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280)
279화
비대칭.
하노버의 감독 미르코 슬롬카가 택한 전술은 포메이션을 비대칭 형태로 가져간 4-3-3을 만드는 것이었다.
백포의 앞에 에드가 프립-레온 안드레아산-라스 슈틴들로 이뤄진 왼쪽으로 약간 치우친 줄이 하나 생겼고, 그 위로 오른쪽으로 치우친 또 하나의 줄이 생겼다.
오른쪽 미드필드인 비텡쿠르트가 오른쪽 윙어 지점까지 전진을 하며 공격 라인을 형성한 것이다.
이는 펩이 지난 이틀 동안 준비해왔던 계획에는 없었던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당황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상대의 근본이 4-4-2 더블 6라는 사실은 분명하니까 말이다. 응용을 한다고 하여, 원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오-!!”}
로번의 돌파 과정에서 수비수의 클리어가 리베리가 있는 곳으로 굴러가 슈팅으로까지 이어졌다. 골키퍼 정면으로 향하긴 했지만,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단은 수비 시에, 하노버는 미드필드를 플랫으로 만들어 4명으로 구성된 두 개의 줄을 피치에 놓아두고 있다.
그러다 공격 상황이 되면 비대칭이 되고, 에드가 프립이 중앙미드필드처럼 뛰며 빌드업을 돕는 모양새인 것 같다. 일단은 상대의 라인이 낮은 편이라, 전방압박이 필요하다.
“천천히 해! 주변에 아무도 없어!”
압박 때문에 볼을 길게 차낸 하노버의 진영으로부터, 축구공이 멀리 날아와 토니의 발아래에 도착한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소리쳤다.
“토니!! 서둘지 마!!”
“…….”
앞쪽으로 패스를 전개하려던 토니가 속도를 늦추면서 뒤로 패스를 보내오고, 난 그것을 받아두며 반대편에 있을 비텡쿠르트의 위치를 확인했다.
하노버가 볼을 손에 쥐었을 때 투톱과 라인을 맞췄던 그는, 지금은 미드필드들과 함께 플랫(Flat)을 만들었다.
다시 고개를 앞쪽에 두었던 나는 반대편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하여, 데이비드를 향해 길게 패스를 쏘아 보냈다.
‘저래야 하노버의 줄이 움직일 거야.’
미르코 슬롬카가 선수들에게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는 모르지만,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미드필드라면 본인 앞의 수비수가 패스를 받았을 때 압박을 가할 확률이 높다.
중요한 건 그 지점이 어디쯤일 것이냐고, 알라바라면 전진을 택하여 해당하는 정보를 내게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A팀에서 중앙 미드필드로 뛰었듯, 알라바 역시 오스트레일리아 소속으로 중앙 미드필드 자리에서 뛰었다. 그도 지금쯤이면 하노버의 매커니즘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만약 나와 같은 것을 궁금해 하고 있다면, 비텡쿠르트가 전진하는 위치를 파악한 뒤에 다시 백패스를 보내어 라인을 정돈할 게 틀림없다.
팡-
‘내 말 맞지?’
다시 패스가 뒤로 돌아오고, 센터백을 거쳐 다시 내 쪽으로 이어진 축구공을 저 멀리 앞으로 보낸다.
만주키치의 머리를 맞고 옆으로 흐른 공을 뮐러가 잡았고, 이후엔 쇄도하는 리베리에게로 이어지지만 패스가 다소 부정확했다.
굴러오는 축구공을 품에 안는 골키퍼.
“돌아와-!!”
난 잔뜩 높아져 있는 앞쪽 라인을 향해 소리를 내지르며, 상대 골키퍼가 무엇을 잘하는지를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물론 실제로도 그랬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론 로베르트 칠러(Ron-Robert Zieler)는 어깨가 굉장히 좋은 골키퍼였고, 한 번의 스로인으로 축구공을 하프라인 너머까지 빠르고 정확하게 보낼 수 있었다.
지금도 그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아르투르 소비엑(Artur Sobiech)의 머리를 겨냥해 팔을 휘둘렀다.
골킥만큼이나 빠르고 그보다 더 정확하게 날아간 축구공이 소비엑의 머리에 맞고 옆으로 흐르고, 재빨리 스프린트하며 이를 받아든 비텡쿠르트가 팀의 왼쪽 라인을 파고든다.
아마, 1:1을 시도할 거다.
‘그다음은 크로스. 그렇다면?’
독일에서 나고 자랐지만, 브라질 국적의 아버지를 둔 저 남자는 벤피카의 브루노 세자르를 연상케 한다. 신장은 그리 크지 않지만 좋은 기술을 가졌고, 발이 무척 민첩하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보아텡의 앞에서 크로스오버를 보여준 비텡크루트가, 이후 왼쪽으로 치고 나가며 왼발로 크로스를 띄워 올린다.
주로 쓰는 발이 아니라서 그런지 크로스는 높고 느리게 떠올랐고, 힘 조절마저 되지 않아 피치를 한 번 튕기면서 그대로 골라인을 빠져나가 버렸다.
순간, 경기의 템포가 늘어지려고 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만들지 않을 거다.
“마누엘! 마누엘!! 저기!!”
크로스가 골라인 밖으로 나감과 거의 동시에 볼보이로부터 축구공을 전달받은 노이어를 보며, 나는 앞쪽의 뮐러를 가리키면서 얼른 패스를 보내라고 했다.
곧바로 축구공을 피치 위에 놓아둔 노이어가 오른발을 휘두르고, 패스를 받아든 뮐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직선 드리블을 시작했다.
뮐러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그랬다.
어떠한 전술. 아무리 전술적으로 뛰어난 감독이 기발한 발상을 피치 위에서 보여준다고 해도, 최초의 포메이션에서 변화를 주는 경우 어쩔 수 없이 공백이 생겨 버린다.
특히나 오늘처럼 공격과 수비 시의 포메이션이 다르다면, 지금처럼 공수가 전환될 타이밍이 바로 그 공백이 된다.
론 로베르트 칠러의 강한 던지기에서 시작된 하노버의 역습은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공격의 숫자를 채우고자 재빨리 전방으로 스프린트 하던 그들의 발은 크로스가 벗어남과 동시에 무뎌졌고, 때마침 볼보이가 축구공을 바로 전해주면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얼핏 아무것도 아닌 장면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상대 위험지역에서 볼을 빼앗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공격에 치중하던 하노버의 몸이 잔뜩 앞으로 쏠려 있을 때, 직선 드리블로 한참을 전진해간 뮐러가 아주 좋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오른쪽의 로번에게 패스를 보낸 뮐러는 수비수가 떨어질 때까지 스프린트의 속도를 늦추다가, 상대의 시선이 쏠린 것을 놓치지 않으며 빈 공간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그 공간으로 이어지는 로번의 패스.
‘완벽해.’
만약 내가 뮐러의 입장이었더라도 같은 플레이를 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난 하노버의 뒷공간을 완전히 돌파해낸 뮐러를 보았다.
저 남자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만 같다.
그러나.
“아.”
아쉽게도, 득점으로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론 로베르트 칠러가 각도를 정말 잘 좁힌 탓이다.
하지만 지금의 장면은 오늘 우리가 계속해서 해야만 하는 일이자, 펩이 전달한 자료에 적혀 있던 내용이기도 했다.
비록 비대칭을 쓸 줄은 몰랐지만, 펩은 어떤 식으로든 하노버가 포메이션을 공수에 따라 달리 가져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말했듯, 원형은 변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노트에 가장 많이 적혀 있었던 말도, 비바체(Vicace)였다. 음악에서 쓰이는 이탈리아어로 ‘매우 빠르게’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는데, 펩은 친절히 주석도 따로 달아놨었다.
난 그것이 펩의 위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미소를 지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노트를 읽지 않고 바닥에 버려 버린 이를 쳐다보았다. 만주키치는 평소처럼 연계를 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금방과 같은 상황에서 연계를 한다는 것은 템포를 조절해 간다는 의미인데, 그건 펩이 바라는 축구가 아니었다.
만약 그가 펩의 노트를 읽고 제대로 된 이해를 했다면, 뮐러가 쇄도할 때 라인을 같이하며 뛰어 들어가 패스를 받아들 준비를 했을 거다.
‘그럼, 골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
만주키치가 페널티박스 안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론 로베르트 칠러가 저런 식으로 과감하게 각도를 좁힐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선택지가 뮐러의 슈팅 하나뿐이었던 만큼, 저 위치만 막아서면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모든 골키퍼가 저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데스리가의 주전 골키퍼라면 대부분이 같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시 한번, 나는 펩의 숙제로부터 깨달은 것을 생각한다.
축구란, 절대 똑같지 않다.
수준 높은 이들이 뛰는 곳에서 수준 높은 플레이들이 나오고, 그것을 뛰어넘어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욱 정교한 기술과 더 축구를 잘 이해해야 한다.
만약 그런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이봐, 마리오!! 아까 그건 대체 뭐야?!”
저렇게 되는 거다.
하노버의 코너킥 상황에서, 수비에 가담하고자 돌아온 만주키치를 향해 필리프 람이 불만을 표현했다.
***
·전반 종료
바이에른 뮌헨 0 : 0 하노버 96
하프타임.
소득 없이 전반전이 끝났다.
[우린 좋지 못했다. 아주 안 좋았어. 볼은 점유했지만. 결정적인 기회는 없었다. 나도 한두 개의 실수를 범했고, 너희도 각자 피치 위에서 한두 개씩은 실수를 했지. 물론 그렇지 않은 선수도 있지만 말이다.]본인의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한 펩이 전술을 살짝 바꾸겠다고 했다. 기존의 4-2-3-1에서 뮌헨에게 가장 익숙한 4-1-4-1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사실 펩이 람과 크로스를 동일한 위치에 놓아두었던 이유는, 람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데스리가에서 전문적인 젝서가 아닌 선수가 반복적으로 저런 위치에 선다는 건, 많은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일이다.
당장 오늘 한 경기만 이런 라인업을 써야 한다면 모르겠지만, 우린 앞으로 3일 간격으로 계속 경기를 치러야 하고 람이 계속 젝서를 봐줘야 한다.
하지만 펩이 저지른 실수란, 그의 부족한 자존감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신뢰의 문제였다.
전반전 내내 나는 펩의 지시대로 젝서 쪽에 도움을 주었고, 덕분에 3선은 매우 든든했다.
문제는 하노버의 공격 수준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든든했다는 거다.
람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를 보호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토니 크로스가 공격에 가담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공백이, 만주키치의 엇박자와 겹쳐지며 공격에 나쁜 시너지효과를 냈다.
그래서 지금처럼 라인을 조절하여 크로스를 위로 올리고, 또 2선 전체에 프리롤을 부여한 것이다.
[정해진 위치는 없다. 늘 공간을 생각하며 움직여라. 중요한 포인트는 너희도 이미 다 알고 있다. 상대를 한쪽에 가둬두고. 반대로 패스를 보내면, 거기에 공간이 있다. 우리에겐 골이 필요하다. 후반 시작부터, 우린 강하게 밀어붙인다. 이상!]펩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다시 만주키치에게로 다가섰다. 그는 별로 기분이 좋지 못했는데, 전반전 내내 팀과 겉도는 것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주키치는 곧 나를 쳐다보았는데, 그의 눈에서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읽을 수 있었다.
“2선에서 볼이 움직일 때.”
[뭐?]“고르카!!”
난 얼른 고르카를 불렀고, 곁으로 온 그가 통역을 시작한다.
“2선에 볼이 움직일 때, 네가 해야 할 일은 하나야.”
“…….”
“공간을 만들어. 연계를 위해 내려오는 게 아니라, 동료가 파고들 공간을 만들어. 2선에게 공을 돌리는 것을 맡겨. 오늘 네가 해야 할 일은 연계가 아니야.”
펩 과르디올라가 바라는 이상적인 공격수는 리오넬 메시다. 하지만 세상의 그 누구도 메시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펩은 많은 선수에게 역할을 분배시켰다.
누군가는 드리블을 하고, 누군가는 득점을 한다.
중요한 건, 이런 역할을 부여받는 선수가 경기마다 항상 달라진다는 거다.
어떠한 경기에서는 만주키치가 가진 장점들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기라면, 이 남자도 본인의 고집을 꺾고 펩이 바라는 플레이를 해줘야 한다.
“페널티박스 안에 있어, 마리오. 만약 네가 내가 지금 말한 것을 전부 다 해낸다면, 분명 너에게 기회가 올 거야. 그럼 골을 넣어. 그건 네가 제일 잘하는 거잖아.”
“…….”
마리오가 펩이 없는 곳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자신들을 어린아이 취급하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였다. 어른과 프로답게 대접을 받아야 한다며 말이다.
물론 그 부분은 만주키치를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는 펩의 방식과 맞지 않을 거다.
나도 만약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그랬을 수도 있다. 펩은 자신의 철학을 이해시키는 것에 능숙하지 않으며, 반복되는 훈련과 피드백으로만 소통을 하려고 한다.
제수스 감독님처럼 많은 대화를 하려고 들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대화를 한다고 해도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역시도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가 먼저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데 내가 왜? 라는 식의 태도를 집어치우고, 먼저 그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하면 펩은 절대 나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늘 부정적인 태도와 삐딱한 시선이, 상대와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빼앗아가 버린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그 중간단계다.
일종의 다리를 놔주는 것.
하지만 둘은 영영 손을 잡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아무래도 좋다.
난 그저.
“이 경기에서 이기고 싶어, 마리오. 그러려면 네 도움이 필요해. 저, 고르카? 이제 됐어요.”
“……응. 그래.”
고르카가 자리에서 멀어지고, 나는 다시 만주키치를 바라보며 느리지만 또박또박한 독일어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뭐?”
“주차장. 껌. 침. 발바닥. 그리고 이거.”
“?!?!”
만주키치는 내가 돌돌 말아 가져온 것이, 나의 전술 노트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건, 만주키치의 것이다.
“펩은 이걸 밤새도록 적었어, 마리오. 밤새. 넌 그걸 존중해야 돼. 펩이 밉더라도.”
“…….”
분데스리가. 아니, 이보다 더 수준 낮은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라고 할지라도, 실력과 완성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축구를 할 줄 안다.
일반인들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고, 프로라는 이름을 괜히 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가끔 어린아이 취급을 당해야만 하는 건, 그것이 감독이 바라는 축구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감독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펩처럼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우린 그걸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내게 있어 감독님이란 늘 존경해야 되는 대상이었고, 이런 한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만주키치의 태도는 약간 눈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일단 그것을 문화의 차이라고 해석해 가만히 내버려 두었지만, 오늘처럼 승리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라면 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길 거야.’
이런 축복받은 환경 속에서, 경기가 있는 매일 밤 승리를 챙기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
.후반 04분
바이에른 뮌헨 0 : 0 하노버 96
펩의 축구가 어려운 이유는 하나다.
그의 설명과 전술 대부분이, 피치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따른 즉흥적인 판단과 개개인의 실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피치 위에서 무엇이 발생할진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펩의 설명은 항상 ‘볼을 이렇게 보내면, 여기나 여기에 공간이 날 거야. 그럼 이땐 이렇게 하고, 저땐 저렇게 해야만 해’ 라거나, ‘너라면 한둘은 제칠 수 있잖아. 네가 두 명 정도를 여기에서 제쳐주면, 이런 상황이 나올 수 있어.’ 라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얼핏 무능한 이의 무책임한 지도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론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다온!!”
펩이 우리에게 설명해 주는 것들은 50% 정도 옳다. 그리고 이것은 정확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펼쳐지는 상황 그 자체의 50% 정도가 옳다는 뜻이다.
그가 우리에게 남겨둔 50%의 즉흥성과 실력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만약 그것을 해낼 수 있다면 득점은 매우 간단하게 바뀐다.
보아텡이 끊어낸 축구공이 내게 전달되고, 누군가 나를 불렀던 곳엔 리베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느새 그는 중앙으로 이동해 있었고, 로번 역시 측면을 비워두고 중앙으로 움직여 숫자를 채워주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뮐러는 오른쪽 사이드에 가 있었다.
이렇게 리베리-로번-뮐러가 형성한 삼각형이 하노버의 수비수들 위치를 강제하고, 리베리로부터 패스를 받아든 로번이 특유의 세로 드리블로 하노버의 수비를 따돌렸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왼쪽으로 조금 물러서 있던 만주키치가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파고들며 수비수들을 잔뜩 끌어들였는데, 그러자 중앙에서 왼쪽으로 파고든 토니 크로스에게 많은 공간이 주어지게 되었다.
타이밍을 빼앗지 않은 로번의 빠른 패스가 크로스의 발에 도달하고, 만주키치에 의해 시선이 빼앗겼던 수비수들이 당황하여 황급히 크로스에게 달라붙는다.
이는 다시 말해, 만주키치에게 들러붙었던 수비수가 떨어져 나갔다는 의미가 되었다.
공간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 연계를 포기하고 2선이 볼을 잡을 수 있도록 만드는 희생.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페널티박스 안에 머물며 만든 특유의 위치선정.
만주키치가 본인의 일을 제대로 해내자, 우린 너무나도 쉽게 하노버의 골대를 가를 수 있었다.
삑-!! 삐-익!!
득점을 기록한 만주키치가 어시스트 패스를 보내준 토니 크로스를 향해 달려 나가고, 멀리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나는 몸을 돌려 펩이 앉아 있는 곳을 바라봤다.
우린 서로 눈이 마주쳤고, 난 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다시 수비 자리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렇게 쉬운 것을 가지고.’
오늘 난, 모두가 같은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래도 아직 남았어.’
후반전 6분.
1:0으론 성에 차지 않는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