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CEREED RAW novel - Chapter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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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크력 1년
리치가 손을 뻗자 성기사의 목에 손가락 크기의 구멍이 생겼다. 붉은 피가 뭉클뭉클 흘렀다.
“컥, 커컥.”
성기사가 괴로운 표정을 짓자 리치가 말했다.
“클클클. 실수다. 이번엔 다시. 클클클.”
다시 손을 뻗는 리치. 이번에는 성기사의 눈을 파고들었다. 성기사가 몸을 부르르 떨다 절명했다. 그 상황을 보고 있던 다른 성기사가 흠칫 떨었다.
“클클클. 들었지? 너도 같은 생각이냐? 클클클.”
성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말하라.”
“클클클. 좋군. 협조적이야. 여긴 무슨 일이냐? 클클클.”
“순찰 중이었다.”
“클클클. 순찰? 나를 알았냐? 클클클.”
“아니다. 대륙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러다 잠시 쉬기 위해 멈추었다가…….”
성기사는 말을 삼켰다. 분하고 억울한 게다.
리치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
“클클클. 언제 돌아갈 예정이었지? 클클클.”
성기사는 리치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 마다 귀가 아픈 걸 느꼈다. 하지만 내색할 순 없어서 참았다.
“8일 뒤다.”
“클클클. 알았다. 클클클.”
리치가 손을 들자 성기사가 기겁하며 외쳤다. 리치의 손끝에 콩알만 한 검은 구슬이 있는 거 같았다. 고도로 응축된 암흑마나였다.
“약속이 틀리지 않느냐!”
“클클클. 멍청한 놈. 리치와 약속을 하다니. 클클클.”
리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기사의 이마에 구멍이 뚫렸다.
“끄륵.”
성기사의 이마에서 핏줄기가 살짝 튀었다. 성기사가 죽어버리자 리치는 주변의 마나에서 불의 속성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집중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리치가 몸을 허공으로 띄었다. 두둥실 떠오른 리치가 왼손을 들었다. 그러자 두 구의 시체가 떠올랐다. 리치는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성기사들의 시신이 순식간에 불에 타서 연소됐다. 가공할 화력이었다. 불길은 성기사들의 크기만큼만 일어났다. 시체 두 구가 모두 타버리자 불이 꺼졌다.
뼈도 남지 않았다.
“클클클. 귀찮은 것들. 클클클.”
중력 마법이 펼쳐진 영역 내의 자갈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리치는 처음 기억해 두었던 눈에 들어온 정보를 끄집어내어 복구 마법을 펼쳤다.
드드드드득.
놀랍게도 움푹 들어갔던 자갈들이 위로 올라오며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몰려있던 자갈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1분 정도 지나자 주변과 똑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리치는 다시 한 번 이상한 점이 있나 확인하고 바위산의 틈으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
성기사들이 죽었던 곳에 11명의 병사들이 왔다. 대제국 소속의 병사들로 대륙에 남아 있는 언데드를 소탕하기 위해 조직된 병사들이었다.
그들을 이끄는 십인 대장이 말했다.
“이곳에 쉰다.”
그 말에 병사들이 자리를 찾아 앉았다. 몇몇이 짐에서 야영할 도구를 꺼내기 시작했다.
병사 하나가 대장에게 다가갔다.
“대장님. 좀 으스스합니다.”
“이곳에서 많은 언데드가 죽었다. 으스스한 것도 당연해.”
“쩝. 그건 그렇고 한 달 있으면 복귀 아닙니까?”
“그래. 이대로 속도만 맞추면 가능하지.”
“돈 받으시면 뭐 하실 겁니까?”
그 말에 십인 대장이 의아한 듯 그를 쳐다봤다.
“자넨 뭘 할 건가.”
“저는 음식 장사나 해볼까 생각입니다. 그 동안 돈 좀 모았거든요.”
십인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네 음식 솜씨는 대단하지. 오늘도 잘 부탁하네.”
“하하. 걱정 마십시오.”
병사가 돌아가고 음식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
“끄악!”
병사 하나가 목을 감싸고 쓰러진 것이었다. 목을 감싼 손을 비집고 나오는 핏물이 보였다. 어두웠지만 주변에 피워둔 모닥불로 인해 훤히 보였다.
“적이다! 모두 경계하라.”
십인 대장은 침착하게 명령을 내리고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지나도 적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적은 그들의 위에 있었다. 클클클 리치다.
리치가 손을 뻗었다. 대기를 가르며 검은 콩 같은 게 날아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십인 대장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십인 대장은 동공이 풀린 채로 주저앉았다. 절명했다.
“대장님!”
병사들은 우왕좌왕했다. 보이지 않는 적이 가져다주는 공포는 대단했다. 거기다가 그 동안 믿고 의지한 그들의 대장이 죽었으니, 병사들은 더욱 동요했다.
리치는 인간들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아래로 내려갔다.
“클클클. 인간들아. 그렇게 죽고 싶더냐? 클클클.”
“으허억!”
병사 하나가 자신의 뒤에서 들리는 소름끼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팅 하는 소리와 함께 칼이 튕겨졌다. 그 병사는 반발력을 버티지 못하고,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그래서 적의 정체를 볼 수 있었다.
뭐 보여줄 게 있다고 후드를 완전히 젖혀 해골이나 다름없는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상대는 리치였다.
병사는 리치를 직접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리치’라는 단어가 주는 연상 기억은 무진장 많았다. 그 중 하나가 ‘해골’ 이며 다른 하나는 ‘마도사’ 였으니, 눈 앞에 해골이나 다름 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존재의 정체를 단박에 파악했다. 아니, 파악했다기 보다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리, 리치!”
병사가 부르짖은 단어의 파장은 컸다.
“으아악!”
병사 하나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다. 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리치는 그를 가장 먼저 죽였다. 손을 뻗자 다시 검은 콩 같은 것이 날아갔다. 그리고 정확히 도망치는 병사의 뒤통수를 뚫었다. 병사가 철퍽 자빠졌다. 그 때문에 바닥의 자갈이 끌렸다.
“클클클. 저렇게 되기 싫으면 얌전히 있어라. 클클클.”
리치가 손을 들자 죽은 병사가 두둥실 떠서 리치의 앞에 안착됐다. 자갈은 어느새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 있었다.
병사 하나가 리치의 뒤에 접근했다. 그리곤 쾌속하게 검을 찔렀다.
푹.
“찌, 찔렀다.”
병사는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기뻐하며 다시 찌르기 위해 검을 뺐다.
“어?”
하지만 검이 빠지지 않았다. 리치의 얼굴이 반대로 돌아갔다. 인간이었다면 절대 돌아가지 못하는 각도였지만 리치는 가능했다. 목에서 나는 우두둑 하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들렸다. 병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클클클. 오늘따라 왜 이리 귀찮은 잡것들이 오는지 모르겠구나. 클클클.”
리치가 눈을 부라리자 병사는 그만 정신을 놓고 쓰러지고 말았다. 리치는 손으로 검을 뽑았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은 병사의 심장을 찔렀다. 병사의 몸이 움찔거리더니 곧 잠잠해졌다.
병사들의 얼굴이 굳었다. 보이지 않는 사신의 낫이 자신들의 목덜미를 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한기가 발바닥에서 올라온다.
리치가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클클클. 나 바쁜 몸이야. 클클클.”
리치의 전신에서 살기가 퍼졌다.
이날 밤 11명의 병사들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며칠이 지나고 같은 백인대 소속의 십인대 11명의 병사들 소식도 끊겼다. 이 소식은 그들을 지휘하는 백인대장에 의해 결국 대제국에 보고가 됐다.
***
대제국의 수도명은 카인으로 불리었다. 카인 용병단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카인 수도에 황성이 있지만, 황성의 크기도 카인 수도와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은 것이라 마치 두 개의 수도가 붙어 있는 것 같이 거대했다.
카인 수도 내에 있는 황성에 귀족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하나같이 마차에서 내린 귀족들은 누가 봐도 호화스러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 금으로 된 팔찌나 목걸이는 기본이었고, 손가락에 있는 반지는 한눈에 봐도 고가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귀족들은 시종들의 안내를 받으며 서궁으로 들어갔다. 카크의 부하들은 대장군이 되어 황성을 비운 터라 동궁, 서궁, 남궁이 비어있는 상태다. 그래서 서궁은 대제국의 대내외 정책 및 대제국의 사안 등의 업무를 처리하는 곳으로 바뀌었고, 남궁은 대외적인 행사 및 손님을 들이는 곳으로 역할을 바꾸었다. 그 결과 동궁만 현재 주인 없는 곳으로 남아 있는 실정이었다.
“살만한 모양입니다?”
“허허허. 그리 보였소?”
몇몇 귀족들은 서로 잡담을 하며 서궁의 복도를 지났다. 귀족들은 영지를 하사 받고 열심히 영지를 다스렸다. 성과에 의해 보상이 더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로 모이는지 아시오?”
“그걸 모른단 말이오?”
“끙, 영지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오.”
이번 귀족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왔지만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귀족도 있었다. 지금의 귀족이 그러했다. 그는 용병이었다가 귀족이 된 경우다. 그리고 그와 이야기를 하는 귀족은 전직 기사였다.
“십인대 두 곳의 소식이 끊겼다고 하오.”
“정말이오?”
전직 용병이었던 귀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싸움을 많이 해봤고, 그곳에 관심이 많기에 이번에 파병 된 십인대의 전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십인대 두 곳의 소식이 끊겼다면 보통 사안이 아닐 게다.
아마 언데드에게 당했겠지.
귀족은 상황을 짐작했다.
그들은 곧 세 사람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문은 절반 높이 까지는 직선으로 올라갔다가 그 위로부터는 아치를 그리고 있었다. 방패를 거꾸로 세워 놓은 형상이었다.
문 앞에 있던 병사들이 길을 비켜주며 문을 열어주었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양피지가 있었다. 귀족들의 머릿수에 맞게 준비된 것이었다.
귀족회의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시종들의 안내에 서성거리지 않고 정해진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상석을 기준으로 세력에 따른 안배였다. 상석은 비워져 있었고, 상석의 오른편 아래에는 반테 후작이 있었다. 반테 가주의 오른쪽 대각선 앞에는 소프 백작이 있었는데 그는 반테 가주와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마테론 가문과 반테 가문을 제외한 네 개의 가문이 언데드의 공격을 받은 이후부터 반테 가문은 다른 가문과 사이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재건에 필요한 지원은 물론 연합에서 탈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내색만 하지 않을 뿐이지 불편한 관계는 틀림없었다. 게다가 다섯 가문이 모두 왕이 되기 위해 연합을 했던 만큼, 그들은 서로를 감시하는 한편 돈독하게 지내며 서로의 입단속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다. 잘 지내고 있는데 과거 왕이 되기 위해 뭉쳤다는 소리가 나돌면 큰 피해를 입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미 대제국의 대황제인 카크는 다 알고 있었지만, 그들만 모를 뿐이니 좌불안석인 셈이다.
“마테론 공작께서 드십니다.”
문에서 들린 병사의 말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테론 공작이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 고개를 숙였다.
명실 공히 대제국의 실세다. 유일한 공작이 아닌가. 몇몇 귀족들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공작을 쳐다봤다. 노골적으로 눈길을 주는 귀족도 있었다. 하나같이 잘 좀 봐달라는 눈빛이었으나 마테론 공작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공작의 뒤로 두 명의 인물이 따라왔는데, 한 명은 가문의 집사 였고, 한 명은 대제국의 시종이었다.
마테론 공작이 앉았다.
공작은 혈색이 좋아보였다.
“모두 앉으시오.”
공작의 위엄이 나왔다.
귀족들이 앉자 시종이 손에 들고 있던 양피지를 집사에게 주고 뒤에 있는 문을 통해 나갔다.
마테론 공작이 말했다.
“이곳에 모인 이유를 알 것이오. 십인대 두 곳의 소식이 끊겼소. 조사 결과 언데드의 짓이라는 판명이 나왔소.”
짐작과 사실은 엄연히 달랐다. 회의실이 술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