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87)
686화 Calificacion (12)
삑-!! 삐?익!! 삐—익!!
.
.
.전반 종료
아틀레티코 1 : 2 마드리드
추격하는 득점의 여운이 여전히 짙게 남아 있는 비센테 칼데론에도 잠시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주심 다비드 보르발란의 휘슬 소리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감독 디에고 시메오네가 바삐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걷는 내내, 그는 큰 딜레마에 빠진다.
디에고 시메오네 역시, 앙투안 그리즈만이 경기를 크게 망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유가 김다온을 향한 질투와 시기에서 비롯된 마음이라는 것도 말이다.
‘이거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군.’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앙투안 그리즈만은 대단히 내향적인 남자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타인과의 관계를 쌓아 가는 일에 어려움을 느낀다.
2014년 여름 처음 아틀레티코에 합류했을 때도, 그리즈만은 선수단 내에서 겉도는 부류에 속했다.
한데 그런 앙투안 그리즈만을 디에고 고딘과 디에고 시메오네가 보듬었고, 현재는 둘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며 클럽 잔류의 이유로까지 삼고 있다.
이런 안정적인 환경에서 앙투안 그리즈만인 월드클래스로 성장했고, 팀 내에서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커다란 신뢰를 얻고도 있었다.
한데, 김다온이 합류한 이후로 상황이 점차 변해 가기 시작했다.
시메오네와 고딘은 여전히 그리즈만을 보듬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의 제멋대로인 성격을 탓하기 시작했다.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이 친한 무리 내에서 흔히 범하는 실수 그대로를 반복하는 그리즈만에게, 제멋대로 굴지 말라고 말하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쌓일 대로 쌓인 감정이 터졌다고 보는 게 좀 더 올바른 시각이지만, 문제는 그리즈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1월 A매치 주간 클럽을 떠나기 전엔, 디에고 시메오네를 찾아 클럽이 김다온의 완전 영입을 추진 중인지를 물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었다.
만약 그를 완전 영입한다면, 자신은 클럽을 떠날지도 모른다며 김다온과 함께하는 건 한 해로 끝났으면 한다고 했다.
안드레아 베르타가 완전 이적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시메오네는 그런 일은 없다 시치미를 떼며, 그리즈만이 팀 내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역설했었다.
결국, 이 팀은 그리즈만의 것이 되어야 한다.
딸깍-
“…….”
“…….”
김다온의 환상적인 득점이 팀 전체에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해 주긴 했지만, 냉정한 시각으로 보면 여전히 아틀레티코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침묵하는 스태프들의 앞에서, 자리에 앉아 손을 만지작대던 시메오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앙투안을 빼야 할까?”
“…….”
“…….”
“그렇군. 잘 알겠네.”
코칭스태프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시메오네는 씁쓸함을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앙투안 그리즈만은 후반전도 뛸 것이다.
“다온의 득점은 100% 그가 만든 것이었어.”
“…….”
“거기에 팀은 없었지. 루카스 바스케스의 실수를 그가 자신의 능력으로 결정지은 거야. 하지만 그 장면을 뺀다면, 우린 전반전에 정말 최악이었지. 왜지?”
“……마지막 패스가 안 돌고 있네.”
“맞아. 바로 그거야. 왜?”
“…….”
질문하는 시메오네와 침묵하는 아틀레티코의 스태프들 모두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앙투안 그리즈만과 함께 투톱으로 나선 페르난도 토레스는 부족한 기회 속에서도 나름의 활약을 보여 줬다. 볼을 지키고 때로는 헤더를 따내며 라인이 전진할 시간을 벌어 줬다.
그리고 김다온을 뺀 남은 미드필드도 마찬가지다.
코케-가비-사울 니게스는 수시로 서로의 위치를 바꿔가며 중원 싸움을 벌였다. 얼핏 레알의 미드필드에 밀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거야 경기의 주도권 때문이다.
또 포백 역시, 몇몇 실수를 빼면 레알 마드리드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아 냈다.
두 번의 실점을 허락했지만, 하나는 굴절된 프리킥이고 하나는 P.K다.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디에고 시메오네를 포함한 아틀레티코의 스태프들은 선수들의 컨디션과 경기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답하지 않을 셈인가? 그럼, 내가 하지.”
디에고 시메오네는 굳게 마음을 먹으며, 현실을 직시하기로 한다.
이것이 본래, 그가 살아온 방법이다.
앙투안 그리즈만을 전반 45분 만에 교체하는 일이 힘들다면, 그가 전반전 팀의 발목을 붙잡았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헤쳐 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한데 말을 하기 직전.
우당탕-!!
“@%#^#!!!”
“#@$&$$!!”
“??”
“뭐, 뭐야?”
드레싱 룸이 있는 방향으로 난 문 너머에서 소란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헤르만 부르고스가 먼저 문을 열고 드레싱 룸으로 들어서고, 뒤따라 일어난 디에고 시메오네가 바삐 움직여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 두 사람의 눈에 보인 건.
“Oh, Dios Mio.”
“…….”
라커를 등진 앙투안 그리즈만과 그런 그의 멱살을 손에 쥐고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김다온이다.
***
복도에서 드레싱 룸으로 향하는 길은 제법 분위기가 괜찮았다. 0:2에서 1:2가 되며, 심리적으로 쫓기던 부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리페 루이스와 대화를 나누며 드레싱 룸에 들어선 난, 후반전을 준비코자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뒤이어 사람들이 들어섰고, 마지막 즈음에 들어선 코케가 손뼉을 치며 목소리를 높여 왔다.
클럽의 주장은 가비이고 팀의 정신적 지주는 디에고 고딘과 후안프란이지만, 가장 크게 목소리를 높이고 또 팀을 거칠게 독려하는 건 늘 코케의 몫이다.
한데.
“시끄러워! 지금 대화하고 있잖아!!”
페르난도 토레스와 이야기를 나누던 앙투안 그리즈만이 버럭 화를 내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코케도 지지 않는다.
“X까! 네가 뭘 잘했다고 지랄이야?”
“뭐?!”
“전반전에 내가 본 것만 세 개야!! 네가 최소 세 번만 다온에게 패스했어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거라고!!”
경기가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을 때, 드레싱 룸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의 정서로는 막장이니 엉망이니 하는 단어가 나올 법도 한 풍경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이고 솔직해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유럽의 문화에선 가끔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오히려 어떨 때는 이렇게 감정을 다 토해 낸 뒤에 경기력이 더 나아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단.
“네 애미가 뛰어도 이거보단 나았을 거야!!”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
“오, 이런.”
“이런, 개새끼!!”
짧은 20여 년의 삶 중 1/3 정도를 유럽에서 보내면서 느낀 것은, 어린 시절 세련/교양/문화의 상징이던 이곳 역시 그냥 사람 사는 동네라는 거다.
유럽에도 꼰대 문화는 존재하고 손윗사람에 대한 예절 역시도 각별하며, 패드립은 가장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리즈만의 발언은 선을 크게 넘은 것이었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코케가 달려들려는 찰나 우리들이 끼어들어 두 사람을 떨어트려 놓아야 했다.
하지만 그리즈만의 패드립은 멈추지 않았고, 그것은 듣는 이가 불쾌한 수준까지 올라갔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그만하라 소리를 질렀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리즈만은 더 흥분해 목소리를 높였다.
“OO!! XX!! □□!! △△!!”
“그만!! 그만해!!”
“좀 닥쳐!!”
“XX!! □□!! OO!! △△!!”
됐어, 이제 그만.
덥썩-!
“????”
더는 그리즈만의 내뱉은 패드립을 들을 수 없었던 난, 손을 뻗어 녀석의 멱살을 움켜쥔 뒤에 남은 한 손으로 어깨를 꾹 누르며 벽으로 밀어냈다.
그 과정에서 의자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넘어졌고, 라커에 부딪힌 그리즈만이 멍한 표정이 되어 날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정신이 들었는지, 앙투안 그리즈만 이내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이 개…….”
“¡Callate la mierda!”
“??”
“지금 입을 다물지 않으면, 네 얼굴로 주먹이 날아갈 줄 알아. 내가 못 할 것 같아?”
“…….”
앙투안 그리즈만의 시선이 내 등 뒤를 향하는 것이 보였지만, 난 거기에 신경을 끄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갔다.
뒤쪽의 소란이 빠르게 가라앉는 중인 것으로 보아, 다들 내가 한 행동에 조금 놀란 듯했다.
“잘 들어. 딱 한 번만 말할 거야.”
“…….”
“첫째! 아직 경기가 절반이나 남았어! 그러니까 네가 불알 두 짝 차고 있는 녀석이라면, 징징대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네가 싸지른 똥을 치울 생각이나 해! 전반전에 넌 진짜로 엉망이었으니까!!”
“…….”
그리고 둘째.
“네가 날 싫어하는 걸 알아! 그리고 그거 알아? 나도 네가 빌어먹게 싫어!! 넌 구제 불능에 이기적인 새끼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싫은 게 뭔지 알아?! 지는 거야!!”
“…….”
“나는 지는 게 죽는 것만큼이나 싫어!! 알아?! 네가 오늘 경기에서 영웅이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해!! 난 신경 안 써!! 나는 그냥 이 빌어먹을 경기에서 이기고 싶을 뿐이야!! 내 말 알아들어?! 앙?!”
앙투안 그리즈만의 황당한 얼굴 속에 두려움이 조금 섞인 것 같다고 말한다면, 너무 위안을 삼는 것일까?
난 그저 이 빌어먹을 새끼가 정신을 차리길 바란다.
최소 축구 선수로서는 훌륭한 놈이니까.
인간으로서?
그건 말하지 않겠다.
뻔한 답일 테니까.
단순히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 감정 그 자체를 표출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괜한 짓을 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멱살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한데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말했다-!”
“으와-! 깜짝이야! 디, 디에고?”
눈이 마주친 시메오네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신경질적으로 날 밀쳐 내는 그리즈만에게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반쯤 얼이 빠진 채로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나를 흘끗 바라본 시메오네는 피식 미소를 짓더니, 자리에 앉는 걸 확인하고 나서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그렇다!! 나도 패배가 싫다!! 경기장에서 패배자가 될 바에야, 차라리 악어가 득실거리는 호수에 몸을 던지겠다!!”
“…….”
“너희들도 전반전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린 분명 잘 뛰지 못했지. 누군가는 분명 이기심을 부렸다! 그리고 그건, 바로 네 이야기다. 앙투안.”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시메오네가 그리즈만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잠시 시선이 마주쳤던 두 사람 중, 그것을 먼저 회피한 쪽은 당연히 그리즈만이었다.
사실 누구라도 시메오네의 저런 시선을 받는다면, 3초 이상 눈을 마주치기 힘들 것이다.
“가끔 우리는 피치 위에서 영웅이 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순간은 늘 바라지 않았을 때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난 그것을 행운이라고 부른다!! 왜인지 아나?!”
“…….”
“노력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행운이라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지금 디에고 시메오네가 한 이야기는 SL 벤피카에서 뛸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언어와 표현 방법만이 약간씩 다를 뿐, 노력과 행운의 본질에 관한 내용은 완전히 같다.
삶은 불공평하고, 그 증거는 노력하는 소시민이 행복해지지 않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노력을 중단한다고 하여, 현 상황이 유지되는 것 또한 아니었다.
인간이 하루하루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흘러가는 시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시간이란 녀석은 멋대로 앞으로 나아가고, 가만히 있으면 그만큼 멀어지게 되니까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조차도 자신도 모르게 매 순간순간 최선을 기울이고 있다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정(認定)에 목마르고, 매사 증명(證明)하려고 하며, 성공(成功)을 위해 달려든다.
하지만 의외로, 주변의 성공한 사람들에게 비결을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대답한다.
어째서?
“너희가 늘 기억해야 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지금 이 무대!! 그리고 너희가 경기마다 만나는 상대는 지구상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들 역시 지금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막상 성공이라는 자리에 서서 뒤를 돌아보게 되면, 운이 좋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것들을 확인하게 된다.
나만 해도, 스스로 몰랐던 재능을 알아보고 덴마크로 이끌어 준 노르셸란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적 과정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 역시 운이 좋았었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로 초점을 옮겨 보면 이는 더욱 명확하게 바뀐다. 22명의 선수가 제한된 구역에 모여 발생하는 복잡한 메커니즘 속, 과연 누가 그걸 완벽히 통제하겠나?
누군가는 단순히 적당한 자리로 움직였다는 것만으로 영웅이 되며, 누군가는 같은 움직임을 가져가지만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할 수도 있다.
삶 앞에서 그런 것처럼, 우리는 개인으로서 축구 앞에서도 역시 무기력한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우린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료를 실망하도록 놓아두지 말아야 한다.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역설하고 있는 디에고 시메오네는 하프타임 팀 토크에서, 전술과 관련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끊임없이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믿어야 하는 이유를 외쳤을 뿐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사람들은 패배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 같았다.
“좋아, 잘 들어.”
“…….”
시간이 부족했던 시메오네가 얼른 팀 토크를 마무리하고, 급하게 옷을 갈아입은 아틀레티코의 선수단을 가비가 드레싱 룸의 가운데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모처럼, 아틀레티코의 주장 자격으로 팀 전체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앙투안 그리즈만은 여전히 뾰로통한 얼굴이지만, 그래도 어깨에 얹어지는 코케의 손을 거부하지 않는 걸로 봐선 감정을 어느 정도 정리한 것 같다.
하여간에, 손이 미친 듯이 많이 가는 놈이다.
구제 불능인 거야 회생 불가고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말했던 대로, 오늘 경기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을 줄 수만 있다면 저 꼴 보기 싫은 인간이 MoM이 되어도 상관없다.
“너희도 잘 알 거야. 우리는 충분히 레알을 공략할 수 있어. 부족했던 건 그저, 서로를 믿는 일뿐이었으니까.”
평소와는 다르게, 현재 드레싱 룸에는 오직 우리 선수들밖에 없었다. 시메오네가 일부러 스태프들을 전부 데리고 먼저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감정을 풀라는 의미였는데, 난 그것이 꽤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했다.
“후반전에는 그걸 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
“앙투안?”
가비의 시선이 그리즈만에게로 향하고, 남은 이들도 자연스럽게 같은 곳으로 눈을 돌린다.
그러자, 발끈한 그리즈만이 빽 소리를 지른다.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는데?! 앙?!”
“빌어먹을. 네가 문제니까.”
“알아! 알겠다고!! 그만 좀 다그쳐!! 저 빌어먹을 새끼한테도 패스한다니까? 그러니까, 그만 좀 쳐다봐!!”
“하-! 지금 인정한 거야?”
“……뭘?”
“허-! 됐다, 됐어.”
포기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 코케가 고개를 가로젓자, 주위에서 웃음이 번져 나왔다.
금방의 발언으로 일부러 내게 패스하지 않았음을 인정한 셈인데도 불구 뻔뻔한 표정을 짓는 그리즈만을 보고 있노라니, 절로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뭘 잘했다고 웃어? 웃긴.’
가끔 이렇게 문화적인 차이를 느끼는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유교 사상에 찌들어 있는 내게, 오늘 그리즈만이 보인 행동과 그것을 또 쿨(Cool)하게 웃어넘기는 다른 사람들 모두 정상은 아니다.
그렇지만 난 그것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속한 무대가 유럽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별것 아닌 일에 에너지를 쏟는 게 멍청한 짓이라는 걸 알아서다.
난 승리를 바라고, 경기가 있는 날 피치 위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면 이런 사소한 문제와 충돌쯤이야 얼마든지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후반전 그리즈만이 정신을 차리고 뛸 것 같으니, 결과적으로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젠 정말로.
“후우~ 가자.”
경기 그 자체와 내가 어떻게 뛰느냐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반전에 확인한 레알은 날카롭긴 해도, 우리가 스스로 발에 걸린 거지 위협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그리고 평소의 기량만 발휘할 수 있다면, 전술적으로 상대를 집어삼킬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줄의 플랫을 내세운 4-4-2는 본래 디에고 시메오네의 것이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지난 5년 동안 줄곧 해 왔던 축구이니 말이다.
드레싱 룸을 떠나 피치로 향하는 길, 중간중간에 마주친 스태프들이 응원을 보내온다.
“힘내요!”
“제발! 내일 레알 녀석들이 기고만장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고요.”
“믿을게요.”
마드리드 더비의 승패는 리스본 더비의 승패와 약간 비슷한 느낌이어서, 승리를 거둔 팀의 팬들은 패배한 팀의 팬들에게 다시 만날 때까지 으스댈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회사 동료라든가 친구에게 우리가 이기고 너희가 졌다고 말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는 거다.
그래서 사람들의 응원은 더 열렬하고, 승리를 향한 염원은 더 간절하다.
{“김다온이다-!!”}
{“그야-!!”}
기다란 복도를 걸어 피치로 빠져나오자, 가까운 쪽 관중석에서 작은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오오오온-!! 부탁한다고오-!!”}
{“이겨줘!! 레알을 박살 내 달라고!!”}
{“다른 경기는 바라지도 않아!! 그렇지만, 이 경기는 꼭 이겨 줘-!!”}
그 목소리들을 듣고 있노라니 마치, 전반전을 전혀 뛰지 않았던 것만 같다. 단순한 내 착각일 테고 곧 몸이 반응하겠지만, 일단 정신 상태는 그렇다는 거다.
지금의 난.
‘최고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합류한 후,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컨디션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