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80
너희 잘난 고향에서는 너희 팬들이 썩은 토마토를 들고 기다리고 있겠지
“…”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사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다.
한국이 월드컵 결승전에서 뛴다니.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16강 진출은 기적이고 1승이라도 하면 다행이라는 분위기였다.
반세기 동안 1승도 못한 팀한테 갑자기 결승전을 노리라고 하니 선수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저는 우리 팀이 결승전에 올라갈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침묵을 깨고 외쳤다.
“그래. 그거야. 우리가 먼저 믿어야 우리를 응원하는 대한민국 국민도 믿게 되고 상대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 모든 위대한 모험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야.”
하이팅크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웃었다.
어수선했던 팀 분위기가 급정돈 되었다.
원래 목표를 달성하고 구심점을 잃은 선수들에게 다시 강한 동기부여를 심어주었다.
“토틴와 비에라는 다혈질이야. 녀석들이 신경을 계속 자극해서 카드를 받게 만들어. 퇴장을 시키면 가장 좋고. 심판에게도 강하게 항의해. 심판이 경기장 분위기와 관중들에게 겁먹게 만들어야 해. 여기는 너희들의 홈이니까. 홈어드벤티지를 최대한 이용해. 그걸 활용하지 못하는 놈은 멍청이야.”
하이팅크는 그동안 경기전 선수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별로 하지 않았다.
그저 훈련한 대로 움직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동하는 버스에서도 쉬지 않고 선수들 하나하나를 붙잡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남인. 너의 마크에 팀의 운명이 달려있어. 끝까지 집중해. 토틴은 아주 교활한 반칙을 잘하는 놈이니까. 당하면 안 돼.”
“알겠습니다. 감독님.”
특히 김남인에게 이탈리아 공격의 핵 프란체스코 토틴의 마크를 맡기며 몇 번이나 강조했다.
상대는 이탈리아다.
지금 이탈리아팀은 2년 전 유로2000에서 준우승했던 바로 그 호화 멤버다.
강호 독일조차도 월드컵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탈리아를 이겨보지 못했다.
그만큼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만나는 이탈리아는 상대하기 괴로운 팀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하이팅크였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공격수들은 파누차를 노려. 놈을 계속 자극하면서 틈을 만들어야 해.”
우리는 베어맥 코치의 염탐을 통해 이탈리아가 스리백으로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행히 수비의 핵 칸나바론과 네스티가 각각 경고 누적과 부상으로 오늘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그나마 극악의 빗장수비에 빈틈이 생긴 거다.
말디나 – 율리아논 – 파누차로 구성된 스리백 라인에서 그나마 공략하기 쉬운 게 파누차였다.
하이팅크 감독은 나에게 파누차 공략을 지시하며 그의 버릇이나 플레이 습성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파누차 공략에 우리 한국의 승리가 달려있다.”
하이팅크는 유럽에서 일류 감독으로 지내며 현 이탈리아 선수들을 직접 지도하기도 했고 적으로 상대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의 무서움과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둥- ! 둥- ! 둥- ! 둥- !
“대~~ 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레와 같은 북소리가 나의 심장을 두드렸다.
선수들도 전사의 눈빛으로 변했다.
하이팅크 감독의 명연설과 축구팬들의 열광적 응원으로 우리는 초집중 상태가 되었다.
선수들 눈빛을 보니 “오늘 해볼만 하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사실 전생에서도 이탈리아전은 기적 같은 승리였기 때문에 나의 개입으로 오늘 승부가 어떻게 바뀔지는 예측 불가였다.
드레싱룸에서 꼼꼼하게 장비를 점검하고 테이핑을 하며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데 구단 관계자들이 하이팅크를 찾아왔다.
“무슨 일입니까?”
“이탈리아 쪽에서 계속 항의하고 있습니다.”
“뭐를요?”
관계자에 의하면 이탈리아의 항의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붉은 악마 응원단의 카드 섹션.
[AGAIN 1966]이란 단어가 불쾌하다고 했다.1966년은 북한이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1대0으로 꺾었던 년도다.
붉은 악마는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너희들도 오늘 똑같이 당할 거라고 제대로 엿을 먹인 거다.
“그런 옛날 일을 아직도 의식하고 있다니… 재밌네요.”
하이팅크는 못된 장난을 구상하는 악동 같은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붉은 악마한테 전하세요. 카드를 의자 밑에 잘 숨겨뒀다가 경기 시작할 때 이탈리아 애들이 잘 볼 수 있게 들어 올리라구요. 모든 책임은 제가 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꼭 하라고 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두 번째는 이탈리아 골대 뒤에서 한국 응원단이 계속 꽹과리를 두드려서 정신이 없다는 항의다.
한국의 꽹과리 소리는 세계 축구팬들에게 악명이 높았다.
남아공 월드컵 때 부부젤라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최고의 소음 병기였다.
한국 응원단은 경기 시작 전부터 이탈리아 골키퍼 잔루이지 푸폰을 향해 꽹과리 소음 공격을 시전하고 있었다.
“그거 좋네요. 계속하라고 하세요. 90분 내내 쉬지 않고 계속 두들겨서 이탈리아 놈들의 혼을 빼놓으라고 하세요.”
“아… 네…”
경기장 담당자는 어이없어하며 돌아갔다.
그만큼 승부에 있어서 순진하다는 뜻이다.
세계 최고 레벨의 세계는 칼끝에 서 있는 것과 같다.
그런 살벌한 세계에서 경력을 쌓아온 하이팅크는 승부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한국 선수들! 나오세요!”
우리는 통로를 따라 피치로 나아갔다.
나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내가 과연 어디까지 통할까 하는 궁금증만이 있었다.
“건우야. 잘 부탁한다.”
“형도 몸 잘 풀어둬요. 곧 나와야 할 테니까.”
“당연하지.”
나는 오늘 경기에서 처음 원톱으로 출전한다.
나 때문에 이탈리아전의 영웅 안정민이 벤치에 있어야 했다.
뭐 덕분에 문제의 페널티킥 실축도 없을 테니까 쌤쌤이라고 해야 하나.
여튼 오늘의 기용에서 나는 하이팅크 감독의 무서움을 또 한 번 느꼈다.
나를 이런 결정적인 경기에서 원톱으로 쓰려고 그동안 숨겨둔 거다.
그가 오늘 나를 원톱에 세운 건 전술적으로 신의 한 수다.
이게 어떤 효과를 만드는지는 곧 알게 된다.
“저놈들은 왜 저렇게 잘생긴 거야? 다들 패션모델 같아.”
“조심해요. 잘생긴 얼굴 속에 비열함을 숨긴 놈들이니까.”
다들 이탈리아 선수들의 외모에 감탄했다.
직접 보니 독일 선수들 못지않게 피지컬이 좋았다.
다들 몸이 두껍고 몸통이 굵었다.
다른 점은 독일 선수들은 건조하고 딱딱하게 피지컬이 좋다면 이탈리아 선수들은 축축하고 끈끈하게 피지컬이 좋았다.
나는 김태홍과 김남인에게 가서 다시 한번 충고했다.
“놈들의 팔꿈치를 조심하세요. 특히 공중볼 경합할 때 일부러 휘두를 거에요.”
“알겠다니까. 너나 조심해. 인마.”
역시 터프한 형들다운 반응이 돌아왔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시작부터 상당히 신경질이 난 상태였다.
미끄러운 잔디 사정부터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 거기에 역사적 굴욕을 떠오르게 하는 카드 섹션까지.
동양인을 대놓고 무시하는 정서까지 뒤섞여 이탈리아 선수들의 멘탈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빨리 끝내버리고 이딴 거지 같은 곳을 탈출하자구.”
“그래. 나도 벌써부터 아주 지긋지긋해.”
나는 토틴와 비에라가 떠드는 걸 듣고 바로 받아쳤다.
“뭐가 거지 같다는 거야? 밀라노나 로마 경기장보다 훨씬 깨끗하구만.”
“뭐야!?”
내가 이탈리아어를 알아듣고 대꾸하자 둘은 나쁜 짓 하다가 들킨 것처럼 깜짝 놀랐다.
“우리는 니들처럼 쓰레기도 안 버리고 술 처먹고 싸움질이나 하는 멍청한 울트라들도 없어. 자국팀을 열심히 응원할 뿐인데 뭐가 거지 같다는 거야?”
“너 우리 말을 알아듣냐?”
“대충. 어쨌든 걱정하지마. 토틴. 오늘 밤에 짐을 싸서 이탈리아로 돌아가게 될 거니까. 너희 잘난 고향에서는 너희 팬들이 썩은 토마토를 들고 기다리고 있겠지.”
“이 새끼가! 너 뭐라고 했어!?”
“역사적인 사건인데 몰랐어?”
1966년 월드컵에서 북한에게 패배한 이탈리아팀은 자국민들에게 썩은 토마토와 날달걀 세례를 받았었다.
토틴이 격분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도 웃으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놈이 나에게 주먹이라도 날려주면 땡큐였다.
“뭐 하는 거야!? 그만둬!”
주장 말디나가 막아섰다.
나와 토틴은 말디나를 사이에 두고 눈싸움을 벌였다.
주심까지 달려와서 겨우 진정되었지만 나와 토틴은 싸늘한 긴장감을 풀지 않았다.
돌아서며 벤치에 있는 하이팅크를 슬쩍 보았다.
그가 씨- 익 하고 웃었다.
[토틴 쫓아내기] 작전은 이미 시작되었다.삐이이이익- !!
전반전 휘슬이 울렸다.
[AGAIN 1966]붉은 악마의 카드 섹션이 올라오자 4만 명의 관중이 일제히 우우우우우~~~ 하는 야유를 쏟아냈다.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집단으로 살을 날리는 저주의 주문이었다.
이탈리아 선수들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탈리아 수비수들은 나의 원톱 기용에 당황했다.
황선호 또는 안정민을 염두 하고 대비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역시 강팀은 다르구나.”
이탈리아가 우리를 깔보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축구를 깔보지는 않았다.
축구는 이변이 자주 일어나는 게임이다.
축구공은 둥글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탈리아는 변수를 줄이기 위한 축구에 최적화되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1골을 우겨넣은 후 꽁꽁 잠가버리는 축구.
그게 가장 승리할 확률이 높다고 그들은 믿었다.
그래서 아무리 상대가 약팀이어도 분석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00프로 승리를 위해.
“위험해!! 젠장!”
이탈리아가 노린 첫 번째 타깃은 우리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원한 주장 홍명호였다.
놈들은 우리가 홍명호를 기점으로 후방 빌드업을 한다는 걸 파악하고 토틴을 이용해 강력한 전방 압박을 했다.
토틴이 달려들자 당황한 홍명호가 패스 실수를 범했다.
비에라가 볼을 빼앗아 벼락같은 중거리슛을 때렸다.
[슈우우웃! 오른쪽 골대 살짝 벗어납니다! 위험했어요!!] [한국! 정신 차려야 해요! 이탈리아에게 선제골을 먹으면 정말 힘들어집니다.]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잔디가 미끄럽지 않았다면 볼이 골대 오른쪽 상단에 꽂혔을 거다.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 홍명호가 흔들리자 시작부터 팀 리듬이 망가졌다.
나는 수비진영으로 내려갔다.
“주장. 빌드업을 남인에게 맡겨.”
나의 지시에 홍명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