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CEREED RAW novel - Chapter 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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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크력 6년
그래도 다행이라면.. 연재 주기는 길어도 용량이 적지 않다는 것이겠죠?
많은 분들께서 카크 사랑으로 인해 카크의 힘이 언제 돌아오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지문을 통해 살짝 언급하고자 합니다.
690회 이전에 힘을 되찾을 것 같습니다~
그럼 즐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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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儀式).
행하기 전. 행함에. 행한 후.
의식이란 마음을 다스리는 일종의 정신행위다.
의식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에 걸쳐 퍼져 있다.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고, 일을 하기 전에 크게 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다. 검을 잡은 기사들은 호흡을 가지런히 하고 굳은 의지로 적을 응시한다. 어떤 상인은 일이 끝나고 집에 들어와 눈을 감고 박수를 친다.
몬스터들도 의식을 행한다.
먹잇감을 잡고,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거나 크게 포효를 하고 땅을 찍는다.
이처럼 의식은 행동과 정신을 합일시켜 정신적 안정과 더불어 때로는 쾌감을 주는 등 그 방법이 다양하고, 느끼는 방식 또한 다르다.
특히 의식은 인간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의식이 갖는 중요성은 존재증명에서 찾을 수 있다.
의식은 자신이 존재함을 증명하고 느끼며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장점도 있는 반면, 의식에 얽매여 의식에 집착하는 일도 생긴다.
개인적인 의식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나’를 생각할 수 있고, 단체 의식을 통해 ‘집단’과 ‘타인’을 생각하여, 결속력을 다져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사회성이 결렬된 사람들은 대부분이 개인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다.
의식(儀式)이 없는 삶을 산다면 삶이 무의미 할 정도로, 어떤 의식(意識)도 하지 않고 살아갈 확률이 높다. 일어나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의식이 함께 한다.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의식 하며 살아간다.
하루에 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많은 사람이 결혼하고, 많은 사람이 죽는다.
인간의 삶에 있어 큰 세 가지 의식이다.
탄생식.
결혼식.
장례식.
탄생식은 생명이 탄생했던 일을 기념하여 매년 그 날을 축하 해준다.
결혼식은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새로운 생명 탄생의 물꼬를 트는, 굉장히 축복가득한 날이다.
장례식은 생명의 꺼짐을 경건히 여겨 삶을 되돌아보고, 되짚어 삶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한다.
“저 결혼해요!”
결혼은 흔한 일이지만, 보편적으로 맞이하는 흔한 일에 대한 반응과는 다르게 모두가 기뻐하고 축복해준다.
결혼은 인간이 가지는 의식에서 가장 성스러운 의식 중 하나이며 충분히 축복해줘야 할 자리다. 물론 삼각관계에서 밀려난 자의 울부짖음은 논외다.
“축하해주세요! 하하하~!”
존이 멀쩡한 양팔을 흔들었다.
그 소문은 대륙으로 퍼졌다.
한 나라의 왕이 하는 결혼식은 나라 전체의 축제이며 축복이다.
***
“동왕이 결혼하신데!”
“정말?”
“그렇다고! 그 소식 때문에 대륙이 난리도 아닌데?”
“왜?”
남자는 의아했다. 동왕국은 대륙의 다섯 개 나라 중에서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동왕이 결혼한다고 해서 대륙이 난리도 아니라는 건 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긴 다른 왕들도 결혼을 한데!”
“정말?”
“그래. 동왕 뿐만 아니라, 서왕, 남왕. 거기다가!”
“거기다가?”
남자는 목을 길게 내밀었다. 그 모습은 흡사 자라가 고개를 빼쭉 내민 것 같았다.
“북쪽에 마법 도시 북왕도 결혼한데!”
아직 마법 도시에 대한 명칭은 사람마다 부르는 게 다르다. 어떤 이들은 마법 왕국이라고 하지만, 규모면에서 타 왕국에 비해 현저히 작기 때문에 왕국이라 부르지 않고, 도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도시는 왕국보다는 작고, 영지보다는 큰 곳을 뜻하며, 보통 후작 이상의 귀족이 다스린다. 하지만 무엇보다 총마탑주라고 부르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북왕이시라면……. 아, 총마탑주?”
다른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분이 동시에 결혼한다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연신 음식을 먹고 있었다. 가장 먹고 싶었던 보나베띠 면 음식이었다.
“그럼 대황제님은? 대황제 폐하께선 결혼하셨나? 아닌가?”
“아니, 우물우물……. 아직 안하신 걸로 아는데?”
“그럼 폐하께선 안하시나?”
“소식이 없는 거 보니 그런 거 같네. 혹시 깜짝 결혼식을 하나?”
“그런가? 모르겠다. 아무튼 네 분의 왕들이 동시에 결혼을 하니 대륙이 들썩이지!”
“근데 왜 같이 하시지?”
“동왕이 한다고 해서 다들 한 다는 거 아니야? 어쨌든 기념비적인 일인데? 네 분 왕이 동시에 결혼을 하는 건 처음이지 않나?”
“처음일걸? 그나저나 거참……. 어디로 가야 하나.”
둘은 한참을 고민했다.
벨하가 왕으로 있는 서왕국은 제외가 된 상태였다.
“마법 도시 어때? 진귀할 거 같은데? 거기다가 결혼식을 하니까 볼 것도 많겠고.”
환상적인 마법이 펼쳐지는 것이 상상이 됐다.
“동왕국이 낫지 않겠어? 아무래도 자유로우니까 이번엔 무슨 파격적인 일들이 벌어질 지 어떻게 알아?”
동왕은 파격적이다. 지나치게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존이 왕으로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한 달 동안 왕국 사람들에게 세금을 감면했다. 그 덕에 동왕국에 소속되기 위해 엄청난 인파가 몰렸었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남왕국이 낫지! 미녀들이 득실거리잖아. 거기다가 바닷바람을 맞아서 몸도 탱탱하고! 탄력이 넘치잖아. 얼굴 몸매 죄다 끝내준다고.”
“오!!! 건강미인!!”
남자들은 미녀라면 사족을 못 쓴다.
***
대제국이 생기고 나서부터 유례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대제국이란 것 자체가 유례없는 것을 보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몰랐다.
4명의 왕들이 합동결혼식을 한다는 소식에 대륙은 다시 축제 분위기로 들떴다. 한편 군 병력은 혹시나 하는 불미스러운 일들을 대비해 초긴장 상태에 돌입해 있었다. 어딜 가나 안전이 최우선이다.
합동결혼식은 당연히 대제국 수도에서 열기로 했다. 황궁 안에서 하는 것도 거론이 됐으나 축제인 만큼 황궁을 벗어난 수도에서 의식을 치러서 모두와 함께 한다는 취지였다.
처음 결혼을 한다고 소식을 알린 건 존이었는데, 뒤이어 케이프와 벨하가 결혼을 하기로 했고 마지막에 디워드가 발을 걸쳤다.
이렇게 되자 카크는 그냥 합동결혼식을 올리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4명의 부하들은 그거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동의했다.
“카크님은 결혼 안하세요?”
존의 작은 물음으로 카크는 두 명의 여자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머릿속엔 두 여인들이 떠오르지만, 그게 전부다. 아직까진 내부 가득 차지 않았다.
“저희 먼저 하는 게 좀 그렇잖아요~”
“그럼 내가 먼저 해야 결혼을 할 테냐?”
카크의 물음에 존은 잠시 생각을 했다. 존의 고민에 다른 부하들은 저놈의 주둥이가 문제라며 속으로 욕을 했다.
“음……. 내일 결혼인데 취소할 순 없잖아요? 하하하~”
낙장불입이다.
***
봄.
나무가 있는 곳엔 새가 날아다니며 지저귀고, 꽃이 있는 곳엔 나비들이 춤을 춘다.
어머니의 품과 같이 푸근한 온기로 가득한 날이다.
없는 여유마저 생기게 해주고, 미소마저 자연스레 나오게 해준다.
잔디로 가득한 동산에는 풀을 뜯어먹는 동물들과 사람들이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
어느 화창한 봄날의 이른 오후.
새하얀 구름은 파란 하늘과 대조를 이루지만 대조는 조화를 만들었다. 자연이 주는 경관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아야 더욱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고, 살짝 걸치는 선에서 만들어지는 인간의 건축물과 예술품들은 새로운 멋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합동결혼식이 열리는 대제국의 카인수도에는 그런 새로운 아름다움을 충분히 연출하고 있었다. 드워프의 뛰어난 건축공법으로 만들어진 여러 건물들은 웅장한 자연을 배경삼아 더욱 멋지고 아름다웠다. 특히나 수도 너머에 존재하는 대황성은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한 폭의 그림 같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 수준을 뛰어 넘었다. 대황성에 있는 여러 궁들과 탑들은 그 선이 유려하고 한 치의 어긋남이 없어 자연을 닮았으며, 고풍스러운 색과 모양은 모나지 않았기에 어울렸다.
사상 최대 인파가 대제국 수도로 몰려들었고, 숙박시설이 모자라 수도 외곽에서 노숙을 한 자들만 해도 백만 명이 넘었다. 덕분에 수도의 경제는 활발해졌지만, 다른 왕국의 경제는 침체를 맞았다. 그러나 결혼이 끝나고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시장경제는 다시 활기를 찾을 게다. 삶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축제. 이를 테면 왕의 결혼 같은 경우는 사람들에게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특히나 좋은 왕일수록 그 효과는 더욱 크다.
군 병력은 황성을 지키는 최소의 병력을 제외하고 곳곳에 퍼졌다. 그 수 만해도 사십만 명이 넘었는데 이는 대제국의 건국 이례 가장 많이 움직인 병력이다. 오히려 전쟁 때 보다 더욱 많았다.
대제국의 소드 마스터 고수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결혼식이 열리는 곳을 중심으로, 반경 3킬로미터 안에서 곳곳에 포진해 있다. 수상한 행동을 하는 자들은 즉각 발견되어 격리조치 될 게다.
물론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려고 하는 자들은 신랑들에게 즉각 제압이 될 게다. 누가 뭐라 해도 신랑들 개개인이 모두 마스터의 극에 오른 고수이며, 흑마법사 디워드는 7클래스 마스터의 마법사였다. 그리고 하객으로 참석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불미스러운 일들은 벌어지지 않을 게다. 대제국의 대귀족은 물론 마탑의 실력자들까지 죄다 모였다. 나머지는 죄다 귀족이다. 그러니 정신이 나갔다고 하더라도, 미쳤다고 해도 절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한 번 찍히면 죽어서도 피곤할 것이 분명했다.
“떨려요?”
존은 옆에 있는 덩치 큰 케이프에게 물었다. 케이프는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긴장하는 게 분명했다.
“아닙니다.”
케이프는 부정했지만 말투는 극히 딱딱했다.
이들 4명의 신랑들은 대기실에서 입장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했네요?”
내심을 들킨 케이프는 더욱 딱딱해진 어조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존은 이번에 벨하를 쳐다봤다.
벨하는 잘생긴 얼굴이다. 그러나 너무나 차가운 인상이라서 잘생긴 얼굴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헌데 카크의 부하로 지내면서 많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다보니 차가운 인상이 많이 풀렸다. 거기다가 결혼을 위해 몸의 라인에 딱 맞아떨어지는 멋스러운 턱시도를 갖춰 입으니, 어디에 내놔도 전혀 손색이 없는 미남으로 변해 있었다. 이런 벨하의 변화에 모두가 놀랐으니 얼마나 변했는지 짐작이 간다.
“정말 벨하님이 맞아요?”
“닥쳐라.”
말하는 걸 보니 벨하가 맞다.
“기분 좋은 날에 닥쳐라. 가 뭐에요 닥쳐라. 가~”
“흥.”
벨하는 존을 한 번 쳐다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존은 이번에 디워드를 쳐다봤다. 로브를 벗고 턱시도를 입은 디워드는 정말 새로운 모습이었다. 어느 누구도 로브 말고 다른 옷을 입은 디워드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새로울 수밖에. 어떤 면에서는 벨하에게서 느낀 신선한 충격과는 다르게 새로운 충격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
“디워드님은 와……. 멋지네요?”
그 말에 벨하의 눈썹이 씰룩였지만, 그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흑마법사 디워드는 내심 기분이 좋았지만,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로브를 벗고 턱시도를 입은 디워드는 중후한 멋이 있었다. 마법사답게 약간은 말랐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인간 자체에서 나오는 분위기 탓이다. 다소 침침한 분위기지만, 주변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흡입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흑마법사의 매력이다.
“그래도 제가 제일 멋지네요.”
존은 자화자찬하며 크게 웃었다.
“신랑 입장!”
밖에서 들리는 반테 공작의 목소리에 넷은 동시에 움직였다.
네 곳의 왕국이 움직인다.
대기실을 나서자 포근한 햇살이 그들을 반겼고, 엄청난 박수소리가 그들을 환영했다.
짝짝짝짝-
존이 손을 번쩍 들었다.
와아아아-!
엄청난 인파가 함성을 질렀다. 동왕국 사람들이었다. 존이 다시 손을 흔들자 더욱 큰 함성이 터졌다. 금세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이 합세를 한 까닭이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하하하~”
존은 즐기며 걷고 있었다.
케이프는 전쟁을 나가는 전사처럼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벨하는 표정하나 없는 얼굴로 정면만 보고 있었다.
디워드는 초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걸음걸이에서도 여유가 묻어났다.
“이쪽으로.”
식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신랑들의 위치를 극히 조심스럽게 잡아주었다.
신랑들이 자신들의 자리에 서자, 이어서 마테론 공작의 음성이 울렸다.
“신부 입장!”
빰빰빠빠빠빠-!
웅장하면서도 새소리처럼 맑고 가느다란 악단의 연주와 함께 4명의 신부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악기의 소리는 제각각 다르다. 가느다란 소리를 내는 악기가 있다면, 낮으면서도 깊은 소리를 가진 악기도 있고, 밋밋하면서 맛이 없는 소리를 내는 악기도 있다. 하지만 그런 악기들이 한데 모여 합주곡을 이루면 눈과 귀를 앗아갈 정도의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악단 바로 옆에 있으면 그 소리에 압도되어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봄의 신부들은 그런 악단을 압도했다.
“헉!”
존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4명의 신부들은 흡사 하늘에서 막 내려온 천사처럼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정말 후광이라도 비추는 듯 눈이 부셨는지 존이 손을 들어서 빛을 막았다. 사실 해를 등지고 입장했기에 존은 태양에 정면으로 노출 된 상태였다. 해서 눈이 부실 수밖에 없었다.
신부들은 각자 신랑 옆에 나란히 섰다.
그들은 주례사에게 인사를 했다.
주례는 대귀족 장두백이었다.
대황제와 황제는 특석에 앉아 있었다. 장두백이 대황제에게 인사를 하자 모두가 카크에게 고개를 숙였다. 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고개를 드는 것을 본 카크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런 대규모 결혼식은 처음입니다.”
트레젠은 과거 크림슨 제국의 황태자였다. 크림슨 제국은 과거 대륙의 중심으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곳이라서 뭘 해도 다른 왕국들과 스케일이 달랐다. 당연히 결혼식도 성대하게 치러진다. 하지만 지금 결혼식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일단 모인 사람부터가 달랐다.
대제국이 생기기 전까지는 귀족들이나 왕족들의 결혼이 있을 시엔 축제 형식으로 진행이 됐지만, 폐쇄성을 띄고 있었다. 계급차가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그들만의 축제였으니 평민과 그 이하의 신분에 속한 계층은 떨어지는 떡고물을 먹는 게 고작이었으나, 지금은 열린 축제로서 누구나가 참여해 즐길 수 있었기에 모여든 군중의 머릿수는 끝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바글바글했다.
이번 결혼을 위해 악단 또한 사상 초유의 규모로 모였고, 그들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대륙 전역에 뻗어 있는 귀족들이 모였음은 당연했다. 귀족이 모이면 그들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사람만 해도 최소 7명이며, 고위 귀족일수록 그 수는 늘어났지만, 이곳은 대황제가 있는 대륙의 심장이기 때문에 모두 최소화했음은 물론이다. 감히 대황제나 황제 앞에서 자신의 세(勢)를 자랑할 멍청한 귀족들은 없었다.
“녀석들의 복이지.”
카크의 말에 트레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로 오라고 해서 온 사람들은 저렇게 기쁘고 행복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이곳에 모인 사람 모두는 정녕 행복해 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일은 아니지만, 그냥 기분이 좋았다. 기쁨은 바이러스처럼 증식했고,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내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금 이순간은 그저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하지만 모든 건 대황제 폐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트레젠은 순간 내뱉고 싶었던 말을 삼켰다. 카크가 이런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흐음.”
주례사 장두백의 짧은 음성은 대제국 마법 황실에서 만든 음성 증폭기를 타고 수도 전역에 퍼졌다. 음성을 또렷하고 넓게 옮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마나 전달도 기술이 뛰어나다는 걸 뜻했다. 이 말은 굉장한 고가의 장치란 말과도 같다. 사실 마탑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었다.
“본 주례에 앞서 이 자리를 빛내주신 대황제 폐하와 황제 폐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바, 인사를 올리겠다.”
대귀족의 위치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다. 그가 대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이자, 만인도 덩달아 대황제와 황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카크와 트레젠은 손을 들어 주었고, 다시 식이 거행됐다.
“신께서도 축복하시는지 화창한 봄날에 각 나라의 왕들께서 장가를 드시게 되었으니 실로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의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가볍게 운을 뗀 장두백은 유창한 말솜씨로 주례를 시작했다. 그는 무림에 있을 당시 신을 믿지 않았으나, 차원이동을 통해 이곳으로 넘어와서는 신을 알게 됐다. 여전히 믿지 않았다.
신이 존재함에도 믿지 않은 것은 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의 존재를 믿는 건 아카니스 대륙에선 하등 쓸모가 없다. 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이 존재하는데 믿는다는 등의 낮은 수준의 신앙심은 가치가 없다.
장두백은 신이 존재하는 것을 알았어도 특별히 믿거나 크게 놀라지 않았다. 신은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신을 운운한 까닭은 이곳 대륙이 신이란 존재를 빼고선 이야기가 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아카니스 대륙인들은 신을 믿지 않고, 그저 우러러보고 의지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믿는다는 행위는 이런 자신의 신앙심을 믿는다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심에 신뢰를 쌓는다는 걸 뜻한다. 신앙심에 신뢰가 쌓이면 사랑은 더욱 커져만 간다.
사랑의 기본은 신뢰다.
인간이 어릴 때 어미의 품에서 의지하듯. 가족의 울타리에서 의지하듯. 같은 이치다. 신은 만물의 어미 같은 존재다. 그래서 대륙인들은 신을 우러러보고, 의지한다.
자신을 낳아준 어미를 믿는 자식들이 있는가?
없다.
그런 생각자체를 하지 않는다. 어미 또한 마찬가지다. 믿음을 강요하지 않고, 그런 생각 따위 자체를 하지 않는다. 무한한 사랑으로 자식을 보살필 뿐이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신 또한 마찬가지다. 무한한 사랑으로 만물을 보살핀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모두 자신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아카니스 대륙의 종교는 고등적인 신앙심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단이 나타나거나 신을 모욕하는 자들이 생긴다면 더욱 피가 튀긴다. 순수한 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어미를 욕하는데, 그걸 듣고 눈깔 뒤집히지 않는 자식은 없다.
어쩌다 종교들 끼리 싸우는 경우가 있는데, 지극히 간단한 이유다.
우리 엄마가 낫다. 아니다. 우리 엄마가 더 낫다. 라는 식의 유아기적 시기에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한 일이다.
우리의 신이 유일하다. 아니다. 우리의 신이 유일하다.
이런 식의 싸움이 아니다. 신은 분명히 존재하고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 대륙인들이기에 그런 싸움은 벌어지지 않는다. 마신(魔神)도 신이며 천신(天神)도 신이다.
간혹 이득을 위해 그런 식으로 분쟁을 조정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같이 질 낮은 종교인은 매장을 당하고, 신앙심도 잃고 성력도 잃는다. 그들은 이미 눈빛부터 다르다. 과거의 역사가 모두 증명해주고 있다.
물론 다양한 사람들이 살기에, 신을 숭배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자들도 있으며 심지어는 신의 존재를 거부하고 부정하는 자들도 있다. 그들은 이단 취급을 받지 않는다. 그저 안타까운 눈길의 대상이 될 뿐이다. 사람들은 마치 부모 없이 자란 사람을 보는 듯 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아카니스 대륙의 종교는 신도들의 돈을 걷지 않는다. 자발적인 모금으로 교단을 꾸려나간다. 정말 자금이 부족하면 적극적으로 돈을 걷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라에서 돈을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사랑의 척도를 돈으로 기준하고, 돈이 없으면 신의 미움을 받거나, 신의 사랑을 조금만 받는다는 식의 잣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은 만물을 창조했지 돈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회개는 큰 기둥이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신은 그런 것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모든 건 신이 만든 기본적인 자연법칙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쁜 짓을 저질렀으면, 결국은 죄를 받게 돼 있다. 살아생전 죄를 씻지 않으면, 죽어서 존재의 상태가 나빠진다. 이는 다시 말하면 죽음의 축복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의지는 죽었지만, 법칙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죽은 뒤에 결정되는 법칙은 더욱 끔찍하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죽은 자들은 죽어서 생명을 낳는다.
죽은 자들은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새로운 탄생을 돕게 되고, 이는 죽은 존재가 법칙의 순환을 잘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면 영원한 안식을 가지게 되지만, 살아생전 죄를 씻지 못한 자들은 모든 걸 강탈당하고 지옥으로 가게 된다.
지옥은 일종의 정화 역할을 하는 곳으로 수문(水門), 지문(地門), 천문(天門). 이렇게 3곳으로 나뉘어 억겁과도 같은 세월 동안 영혼을 맑게 만든다.
죄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죄가 씻긴 영혼은 자연으로 보내져 본래의 의무를 다 하러 간다. 그래서 생명은 죽는다고 끝이 아니다. 굴레를 따라 돌게 되어 있고, 이런 굴레가 모이고 모여 거대한 자연법칙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과 모든 법칙은 신이 만들었다. 그리고 법칙이 신을 만들었다. 그래서 아카니스 대륙은 신을 어미와 같이 여기고, 존경하고, 존중하고, 우러러 본다.
“그분께선 아직도 침묵하고 계신가?”
“아직 때가 아닌 모양이지.”
“그분께서 만든 굴레는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겠군.”
“우리 같은 미물이야 알 도리가 없지.”
대화를 나누는 몬스터는 허공에 아무런 제약 없이 두둥실 떠있었다.
두 마리의 오우거다.
오우거의 구강구조와 성대로는 인간의 말을 할 수 없지만, 드래곤은 그런 구조쯤이야 간단히 바꿀 수 있는 존재들이다.
드래곤이 자신들을 ‘미물’로 낮추고, 상대를 ‘그분’이라고 칭하면, ‘신’ 밖에 없다.
드래곤도 신이 만들었다.
신은 만물의 어미다.
그런 면에서 드래곤은 만물 중에서 어미의 정체를 그나마 정확하게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존재들 중 하나다.
“내 살다 이런 결혼식은 처음 보네.”
끄덕끄덕.
우람한 팔로 어찌어찌 팔짱을 끼고 있는 오우거의 모습을 한 드래곤이 아래를 굽어보았다.
까마득한 높이라, 깨알같이 보였지만 그들의 안력은 거리의 제한이 없었다.
각기 3100년 정도 산 드래곤들이지만, 그 세월 동안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치러지는 결혼식은 그들도 처음 본다.
인파는 말 할 것도 없고, 아직도 인간들의 이동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마법을 부려서 결혼식의 모습을 허공에 크게 보여주는 곳만 해도 7곳이 넘었다. 모두 마법진을 이용한 것이었는데, 결혼식 모습이 거대한 황궁과 비슷한 크기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걸 본 두 드래곤은 새삼 인간의 마법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포스리드의 영향이군.”
“그렇지. 큰 영향력을 가진 하나의 존재가 문명의 발전을 이끄니까. 부수적으로 전쟁도 있었고, 정체기도 길었으니 막혔던 둑이 터진 꼴이지.”
“저 밑에 블루 드래곤도 있군. 유희를 즐기나 보지.”
“인간을 즐기는 걸 보니 아직 2000년은 못산 녀석이군.”
보통 드래곤은 인간의 유희를 많이 즐긴다. 인간의 개체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개체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함을 겪을 수 있다는 뜻이며, 이는 곧 지루하지 않다는 걸 나타낸다. 하지만 세월이 찬 드래곤들은 색다른 유희를 즐긴다. 그러다 누천년의 세월을 산 드래곤은 그냥 드래곤으로서의 삶을 즐긴다. 현재의 드래곤 로드가 그런 경우다.
지금 허공에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 두 드래곤은 오우거의 삶을 살며 세력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세력을 크게 규합하여 인간들과 작은 전쟁놀이를 할지 말지는 그들의 단순의지에 달린 너무나 손쉬운 일이다.
우와아아아아-!
쩌렁쩌렁한 함성이 이곳까지 올라왔다.
수백만의 함성은 기파를 만들 정도로 대단했고, 두 오우거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결속력도 처음 보는군.”
“과연 역대 최고의 포스리드.”
중간계의 조율을 담당하는 드래곤은 포스리드가 자신들의 일을 대신 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신의 존재라 일컬어지는 드래곤이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건 결코 가볍게 넘길 사항이 아님이 분명했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그들은 로드와 나눴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균형을 조율 해주길 바라네.’
‘포스리드 때문입니까?’
‘궁극적으론 그렇지.’
‘그간 포스리드가 드래곤의 일을 대신 했으니 작은 보답이군요.’
‘포스리드를 지켜보다 힘을 찾지 못하면 죽이게.’
‘없는 게 낫습니까?’
‘힘을 잃고 폭주하면 세상의 균형은 복구할 수 없을 정도다.’
‘차라리 죽이고 드래곤이 균형의 정점으로 돌아가는 게 낫군요.’
‘그렇지.’
드래곤은 철저하게 세상의 균형만 생각한다. 그러나 균형을 초월하는 존재 앞에선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직 전쟁놀이는 무리겠어.”
지금 공격했다가는 몬스터의 씨가 말라 버릴 것만 같았다. 조율의 존재가 그런 짓을 버릴 순 없다.
파흐샤즈의 활발했던 영향으로 요 몇 년 새에 몬스터의 개체가 급격히 많아졌다. 그래서 그 수를 줄일 필요성이 있었기에 몬스터들끼리의 분쟁을 통해 개체수를 줄이곤 있었지만, 워낙에 많아서 큰 효용이 없었다.
오크의 숫자만 해도 오백 만에 육박했다. 유례없는 숫자다. 그들은 생태계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었다. 심지어는 몬스터의 상위 계층인 오우거와 트롤을 공격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유희를 할 겸 조율도 할 겸해서 오우거로 즐기고 있었다. 그들이 하루에 죽이는 오크의 숫자만 해도 천 마리가 넘었으나 오백 만에 비하면 티도 안 나는 수치다.
그래서 적정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자신들이 대규모 마법으로 죽이려고 했으나, 그런 건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하여 인간들과의 작은 전쟁으로 조율을 하려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니 그다지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저런 결속력을 가진 인간들이 모여 있다면, 다른 왕국을 공격해도 똘똘 뭉쳐서 몬스터의 씨를 말려 버릴 것이 분명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군.”
자신들이 벌인 일에 인간들이 몬스터의 씨를 말릴 기세로 달려든다고 해서, 자신들이 나서서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도 우습다. 해서 둘은 지금처럼 오우거 왕 행세를 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결혼식은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신랑과 신부가 키스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