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42)
> 음악천재를 위하여 – 142화 >
“이 보고서가 사실인가?”
호박색을 띈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몇 차례에 걸친 분석이었지?”
“총 3차례가 시행되었습니다.”
“지심을 분석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겠지?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순도군―!”
바바라의 볼이 거세게 실룩였다. 평소 표정의 변화가 없는 그가 얼마나 들떴는지 보여주는 방증이었으니.
것도 그럴 것이 탐사 지역에 대한 탐사팀의 보고서는 가히 놀랍다는 말로도 모자랐다. 특히 지심에서 채취한 괴금의 순도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탐사 지역을 방사형으로 걸쳐 지질 조사를 거듭하고 있다니, 켈릭이 어지간히 신이 났나 보군. 조, 켈릭의 목소리는 어떻던가?”
“탐사팀장의 목소리는 상당히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렴, 당연히 들떠 있을 수밖에.
지심에서 발견된 금의 순도를 보자면 1983년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금맥보다 훨씬 뛰어났다. 탐사 지역에 걸쳐진 금의 매장량과 분포도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면 기절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바바라의 눈동자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가 넘쳐흘렀다.
골드.
원소기호는 Au, 라틴어로 찬란한 새벽(Aurum)이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화폐의 제왕이라 불렸으며 수천 년 후에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을 물질.
닉슨 대통령의 금불태화정책 선언 이후로 미국과 프랑스, 영국이 황금을 더 이상 투자의 대상이라 보기엔 어렵다고 말했지만 세계 유수의 가문들과 재력가들은 끊임없이 황금을 갈구하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지 않는가. 자산의 화폐가치가 불안정해질수록 만고불변의 물질인 황금에 기댈 수밖에.
“절망의 끝에서 찬란한 새벽을 맞이하리라. 이게 무슨 말인지 아는가?”
“회장님, 죄송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광산에서 채광을 하던 광부들이 매번 마음이 새기는 글귀라네. 그들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광구는 찬란한 새벽을 맞이하기 위한 밤이니까 말이지.”
바바라 회장이 금을 갈구하는 까닭은 간단했다. 종이화폐를 넘어서는 세계의 기축통화라서?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한평생 광산업을 하셨던 부모님 때문이었다. 어린 자식을 위해 매번 끊임없이 찬란한 새벽을 찾아다니시지 않았던가.
끝이 보이지 않던 어둠을 걷던 바바라 채광이 한 줄기 빛을 맞이했다.
“신비한 소년.”
눈동자는 호수처럼 맑고 투명했으며 대양처럼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담대함을 잃지 않았으니. 그의 아름다운 연주만큼이나 전율을 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분명 바바라 회장에게 있어 바이올리니스트 현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찬란한 새벽이었다.
바바라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 그를 만나기 위해.
* * *
강현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노교수들을 마주했다. 문득 연예인들의 팬미팅 현장이 이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하니 줄리어드 음대에서 교수들을 상대로 교단에 서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하물며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영화관?’
강현은 영화관에서 마주했던 노신사가 줄리어드 음악대학의 원장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탄성을 터뜨렸다. 뉴욕 바닥이 이렇게 좁을지는 몰랐다.
요제프는 강현이 건네었던 악보를 신줏단지 모시듯 손에 말아 쥐고 있었다. 얼마나 악보를 연구했는지 이미 수년이 흐른 것처럼 종이가 너덜너덜했다.
보아하니 물어볼 것이 있는 모양. 그 방증으로 강당의 가장 앞 열에 앉아 있는 요제프 원장의 눈동자는 형형하다 못해 활기가 넘쳐흘렀다. 마치 오늘만을 기다려왔던 사람처럼.
“줄리어드 음악대학의 교수님들을 만나 뵙는 자리에서 제가 이토록 과분한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보다 훨씬 음악적 지식이 깊으신 교수님들을 상대로 교단에 선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는군요.”
“바이올리니스트 현,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네. 오늘 학부생들까지 초청을 하게 되면 질문을 하는 시간이 부족할까 봐 먼저 우리끼리 보자고 말한 것이니. 실상 우리 모두 자네의 영화를 보고 팬이 되었다네.”
“팬이라고요?”
강현은 곧장 고개를 깊이 숙여 보였다. 감사의 뜻에서 우러나오는 인사였다.
한평생 음악을 전진해 온 교수들이다. 그런 그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강현이 예의를 표함과 동시에 올리버 학과장을 필두로 질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얼마나 많은 질문의 향연이었던지 마치 막혔던 수문이 열린 것처럼 우수수 쏟아졌다.
“선상에서 연주를 했던 장면은 실제로 배 위에서 촬영을 했다고 하는데 맞는가?”
“예, 사실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평평한 땅도 힘들 것인데 기어코 배 안에서 연주를 했다니, 난 처음에 특수 효과를 사용한 것인 줄 알았네. 선율이 굉장히 풍부하고 독특하더군. 듣기로는 특이한 연주기법을 사용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노교수들은 흡사 음악을 처음 배우는 학생처럼 열띤 질문을 해왔다. 강현은 그럴 때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더해 설명했고, 말로 부족할 때는 실제로 짧은 연주를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 같았지만 강현은 개의치 않았다.
노교수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를 보고 있자면 다들 동심으로 돌아간 듯해 기분이 묘해졌다.
“바이올리니스트 현, 이태리의 광장에서 연주를 했던 장면은 어떻게 촬영한 것입니까? 영화상에서는 파가니니가 눈을 감고 딱 한 번 들었던 거리의 노래를 그대로 따라 연주하던 장면이 있었지 않습니까. 라비안로제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오던데 실제로 연출을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실제로 처음 들어본 음악을 그 자리에서 연주한 것이었죠. 당시 곡은 이태리의 작곡가분이 거리의 악사가 되어 연주를 해주셨습니다.”
“연출이 아니었다고요?”
웬만한 음악가들이 청음을 통해 흉내를 내며 따라 연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작중에서 나온 파가니니의 모습은 그러한 범주를 훨씬 뛰어넘고 있었으니.
처음 들은 음악을 그 자리에서 곧장 복사하듯 연주하는 것은 물론 편곡을 통해 자신만의 연주로 승화시키지 않았던가.
질문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현, 실례가 안 된다면 이 악보를 직접 해석해 줄 수가 있겠나? 자네가 영화관에서 내게 직접 적어줬던 악보 말일세.”
요제프가 참지 못하고 손을 번쩍 들어 올려 보인 것이었으니.
그의 눈동자에는 궁금증과 설렘이 가득했다.
몇 날 며칠을 거듭해가며 악보를 연구했지만 도저히 그날의 악상처럼 쉽게 연주할 수가 없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가령 수백 년 전 죽은 모차르트의 곡을 두고도 여러 갈래의 해석이 나뉘었으니.
어찌 보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살아 있는 작곡가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음, 그러지 말고 제가 직접 연주를 해서 해석을 해드리겠습니다.”
요제프가 기다렸다는 듯이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다른 노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바이올리니스트 현의 자작곡을 들을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강현은 그러한 노교수들을 바라보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세를 취했다.
* * *
줄리어드 음대의 녹음이 가득한 정원을 보고 있자니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다들 파릇파릇한 잔디 위에서 막걸리나 소주를 기울일 때 나는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던가. 남들에게는 하나쯤 있을법한 추억이 내게는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법학과에 입학하자마자 독종처럼 사법고시에 매달렸기에.
“오빠아―!”
손유하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것도 그럴 것이 내가 교수님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지 않았던가.
어찌나 부담스럽게 바라보던지 중간중간 헛기침이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아냈다.
“오빠 진짜 멋있었어, 나중에 교수님 해도 잘 어울릴 거 같아.”
“교수님?”
“응, 오빠는 교수님하고 나는 뒷바라지 열심히 해주면 되지―!”
얘가 어디서 무슨 말을 배운 것일까. 얼굴을 보아하니 장난기가 가득하다.
처음에는 유하의 장난이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나름대로 익숙해졌다. 이토록 귀여운 여우를 본 적이 없었으니.
헤벌쭉 웃는 유하의 볼을 한 손으로 잡아 늘릴 때였다.
탈탈탈탈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창공을 바라보니 시선 너머에서 헬리콥터 한 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가만 보면 미국은 참 스케일이 크단 말이야, 어느 누가 대학교에 헬리콥터를 타고 올 생각을 다 하겠는가.
“어, 나 저거 타본 적 있는데.”
“어?”
“한국에서 저 헬리콥터랑 똑같은 거 타본 적 있어. 할아버지가 태워줬거든.”
아아, 손유하가 재벌가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깜빡했다.
것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나간다는 재벌이었으니 헬리콥터야 오죽할까. 마음만 먹는다면 전세기를 타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헬리콥터 소음이 잦아들자 이번에는 녹색 정원에서 선율이 흘러나왔다.
누가 공연예술학교 아니랄까 봐 학생들이 저마다 공원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중이었다.
“아까 오빠 연주 엄청 좋았어.”
“마지막 연주 말하는 거지?”
“응, 자작곡이었다며. 가장 앞쪽에 계시던 교수님이 왜 그렇게 듣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아. 다들 황홀한 눈빛이더라.”
어째 유하가 다시 연주를 듣고 싶어 하는 표정이지 않은가.
나를 위해 도시락까지 싸 온 유하를 위해서라면 못 해줄 것도 없었다.
하물며 녹음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마치 반주처럼 귓가를 간지럽히지 않는가.
어째 장소는 이미 완성된 것 같았으니 어디 한번, 나도 연주를 해봐?
* * *
“줄리어드에서 교수들을 상대로 강의를 했다니.”
바바라는 비서를 통해 들은 이야기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탐사 지역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강현을 찾아가던 길이었다. 다행히 일면식이 있던 줄리어드이지 않은가. 이사장과 안면이 있을뿐더러 종종 장학금도 기부를 했었으니.
헌데 설마하니 줄리어드에서 교수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다니.
‘보면 볼수록 탐이 나는군.’
처음 원석인 줄로만 알았던 강현은 시간이 지날수록 탐이 나는 보석이었다.
그가 탐사 지역을 어떻게 찾아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계약서의 비밀조항이기 이전에 자신을 만나 거래를 제안한 그 추진력과 담대함에 놀랐기 때문.
바바라는 오랜만에 진정한 친구로 사귀고 싶은 이를 찾은 느낌이었다.
“도착했습니다, 회장님.”
때마침 헬리콥터가 줄리어드 음대에 다다라 있었다. 헬기 선착장에는 이미 줄리어드의 이사장이 미리 마중을 나와 있었는데 바바라가 일 년에 내는 기부금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대우였다.
“이사장님, 죄송하지만 되도록이면 소란스럽지 않게 바이올리니스트 현을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괜스레 사람들을 여럿 대동하고 움직일 필요가 있겠는가. 바바라는 이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경호원과 단둘이 걸음을 옮겼다.
음대의 건물 사이로 들어서자 벌써 선율들이 귓가를 울렸다.
뉴욕의 심장이라 일컬어지는 도심 속에 자리한 대학이었지만 수목원처럼 녹색 정원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탐사팀장 켈릭의 보고서의 따르면 지심의 순도와 예상 매장량과 분포도는 엄청난 것이었다. 과연 바이올리니스트 현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바바라 회장은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부자들을 봐왔다. 개중에는 일확천금을 얻어 벼락부자가 된 이들도 있었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돈을 번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현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그랬듯 그는 침착한 얼굴로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의 깊고 담담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바바라는 자신도 모르게 바삐 걸음을 움직였다. 덩달아 경호원이 잔뜩 신중을 기한 채로 뒤따라야만 했으니.
때마침 저 멀찍이서 현이 있다는 녹색 정원이 보였다. 그때였다.
“내가 한발 늦었군.”
녹색 정원에 들어선 바바라 회장이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으니.
호박색의 눈동자에 한 남녀가 들어찼다.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광경이었다.
나뭇잎으로 하모니카를 만들어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현과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단 한 명의 소녀.
“이미 황금보다 더 소중한 것을 거머쥐었으니.”
그는 이미 찬란한 새벽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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