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30
마드리드 성을 불태워 버리자!
바르사는 29R 홈경기에서 데포르티보에게 대패했다.
뼈아픈 패배였다.
데포르티보는 바르사와 치열한 상위권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승점 6점 차이로 1위를 달렸고 그 밑에서 바르사, 레알 소시에다드, 데포르티보, 셀타 비고가 승점 1~2점 차이로 각축전을 벌였다.
감독 교체 후 연승 행진을 벌이며 28R에서 2위로 올라섰던 바르사는 단 한 번의 패배로 4위까지 떨어졌다.
리그 1, 2위는 다음 챔스 조별리그에 직행할 수 있지만 3, 4위는 3차 예선전부터 참가해야 한다.
5위부터는 UEFA컵행이다.
[얀티치 감독의 추한 전술이 대패의 원인이다!] [얀티치의 축구는 바르사의 축구가 아니다.]유벤투스에게 졌을 때만 해도 바르셀로나 언론은 나름 점잖은 척했다.
이전까지 연승 행진을 한 성과가 있기에 눈치를 본 거다.
하지만 데포르티보에게 지며 2연패 하자 일제히 매서운 주둥아리를 나불댔다.
그날 토리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와 얀티치 감독은 이런 일을 예상하고 대화했던 거다.
그가 유벤투스전에서 썼던 롱패스 전술은 바르사의 전통에 명백히 어긋났기 때문에 반발하는 세력이 나올 줄 알았다.
[얀티치와 가스파르 회장이 바르사의 정신을 더 망치기 전에 구단에서 쫓아내야 한다. 이건 우리가 아는 위대한 바르사의 축구가 아니다. 운 좋게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비판의 선봉장은 주앙 라포타였다.
그는 [위대한 바르사의 축구]를 들먹이며 언론을 이용해 가스파르와 얀티치를 맹공격했다.
차기 회장을 차지하고 싶은 라포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지금 그는 성 밖을 맴도는 방랑기사의 신분이다.
어떻게든 현 군주를 밖으로 끌어내 목을 쳐야 자기가 성을 차지하고 왕관을 쓸 수 있었다.
“상황이 참 묘하네.”
원래 바르사의 역사를 보면 라포타는 곧 새로운 회장으로 선출되고 가스파르의 사람들을 숙청한 후 요한 크로이프가 추천한 사람들을 끌어들여 FC바르셀로나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지금 나는 공교롭게도 가스파르 회장의 호위 무사였다.
나는 구체제의 수호자로 라포타에게는 최고의 골칫거리였다.
[목숨을 건 승부. 이제 물러설 곳이 없다.]바르셀로나 언론이 무겁게 분위기를 잡았다.
다음 30R에서 벌어지는 올해 두 번째 엘 클라시코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며 현 감독과 회장의 목을 걸었다.
지들 마음대로.
이번에 바르사가 레알 마드리드를 잡지 못하면 올 시즌 리그 우승은 불가능해진다.
여차하면 기세가 꺾여 2~4위 싸움에서도 밀려 다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까지 놓칠 수 있다.
그게 끝이 아니다.
“엘 클라시코 원정 찍고 4일 후 유벤투스 전이라…”
마드리드 원정이 끝나면 단 이틀 휴식 후에 난적 유벤투스를 상대해야 한다.
이 경기도 무조건 잡아야 했다.
“그럼 고민할 거 없네. 다 이겨버리면 되잖아.”
나는 신문을 공처럼 구겨 쓰레기통에 휙 던졌다.
툭- 투욱-
노골이었다.
나는 병원 침대에서 일어나 쓰레기통으로 걸어가 떨어진 볼을 기어이 집어넣었다.
“축구에서는 이렇게 넣어도 똑같은 한 점이야.”
***
4월 20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엘 클라시코 킥 오프 3시간 전.
나는 프라도 미술관에 와 있었다.
감독에게 허락을 받고 경기 전 굳이 이곳에 온 이유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그림을 보기 위해서였다.
“흠…”
나는 그림에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
전생에서 어느 날 우연히 티비를 보다가 이 그림에 얽힌 슬픈 이야기를 알았고 언젠가 스페인에 가서 꼭 진짜 원본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 꿈을 회귀해서 이루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역시 오길 잘했어.”
그림은 지금 관점으로 봐도 특이했다.
신분이 높아 보이는 한 아름다운 소녀를 시녀들과 난쟁이 보모 같은 구질구질한 여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그림이다.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그 소녀의 눈은 어쩐지 슬퍼 보였다.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이 그림 속의 소녀는 실제 인물로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림 속에 영원히 박제될 자신의 운명을 어렴풋이 알았던 걸까.
이 그림에 감명을 받은 한 음악가는 이제는 없는 그 소녀를 위해 음악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그 슬픈 멜로디가 나의 귓속을 울렸다.
“혀~~ 엉. 이제 가자. 사람들이 우릴 알아본 거 같아.”
따라온 이니에타가 옆에서 재촉했지만 나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소녀의 슬픈 눈동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런 게 예술 작품에 매혹되는 느낌인가.
처음 느껴보는 뭉클한 감정이 나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당신 바르사의 김건 선수죠?”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돌아보니 건장한 남자 다섯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요?”
“부상 중이라고 들었는데. 마드리드에는 무슨 일이죠?”
싸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이니에타가 말리려는 걸 내가 막으며 한마디 했다.
“당연히… 레알 마드리드를 이기러 왔죠.”
“뭐라구!?”
“마드리드는 정말 멋진 도시에요. 이런 예술품을 남긴 당신의 선조들도 최고구요. 존경합니다. 자부심을 가질 만해요. 하지만 오늘 경기는 우리가 이길 겁니다.”
“이… 이봐!”
나는 엄지손가락을 들며 그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고 유유히 미술관을 나왔다.
그들은 내가 칭찬을 한 건지 도발을 한 건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간 떨어질 뻔했잖아요!”
“이 정도에 쫄면 있다가 경기장 가서 어쩌려고 그래? 오늘 경기하는 곳이 보통 경기장이야?”
“그런가…”
“앙드레. 오늘 경기의 키맨은 바로 너야. 똑바로 해.”
나는 이니에타와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목적지는 마드리드의 성지 스페인 축구의 심장.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이제 곧 두 번째 엘 클라시코가 벌어집니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8만 명의 응원단이 함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첫 번째 대결 때와는 달리 맑고 쾌청한 날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두 팀의 현 상황은 결코 밝지 않습니다. 두 팀 모두 챔피언스리그 8강전을 치르는 상황이라 선수들의 컨디션과 부상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가장 주목을 받는 사건은 부상으로 이탈했던 첫 번째 엘 클라시코의 MOM. 김건 선수의 출전인데요. 의사의 충고를 무시하고 출전을 강행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팀을 위해 중요한 경기라는 걸 아는 거죠. 우리 스페인 선수들도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김건 선수 같은 동양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중계진이 팀을 위해 기꺼이 개인을 희생하는 나의 동양적인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떠들었다.
물론 다 개소리다.
나는 계약 시에 연봉을 깎는 대신 라리가 우승 보너스 옵션을 쎄게 걸어놓았다.
바르사가 라리가 우승하면 구단에서 기본으로 주는 선수 포상금 외에 옵션으로 70억 이상을 챙길 수 있다.
거기에 챔피언스리그까지 우승하면 100억 이상을 더 받을 수 있다.
사실 이런 식의 옵션 계약은 유럽에서는 아직 많지 않았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2000년대 초반 유럽의 프로 스포츠는 매우 폐쇄적이고 보수적이었다.
나는 미국 프로 스포츠 옵션 계약 사례를 연구한 최재성의 조언에 따라 이런 결정을 내렸다.
“가슴이 뛰는군.”
물론 전부 돈 때문만은 아니다.
어쩐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바르사 유니폼을 입고 엘 클라시코를 치르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런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
“이건 마약이야…”
비 오는 바르셀로나에서 치렀던 내 생애 첫 번째 엘 클라시코.
사건 사고도 많았고 경기도 거칠고 경기장 밖도 위험천만했지만 그것 자체에 강한 중독성이 있었다.
온 도시가 비일상적인 흥분과 열광에 휩싸이는 느낌.
우리 한국인들의 경험에서 보자면 2002년 월드컵 때와 비슷한 흥분인데 다른 점은 바로 [살벌함]이다.
2002 월드컵은 한국의 축제였다.
하지만 여기는 전쟁이다.
물론 축제의 흥겨운 요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패배하면 온 도시가 몰살당하는’ 중세시대 전쟁 같은 비장함이 훨씬 컸다.
그래서 중독성이 엄청났다.
이런 대단한 전쟁에 엘리트 기사로 참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
“라이트 윙. 앙드레 이니에타.”
“레프트 윙. 김건.”
엘 클라시코 킥 오프 15분 전.
얀티치 감독이 주전 선수들에게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나와 얀티치 감독이 비행기에서 구상했던 새로운 바르사의 팀 전술이 실전에서 첫 가동 되는 날이다.
“이니에타. 넌 윙이 아니야. 그냥 라이트윙 자리에서 뛰는 미드필더일 뿐이야.”
“알겠습니다! 감독님!”
이것이 새로운 전술의 핵심이었다.
차비가 중원에서 플레이 메이킹을 맡았고 엔리켈과 이니에타가 침투하면 코쿰이 뒤를 지켰다.
나는 일단 레프트윙이었지만 중앙으로 들어오며 원톱 클루이베르 아래서 움직였다.
4-3-3로 섰지만 사실은 중앙 집중형 4-4-1-1로 가동되는 시스템이다.
사비올란과 리칼메는 후보로 밀려났다.
“건. 조금이라도 통증이 있으면 바로 사인을 보내.”
“알겠습니다.”
“너를 유벤투스전에서도 써먹어야 하니까. 절대 무리하지 마.”
“알겠다구요! 감독님.”
비행기에서 대화 이후 얀티치 감독과 나에게는 묘한 친근감이 생겼다.
이방인끼리의 우정이랄까?
어쨌든 나를 중용하는 감독을 싫어할 선수는 없다.
“가자!! 마드리드 성을 불태워 버리자!!”
우리는 긴 통로를 지나 마드리드의 심장부로 들어섰다.
좁은 출구를 빠져나오니 사방이 온통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찼다.
“와아아아아~!!”
8만의 함성이 초록의 피치 위로 쏟아졌다.
과연 스페인 왕의 축구팀다웠다.
뜨거운 함성을 받으며 순백의 갑옷을 입은 왕의 기사들이 등장했다.
[김건 선수뿐만이 아닙니다. 부상에 시달리고 있는 로나우도와 지던 선수도 출전을 강행했습니다. 그만큼 이 한 경기는 의미가 큽니다.]로나우도와 지던이 나를 빤히 보았다.
지난 엘 클라시코에서 풀지 못한 앙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들이 출전을 강행한 건 당연히 나 때문이다.
“푸얄! 절대 기죽지 말고 덤벼들어! 기세에서 밀리면 안 돼!”
“알겠어요. 주장.”
엔리켈은 끝까지 어린 선수들의 멘탈을 챙겼다.
8만 명이 내뿜는 야유 때문에 적진에 포위된 고립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경기장은 힘이 셌다.
삐이이이익- !!
[드디어! 경기 시작됩니다!]시작과 동시에 전방으로 뛰어갔다.
지난번에는 레프트백이었지만 이번에는 공격수다.
왕의 기사들을 쓰러트릴 사람은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