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50
그래서 제가 사무실을 런던에 낸 겁니다
“뭐야!?”
안정민이 급정색 하더니 나를 빤히 보았다.
“설마. 너… 변호사를 여기에 미리 불러놓은 거야?”
“원래 일 때문에 겸사겸사 왔다고 둘러대려 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직접 만나본 안정민은 매우 담백한 사람이다.
이런 남자에게는 정공법으로 가는 게 맞다.
어설프게 속이려 하면 신뢰를 잃는다.
“내가 거절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야죠. 시즌 중이라 바쁜 걸 제가 알잖아요. 그래서 이탈리아 여행도 할 겸 불렀어요.”
“허. 허허. 너희 회사. 일을 희한하게 한다.”
“중요한 건 실력이잖아요. 일단 만나보세요.”
나는 전화로 최재성을 부르고 안정민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왜 하루만에 생각을 바꾸신 거에요?”
안정민은 말없이 턱으로 형수님을 가리켰다.
그녀는 주방에서 한창 손님맞이 준비를 했다.
“아… 그랬구나.”
“와이프가 지금 에이전트한테 불만이 많거든. 내가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다나? 니가 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당장 변호사를 만나보라고 하더라구. 그래서…”
역시 모든 역사는 침실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형수님의 판단력 덕분에 망할 뻔한 [테리우스 구출 작전]을 겨우 살려낼 수 있었다.
1시간 후 최재성이 집으로 찾아왔다.
양손에 버버리 쇼핑백을 들고.
“어머. 이런 걸…”
“하하하. 저희 회사가 런던에 있다 보니까요. 버버리 본점에서 구한 겁니다.”
“고맙습니다.”
최재성은 안정민 부부를 위해 영국산 명품 버버리 스웨터와 바지, 향수 세트를 선물로 준비해 왔다.
흔히 구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라 본점에서만 파는 한정판이었다.
형수님은 단번에 최재성을 마음에 들어했다.
“CK 에이전시 대표 최재성입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안정민 선수.”
“편하게 하세요.”
“아니죠. 어디까지나 저와 안정민 선수는 비즈니스 관계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편해지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습니다.”
“…”
안정민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당시 한국 스포츠 에이전트 문화는 원시시대나 마찬가지였다.
전문 법률 지식도 없고 마케팅 능력도 없는 인간들이 선수와의 친분을 내세워 아무런 전문성도 없이 구단과 협상을 진행했다.
덕분에 많은 스타 선수들이 법적으로 문제가 생겨 돈과 시간을 날리고 경력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안정민도 과거 팀 단장이던 남자에게 에이전트를 맡겼는데 이 인간의 미숙한 일 처리는 그의 선수 경력을 망치는 원흉이 된다.
안정민은 내년에 이 남자 때문에 국제 미아 무적 선수가 되고 30억이 넘는 빚을 떠안게 된다.
안정민은 빚을 갚기 위해 일본 연예기획사와 계약하고 강제로 일본에서 뛰게 된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연예계 행사를 뛰었다고 하니… 한국 최고 축구선수의 전성기를 이렇게 날려 먹는 건 국가적 손해였다.
그래서 나는 그를 구출하러 이곳에 왔다.
“그럼 한번 검토해 주세요. 뭐가 그렇게 문제인지.”
최재성은 안정민의 양해를 얻고 그 자리에서 그의 계약서들을 검토했다.
결론이 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안정민 선수. 인생 망치고 싶지 않으면 당장 이 사람과 계약을 해지하세요.”
“뭐라구요!?”
“변호사 생활 20년 하면서 이런 엉터리 계약서는 살다 살다 처음 봅니다. 이건 유럽 축구 리그의 상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작성한 겁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계약 기간 마지막에 페루자가 안정민 선수 소유권을 가지고 얼마든지 장난칠 수 있어요. 그에 대한 어떤 방어책도 계약서에서 찾아볼 수가 없네요. 계약서를 쓸 때부터 페루자에게 먹힌 겁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안정민의 당황한 표정을 보니까 전생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의 에이전트는 아버지였고 아버지는 무방비 상태로 구단에 찾아가 스스로 먹잇감이 되었다.
노예 계약을 하고 돌아와서는 나한테 자랑스럽게 “구단 단장이 아주 사람이 좋더라. 턱이 그렇게 생긴 사람은 의리가 있다.”며 칭찬까지 했다.
나는 그 첫 계약서 때문에 프로 경력 내내 고통을 겪어야 했다.
물론 나는 그 계약서를 읽어보기는커녕 첫 장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를 믿었다고 변명했지만 그냥 게을렀던 거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해도 싸다.
프로구단과 프로선수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맞는 거다.
누굴 믿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모든 책임은 사인한 당사자에게 있는 거다.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안정민 선수. 잘못하면 국제 미아가 될 수 있어요.”
최재성은 알기 쉽게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안정민은 아직도 K리그 부산FC 소속으로 현재 이탈리아 페루자에 임대 신분이었다.
부산 구단은 안정민의 상품성이 아까워서 이적이 아닌 복잡한 임대 옵션을 걸어놓았고 페루자도 안정민의 상품성이 탐나니까 역시 복잡한 선 임대 후 완전 이적 옵션을 걸어놓았다.
“혹시 K리그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아니요! 절대! 난 한국으로 안 돌아갑니다. 죽어도 유럽에서 죽을 거에요.”
“그럼 K리그에서 완전 이적하는 게 먼저네요. 그다음에는 이곳 페루자를 떠나야 하구요.”
“그게 가능한가요?”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그게 에이전트의 일이니까요.”
안정민은 흥분한 표정으로 형수님과 눈을 맞추었다.
현재 그는 페루자 구단주의 몹쓸 장난질로 경기 출전이 불규칙했다.
몇 년 전 페루자에서 뛰었던 일본 선수 나카타 히데토시에 비해 돈이 안 된다고 면전에서 구단주의 불평을 들어야 했을 정도다.
짜증나는 건 부산 구단도 마찬가지다.
안정민에게서 한 푼이라도 더 뽑아먹으려고 선수 출전 옵션을 걸어놔서 페루자에서는 안정민을 출전시키는데 부담을 느꼈다.
페루자와 부산FC의 계약은 그야말로 눈앞의 작은 이익만을 노리는 멍청한 비즈니스였다.
내가 아우베스의 이적을 추진한 FC포르투 같은 구단은 영입한 선수를 잘 키워서 나중에 몇 십 배의 이적료를 튀겨서 팔아먹는다.
그런 게 진짜 축구 비즈니스다.
쪼잔하게 옵션으로 푼돈이나 버는 게 아니라.
“한국도 아니고 이탈리아도 아니라면 어디에서 뛰고 싶으세요?”
“… 이피엘.”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지금 세계 어떤 리그보다도 재밌고 다양한 축구를 하고 있거든요. 90년대 말이 세리에A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EPL의 시대가 될 거에요. 나는 그 무대에서 내 축구를 하고 싶어요.”
“동의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무실을 런던에 낸 겁니다. 하하하.”
나는 최재성의 말을 들으며 슬쩍 웃었다.
저 형도 독립하면서 참 뻔뻔해졌다.
엘리트의 아우라는 그대로인데 능글맞은 영업 스킬이 생겼다.
개업 초기에 유럽 구단들에게 문전박대 당한 씁쓸한 경험이 오히려 그를 업그레이드 시켰다.
“그럼. 이렇게 하죠. 이번 겨울 이적 시장에서 제가 안정민 선수를 반드시 EPL로 이적시키겠습니다.”
“정말요!? 그게 가능해요!?”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해내야죠. 그게 프로니까요.”
최재성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안정민은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했지만 마음이 기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저게 신의 한 수였군.’
그의 집 소파에 런던 본점에서 사온 버버리 선물세트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안정민의 에이전트는 지금 부산에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그가 도대체 자신을 위해 유럽 축구계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
“진짜 자신 있어요?”
“당연하지. 나를 뭘로 보는 거야?”
“초짜 에이전트?”
“이 짜식이!”
“하하하. 농담이에요. 형. 어제 버버리 선물세트는 진짜 대박이었어요. 완전 신의 한 수.”
“훗. 나도 런던에서 쓴맛 똥맛 다 봤거든.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제 다 파악했다구.”
다음 날 아침.
나는 최재성과 안정민의 집을 떠나 공항으로 향했다.
안정민이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우리가 거절했다.
왜냐하면 공항 가는 길에 작전 회의를 해야 했으니까.
“뭘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에이전트 계약과 페루자 임대 계약, 거기에 부산FC 계약까지 총 3가지 계약을 깨야 하는데… 그게 가능해요?”
“건우야.”
“예? 형.”
“나 최재성이야. 사법연수원에서 1등하고 판사가 아닌 변호가 된 사람은 대한민국 사법고시 역사상 내가 최초였어. 그만큼 나는 변호사 일을 사랑해.”
“갑자기 왜 자랑질을 하고 그래요?”
“그냥 그렇다구. 니가 축구를 예술로 하듯이 나도 나의 일을 예술로 생각하거든. 내가 어떻게 일을 해결하는지 너는 닥치고 감상하도록 해.”
“… 예.”
우리는 아시시 공항에서 헤어졌다.
최재성은 런던으로 돌아갔고 나는 마인츠로 돌아갔다.
“남은 시간은 대략… 한 달이네.”
EPL의 겨울 이적 시장은 1월 31일까지다.
한 달 안에 안정민에게 걸린 3가지 계약을 풀고 EPL의 새로운 팀까지 찾아 입단을 끝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미션이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 거지?”
***
최재성은 성격답게 바로 움직였다.
다음 날 한국 인터넷 축구 카페를 중심으로 [안정민 노예 계약의 실체]라는 글이 올라왔다.
안정민이 두 구단의 돈만 밝히는 이기적인 옵션 계약 때문에 자주 출전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한일월드컵에서 경기력 저하로 이어질 거라는 논리 구조를 지닌 글이었다.
단순한 추론만 나열한 게 아니라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구체적인 옵션 내용까지 공개되었다.
월드컵 개막을 불과 6개월 앞두고 한국의 주전 공격수가 이런 상태라는 건 국민에게 충격이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당시에 국민 여론은 “한일월드컵에서 1승도 못하고 국제적으로 개망신당할 거다.”라는 게 다수결 의견이었다.
당시 한국은 인터넷 카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럽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활발한 토론과 오프 모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세리에A에서 뛰고 있는 안정민은 영웅 중의 영웅이었다.
안 그래도 다들 페루자에서 중용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는데 알고 보니 그 원인이 [부산FC와 페루자 사이의 노예 계약] 때문이었다니.
인터넷 여론이 폭발적으로 달아올랐다.
“분위기 살벌하네.”
내부인이 아니면 모를 증언과 증거가 계속 올라오고 인터넷을 타고 정보가 무섭게 퍼져나갔다.
결국 이 폭로는 이틀 후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했다.
[안정민 노예 계약 파문! 부산FC와 페루자의 이기심에 재능을 썩히고 있는 안정민 선수.]인터넷 -> 신문 -> 공중파 뉴스로 안정민 이슈가 확대 재생산되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안정민 노예 계약 파문]은 한일월드컵을 앞둔 대한민국의 최대 이슈가 되어 버렸다.
“재성이 형. 프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