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49
448 수금(收金)(3)
멍!
멍!
부녀가 탁자 앞에 앉아 나란히 멍을 때리고 있었다. 불을 쬐고 있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가출한 정신을 되찾아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
하~~~~!
부전여전이었다. 하는 행동이 어찌나 똑같은지 가족 관계는 확실했다. 가끔 부녀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되는 시선이 있었다. 모처럼 차를 들고 왔던 방계의 혈족으로, 고개를 흔들다 돌아갔다.
‘내가 본 게 꿈이야, 생시야?’
흑봉은 여전히 그날의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떠도, 감아도 떠오르는 광경은 한결같아서 미치겠다. 차라리 따라가지 말 걸 그랬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설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겠고!’
딸이 돼서 아버지의 위신에 관계된 사적인 얘기를 떠벌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허나, 말한다고 해서 딱히 널리 퍼질 것 같지도 않았다.
‘누가 믿어?’
사실대로 속 시원하게 털어놔도 믿어 줄 사람이 없을 거다. 천운권에게 한 방에 졌다는 말을 어떻게 믿냐고? 목도한 자신도 현실성 없는 망상으로 치부할 판국에.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자기 잘난 맛에 사는 화경의 천하망종이 세간에 떠도는 소문의 실체였다. 고수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현실을 부정하게 만드는 인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실체는 절대경에 오른 고금천하무적의 절대자였다. 신주이십일강의 최강자에 손꼽히는 아버지를 일격에 쓰러뜨리는 괴물이 실존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그래서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강한데, 왜 그러고 살아? 무인은 명성에 살고 죽는, 허세로 똘똘 뭉친 자들이었다.
심하게 얘기해서 천운권은 천하망종의 미친놈으로 낙인이 찍혔다. 범인의 잣대로는 평가조차 되지 않는 불분명한 괴인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아리따운 미녀를 딱밤으로 기절시키고, 탄지공으로 수혈을 짚냐고!’
효녀로서 나선 대가는 처참했다. 천운권 앞에선 효녀고, 나발이고 중요하지 않았다. 저항하는 즉시 처맞고 기절했다.
억울하고, 화나고, 창피하지만 따질 수도 없다. 애초에 그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사실대로 말하고도 믿지 않았으니 천운권을 탓할 수도 없었다.
“아빠, 이대로 있을 거예요?”
“나도 답답하구나.”
구양천극은 딸과 달리 심경이 복잡했다. 과정만 놓고 보면 허망한데, 결과를 따져 묻는다면 무인으로선 최선이었다. 수년간 정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지부진했던 무공이 진일보했다. 경지의 변화는 극적이지 않아도, 작금의 자신은 과거와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았다. 실전일수록 그 차이는 컸다.
구양천극은 천금을 주고도 얻지 못할 검안의 극의를 얻었다. 그러니 무진을 원망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드르륵, 탕!
부녀의 상념을 깨우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무뢰배가 있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제 말을 한 호랑이였다. 흑천부주의 방문을 허락도 없이 열고 들어올 방약무도한 존재는 한 사람뿐이다. 딸아이도 들어올 때는 인기척을 내거나 문을 두드리거늘.
“접니다.”
“아네.”
“손님이 왔는데 차도 안 줍니까? 저는 용정차 좋아합니다.”
“자네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네만.”
“이를 어쩌나, 저는 공과 사가 매우 뚜렷한 사람입니다.”
무진은 구양천극의 개수작을 일언지하에 쳐 내 버렸다. 어딜 감히 가~족 같은 구도를 만들려고. 인생은 원래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이 난다고 했다. 빚을 전부 갚기 전에는 사적으로 가까이해선 안 되었다.
무안을 당한 구양천극의 말투에 가시가 돋쳤다.
“그래서 또 어쩐 일인가?”
“자꾸 이런 말씀 드려서 송구하지만, 성의를 좀 보이셔야 저도 판단이 서지 않겠습니까.”
“성의만 보이면 되는 건가?”
“망혼지로 가실까요?”
“……최대한 마련해 보겠네.”
노인네가 자꾸 실없는 소리를 하자 무진은 짜증이 치밀었다. 애초에 흑천부는 마신교 산하 소속 문파로 들어갈 판이었다. 익사 직전에서 구해 줬더니, 보따리를 안 내놓고 있었다. 그런 경우 무진은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을 용의가 있었다.
“당신 너무 무례…… 까악!”
“예의가 없으면 곤란해.”
찻잔에서 찻물을 띄워 올린 무진은 다시 한번 말해 보라며 히죽이고 있었다. 찻물은 한 줌도 안 되지만, 물방울은 무한에 가까웠다.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까악!”
“당연하지. 누가 날 건드리겠어.”
말하다가 성대를 처맞은 흑봉은 컥컥! 거리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인정사정없는 무진의 파렴치한 행위에 화가 치밀었지만, 대꾸하지 못했다.
허!
구양천극은 이 말도 안 되는 촌극에 혀를 내둘렀다. 자신 앞에서 딸을 보란 듯이 약 올리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해 본 현실이었다. 저 얄미운 놈을 아버지로서 마땅히 단죄해야 하거늘.
“왜요, 여기서 하시게요?”
“……아니다.”
“마신교와 함께 해도 됩니다.”
“……아닐세.”
구양천극도 마신교가 어떤 놈들인지 알게 되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곤 해도, 사람으로서 해선 안 될 경계가 있었다. 마신교는 최소한의 법도조차 없었다.
하물며 제자를 이용해 흑천부를 빼앗으려던 원수였다. 이 얄미운 놈을 단죄하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마신교와는 같은 하늘을 두고 살 수 없다.
“소녀는 이만 나가 볼게요.”
“징징댄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에요.”
무진의 이죽거림에 흑봉은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그의 말대로 아버지가 뭘 해도 안 되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이었다. 어떻게 저런 인간이 정파에서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차라리 위선을 떨라고요!’
모를 때가 좋았다. 알고 나니 속 터지게 하는 위인이었다. 지나치게 솔직해서 화병 나게 했다. 정파의 위선을 욕했던 지난날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도 딸이 있을 텐데, 너무하는 것 아닌가?”
“제 딸 아니라서요.”
“……!”
구양천극은 이 인간의 부모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대체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하면 이 모양이 되는지.
“원래 자기 자식 아니면 잘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고. 남의 자식이 어떻든 무슨 상관입니까.”
“그렇게 할 말 다 하고 살아야 속이 후련한가?”
“속에 담아 두면 병납니다.”
“꼭 후회할 날이 오게 될 걸세!”
“당장 갚으시게요?”
“……잘 지내보잔 말일세.”
갚는 날짜는 전적으로 무진에게 일임이 된 상태였다. 꼴 받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갚아야 했다. 그것이 계약서에 적힌 조항이었다. 자고로 엎드려서 빌리고, 서서 갚는다는 말이 있었다. 아쉬울 때는 징징대면서 갚을 때가 되면 딴소리하는 종자들이 널렸다. 그런 꼴은 절대 못 보지.
“봐서 알겠지만 마신교는 정사를 막론하고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판을 뒤집기 위해서 수십 년, 어쩌면 백 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사도십이세도 의심하란 말이군.”
“사파 새끼들…… 여하튼, 신의를 바라기엔 성향이 다르지 않습니까.”
“자네도 어쩔 수 없는 정파로군.”
“근본이 어디 가겠습니까. 하나, 정파든 사파든 거슬리면 가만두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아닌데.”
구양천극으로선 판별이 되지 않는 종자였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하지만 흘려들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정파의 태두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조차 마신교의 세작으로 인해 곤욕을 치렀으니.
“무림대회가 있기 전 흑룡무제는 아마 사도십이세를 결집하려고 하겠지요.”
“그래서 어찌하길 바라나?”
“잘하세요.”
“……?”
그런 것까지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하나?
무진은 사파무림의 결속을 막는 것으로 족했다. 사도십이세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흑천부라면 흑룡성주의 독단을 견제할 정도는 되었다.
무진은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는 선에서 물러섰다. 사도무림과의 연결 고리가 미약한 이상, 자신이 나서서 왈가왈부하기보단 스스로 결정하는 편이 나았다.
“마신교가 원하는 방향은 무림의 혼란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혼란을 부추길 텐데, 그 방법이란 게 멀리 있진 않을 것 같습니다.”
“정사대전을 염두에 두는 건가?”
무진은 답하지 않았다.
구양천극은 단숨에 핵심을 꿰뚫는 무진의 통찰력에 놀랐지만, 평소 정사대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걸 상기하면 어처구니없기도 했다.
‘확실히 일리가 있어.’
흑천부를 장악하려던 마신교의 간계를 고려하면 노리는 바는 극명하다. 사도십이세가 전부 마신교에 넘어가진 않더라도, 최악을 상정해야 했다.
더욱이 밝혀지기 전까지 적아를 분별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조차 이럴진대 다른 이들이라고 다르진 않을 것이다. 섣불리 의도를 밝힐 수도 없기에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 왔다.
“흑룡성이 마신교의 도구로 전락한다면 어찌할 텐가?”
“다 쳐 죽이면 그만입니다. 그럴 자신도 있고요. 원한다면 조금 맛을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적으로 만난다면 무진은 손속에 사정을 둘 마음이 전혀 없었다. 적의 사정을 일일이 봐주면서 치를 만큼, 전쟁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딴 건 내 알 바 아니지.’
대수롭지 않은 듯한 무진의 태도에 구양천극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저 말이 가식으로 들리지 않았다. 하물며 능히 그리할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신교도 두려운 세력이지만, 무진과 반대편에 선다고 상상을 해 봐라.
‘최선을 다하란 뜻이군.’
사도무림을 수호하려면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또한, 적아는 분명했다. 최소한 무진은 마신교처럼 간교한 술책을 쓰진 않았다. 지나치게 솔직하고, 무책임해서 탈이지.
“마신교가 그리 강한가?”
“절대적일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런 상대성을 고려해도 마신교는 강합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자들까지 감안하면 여태 조용한 것도 제가 보기엔 이상합니다. 마치 형언하기 어려운 뭔가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것 같거든요.”
“만약 자네 말대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라면 어찌할 텐가?”
“어쩌긴요, 도망쳐야죠.”
“……?”
구양천극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상상하기 싫었다. 만약 무진마저 도망친다면 무림은 끝장이었다. 한편으로 무진이 영웅인지 간웅인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너무 인간적이라서 화도 안 나는군.’
지금 와서 회피하기엔 늦었다. 어떻게든 무진과 함께 나아가야 했다. 그러려면 사도무림을 결집할 수단이 필요하다.
한 손이 아쉬운 이 시점에도.
“선금으로 이백만 냥만 주시면 바로 떠나겠습니다.”
“끝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군.”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습니다.”
“자넨 좀 변하지 그러나.”
그건 구양천극의 사정이고.
무진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족은 행복했고, 동생은 영웅이 되었으며, 제자들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었다. 평소 착하게 살아왔더니 인생이 잘 풀리는 건가.
‘역시 난 잘못 살아오지 않았어.’
-역시 넌 양심이 없어.
마왕 새끼가 재수 없게 같이 말하고 지랄이야!
역시 지박령이 문제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