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358
357 길들이기(2)
울긋불긋.
어둠과 별이 동시에 찾아왔던 서문호의 이마에 흔적이 선명했다. 서문호는 무엇에 맞았는지 처음에는 몰랐었다. 열 번가량을 맞고 나서야 그것이 딱밤인 걸 알아챘다.
‘뭔 놈의 딱밤이!’
딱밤 맞고 저세상으로 하직할 뻔했다. 어중간한 탄지공은 이름도 내밀기 어려운 기술이었다. 손이든, 발이든 사부가 사용하면 상식의 틀을 간단히 부숴 버렸다.
“그보다 독왕께서 언제까지 숨어 있어야 하냐는데요?”
“아미파에서 비장의 수를 쓸 때까지는 숨어 있어야지.”
“예상하신 대로라면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뿌리가 썩었으면 뽑아내야지.”
아미파에 당연우를 보낸 건 단순히 적서린을 돕기 위해서가 아닌, 내부에 숨어 있는 배신자를 흔들기 위해서다. 일전 후기지수들을 처리할 때 의심을 산 이상, 조여 올수록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개방과 협조하여 아미파의 배신자를 추정했으나, 단정은 금물이었다. 만약 아미파의 장로급 이상의 상징적인 이들까지 물들었다면, 당연우만으론 벅차다.
자칫 당연우가 위험할 수 있기에 독왕을 부추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미안하지는 않았다. 자기 손자를 지키는 일인데, 수고는 당연했다.
“연이은 실패를 두고 보진 않을 테고, 마신교가 나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당분간은 선제적으론 나서지 않을 거야. 그러니 이때를 놓치면 아쉽지 않겠어.”
몇 번이나 분탕질을 쳤음에도 마신교의 대응이 뜨뜻미지근했다. 확실한 무언가를 위해 숨죽이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큰 행사가 치러질 테니, 그때를 노리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후발제인이 아니라, 선제 대응으로 허를 찌르면 볼만하겠지.’
-용무길이 신의 한 수로군.
마신교를 보이는 족족 때려잡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여태 때려잡았음에도, 마신교는 여전히 빙산의 일각만 드러났다. 수차례의 실패가 꽤 아프긴 해도, 치명타를 선사하진 못했다.
그렇다면 방식을 달리하는 편이 나았다. 우리에게 치명타가 되었던 전략이라면, 마신교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완성되면 재밌겠지.’
-본 마왕도 기대가 되는구나.
‘네 과거를 만난다면 금상첨화겠어.’
-지금도 잘생겼지만, 그때는 초월급의 미소년이었을 거다.
‘남자는 주먹이야.’
-난 주먹도 강했다.
‘내가 더 강했잖아.’
-큰 차이 없었다. 그러니 얼굴이 중요하다.
맘엔 들지 않았지만, 무진은 마왕의 의견에 동조했다. 악당이긴 했어도 잘생기긴 오지게 잘생겼다. 당시엔 마왕을 얼굴 보고 뽑은 줄 알고, 살심(殺心)이 가득했었다.
“필도가 잘해야 하는데. 몇 채 더 부수고 올 걸 그랬나?”
“그랬다면 놈들도 의심할 겁니다. 지금이야 강 대협의 별호만으로 무마가 되긴 해도, 그 이상은 역효과입니다.”
“이 형의 고심을 필도가 알려나?”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모른다고 끝나는 문제도 아니고.
대화를 듣다 보면 서문호는 ‘내가 왜 여기에 있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도무지 일반적이지 않은 대화의 연속이었다. 가볍게 집 하나 부수고 나오는 줄 알겠지만, 실제로는 장강수로채를 뜻했다.
‘도대체 뭘 하시는 분인 거지?’
노숙치곤 호화롭다곤 해도 이 자리에서 대륙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서문호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신주이십일강의 녹림왕이 동생 취급받는 것부터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묘하게 소문의 중심마다…… 어?’
매번 무진에게 구박을 받고 있지만, 서문호는 어리석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사건을 해결한 분이 사부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지금의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짜 맞춰진다.
허억!
서문호는 대경실색했다.
‘진짜로 대협객이셨어!’
밥 잘 먹고 있다가 놀란 서문호는 그제야 시선의 집중을 느꼈다. 자신의 실태를 깨달은 것이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놀라고 있으니 당연했다.
“이제 알았나 보구나.”
“사부님~~!”
“너도 될 수 있어.”
“아~~!”
감동의 물결이 휘몰아치다가 황급히 식었다. 될 수 있다는 인자함이 어딘지 모르게 사악했다. 위화감이 뇌리를 강타하며 지금 좋아할 때가 아니라고 경고한다.
“협객은 아무나 못 한다.”
“저는 소가주로 만족…… 열심히 하겠습니다!”
“철호야.”
“예, 맡겨 주십시오.”
밥 먹었으면 소화를 시켜야지. 소화에 가장 좋은 방법은 대련이었다. 판도 깔렸겠다, 여정 내내 해 왔던 대련의 강도를 조금 높이기로 했다.
“오할로 하자.”
“죽을지도 모릅니다, 사부님.”
“괜찮다.”
“그럼 알겠습니다.”
아니, 본인은 괜찮지가 않은데, 왜 두 사람이 남의 생사를 왈가왈부하냐고요!
서문호는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했었다. 삼할로 상대한다고 할 땐 콧바람을 뀌었다. 한데, 당해보니 철호의 무공이 보는 것 이상으로 강하다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어!’
어제의 삼할이 오늘의 삼할과 달랐다. 서문호도 강해지고 있지만, 철호도 그 이상으로 강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냥 부럽지는 않다. 철호는 자신 이상으로 필사적으로 무공을 수련했으니까. 그렇게 수련하면 마땅히 강해져야 했다.
“간다. 사제.”
“저도 갑니다. 사형.”
나이는 서문호가 위였지만, 철호가 사형이었다. 그래서 불만이다. 아니, 먼저 들어온 순서가 아니라 강하면 사형이란다. 뭐 이런 개떡 같은 족보가 다 있냐고. 강하면 위아래가 순식간에 바뀐다. 나중에 들어와도 사형이 될 수 있는 구조였다.
퍼어엉, 채애앵!
서문호는 청룡신화검식의 십이초식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어야 했다. 전력을 남기는 순간 아찔함을 넘어 생사의 간극을 맛보게 된다. 오할의 전력을 드러낸 철호는 무지막지했다. 일전에는 순식간에 당해서 몰랐는데, 상대할수록 기도 안 차는 강함이었다.
투아앙, 크윽!
검신이 스치듯이 권로에 긁혔음에도 서문호가 받는 충격은 상당했다. 권격에 실려 있는 권기의 완성도가 실로 놀라웠다. 어지간해서는 흔들리기는커녕, 되레 반진력을 형성했다.
“기교에만 치우치면 검에 힘이 없다고 하는데, 정공법에만 함몰되면 변수에 취약해지지.”
철혈독검의 장기는 좌수검으로 펼치는 독특한 궤적이었다. 기교가 정공을 이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나,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면 틀에 갇히는 수가 있었다.
지금의 서문호는 팔을 잃기 전이라, 청룡신화검식을 정교하게 펼치려고만 했다. 완숙해졌다면 검식에 변화도 주어야 하는데, 그 점이 아쉽다.
‘그 틀을 깨기가 꽤 힘들지.’
-강렬한 충격을 받지 않고선 어려울 거다.
청룡안을 통한 예측까지는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너무 정석적이다. 그것이 철호에게 통하지 않는 연유였다.
통찰력을 연성한 철호와 청룡안의 서문호는 비슷하지만, 실전은 많이 달랐다. 철호는 우직한 놈이지만 익힌 무공을 틀에 가두진 않았다. 반면, 서문호는 청룡안과 가문의 검식을 지나치게 믿는 경향이 있었다.
‘투심마안으로 안 되나?’
-청룡안은 서문세가의 혈족에게만 나타나는 신안이다. 마안을 들이는 순간 어떤 식으로 폭주할지 예단하기 어렵다.
‘역시 구르는 수밖에 없겠군.’
-죽겠다 싶으면 변할지도 모르지.
‘그럼 팔 하나쯤은?’
-미친놈!
‘왼팔로 하면 괜찮지 않을까?’
-좌우의 균형이 무너지면 다시 고치기 힘들다.
왼팔이면 오른팔을 사용하기엔 문제가 없을 거다. 철혈독검으로 불릴 땐 왼팔로도 고수의 반열에 올랐으니, 오른팔이면 훨씬 강하잖아. 하지만 마왕의 말대로 좌우의 균형은 중요했다. 그 차이는 고수가 되어 갈수록 크게 다가온다.
부르르!
격렬한 비무 중 서문호는 순간적으로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이상하게 왼팔이 내 팔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무진의 속마음이 보였다면 서문호는 움찔하는 것으로 끝나진 않았겠지만. 다른 관점으로 다들 운이 좋았다. 남궁연화도 권후로 불릴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운명을 바꾸어 주었다. 검후는 예정보다 빠르게 강해졌고, 사부의 죽음을 막았다.
‘이제 가족이니까.’
-네 동생은?
‘어, 검식이 좀 달라졌는데.’
-말 돌리지 마라.
불운한 삶으로 끝날 운명에서 동생의 처나 첩이면 괜찮은 삶이 아닌가. 가문이 폭삭 망하고서 징징거릴 바엔.
“철호야.”
“바로 죽이겠습니다!”
달라졌다니까!
위험을 감지한 서문호는 청룡안에만 의지하지 않고, 틀을 깨 나가기 시작했다. 같은 수로는 통하지 않기에 청룡신화검식의 형(形)을 부수었다.
퍼퍼퍼펑!
철호의 맹공이 보다 과격해졌다. 사부의 뜻을 곡해하여, 빨리 끝내겠다는 강렬한 살의를 발산했다.
크윽!
막 틀을 부순 서문호로선 죽을 맛이었다. 이러다가 어디 한 군데 부서지지 않고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괴물 같은 사형이 사제를 죽이려고 작정을 했다.
‘사부한테 잘 보이려고, 사제를 패는 사형이 정상은 아니잖아!’
불쌍한 사제, 서문호는 하소연도 못 하고 있었다. 여전히 식사 중인 육칠이 부럽기까지 했다. 왜 자신이 이런 고행을 겪어야 하는지 울화가 치민다.
‘모르겠다, 나도 이판사판이라고!’
서문호의 검로가 이전과 달리 굉장히 거칠어졌다. 청룡안을 사용하고 있지만, 선택의 확률을 제한했다. 궤적이 보인다고 해서 만능이 아님을 알기에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서걱!
사르륵!
머리카락 몇 가닥이 떨어져 내린다.
“……베었다!”
처음으로 검이 닿은 서문호는 감격했다. 비무에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던 걸 상기하면 놀라운 결과물이었다. 비록 머리카락 몇 가닥이지만, 제공권을 베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틈이 없었던 철호의 방벽에 흠집을 가한 것이다.
그 조그만 차이가 얼마나 소중하게 다가…… 어?
화르르르르르!
서문호의 정면에 흉신(凶神)이 서 있었다.
머리카락이 베이면서 얼굴에 살짝 생채기가 났다. 사실 베었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저 조금 긁었다고 봐야 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철호에겐 생사대적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얼굴을!”
“……잠깐!”
그 얼굴에 칼자국 좀 났다고 이토록 무지막지한 살기를 뿌려도 되는 거야? 서문호로선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딴 걸 상기할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 살기는 진짜였다.
까딱 잘못하다간 황천길로 향한다.
어쩌지?
“지금이 더 멋있어졌는데!”
“닥쳐!”
철호에게 얼굴은 역린이었다. 분노가 폭발하자 칠성의 공력을 끌어 올렸다.
“이 악물어.”
“……다리를!”
“토한다, 복부에 힘줘.”
“내…… 턱!”
얼굴을 노리다가 다리를 차고, 복부로 시선을 두게 하고 턱을 날리는 철호였다. 그 뒤로는 일방적이었다. 막 깨달음을 얻은 서문호가 감당하기에는 철호의 분노가 천의무봉에 이르렀다.
“강 대협, 죽겠는데요.”
“저 정도로 안 죽어.”
“쟤, 눈 돌아갔습니다.”
“얼굴은 소중하잖아.”
누가 그 사부에 그 제자 아니랄까 봐.
악랄하다, 악랄해.
육칠은 개방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역시 개방에서 살아야 해.
***
크윽!
통증이 밀려오자, 의식이 돌아왔다. 멀쩡하진 않았다. 전신에 안 아픈 부위가 없을 지경이다.
쑤셔 오는 뼈마디에서 세월의 흔적까지 밀려왔다. 지천명에 가까워진 육체의 노화라고 볼 수도 있었다. 물론, 무공을 익혔기에 보통 사람과는 세월의 주기가 다르긴 했다.
방몽은 주변을 살폈다.
돌아보니 사냥꾼이 쉼터로 사용하는 간이 오두막이었다.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구멍으로 빛이 강하게 쏘아졌다. 해가 중천에 오른 대낮이었다.
“이 개자식들!”
몸 상태를 확인해 보니 통증은 남았지만, 혈맥은 괜찮은 편이었다. 공력도 금제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제압하고서 무방비로 놔두었다는 점이. 마치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웠다.
몸 상태를 확인하고, 공력을 운용해 운신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주변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천면호리와 묵객에게 당한 건 방심이 한몫했다. 놈들이 그 정도의 실력이란 걸 알았다면 그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았다.
“날 방치한 걸 후회하게 해주마!”
방몽에겐 씻지 못할 치욕이었다. 수모를 되돌려 주지 않는다면 환영마객의 이름값을 내려놓아야 했다.
스윽!
급히 몸을 추스르고 일어섰다.
운기행공을 했더니 원래 상태의 칠할 가까이 도달했다. 이만하면 빠져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햇살이 비치자 눈을 감았음에도 따가웠다.
“홍화보옥만 훔쳐서 갔다는 거냐.”
환영마객으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황당한 현실이었다. 자신의 물건을 누군가에게 강탈당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대도의 자존심을 잃었다. 이 치욕과 수모를 갚아 주어야 했다.
방향을 잡고 경공을 펼쳤다.
팽!
어?
날카로운 강선이 앞을 막아섰다. 알아챈 후 몸을 틀자, 또다시 기관이 마주했다.
데구르르!
뇌려타곤을 시전한 후, 궁신탄영을 펼쳤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기관에 이은 암기가 쏟아졌다. 또다시 연계의 시작이었다. 바닥을 짚기가 무섭게 따끔거렸다.
“이 새끼들이!”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방치하고 일부러 놔준 것이다.
방몽은 일전과 똑같은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자신을 길들이려는 개수작이 분명하다.
감히 천면호리와 묵객 따위가!
“어딜 가.”
“죽엇!”
천면호리와 묵객이 히죽였다.
환영마객은 죽을 맛이었다. 칠할이면 완전한 상태라고 할 수도 있으나, 부족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 데다 이놈들이 함정을 파 놓고, 걸려들기를 기다렸다.
빠악, 퍼억!
묵객과 천면호리의 합격에 환영마객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차라리 일 대 일이라면 뭐라도 해 볼 텐데, 이놈들은 굉장히 치밀했다.
털썩!
최후의 일격에 방몽은 의식을 잃었다.
크크크크!
크윽!
고통과 함께 의식이 돌아왔다. 방몽은 도망치지 않았다. 벌써 열 번이나 시도했고, 똑같은 결과물과 마주했다. 이젠 여력이 삼할도 남지 않았다. 운기를 한다면 칠할까지 복구할 수 있겠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개자식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드륵!
소리를 듣고 나릉과 강철이 오두막으로 들어왔다. 열 번을 도망치는 동안 막 깨어나서 마주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저히 덤벼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몸이 아니라, 정신이 저항을 거부했다.
“……나는 아직 회복 못 했다고!”
“기다려 줄 테니, 운기행공부터 해라.”
“뭐?”
“일 대 일로 붙어 보자.”
방몽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둘이라서 일방적으로 당했지, 일 대 일이라면 오대야객의 제일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이었다. 이놈들이 몇 번 우위를 점했다고 자신감이 지나쳤다.
“지고서 후회하지나 마라!”
“그건 네 생각이고.”
나릉과 강철은 방몽이 운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린 후, 오두막을 나섰다. 도망치는 동안 수도 없이 처맞아서 쫄아 있었던 방몽이 기세를 끌어 올렸다.
“곧 후회하게 해주마!”
“어, 그래.”
방몽의 기세가 극점에 도달하자, 나릉은 숨기고 있던 팔단계에 이른 천무진경을 꺼내 들었다.
“……뭐야, 이건?”
“뭐긴, 새 된 거지!”
방몽은 또 의식을 잃을 때까지 처맞았다. 끊어지는 의식을 부여잡은 방몽은 억울했다.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당해선 안 되었다. 이건 꿈이자, 악몽이어야 했다.
‘……어째서?’
천면호리 주제에 왜 이렇게 강해!
이 무공은 대체 뭐고?
천면호리는 천변술과 경공이 뛰어나긴 해도, 무공은 별 볼일이 없었다. 그런데 다시 대면한 나릉은 초상승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환영살식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권로에 막혔다.
‘……내력은 또 왜 이렇게 강해!’
내공이 무려 삼갑자는 되는 듯하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부딪힐 때마다 기혈이 진탕되어 운신에 지장을 초래했다. 대결을 벌일수록 일방적인 흐름으로 변질되더니, 매타작이 되었다.
퍼퍼퍼퍽!
환영류를 완벽히 시전하기도 어렵다. 그제야 이놈들이 여태 자신을 놔준 연유를 깨달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전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만!”
“네가 그만하라고 그만하면 내가 꼬봉 같잖아.”
나릉의 주먹엔 심금을 울리는 통속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구타도 맞아 본 사람이 잘 때린다는 설이 정확했다. 주군의 주먹을 몸소 체험하면서 얻은 영감을 자신의 주먹에 실었다.
크으으윽!
방몽은 정신을 못 차렸다. 맞을 때마다 뼈를 지나, 영혼을 고통스럽게 했다. 왜 이렇게 아플까? 이해가 되지 않지만, 너무 아프다. 정신을 잃고 싶은데, 그것마저도 용이치 않았다.
의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악마들이 보였다.
“내일 보자.”
꺼르르르륵!
방몽은 게거품을 물고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