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359
358 문화 차이(1)
솨아아아!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워낙 굵은 빗줄기라 한 방울만 맞아도 옷이 젖는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쉬이 그칠 줄 모르고 쏟아부었다.
처벅, 처벅!
빽빽한 수림을 헤치고 지나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산길은 비에 젖어 질척거렸다. 조금만 잘못 디뎌도 미끄러지거나,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 있었다.
“비가 와도 더위가 가시질 않네.”
“남만은 연중 내내 덥다고 합니다. 이런 기후를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고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벌레도 많고, 정복하지 못한 연유가 있었구나.”
“정복한 적은 있습니다. 다만, 오래 다스리질 못했을 뿐이지요.”
남만 정복을 위한 중원의 노력은 수차례나 있었다.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고. 문제는 통치의 어려움이었다. 남만의 기후도 문제지만, 종족 특성에 부합하지 않으면 죽더라도 굴복하지 않았다. 언어, 문화, 기후, 성향의 차이가 크게 다가왔다.
남만의 묘족은 호전성이 강한 데다가 문화적인 대립이 심했다. 수적으론 대륙이 우세했지만, 지형과 기후의 이점을 이용했기에 번번이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
“그래도 돈이 됐으면 했겠지.”
“맞습니다.”
투입한 인력, 자금, 시간 대비 피해가 훨씬 컸다. 남만의 독특한 작물이나 광석 좀 얻자고 막대한 전력을 쏟기에는 효율이 떨어졌다. 하물며 지속적으로 관리하기도 버겁다. 이익 대비 손실이 크고, 전력을 소모하기만 하니 방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금은 아니지 않나?”
“셈을 따지면 상당할 겁니다. 상단 간의 거래가 많지는 않아도, 남만에서 가져온 물건은 고가에 팔리니까요.”
“영약이나 독약도 있겠고.”
“무림이 눈독을 들이는 연유가 있지요. 당문에서도 꾸준히 시도하는 편이고요.”
“독왕 어르신의 개인 독지에서 본 독물과 독초를 남만에서 가져왔다고 했지, 아마.”
남만은 영약의 보고라고도 한다. 그 말은 독약의 보고라는 뜻도 된다. 비슷하다고 해서 아무거나 먹었다가는 한 줌의 독수로 흘러내릴 수도 있었다. 더욱이 수림지대라서 기이한 벌레가 많았다. 작은 벌레라고 무시하고 지나쳤다가는 살아남기 힘들었다.
“제대로 가는 거 맞아?”
“지도대로 가고 있습니다.”
“틀리면 알지?”
“곧 목적지가 나올 겁니다.”
대륙과 남만의 경계는 확실하지 않았다. 수림이 나오는 지역부터 남만으로 대충 설정했을 뿐이다. 지역의 경계가 모호해 그 일대가 중원과 남만의 교류가 간간이 이루어지는 완충지대가 되었다.
육칠은 운남성을 거쳐 남만으로 들어서기 위해서 개방의 모든 정보력을 활용했다. 오기 전부터 조사에 들어갔었다. 그러나 남만도 다른 새외와 마찬가지로 워낙 폐쇄적이었다. 한편으로 전쟁까지 치러서 배척하는 정서가 만연하다.
“조만간 표식이 나올 겁니다.”
“저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긴 하네.”
“그거 보십시오.”
“능선 세 개만 넘으면.”
“……?”
기감이 대체 어디까지인 거냐고?
그 정도는 아무렇지 않은 육칠과 철호였지만, 서문호는 여전히 적응이 되진 않았다. 수련을 통해 강해졌어도, 상식적인 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산 대신 호신강기는 너무한 거 아니냐고!’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 않도록, 무진은 호신강기로 전신을 둘러치고 있었다. 실로 무지막지한 내력과 정교한 통제력이었다. 차라리 일정 방위를 통제했다면 그나마 인간적일 텐데, 저처럼 미세하게 조절하려면 공력의 수발이 얼마나 정밀해야 할지 감도 안 온다.
그뿐이면 또 말도 안 한다.
여태 비행술을 펼치고 있었다. 저공으로 바닥에서 딱 손가락 마디 하나 높이의 저공비행을 시전했다. 이 먼 거리를 오는 동안 호신강기와 비행술을 동시에 펼치고 있는데도 흐름이 일정하다.
‘그 와중에 기감을 확장했어?’
신주이십일강이 강하다곤 하나, 사부가 그들보다 약할 것 같지가 않았다. 이런데도 상대가 안 되면 말이 안 된다.
서문호는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말이 능선 세 개지, 최소 수천 장은 떨어져 있었다.
“해 지겠다. 서둘러.”
“예.”
무진과 일행은 부지런히 능선을 넘었다.
빽빽한 수림, 쏟아지는 빗물, 정체를 알기 어려운 벌레까지. 남만의 여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하나, 무진처럼 절대경의 무공과 넘치는 공력만 있으면 남만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능선을 넘어 목적지 주변에 도달했다. 육칠은 주변을 돌아보며 사전 정보에 부합하는지를 살폈다.
“저쪽이다.”
“옙.”
기감이 있는데 특정 형태의 암석이나 표식을 찾는 행위는 시간 낭비였다. 수림으로 빽빽하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안으로 들어섰다.
넓은 잎으로 지어 놓은 오두막 형식의 집이 있었다. 겉으로 봐선 잠시 머무는 집처럼 보였는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제법 괜찮았다. 비가 장대처럼 쏟아지는데도 안은 눅눅하지 않았다. 나무 기둥을 세워 지상에서 집을 띄워 놓은 효과였다.
집 안에는 신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옷을 입은 육중한 사내가 있었다. 덥고 습한 곳이라서 그런지 복색이 대륙과는 달랐다.
사내가 일어서자 안이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단단함과 강인함이 전해지는 사내였다.
육칠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랑이오?”
“맞아. 늦었어!”
“초행이라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소.”
“약속, 지키지 않아, 신뢰, 안 돼.”
“다음에는 늦지 않을 테니, 그만 화를 푸시오.”
이랑이라 불리는 사내가 무진 일행을 둘러보다 철호에게서 멈추었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호의적인 눈빛을 보였다.
“미남, 잘생겼다.”
“……?”
철호를 제외한 모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남만이 중원과는 다르다곤 해도, 문화의 차이가 이 정도로 클 줄이야. 외모의 접근 방식이 상당히 독특했다. 보는 눈은 대동소이한 줄 알았거늘,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보는 눈이 있습니다. 사부님.”
“……그러냐.”
“초면이지만 아주 신뢰가 갑니다.”
“……그러냐.”
어딜 봐서 신뢰가 가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랑이라는 사내도 평범한 외모와는 거리가 멀다. 첫인상은 소도 때려잡게 생겼다. 물론, 철호와 비교하면 순해 보이긴 했다.
“친구.”
“반갑습니다. 철홉니다.”
철호와 이랑은 첫 만남인데도 형제처럼 친근했다. 대륙인에 적대적인 남만인을 상기하면 당혹스럽다.
‘칭찬에 너무 약한데.’
-평소에 칭찬 좀 하지 그랬냐.
외모로 칭찬을 받을 줄은 무진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철호는 외모 칭찬에 내성이 부족했다. 잘생겼다는 이랑의 한마디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만 봐도.
‘쩝, 이럴 줄 누가 알았겠냐.’
-그건 인정.
철호를 호감상으로 보는 인간이라, 남만의 특이성을 체감했다. 그런데 이랑이라는 놈의 말투가 심히 거슬린다.
육칠을 돌아보며 물었다.
“말이 잘 통하는 놈이라며.”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혀가 반 토막이야.”
“의사는 통하니, 예의는 차차 알려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비도 오고 교육이 조금 필요하긴 하겠어.”
묘하게 딱딱 끊는데, 대화가 잘 통한다. 자기 편한 대로 말하기에 좋은 화법이었다.
듣는 사람은 무시하는.
반말이 거슬리나, 인사는 해야 했다. 무진은 이랑에게 다가가서 손을 뻗었다.
꾸웩!
어이쿠, 악수한다는 것이.
미끄러졌다.
어쨌든 대륙이든 남만이든, 목은 만국 공통이니 전달에는 어려움이 없으리라.
바동바동.
이랑으로선 예상치도 못한 사태였다.
‘……안 보여!’
왜 목이 잡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이랑으로선 당혹감에 젖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자신이 너무나 가볍게 들렸다는 것이다. 이백 근이 넘는 몸이었다. 힘을 주며 바동거리기까지 했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
“됐고, 내 눈을 바라봐.”
“……?”
“정신 안 차려.”
“……우웩!”
무진은 멍청하게 바라보는 이랑을 전후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돌덩이처럼 단단한 육체를 지닌 이랑은 처음으로 자신이 깃털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왕아.’
-난 역관이 아니다.
‘예의가 없잖아.’
-그건 곤란하지.
살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예의였다. 말 한마디로 만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던가.
무진은 이랑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만 냥의 빚을 탕감해 주고 있었다.
언어가 다르다고 반말하면 곤란하지.
바르르르르!
약간의 고통은 감초였다.
다음부터는 남만의 역관으로서 대륙과의 의사소통에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이런 사소하지만 세심한 배려가 관계를 증진하는 데 중요했다.
꺼르르르!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하니, 무진은 방구석에 이랑을 고이 놓아두었다. 오한과 발열은 이랑이 가지고 있는 질환 탓이니 사법과는 무관했다. 이대로 놔두면 곧 예의를 갖추게 될 것이다.
‘어때?’
-숨기는 건 없다.
‘동향은?’
-야수궁의 내부 사정은 몰라도, 궁주의 상태가 좋지는 않은 듯하다.
이랑에게 예의를 가르쳐 주면서 기억을 잠깐 살폈다. 보다 자세하게 알아내려면, 이랑은 가루가 되어야 했다. 사법의 사소한 부작용이었다. 야수궁에서 중요한 위치였다면 나올 이유도 없었겠지만.
‘어떻게 들어가야 탈이 없을까?’
-그런 건 미리 좀 생각하지 그러냐. 아니면 용무길한테 물어보든가.
‘안 되면 별수 있나.’
-또 패게?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딨어.’
-무식한 놈.
남만인과 중원인은 습성이 다르다. 딱 봐도 구분이 될 테고, 말만 하면 바로 발각이었다. 자연스럽게 침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니 최후의 수단은 두 주먹이었다. 예로부터 말 안 들으면 패면 된다고 했다.
부릅!
반각이 지나 정신을 차린 이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몸 상태를 확인해 본 후, 큰 이상이 없자 안도했다.
“이게 무슨 무례입니까?”
“역시.”
“지금 절 가지고 놀려는 거면 잘못하신…… 어?”
“일부러 그랬구나.”
“아니, 그게 아닌데요. 이게 어떻게?”
이랑은 대륙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편이긴 해도, 대륙인에게 존대는 하지 않았다. 말이 서투른 척하면 크게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거늘, 갑자기 혓바닥이 매끄러워졌다.
“나한테 뭘 한 겁니…… 꾸웩!”
“모르면 배우면 되지만, 일부러 말 까면 안 되지.”
재차 목이 잡힌 이랑은 억울하지만, 경험상 받아들여야 했다. 상대는 자신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자였다.
마을에서 힘으론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던 이랑으로서는 충격적인 현실이었다. 대륙인들이 내력을 이용해서 힘을 강화한다지만, 이자는 지금 순수 힘으로 자신을 제압했다.
“사부님, 조금 살살 하시면 안 될까요?”
“맘에 든다 이거냐.”
이래서 첫인상이 무섭다. 한 번 마음에 들면,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고정관념이 변하지 않는다. 이걸 흔히 관성이라고 하는데, 자기 스스로 납득을 하지 않으면 바뀌기 힘들다.
‘난 달랐지.’
-넌 미친놈이니까.
초면이고, 나발이고.
수틀리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다. 배신하면 무조건 뒈지는 거고. 가슴 아픈 사정 따윈 내 알 바 아니었다. 그딴 거 듣기 전에 죽여야 맘이 편했다.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겁니다.”
“의도적으로 반말하면서 깔본 건데.”
“그럴 리가요, 겁도 없이.”
앞뒤 꽉 막히다 못해 답도 없었던 제자가 언제부터 이토록 말을 잘했을까. 칭찬 한마디에 성격이 달라졌다.
옆에서 보고 있었던 서문호는 얼척이 없었다.
“철호한테 고맙다고 해라.”
“허억, 정말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다!”
태세 전환은 빨랐다.
목이 풀리자 급히 예를 갖추는 이랑이었다. 무진의 압도적인 힘에 매료가 되었다. 이는 남만의 태생적인 습성으로, 힘과 규격을 신성시했다.
“저, 이랑! 강 대협의 신력에 감복했습니다. 마을에서도 저를 힘으로 제압할 사내는 없다고 자신했는데, 과연 세상은 넓습니다.”
“말 많네.”
입이 짧을 때보다 더 피곤했다.
이래서 빨리 죽여야 한다.
죽다 살아나면 이상하게 말이 많아지곤 했다.
무진은 괜한 짓을 했나 고민하다가 귀찮아서 내버려 두었다. 시간 낭비는 이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