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279)
278화
2013년 9월 12일. 81547 뮌헨, 독일. 재베너 슈트라세 51-57. 바이에른 서비스 센터 및 훈련시설. 퍼포먼스 센터.
길었던 A매치 소집 기간이 지나고, 나는 다시 뮌헨의 선수가 되었다. 시차가 조금 힘들었지만, 약속된 휴식을 생각하며 조금 힘을 내보기로 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클럽하우스에 들어섰을 때,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UEFA 슈퍼 컵 트로피였다.
이곳엔 그간 뮌헨이 획득한 트로피를 장식해두는 장소가 따로 있었는데,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은 이렇게 한동안 복도에 장식이 된다.
“이봐!!”
“응?”
“여행은 어땠어?”
누군가 싶어 돌아보니, 필리프 람이었다.
“나쁘지 않았어. ICE도 탔어.”
“ICE! 좋았지. 그치?”
“응. 정말 좋았어.”
가까이로 온 필리프 람은 독일어가 많이 늘었다며, 한마디를 던지고는 어딘가로 횡 하니 걸어갔다.
여전히 바쁜 남자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슈퍼 컵 트로피에서 눈을 떼며, 난 곧바로 펩의 사무실로 향했다. 어차피 저건 레플리카라, 보고 있어봤자 특별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UEFA 슈퍼 컵 트로피는 현장의 것만 진품이고, 클럽에 주어지는 것은 모조리 복제품이다.
똑똑똑-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오른 나는, 활짝 열려 있는 펩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통화 중이던 그가 날 보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보내왔다.
난 안으로 들어서서 자리에 잡았고, 조금 더 통화를 이어간 펩이 전화를 끊고는 맞은편에 앉았다.
“컨디션은 좀 어떻지?”
“100%는 아니에요. 하지만 80%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하하. 나쁘지 않군.”
“네. 나쁘지 않죠.”
펩은 자신의 몸 상태를 숨기고 뛰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을 투지나 정신력 또는 헌신으로 보는 감독들도 있지만, 이 남자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철학에 따르면 몸 상태를 숨기고 뛰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고, 팀과 본인의 미래를 망치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어쩐 일인가?”
“숙제 때문에요.”
“······좋아.”
잠깐 나를 쳐다보던 펩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닫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땠나? 난 결과를 묻는 게 아냐. 결과는 아네. 이미 기사로 봤지. 자네의 대답은 뭐지?”
“······.”
어제 종일 집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펩의 숙제와 그 이유를 생각했다. 대충 그것을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확신을 더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결과.
“피치 위에서는 모두가 똑같지 않아요.”
“듣고 있네.”
“후우~ 이 이야기는 저를 조금 불편하게 해요. 대표팀에서. 전 분명 불편했습니다. 답답하기도 했죠.”
영어로 된 이 문장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어젯밤 거울 앞에서 사전을 보며 연습을 했다. 누가 보았다면 미친 사람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러고 싶었다.
이 대답을 정말 제대로 하길 원했으니까.
의미가 100% 전달되길 바란다.
“동료들의 기량이 부족함을 인정하는 건, 분명 불편합니다. 하지만 전 두근거렸습니다. 피치 위에서 조금 특별한 존재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내 입에서 특별하다는 단어가 나왔을 때, 무표정이던 펩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는 그것을 가리려는 듯 손을 입가로 가져갔고, 계속 이야기하라는 듯 고개를 살짝 까닥였다.
“만약 누군가가 부족하다면, 제가 조금 더 잘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뛰었을 때, 결과가 나온다는 건······.”
“굉장하지?”
“네! 정말 그래요.”
이번 대표팀에서 일어났던 일은, 뮌헨으로 돌아와 영상으로 경기를 볼 때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피치 위에서 동료들은 내 지시에 따라 움직였고, 내 손짓과 목소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걸 답답해하지. 왜냐하면, 클럽과 너무 수준 차가 많이 나기 때문이야. 삶은 공평하지 않네. 누군가는 더 많은 재능을 가졌고, 그래서 누군가가 더 축구를 잘하기도 해.”
펩은 모든 축구 선수가 똑같지 않으며, 같은 대우를 받지도 않는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고 한다.
라마시아 시절 펩 과르디올라는 여느 아이들처럼 캄노우의 볼보이가 되었는데, 우상이던 미셸 플라티니(Michel Platini)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펜과 종이를 챙겨 들어섰다.
하지만, 펩은 플라티니를 경기 전에 만날 수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 늘 모든 선수가 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미셸은 달랐지. 그는 남들보다 30분 늦게 출근해도 되는 선수였고, 남들이 웜-업을 하는 동안 마사지를 받아도 괜찮았지. 왜냐하면, 그래도 가장 잘했으니까.”
실력을 제외한다면 모든 선수가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펩 과르디올라에게, 그날의 일은 무척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 특권을 쥐고 나니 어떻던가?”
“더 재미있어졌어요. 축구가요.”
“재미있다고?”
“네.”
난 피치의 모든 곳에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의지를 가진 이가 그곳에 있게 만들 수는 있다.
“물론 그건, 제가 아닌 팀이 바라는 축구이겠지만요.”
“······.”
뭔가 대답이 있을 줄로만 알았는데, 펩은 같은 자세 또 같은 표정으로 날 쳐다만 보고 있었다.
“······펩?”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던 내가 펩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입을 가렸던 손을 떼며 몸을 살짝 앞으로 숙였다.
그의 입가엔 지금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장담하지.”
“네?”
“자넨 언젠가 훌륭한 감독이 될 거야. 19살의 나이에 그걸 알았다고? 이런 세상에! 난 32살이 되어서야 그걸 깨달았지. 브레시아로 간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어. 그런데 자네는 그걸 자그마치 13년이나 앞당겼군! 놀라워! 정말 놀랍다고! 솔직히 난 숙제를 풀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네.”
뭐랄까.
지금 펩의 얼굴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이후로도 그는 내게 꽤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99%는 브레시아 시절의 자신이 어땠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훈련을 준비할 때가 되어 감독실을 나서게 되었을 때, 난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닮았어.’
지금 나의 얼굴은, 아까 전에 보았던 펩의 것과 정확히 똑같았다.
***
2013년 9월 13일. 81547 뮌헨, 독일. 재베너 슈트라세 51-57. 바이에른 서비스 센터 및 훈련시설. 퍼포먼스 센터, 대회의실.
소집 하루 만에, 바로 명단을 발표하는 날이 되었다.
[Sitzen! Sitzen!! 오늘도 시간이 부족하다!! 얼른 미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서 내가 내어주는 것을 읽어보도록! 이걸 머릿속에 입력해야, 내일 제대로 뛸 수 있을 거다!]우리는 내일 리그 4위에 올라 있는 하노버 96을 뮌헨으로 불러들여 리그 5라운드 경기를 펼친다.
[바로 발표하겠다! 잘 듣도록!]펩이 발표하는 선발 명단은 내 예상과 딱히 다르지 않았다.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린 중원 때문에, 전술적인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에 한계가 생겨버렸다.
그나마 내가 다시 가세하면서, 센터백 자원을 측면수비수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가 위안일 것이다.
[다온! 따라오도록!]발표가 끝나고 돌아가려고 할 때, 펩이 나를 따로 불러냈다.
“부르셨나요?”
“그래.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
우린 그대로 2층에 있는 펩의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닫고 들어오게.”
“네.”
딸깍-
어제만 하더라도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펩의 사무실은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정신없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앉게나.”
“······어디에요?”
“거기 아무 데나. 대충 치워두면 돼. 어차피 전부 다 머릿속에 넣어 둔 것들이니까.”
“이걸 전부요?”
“응. 왜? 문제라도?”
“······아뇨.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멋지군. 조금만 기다리게.”
전술이라기보다는 색칠 공부를 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화이트보드가 본래의 색을 찾아가는 동안, 난 소파 위에 있는 종이들을 대충 옆으로 밀어 두었다.
그런데, 이걸 다 외웠다고?
“저기, 펩?”
“뭔가?”
“죄송한데, 혹시 어제 집에는 들어갔나요?”
“아니.”
“······.”
역시나.
펩은 어제 이곳에서 밤을 샌 것 같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걸 보게.”
펩이 화이트보드의 앞에서, 내일 경기의 전술인 것 같은 선과 동그라미들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노버는 투 볼란치를 쓸 거야. 안드레아센. 그리고 남은 하나는 유동적이지만, 누가 될지는 알 수 없어. 다만 그 경우의 수를 예상해 볼 수는 있겠지.”
“어, 저기. 펩?”
“하지만 분명 규칙은 있을 거야. 늘 그렇지. 축구에는 항상 규칙이 있어. 누가어떤위치에들어서느냐에따라서전술은약간바뀌겠지만절대불변의법칙은절대변하지않으므로그걸자네가알고있고아니고는실로엄청난차이가······.”
펩은 자신의 말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슬쩍 쳐다본 감독 테이블 위에는, 레드불 음료 캔 몇 병이 널브러져 있었다.
저것 때문에 오늘 종일 신경질적이었던 것 같은데, 덕분에 하루 종일 만주키치의 징징거림을 들었어야만 했다.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네.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가능성은크게세가지야. 미르코는교활한감독이라항상변수를주는것을선호하지.”
일단, 집중해서 펩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다. 말을 알아듣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의 손짓과 화이트보드에서 그려지는 것들로 내용을 이해해야만 한다.
훈련 도중에도 종종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곤 있지만, 너무 자기 세계에 빠지는 경우가 잦지 않았으면 한다.
마치 웅변을 토해내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말하고 또 표현하는 펩을 보고 있으면, 그런 노력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꼭 이해를 하고 싶어진다.
확실한 건, 이럴 때 내 두뇌 회전은 그 어느 순간보다도 빠르고 이런 날은 집에서 잠이 잘 온다는 거다.
머리에서 김이 날 것만 같은 펩 과르디올라와 실제로 김이 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가 의심되는 내 머리는 계속해서 정보를 내보내고 받아내는 일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십여 분이 지나고, 어느새 까맣게 변해버린 화이트보드에서 멀찍이 떨어지게 된 펩 과르디올라가 나를 보며 마침내 느린 속도로 질문을 던져왔다.
“좋아. 이해했나?”
“어, 펩?”
“?”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왜 당신은 지금 거기에 가 있죠?”
“응??”
지금은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나의 농담이었다.
다행히도 펩은 그것을 잘 받아줬다.
“이런! 나도 모르게 그만.”
“아무튼. 이해했어요. 그러니까 당신의 말은 슈틴들과 비텐코트가 뛸 때와 호프만이 뛸 때의 경우가 다르다는 거잖아요.”
“그거야!”
“알겠어요. 람을 돕죠. 중앙으로 자주 움직이겠어요. 하노버가 왼쪽을 공략하기 시작하면, 람과 저 둘 중에 측면에 더 가까운 사람이 사이드백으로 돌아가는 거고요.”
“그렇지!‘
“하노버의 투톱은 센터포워드와 세컨드 스트라이커의 개념으로, 한 명이 프리롤을 받아 움직일 테니까 왼쪽에 힘을 주기 시작하면 람을 지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그래!!”
“네. 그럼, 이해한 게 맞네요.”
“좋았어!! 이제 그만 들어가 봐!”
“응? 으왓-!”
손짓을 보낸 펩이 내가 앉아있는 소파로 뛰어들 듯 점프를 해버렸다.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섰는데, 잠시 뒤에는 하나의 걱정을 하게 되었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엎드린 채 고개를 옆으로 돌린 펩은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었고, 걱정이 된 나는 손가락을 그의 코앞으로 가져갔다.
음- 호흡은 있네.
“아유, 진짜.”
보나 마나 펩은 막상 소집 뒤에 준비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아까 우리가 받은 문서를 밤새도록 작성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아직 내용을 보진 않았었는데, 궁금해서 파일철을 열어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오타가 잔뜩 보였다.
띄어쓰기가 되어있지 않은 것도 몇 개 보였고, 결국 나는 이것을 고르카에게 보여줘야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딸깍-
감독실의 문을 열고 나와, 도메네크를 찾아다닌 나는 펩의 상태를 전달하곤 주차장으로 향했다.
앞서 퇴근한 고르카는 현재 시내의 커피숍에 있었는데, 그에게 잠깐 들러 종이를 보여주고 간단한 해석과 주석을 보태어 집으로 돌아갈까 한다.
본래는 마사지를 받고 푹 쉬려고 했던 나였지만, 감독이 저렇게 열심인데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때.
“?”
텅텅 비어있는 주차장 한곳에서 휘날리고 있는 종이 더미를 보게 되었다.
난 직감적으로 그것이 펩이 나눠준 파일이라는 것을 알아챘고, 한쪽으로 걸어가면서 누가 흘렸는가 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칠칠치 못 하게스리 말이야.”
하지만, 발견한 파일의 앞에서 허리를 굽히려고 한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흰색 종이 위에 선명한 발자국과 침. 그리고 휘날리는 종이의 가장 아랫부분에 붙어 있는 씹다 버린 껌이었다.
오늘 클럽에서 껌을 씹고 있었던 건 누구였더라?
아니, 굳이 그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두 번째 페이지에.
“!!”
이렇게 번듯하게 이름이 적혀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펩은 개개인에 맞춰 이 노트를 작성했다.
그래서 그만큼 오래 걸렸던 것이고, 밤을 새운 펩의 노력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아까 선발명단을 발표하기 전에도, 나는 단테와 내용을 비교해보곤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었다.
그렇지만 이걸 버린 이는, 그걸 몰랐나 보다.
모두가 같은 것인 줄 알았겠지.
난 껌이 붙은 종이를 바닥에서 떼어내며, 인상을 찌푸린 채 더러워진 노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건, 도를 넘어도 한참을 넘은 행동이다.
“······마리오. 이건 아니지.”
일단 나는 이 일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해둘까 한다.
지금은 이것을 공론화하기에 좋은 타이밍이 아니다.
차라리 영원한 비밀이 될 수 있다면 좋을 건데.
그냥 이 일은 해프닝이 되고.
과연, 그렇게 될까?
부디, 그랬으면 했다.
***
2013년 9월 14일. 80939 뮌헨, 독일. 베르너-하이젠베르크-알리 25. 알리안츠 아레나.
·경기시작 40분 전
바이에른 뮌헨 0 : 0 하노버 96
&Match-Up`s Best Eleven(뮌헨/상대팀)
&Tactics(뮌헨/상대팀) : 4-2-3-1/4-4-2(D6)
GK ? 마누엘 노이어 / GK ? 론 로베르트 칠러
RB ? 김다온 / RB ? 사카이 히로키
CB ? 다니엘 판 바위턴 / CB ? 살리프 사니
CB ? 제롬 보아텡 / CB – 마르셀루
LB ? 데이비드 알라바 / LB ? 제바스티엔 포코놀리
DM ? 토니 크로스 / DM ? 라스 슈틴들
DM ? 필리프 람 / DM ? 레온 안드레아센
RAM ? 아르연 로번 / RAM ? 레오나르두 비튼코트
CAM ? 토마스 뮐러 / LAM ? 에드가 프립
LAM ? 프랑크 리베리 / ST ? 아르투르 소비엑
ST ? 마리오 만주키치 / ST ? 디디에 야 코난
.
.
하노버의 선발 라인업에 적힌 이름만으론 누가 어디에 들어설지를 알 수 없었다.
전달받은 용지 상에는 레오나르두 비튼코트(Leonardo Bittencourt)가 중앙 미드필드인 것으로 나왔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섰을 때도 같을 거란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미르코 슬롬카(Mirko Slomka). 하노버의 감독은 그런 변칙과 변수를 좋아했고, 그것으로 시즌 초반 4경기에서 3승을 거두며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펩 과르디올라는 빠르게 라커룸이 정돈되기를 희망한다.
[선발 용지는 신경 쓰지 마라! 그건 그냥 이름이 적힌 종이일 뿐, 너희의 이미지 트레이닝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지금 너희의 머릿속에 있어야 하는 건, 내가 어제 전해준 종이다!]손에 든 종이를 팔락팔락 흔드는 펩 과르디올라를 보며, 동료들 몇몇이 가방이나 라커에서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난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다.
이미, 머릿속에 있으니까.
[그러니 지금은 전술 관련 이야기만 하겠다! 이 종이에 쓴 내용에 도움을 받는다면! 너희는 이 경기를 이길 수 있다!]펩은 미르코 슬롬카의 4-4-2가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플랫이 아닌 두 명의 볼란치를 사용함으로써 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이는 다시 말해, 두 명의 측면 미드필드 자원 중엔 반드시 중앙으로 움직여 도움을 주는 선수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엇비슷한 전력이거나 자신의 팀이 더 나은 상황에서라면 또 모르지만, 열세가 되는 경기에서는 두 가지의 이유 때문에 측면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바로.
[2선 압박과 빌드업이다!]레온 안드레아센(Leon Andreasen)과 호흡을 맞추게 될 중원이 누구든지 간에, 기본적으로 하노버의 미드필드 라인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하노버의 투톱은 벤피카나 묀헨글라트바흐의 것처럼 10번(AM) 위치까지 자주 내려서는 선수들이 아니다.
즉, 8번(CM) 자리에서 10번까지 넓은 공터가 있다는 거다.
그리고 이 위치에서, 우린 손쉽게 빌드업의 기초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하노버는 이를 막기 위해 선수들을 2선으로 보내려고 들 텐데, 일방적인 수세 상황에서야 스트라이커가 내려서겠지만 보통 때에는 측면이 이동하려 들 것이다.
올 시즌 하노버에서는 그런 역할을 에드가 프립(Edgar Prib)이 맡아왔고, 디디에 야 코난(Didier Ya Konnan)이 왼쪽 윙 포지션으로 이동해 자리를 채웠다.
언제든 하노버 역시 4-2-3-1 혹은 4-3-3으로 경기 도중 포메이션이 변화할 것이고, 펩은 이때에 맞춰 전술적으로 유용한 위치를 저 종이에 적어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계속되는 전술의 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 준비만을 남겨두었을 때 나는 의도적으로 만주키치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봐, 마리오. 왁스 있어?”
“?”
“왁스. 머리에 바르는 거.”
어깨를 으쓱인 만주키치가 내게 왁스를 건네 오고, 그것을 조금 손에 던 나는 통을 도로 돌려주며 슬쩍 질문을 던졌다.
“펩이 준 종이 봤지?”
“물론.”
“대단하지 않아? 전부 내용이 다르잖아. 앞에 적힌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어.”
“······.”
“대단한 수고야.”
“그래. 정말 엄청나지.”
“······.”
마리오는 계속해서 신발 끈을 묶으며 짧은 단어로 내게 대답했다.
대단하다라.
지금 이것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만주키치가 펩 과르디올라를 칭찬한 최초의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게 나를 슬프게 한다.
“Viel Gluck, Mario.”
오늘 넌 그게 정말 많이 필요할 테니까.
난 지금, 행운을 빈다고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