럼 이 팀장이 이놈들 좀 맡아 줘. 난 피해 사례 접수하느라 꼼짝도 못 하겠다.”
***
구속영장은 예정된 일이나 다름없었기에 바로 발부되었다.
집행 당일에 기자들이 몰리고, 환불시위대까지 등장했지만 구치소에 들어선 두 형제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아니, 오히려 여유로웠다.
검사의 질문에 모두 죄송하다 답했고, 불리할 때마다 묵비권을 톡톡히 써먹었다.
“이건 대답하세요. 애초에 폰지사기가 목적이었죠?”
“의욕적으로 사업하다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책임을 통감합니다. 모쪼록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답답한 취조에 검사들만 진이 빠졌다.
잘못은 인정하는데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고 우겨 대지 않나. 여기서부턴 법의 딜레마가 작용한다. 사람을 죽을 때까지 때려도 목적성을 입증 못 하면 살인이 아니라 과실치사가 된다.
놈들의 공판 전략이 뭔지 훤히 다 들여다보였다.
느지막이 도착한 준철은 돌부처처럼 앉아 있는 김상원과 마주했다.
“이게 사업실패라고요?”
김상원은 힐끗 보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죄송합니다. 모든 책임을 통감합니다.”
“싸구려 변호사를 수임한 모양이군. 나라면 그렇게 컨설팅 안 해 줬을 텐데.”
“네?”
“김상원 씨는 특가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적용 대상입니다. 50억 이상의 범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인 거 아시죠? 책임을 통감하신다 하니 저희도 무기징역
구형하겠습니다.”
돌부처처럼 앉아 있던 김상원의 눈이 번쩍 뜨였다.
“뭐라고?”
“무기징역요.”
“아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무기징역?!”
“안타깝지만 법이 그렇습니다.”
“그딴 법이 대체 어디 있어! 사업 실패했다고 무기징역을 때려?”
“횡령도 하셨잖아요. 도대체 왜 회삿돈으로 슈퍼카를 사고, 백화점에 긁고, 김밥을 4천만 원이나 처먹었습니까?”
김상원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미 파악할 건 했구나.
“그리고 분명 환불 다 해 주겠다 약속했는데 사내유보금이 고작 20억밖에 안 돼요. 이건 당연히 사재 출연해서 갚겠단 의지겠죠?”
“말 가려 가면서 하쇼. 경영 과정에서 떳떳지 못한 데 쓴 돈이야 있습니다. 근데 무슨 이걸 가지고 무기징역이야.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고.”
“그 첫 사례를 쓰실 겁니다. 김상원 씨가.”
준철의 싸늘한 얼굴을 확인한 순간, 김상원은 불안한 직감이 들었다.
이 미친 소리를 당당히 지껄이는 놈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 같았다.
“솔직히 서류만 봐도 딱 알겠더군요. 이놈들 노후 자금 다 챙겨 놓고 몇 년 살다 나올 생각이구나.”
“…….”
“이래서 어디 단죄가 되겠어요? 노후 자금 한 푼도 못 쓰게 평생 가둬 놔야지.”
“……당신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뒷돈으로 챙긴 돈 전부 가져와. 그거 다 회원들한테 환불해 줘야 돼.”
없어, 라고 말하기도 전에 준철이 서류를 건넸다.
“국세청에서 받은 두 사람 연말정산 자료야. 개인 카드로 긁은 내역은 얼마 없더만. 차액 계산해 보니 한 100억 남더군요.”
“…….”
“이 돈 다 뱉어 내면 그때 다시 형량 얘기해 봅시다.”
김상원은 잠시 흔들렸다.
길어 봐야 5년 10년 예상했는데 난데없이 무기징역 소리를 들으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하지만 이내 이성을 되찾았다.
금융 범죄로 무기징역이 떨어졌단 건 듣도 보도 못한 얘기 아닌가. 젊은 놈이 자신 앞에서 공갈치고 있다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무슨 소린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계산을 끝마치자 바로 얼굴색이 변했다.
“자꾸 저한테 겁주시는 것 같은데, 더 이상 단독 취조엔 응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론 내 변호사랑 얘기하세요.”
놈이 건넨 변호사 명함은 국내에서 알아주는 기업 소송 전문 로펌이었다.
이 한마디로 모든 게 명확해졌다.
비싼 변호사로 형량을 줄이면 줄였지, 절대 자신들의 노후 자금은 토해 내지 않겠다는 걸.
***
공정위로 복귀하니 김민호 팀장이 바로 달려왔다.
“어땠어, 이 팀장.”
“갈 데까지 갔습니다. 10원 한 장 토해 내지 않을 겁니다.”
“특가법 얘기도 해 봤어? 이거 형량 센데.”
“그 얘기 하니 성진로펌 명함을 주더군요. 비싼 변호사로 형량을 낮출 생각이지, 절대 범죄 수익 토해 낼 생각이 아닙니다.”
김민호는 한숨이 나왔다.
성진로펌은 돈으로 법을 움직이는 놈들이다.
그들이 사건을 맡으면 살인도 과실치사가 되고, 횡령도 업무상과실이 된다. 바이포인트를 경영 실패로 몰고 가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이 팀장…… 이걸 법원이 경영 실패로 판단할까?”
“무시 못 합니다. 법원은 그보다 더 말도 안 되는 판결도 내리는 곳이니.”
“그럼 어쩌지…… 구형을 한 20년 정도 불러 볼까? 겁을 줘서라도 돈을 갖고 오게 만들어야 되는데.”
“무기징역 얘기까지 꺼내 봤는데 끄떡없어요.”
김민호는 속이 타들어 갔다.
분쟁조정위원회의 목표치는 40%의 환불이었지만, 지금 공정위가 파악한 자산으론 무리다.
문득 후회도 들었다.
절박한 피해자들이 한꺼번에 공정위로 몰려들지 않았나. 하나 마나 한 환불이 이뤄지면 이들의 기대가 곧 원성으로 뒤바뀔 것이다.
“김 팀장님. 이제 별수 없겠어요. 원래 생각했던 대로 갑시다.”
“……일가친척들?”
“당장에 보이는 것만 해도 수억이에요. 빼돌린 돈 찾으려면 이들도 구속 수사해야 합니다.”
“국장님도 그건 동의 안 하신다 했는데…….”
“아니면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도 이대로 접어야 돼요.”
그놈들 아버지는 반드시 구속해야 한다.
이상한 업체를 세워 잔뜩 경비 처리시킨 내역이 있으니 여기까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거다.
직계가족뿐 아니라 십수 명의 친척들까지 다 직원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어디까지 친단 말인가.
‘…….’
구속을 해도 문제다.
당연히 이들도 돈의 행방에 대해선 모를 터. 공범이란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 연좌제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일가친척 다 구속하면 어떻게 할 계획이야?”
“받아 간 연봉은 다 반납해야죠. 회사가 늘 적자였는데 직원들 연봉만 수억씩이었단 건 말이 안 됩니다.”
“그것만으론 구속 사유 무린데.”
“국세청에 허위 직원 등록으로 신고하시죠. 이름만 빌려줬다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잘못한 겁니다.”
긴 상념에 잠기던 김민호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자……. 한번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