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72
271 무단 침입(3)
무진은 걸어가고, 일행은 자리에 섰다.
우우우웅!
이서정과 북궁혜가 화기에 저항하기 위해서 빙공을 운용해 장막을 쳤다. 육칠과 철호는 그녀들 뒤로 서서 내력으로 화기를 밀어냈다.
“감사합니다, 이 소저.”
“고맙습니다, 북궁 누님.”
육칠과 철호의 사의(謝儀)에 이서정과 북궁혜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인간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력을 아낄 요량으로 자신들을 방패막이로 쓴 것이 분명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빙공을 익혀 둘 걸 그랬습니다.”
“빙공이야말로 쓰임새가 다양하군요.”
육칠과 철호는 빙공의 우수성을 칭찬하며 이서정과 북궁혜를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내력의 소모를 최소한으로 했다. 그녀들이 앞에 서는 편이 효과적이기에 일거양득을 외면하지 않았다.
“사내가 돼서 창피하지도 않아요!”
“무림에서 남녀의 구별만큼 어리석은 잣대는 없다고 봅니다. 강 대협을 제외하고 이 중에서 이 소저가 가장 강하시지 않습니까. 저희는 그저 순리대로 따를 뿐입니다.”
“육칠 형의 말이 맞아요. 우리도 빙공을 익혔으면 누님들 앞에서 화기를 몰아내는 데 발 벗고 나섰을 겁니다.”
이서정과 북궁혜는 뚫린 입이라고 나불거리는 육칠과 철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게 모르게 무진처럼 변해 가고 있었다.
일면 이해가 되기에 탓할 수도 없다. 얄밉기는 해도 틀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력전이를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른 무공과 달리 빙공은 내력이 잘 섞이지 않는다. 어설프게 내력전이를 시도했다간 오히려 위험하다.
두두두두!
지극용혈천의 거품이 많아지며, 지진이 난 듯 공동이 흔들렸다. 격렬한 화기가 분노와 뒤섞였다. 주인의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한 자들에게 선전포고했다.
푸아아아아!
지극용혈천이 솟구쳐 오르다 수면으로 떨어져 내리자, 화염으로 뒤덮여 있는 거대한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족히 십 장에 달하는 불을 머금은 화신체가 침입자를 향해 분노를 토했다.
화르르르르!
가공할 화기를 머금은 화염풍이 무진과 일행을 휩쓸었다.
츠으으으으!
무진이 막아서며 통제하지 않았다면 일행은 화염풍에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화룡!”
지극용혈천에서 솟아오른 생명체는 지저화룡이었다. 수천 년을 살아온 이무기가 지저의 화정지기(火精之氣)를 흡수하여 탄생한 영물이다.
하나, 용이라고 해서 다 같은 용은 아니다. 불의 정수를 흡입한 화룡은 성정이 고약하다고 전해져 온다. 살아 있는 무엇이 됐든 자신의 둥지로 들어온 모든 것들을 태워버렸었다.
불의 겁화로 정화를 한다나?
달리 해석하면 집에 들어온 불순물들을 불로 소독하겠다는 심보다.
“잠룡산의 지하가 화룡의 둥지였던 거야?”
“어떻게 가는 곳마다!”
“전엔 공청석유, 다음엔 빙정, 이번엔 화룡이라니!”
“영물 도감을 제작할 생각이세요!”
놀라야 하는데 육칠, 철호, 이서정, 북궁혜는 생각보다 담담한 자신들을 돌아봐야 했다. 화룡의 등장에도, 이전의 경험이 있어 금세 덤덤해졌다.
크어어어헝!
항상 분노하여 조절 장애를 겪는 화룡의 입에서 진언이 토해졌다. 이는 인간의 언어가 아닌 심상으로 전달이 되었다.
-감히 내 영역으로 들어오다니! 하찮은 미물들이여, 모두 죽어라.
왜 들어왔는지 연유를 묻지도 않았다.
하나, 무진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주인이 있는 집을 무단으로 침범한 대가를 달게 받았다. 무엇보다 침입한 이유가 매우 분명하고, 불손했다.
‘언제고 사고 칠 놈이니, 미리 제거하는 편이 낫겠지.’
-정당화도 가지가지군. 그냥 탐난다고 해라.
맞는 말이다. 영물을 보고 얌전히 지나칠 무인이 얼마나 되겠어. 탐욕이야말로 아주 순수한 본능이었다.
또한, 무진의 말이 딱히 틀리진 않았다. 후일, 발견된 화룡이 미쳐 날뛰어 수많은 무인이 한 줌의 재가 되었었다.
‘참 이런 쪽으론 머리가 잘 돌아가.’
꿩도 먹고 알도 먹고.
그날의 일이 마신대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중원 무림으로선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었다. 막대한 인명 피해는 물론, 전력상으로도 이롭지 않았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지. 그게 세상 사는 진리가 아니겠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후는 중요하지 않아. 나는 피해자거든.’
-차라리 마신교에 투신하는 편이 이롭겠군. 그리고 네놈이 어째서 피해자냐?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면 송호문을 위해 일평생을 봉사하며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솨아아아아!
지저화룡이 분노를 토하며 강렬한 화염광(火焰光)을 발출했다. 백염에 이른 화염이 발산하는 빛은 눈을 멀게 하고, 영혼을 불태우는 소멸력을 지녔다.
큭!
일행은 급히 눈을 보호하며, 시선을 돌렸다.
바라만 봐도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야장이 불에 미쳐서 자신을 불태우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불의 마력은 생명체를 끌어들여 태우는 권능을 지녔다. 하물며 수천 년 동안 화정지기를 머금은 지저화룡의 백린화안(白燐火眼)이었다.
무진이 언질을 주지 않았다면 눈이 머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저 불 속으로 자신을 내던져 한 줌의 잿더미가 될 뻔했다.
여하튼 일행에 한해서였다.
퍼퍽!
크어어어어어!
백린화안을 발출하던 지저화룡이 겪어보지 못했던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무진이 지저화룡의 두 눈에 무형권을 날린 것이다.
재가 되어 사라질 줄 알았던 지저화룡으로선 무방비나 다름이 없었다. 화염풍 속에서 살아남아 공격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평소대로 정화와 소독을 끝내고 돌아서려다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눈 부라리지 마라.”
무진은 몸부림을 용납하지 않았다. 주먹을 말아 쥐며 쥐어팰 준비를 마쳤다.
본격적으로 두들겼다.
퍼퍼퍼퍼퍼퍼퍽!
츠으으으으!
셀 수도 없이 많은 무형권이 지저화룡의 육신을 두들겼다. 극렬한 화염을 토하며 발악을 하지만, 몸부림조차 최소한으로 제한받았다. 운신하기도 불편한 좁은 우리 안에 가둬 놓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보란 식이었다.
-감히…… 죽일 테다!
지저화룡이 분노하여 포효했다.
용의 일생이 담긴 죽음의 저주. 그 안에 실린 전언이라면 생명체의 정기신을 태워버리기에 충분했다.
“다 이해한다. 나 같아도 화나지. 그러니 맘껏 저항해. 네겐 저항할 자유가 있어.”
무진의 담대한 배포에 일행들은 지저화룡을 애도했다.
저 인간이 저딴 말을 하는 걸 보면 상황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애도했으니까 이제 맘껏 패겠다는 의미였다.
“네 몸속에 있는 내단을 꺼낼 거야. 남은 부산물은 잘라서 요긴하게 쓸게. 내세에는 좀 더 강한 화룡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빌어. 그때도 내가 살아 있으면 찾아갈지도 모르잖아.”
-……크어어어억!
무단 침입한 무진은 곡해하지 말라는 조언과 더불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화린어(火鱗漁)를 포식 후 화정지기에 몸을 지지며 잠을 청했던 지저화룡으로선 아닌 밤중의 날벼락이었다. 잠을 깨운 침입자를 단죄하기는커녕 꽉 잡힌 채 처맞았다.
꽈악!
거대한 무형의 손이 지저화룡의 목을 틀어쥐고, 이곳저곳 틈이 보이지 않도록 두들겼다.
퍼퍼퍼퍼퍼퍼퍼퍽!
백염을 발산하던 지저화룡은 몸부림은커녕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사방을 옥죄는 무진의 단호한 권능이 지저화룡을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저항할수록 고통이 쌓여가고, 분노는 공포와 희석되었다. 죽고 싶지 않다는 생명체로서의 발버둥만이 남았다.
-……그만~~~~~!
침입했던 누구든 잿더미로 만들었던 지저화룡으로선 용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폭력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점차 폭력에 굴복해 가고 있었다.
“알았어.”
퍼어어억, 푸아아앙!
무진이 이해한 줄 알고 안도했던 지저화룡은 더욱 강력한 주먹질에 기겁했다.
-어째서?
“어째서라니, 내단이 필요하다고 말했잖아.”
-잠깐…… 쿠어어어억!
“알았어.”
알기 뭘 알아?
왜 자꾸 더 세게 치냐고!
맹렬히 발산하던 화염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저항할수록 주먹질의 강도가 거세졌다.
네가 저항해서 더 아프다는, 얌전히 무방비로 맞으라는 의도가 분명했다.
-헉!
목 잡힌 채 처맞다가 의식이 잠깐 끊어졌던 지저화룡은 급히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대로 의식이 사라지면 저 무식한 인간이 자신의 배를 가르고 내단을 빼갈 게 분명했다.
“깼네. 그러면 더 아픈데.”
무진의 안타까운 소성이 지저화룡에게는 악마의 징벌처럼 다가왔다. 용생에서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공포였다.
어째서 이따위 인간이 나타나서 잘 살고 있는 자신의 용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지 이해를 못 했다.
“이제 배를 갈라 보자꾸나. 내가 독각묵룡의 배는 갈라 봤지만, 화룡은 처음이라 두근두근한다. 처음은 항상 힘들다니까. 하하하하.”
-……잠깐!
서걱!
이런, 벌써 갈랐는데.
배 부위가 베어졌다. 지저화룡의 단단했던 외피가 좌우로 벌어지며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
그래서일까?
산 채로 배를 가르던 무진은 망설였다.
“내단은 살아 있을 때 빼야 효과가 더 좋겠지? 곰도 생간이 효용이 좋은 것처럼.”
-내단은 꼭 그렇진 않다. 약간의 숙성도 필요하고.
마왕의 응답에 무진은 일단 지저화룡의 목을 잘라 버리기로 했다. 산 채로 가르는 행위는 너무 잔인했다. 죽여 놓고 가르는 편이 발악도 비명도 없어서 편하고.
-……살려 줘!
“내단이 필요하다니까. 나쁜 인간 만났다고 생각해라.”
-……줄게!
“내가 거북이도 아니고, 개소리는 염라대왕하고 나눠.”
내단이란 무인의 단전과 같았다. 단전을 빼서 내준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지저화룡은 예외적인 답을 내놓았다.
-이 자리에서 빼서 줄게.
“……그게 가능해?”
-할 수 있어!
“흠, 가죽은?”
-……벗겨 줄게.
“힘줄도 필요한데.”
-……잘라 줄 수 있어!
원만한 타협안에 누그러진 대치 국면이었다.
대화를 듣고 있던 일행들은 말문이 막혔다. 인간과 화룡이 건전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보면 오산이었다. 살기 위해서 자신의 내단을 꺼내야 하는 지저화룡의 눈물겨운 생존기였다.
그 와중에 협상하는 무진을 보고 있자니 누가 악당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일단 내단부터 빼 봐.”
-……살려 준다고 약속부터!
“살려 줄게.”
-조금 기다려라!
“개수작 부리면 알지? 산 채로 혀를 뽑고, 눈알을 빼서 술을 담글 거다.”
-……약속은 지킨다!
독각묵룡과 달리 화룡은 제법 신성을 갖추고 있었다. 조금 더 열심히 수련했으면 승천도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다만, 내단을 빼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무진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게 가능한 일이냐?’
-내단이 없다고 당장 죽는다고 볼 순 없지. 내단이란 기운을 저장하는 단지니까. 단전을 잃고서 살아가는 무인도 있잖아.
‘여하튼 고농축 화기라는 거지?’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굳이 살릴 생각 따윈 해본 적도 없으니까.
영물이란 버릴 게 없는 완전식품…… 물품인가? 어쨌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시장에 내놓으면 없어서 못 파는 재물이었다. 수지타산이 맞는지 꼼꼼히 점검해 봐야 했다.
순순히 내단을 빼려던 지저화룡을 멈춰 세웠다.
“잠깐.”
-……왜? 설마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냐?
“너 혹시 재생도 하냐?”
-머리하고 심장을 잃지 않으면.
“그럼 내단이 있을 때 하는 편이 낫겠네. 그치?”
-……?
내단을 빼면 아무래도 정상적일 때보단 재생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매우 보편타당한 추론이었다. 하마터면 손해를 볼 뻔했던 무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우, 큰일 날 뻔했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무진을 내려다보는 지저화룡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인간의 얼굴이었다면 어떤 표정일지 뻔히 읽혔다.
“손톱…… 발톱인가? 이것부터 하자.”
-…….
“어허, 미적거리면 내 맘이 변할지도 모른다.”
-……자를게!
차라리 용생을 끝내고 승천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지저화룡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한 방 더 맞고 나자 발톱을 꼼꼼하게 여러 번 손질했다.
‘와, 용한테 삥을 뜯네!’
‘살아서 더러운 꼴 안 본 독각묵룡은 편히 갔구나.’
‘아주버니…… 이 작자가!’
‘아버지, 이 사람은 용한테도 가차 없어요!’
지저화룡은 가죽, 힘줄, 발톱, 뼈까지 탈탈 털리고 있었다. 내단으로 인해 회복이 잘돼서 더더욱 서글펐다. 차라리 내단을 잃었으면 이런 고통과 수치를 받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확실히 처음보다 회복이 느려지는군. 시간만 더 있으면 여기서 사는 건데.”
-……?
방금 굉장히 무서운 말이 지나갔다. 지저화룡이 몸서리를 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차라리 빨리 내어주고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아. 하아! 자, 내단이야(어서 꺼져)!
“내단을 빼도 살긴 사는구나.”
지저화룡은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간신히 다스렸다. 여기서 화를 내다가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최대한 빨리 지극용혈천의 중심으로 내려가 화정지기를 받아 육체를 회복해야 했다.
“회복하는 데 얼마나 걸리냐?”
-……그건 모른다.
“쩝, 아쉽네.”
-……가도 되나?
“그래, 나중에 또 보자.”
-……왜?
“싫어?”
-……아니다!
“푹 쉬고 몸조리 잘해.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우선이다. 다른 거 다 필요 없어.”
-……가겠다!
내단을 잃고 쪼그라들어 버린 지저화룡은 본신이 반 토막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딱 봐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 앞에서 건강하라니.
휙!
무진이 돌아섰을 때 일행들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벌거숭이가 되어 도망친 지저화룡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특히 빚을 많이 진 북궁혜는 암울했다.
‘동생이든 누구든, 반드시 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