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233
이건 평가전입니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박항선이 되물었다.
내일 이란전은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평범한 승리 정도로는 안 되고 화려하게 압도적으로 승리해야 했다.
그래야 정명준 회장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고 불안해하는 여론도 잠재울 수 있다.
무엇보다 축협의 참견에서 팀을 지킬 수 있었다.
“방법이 있죠.”
다음 날 아침.
나는 박항선 감독에 의해 정식으로 대표팀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훈련 프로그램은 기본이고 전술 회의부터 대표팀 전반적인 운영까지 내 의사가 반영되었다.
코치와 스텝 중에 아니꼬운 사람도 있었을 거다.
한국의 유교 문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누구도 겉으로 티 내지는 못했다.
우선 박 감독이 나를 전폭 지지했고 둘째로 나보다 뛰어난 경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치님. 유럽대항전에서 뛰어 보셨어요? 요즘 유럽에서는 다 이렇게 해요.”
이 말 한마디면 모두 조용해졌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박항선호의 실세가 누구인지 바로 파악했다.
나의 눈에 들어야 월드컵 최종 명단에 들 수 있다는 걸 알고 내 눈치를 보았다.
우리는 파주에서 딱 한 번 팀 훈련을 하고 이란과 평가전을 치렀다.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한국과 이란의 친선경기가 벌어지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입니다.] [친선경기임에도 엄청난 팬들이 찾아주셨습니다. 바로 한국 축구의 희망 김건우 선수의 국대 복귀전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김건우가 대표팀에서도 클래스를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우리는 하이팅크호 때와 같은 3-4-3 포메이션으로 첫 경기를 치렀다.
나와 안정민, 박지승이 최전방 스리톱을 맡았다.
“우리 월드 스타께서 평민들한테 한 수 보여주셔야지.”
“형님이나 오버하지 말고 부상 조심해요. 소속팀에서 맨날 벤치만 달구잖아요. 갑자기 뛰다가 다쳐요.”
“뭐! 이 자식아!?”
나는 안정민과 티격태격했다.
그는 아스널 소속으로 모나코에서 임대로 뛰다가 파리생제르망으로 완전 이적했다.
문제는 팀에 리그앙 득점왕 파울레타가 있다는 것.
그는 또 후보 신세였다.
정말 이렇게 경력이 안 풀릴 수도 있나 싶을 정도다.
이 형은 아무리 봐도 방송해야 하는 팔자 같다.
삐이이익- !
전반전 시작부터 우리는 강한 전방압박으로 이란을 당황 시켰다.
2002년 월드컵을 연상시키는 역동적인 움직임에 한국 팬들이 환호했다.
그동안 본프레레 감독이 보여준 답답한 변비 축구와는 확연히 달랐다.
[한국 팀! 과연 지난달에 그 팀이 맞나 싶습니다! 무서운 기세로 이란을 몰아붙입니다!] [바로 저거에요! 저 과감한 움직임! 한국 축구팬들이 바라던 바로 그 축구에요!]우리는 본프레레의 어정쩡한 전술을 버리고 하이팅크호 시절의 호쾌한 축구로 돌아왔다.
이제와서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대표팀에 입힐 수는 없었다.
예전에 성공했던 전술을 바탕으로 독일 월드컵 개막까지 세부사항을 조정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래야 훈수꾼들의 입을 닥치게 만들 수 있다.
[김건우! 볼 받습니다! 어! 갑자기! 중거리슈우우웃- !!]나는 골대와 한참 떨어진 약 40미터 지점에서 기습적인 장거리슛을 때렸다.
오른발에 걸린 볼이 레이저빔처럼 쭉 날아가 이란 골망을 갈랐다.
앞으로 나와 있던 이란 골키퍼는 그냥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내 경력에서도 역대 최 장거리 슛 성공이었다.
[고오오오오올~!! 김건우! 먼 거리에서 벼락같은 슛을 성공시킵니다! 저게 바로 월드클래스에요!]“와아아아아아!”
“김건우! 김건우!”
나는 붉은 악마 응원단으로 달려가 베토벤 교향곡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처럼 두 팔을 휘저었다.
더 크게 더 힘차게 소리를 지르라는 뜻이었다.
오늘은 상암동의 왕이 귀환한 날이니까.
그 골 한방에 팽팽하던 경기가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삑- 삑- 삐이이익- !!
[경기 끝났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이란을 3대0으로 격파했습니다. 김건우는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대표팀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슈퍼스타네요. 간만에 복귀전이라 부담도 컸을 텐데. 이란 선수들의 노골적인 견제 속에서도 클래스를 보여주었습니다. 김건우 대단합니다!] [박항선호! 불안했던 국민들에게 통쾌한 첫 승리를 선사합니다! 월드컵 원정 16강! 더 이상 꿈이 아닙니다!]예상대로였다.
게임을 시원하게 이겨놓으니 경기 후 기자회견장 분위기도 좋았다.
더 이상 감독 선임과 나의 대표팀 합류를 엮어서 시비를 거는 기자도 없었다.
“박항선 감독님은 세계의 어떤 대단한 외국인 감독보다도 우리 대표팀에 적합한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선수들은 감독님을 믿고 끝까지 따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다음 날 언론은 나와 박항선을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의 구세주로 칭송했다.
맨날 보기 답답했던 대표팀 경기가 이렇게 재밌을 줄은 몰랐다며 찬사가 쏟아졌다.
다음 날 잉글랜드로 돌아갔다.
그리고 뉴캐슬 유니폼을 입고 4경기를 치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스웨덴과 친선전을 치르기 위해서다.
“지승아. 너 무릎 괜찮냐?”
“썩 좋지는 않아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뛰어야죠.”
“너 이번에는 윙으로 뛰지 말고 중앙에서 뛰어봐. 어차피 실험해봐야 하는 포지션이니까.”
“그래도 돼요?”
“나만 믿어. 형이 주장이잖아.”
박지승은 이때도 심각한 무릎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박 감독과 상의해서 그에게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겼다.
근데 나한테도 문제가 발생했다.
“젠장. 또 왼쪽 발목이야.”
출국 직전에 치른 선덜랜드전에서 접질린 왼쪽 발목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졌다.
오랜 비행 때문에 관절이 부은 게 원인이었다.
나는 그 발목 상태로 스웨덴전 90분을 풀타임으로 뛰었다.
당연히 이란전 같은 대활약은 못 했고 경기도 2대2로 비겼다.
시종일관 우리가 경기를 주도했지만 골 운이 따라주지 않은 경기였다.
역시나 언론이 호들갑을 떨며 대표팀의 경기력을 의심하는 기사를 써댔다.
“이건 평가전입니다. 스코어에 신경 쓰지 말고 내용을 보세요. 우리는 오늘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전환하는 시스템을 시험했습니다. 박지승의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 변경도 시험했구요. 이 정도면 성공적입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다음 날 기사 타이틀은 이렇게 나갔다.
[들쑥날쑥한 대표팀의 경기력. 실망한 국민들. 전문가들은 다음 평가전까지는 지켜봐야…]우리 선수들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론에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는 거란다.
평가전부터 이렇게 흔들고 부담을 주면 전술 실험은 언제 하란 말인가?
다들 이를 갈고 4일 후 3번째 평가전을 준비했다.
우리는 파주 훈련장에서 박항선호 출범 후 가장 오래 모여 팀 훈련을 했다.
“이제 다시는 2002년 때처럼 장기 합숙 훈련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간결한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바로 원팀이 될 수 있어야 해요.”
나는 박항선 감독과 머리를 맞대고 우리 전술 시스템을 최대한 간소하게 정리했다.
최소한의 룰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선수들의 현장 판단에 맡기는 방식이다.
부분 전술 10개를 준비해서 경기 중에 2개만 쓰느니 3개만 철저히 준비해서 경기 중에 3개를 전부 쓰는 게 낫다.
선수들도 전술적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아했다.
우리는 4일 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평가전에서 2대0으로 승리했다.
나는 회복되지 않은 발목으로 또 90분을 풀로 뛰며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승리에 신경 쓰지 마시고 내용을 보세요. 우리는 오늘 스리톱에서 투톱으로 변환하는 전술을 실험했습니다. 기자님들은 숫자에 호들갑 떨지 마시고 이런 전술적인 내용이나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게 기사로 쓰세요. 우리는 월드컵 우승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물론 언론은 나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대한민국 세르비아에게 완승! 덤벼라! 유럽아!] [김건우의 투혼! 열정! 월드컵 원정 16강 이상도 가능하다!]올해 마지막 대표팀 일정을 끝내고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2002년 월드컵 때는 막판에 합류했기 때문에 유럽과 한국을 계속 오가며 경기하는 게 이렇게까지 힘든 줄은 몰랐었다.
지금은 대표팀과 소속팀 두 팀의 주장을 맡고 있어 육체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뉴캐슬! 다시 연패의 늪에 빠지다!]내가 대표팀 일정으로 한국에 있는 동안 뉴캐슬은 2연패를 당했다.
첼시에게 3대0으로 무기력하게 깨진 것도 문제지만 하위권 팀에게 덜미를 잡힌 건 치명적이었다.
리그 순위는 7위까지 떨어졌다.
우리 뉴캐슬의 들쑥날쑥한 경기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이거 돌겠군.”
EPL의 템포에 적응하며 팀을 이끌던 다비드 실바가 스페인 대표팀에 발탁되어 평가전을 치르다가 사타구니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실바가 빠지자 뉴캐슬의 공격은 무뎌졌다.
2경기 연속 무득점을 기록했다.
“이런 난처한 경험 하나하나가 다 재산이야.”
생각을 고쳐먹었다.
월드컵이 열리는 시즌에 클럽팀을 운영해 보니까 모든 게 달랐다.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 체력 관리, 맨탈 관리…
챙겨야 할 게 몇 배로 늘어났다.
“모두 내 잘못이다. 미안하다.”
나는 팀 훈련 전에 선수단 미팅을 소집했다.
다들 표정이 밝지 않았다.
언론에서 계속 [뉴캐슬의 추락]이라는 기사로 호들갑을 떨며 선수들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퍼펙트 풋볼이라는 거창한 제목만 만들어놓고 너희들에게 부담만 준 거 같다. 솔직히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동시에 뉴캐슬을 이끄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끝내 해낼 거다. 그러니까. 나를 믿고 따라주길 바란다. 우리는 올해도 박싱데이 때 치고 나갈 거니까. 언론의 개소리에 휘둘리지 마라.”
“주장!”
노이어가 입을 열었다.
똑똑한 친구답게 이미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콤파니에게 너무 어려운 역할을 맡긴 거 같아. 내 생각에 저 친구는 아직 리베로 역할을 해낼 실력이 안 돼.”
“뭐야!?”
노이어가 대놓고 평가하자 점잖은 콤파니도 버럭했다.
“수비수치고 볼은 좀 다룰지 몰라도 시야가 너무 좁아. 이대로 놔두면 그냥 신기한 서커스 플레이어로 전락하고 말 거야.”
“이 자식이!”
“콤파니! 진정해. 노이어. 좀 더 설명해봐.”
노이어가 신이 나서 떠들었다.
팀 내에서 그의 잘난 척과 거만함은 이미 악명이 높았다.
근데 누구도 섣불리 뭐라고 하지를 못했다.
진짜 잘난 놈이었으니까.
그리고 누구보다 지독한 팀 내 최고의 연습벌레였으니까.
“센터백이 하프라인까지 직접 볼을 몰고 올라가 빌드업을 하는 전술은 마음에 들어. 내가 존경하는 베킨바워 회장님의 리베로 플레이를 보는 거 같거든. 하지만 그게 신기함을 넘어서 전술적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더 위협적이어야 해. 근데 콤파니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
노이어가 콤파니를 차갑게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