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286)
〈 286화 〉 286 묵언검객 토벌전
* * *
3.
닉네임 .
그는 엄길동의 팬덤을 자처하기에는 지나치게 실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너 정도 되는 놈이 왜 엄길동 밑에 있음?
ㄹㅇ
그냥 니가 방송 켜도 엄길동보단 잘하겠다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엄길동보다 강하다는 것쯤은.
“너희가 엄길동의 뭘 안다고 함부로 평가하는 거냐. 엄길동은 대단한 녀석이다.”
그런데도 그가 엄길동을 인정하고 그의 오른팔을 자처했던 이유.
그것은 엄길동이 지닌 실패와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과 끈기였다.
‘범재가 천재를 이기는 일 따위, 한때는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
현실에서의 그는 검술에 일가견이 있었다.
스스로는 그렇게 믿고 있었고, 검술을 업으로 삼았다.
우물 안 개구리의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우물이 있다.
우물 밖에는 그가 모르던 강자들이 수두룩했다.
그가 일주야 간 식음을 전폐하며 매달린 끝에 터득한 기술을 누군가는 흥미롭게 바라보더니 10초도 채 지나지 않아 완벽하게 모방했다.
그거, 이렇게 써먹는 편이 더 낫지 않나?
!!!
그렇지?
너, 지금… 내 검을… 베낀 거냐?
응. 재밌었어. 나름 재밌는 기술이네. 가끔은 이런 대회도 심심풀이 삼아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아, 참고로 이거 칭찬이야.
그가 오랜 시간 날을 벼르며 준비했던 대회의 결승에서 마주쳤던 위지천이라는 이름의 상대는, 너무나도 간단히 그를 절망시켰다.
가혹한 현실 앞에 무너지고 절망했던 그는 검을 내려놓고 가상현실세계로 도피했다.
“우왓, 이 자식 강하잖아!”
“대박. 손이 보이지도 않았어.”
“분명 스킬모션이 아니었는데…!”
“어시스트 액션이 없는 순수한 검술로 이 정도의 위력이라고?!”
중세시대 배경의 전장에서 냉병기를 들고 교전을 벌이는 전쟁게임 .
상처 입은 자존심을 달래고자 전쟁게임에서 수많은 적을 베고 또 베던 어느 날, 그는 한 허접한 검사와 마주쳤다.
휙, 서걱!
한 번의 검합이 일어날 새도 없이 베어 넘긴 목과 함께 쓰러진 검사.
플레이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강제로그아웃 없이 부활쿨타임만 기다렸다가 다시 전장에서 싸울 수 있는 게임이라서 그럴까.
검사는 이내 볼품없는 투구를 뒤집어쓰고 다시 그를 향해 달려왔다.
스스슥 서걱!
슈슈슉 서걱!
파바밧 서걱!
스텝을 밟아 목을 치고, 매서운 연속찌르기로 겁을 주다가 목을 치고, 좌우로 몸에 리듬을 실어 적의 균형을 흘려 목을 친다.
압도적인 실력차이가 있기에 성립하는 일초지적의 잡졸.
처음에는 흔한 얼간이라고 생각했다.
‘죽으면 열이 받아서 덤벼들지만 그 짓도 몇 번 반복하다보면 무서워서 얼씬도 안하지.’
상대가 덤벼드는 횟수가 열 번을 넘었을 때.
그 무의미한 도전을 어디까지 할 수 있겠냐는 가소로운 마음도 들었다.
덤벼드는 횟수가 백 번을 넘었을 때.
미련하지만 근성은 있다고 여겼다.
본 게임이 끝나고도 도전을 해왔을 때.
사설방을 파서 1 대 1 도전을 받아주었다.
그렇게 천 번을 넘기고.
어느덧 만 번을 넘겼을 때.
언제부터인가 남자가 그의 검을 받아내었다.
검합은 조금씩 늘어나고, 무섭도록 실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조금씩이지만, 그 허접한 상대에게 입는 상처가 늘었다.
화가 났다.
자신과 그의 실력차이는 대회에서 마주쳤던 위지천과 그의 차이보다 더욱 거대했을 텐데.
그런데도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이, 투지가, 마치 그는 자신과는 다르다는 것처럼 말하는 것처럼 여겨져서 수치심이 들었다.
그래서 몇 번을 도전해도 받아주었다.
더욱 철저하게 부숴주었다.
꺾이라고.
그만 포기하라고.
재능의 차이를 알 때도 되지 않았냐고.
남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남자는 처음으로 압도적인 실력차를 극복한 끝에 그를 죽였다.
그제야 그는 남자의 이름을 물었다.
그는 수줍게 대답했다.
‘엄길동. 세상의 모든 기술을 카피하는 조선의 카피닌자……라는 컨셉이라고 했던가.’
그는 엄길동의 근성에 반했다.
그의 집념을 인정했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하수인 엄길동의오른팔을 기꺼이 자처하였다.
“엄길동! 최근 2주간 미들워즈의 접속시간이 1시간도 되지 않았다. 어째서 검술컨텐츠를 계속하지 않는 것이냐!”
“미안해요, 오른팔씨. 요즘은 리듬게임이 유행인 걸 어쩌겠어요. 8키 16렙 나이트메어 난이도 퍼펙트 클리어까지 검술컨텐츠는 봉인이에요.”
“!!”
그런 대단한 근성을 지니고도 엄길동은 검술에 전념하지 않았다.
입으로는 유행과 컨텐츠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엄길동의오른팔은 그것이 핑계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엄길동은 도망쳤다.
안주한 것이다.
자신의 검술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기술 하나를 훔친 것으로 안주하고 그 너머의 경지에 도전하기를 거부했다.
그렇기에 그는 엄길동의 방송을 시청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 대신, 검술컨텐츠를 놓치지 않는 이해찬의 방송을 시청했고, 이해찬을 통해서 묵언검객의 방송까지 유입됐다.
그리고 지금.
보급형 아머드에 탑승한 채 한 자루의 빔소드를 들고 묵언검객의 앞에 마주섰다.
쏴아아아아
불과 30m 너머의 기체를 식별하기조차 어려운 폭우 저편.
묵언검객의 고개가 미미하게 위로 향했다.
엄길동의 오른팔의 머리 위 닉네임을 읽었음을 알리는 동작이었다.
[외부통신채널에서 교신이 들어왔습니다.]미의 여신마냥 아름다운 얼굴을 지니고도, 그 외형이 아닌 사람 자체의 매력이 더욱 돋보이는 결연한 감정이 담긴 표정.
굳게 다문 입술과 심지 굳은 눈매에서 느껴지는 가슴이 술렁거리는 기세.
한 사람의 검사로서.
한 사람의 전사로서.
피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뜨거운 전의를 자극하는 그녀가, 형광펜을 들었다.
[엄길동이 죽었어요.]“그런가.”
[엄길동의 오른팔을 자처한다면, 당신이 칼을 겨눠야 할 상대는 잘못되지 않았나요?]지당한 말이다.
엄길동이 그를 먼저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엄길동은 내 믿음과 기대를 저버렸다. 그만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만한 가능성을 보여놓고도 그는 검의 길을 저버렸지.”
우르르르릉━
━콰과광!
샛노란 번개줄기가 마치 그의 마음처럼 잘게 찢어지며 뇌성을 터뜨렸다.
“묵언검객. 너도 다르지 않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반요곡을 등지고 온갖 게임을 찍먹하며 모두의 기대를 등진 죄. 엄길동을 뛰어넘는 가능성을 보이고도 끝맺음을 하지 않으며 밀당을 한 죄.”
엄길동의오른팔의 기체로부터 심상치 않은 푸른 기운이 솟아올랐다.
“끝을 보지 못한 모든 무의 구도자와 구독자들의 한을 담아, 내 손으로 너를 단죄하겠다!!”
“방장님을 뒤따라라!”
“가자! 악질검객에게 인면지주단 노예검투부대의 저력을 보여줄 시간이다!!”
에이스파일럿 엄길동의오른팔.
게임 내 각종 보정수치와 단련된 검술실력, 기체의 위력보조로 증강된 그의 돌격은 해응응조차도 경시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빗겨치기와 되받아치기, 감아치기의 연속공격.
빔소드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충격도.
통신채널 너머로 불타오르는 뜨거운 시선도.
해응응에게 한동안 잊고 지냈던 무림인의 투지를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검에 미친 귀신과도 같은 검격. 무림에서라면 능히 검귀의 별호를 얻기에 부족함 없을 대단한 연격이군요.’
단순히 힘의 강함과 속도의 빠름에 의지하지 않는, 매 순간 집중력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연격을 강요하는 검술.
자신과 상대의 호흡을, 집중을, 동시에 한계까지 깎아내리며 진흙탕으로 끌어내리는 싸움.
악에 받친 연격에는 엄길동의오른팔이 품은 검의 경지에 대한 오랜 고뇌와 지독하리만치 짙은 절망이 담겨있었다.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절망했군요.’
상승경지에 오를 수 없는 이상, 상대와 자신 모두 출구도 없는 늪지대에 빠뜨림으로써 가혹한 현실을 외면한다.
수많은 음색이나 활자에 담아내기에도 부족한 인생을 검 한 자루에 담아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힘든 일을 해낼 정도로 진지한 그의 검에 해응응 또한 그를 적수로 인정했다.
“저기서 검속이 더 올라간다고?!”
“싯팔…… 이쪽은 부대 하나가 가세했잖아…….”
“호흡에 한계도 없는 건가?”
엄길동의오른팔의 공격 사이사이마다 정확히 틈을 찌르며 가세하는 노예검투부대원들.
그들의 참전이 무색하게도 묵언검객의 하얀 색으로 물든 빔소드는 백색 죽음을 선사했다.
[SIGNAL LOST] [SIGNAL LOST] [SIGNAL LOST]아무리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허를 찌르고, 발악하듯이 푸른 빔소드의 궤적을 늘려도 엄습해오는 하얀 궤적은 피할 수 없었다.
“이 정도의 실력이 있었으면서!”
꺼질 듯이 크게 일렁거리는 엄길동의오른팔의 빔소드.
꺼질 듯 말 듯 위태롭게 흔들리는 푸른 궤적을 아슬아슬하게 이어나가면서 그가 분노에 가득한 외침을 내질렀다.
“어째서 너도 검을 쓰는 컨텐츠를 외면하는 것이냐! 그렇게도 악질짓이 즐거웠나? 또 우리 칼잡이들만 인싸들의 유희에 희생당한 것이냐?!”
일순간, 기체의 부스터를 변속 조작하며 놀라운 움직임으로 검을 회피하며 파고든 엄길동의오른팔의 회심의 일격.
그가 소중히 간직해온 검격을 절망적일 정도로 파손 하나 없이 막아낸 해응응.
그녀의 백색섬광이 엄길동의오른팔의 진심을, 진창처럼 추잡한 검술 아래에 감추어진 상승경지를 향한 애타는 갈망을 짓뭉갰다.
“어째서… 끝을 내지 않았지……? 내게는 끝을 낼 가치조차도 없다는 건가?”
와르르 지상을 향해 추락하는 기체들에게도 마음만 먹으면 벨 수 있던 조종석이나 주 동력부에는 베인 흔적조차 없었다.
[진심이 아니라고 여겼다면, 그건 당신이 아직 깨닫지 못한 거예요.]“내 눈이 잘못되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건가?”
[저 밑에서 똑똑히 지켜보도록 하세요. 반요곡의 바깥에서 제가 길러온 힘을.]검을 멀리했기에 비로소 검에 접목할 수 있는 경지가 있음을 암시하는 문구.
어쩌면 그는 지나치게 섣부르게 묵언검객을 평가하고 실망했던 건 아닐까.
그녀를 오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길동의오른팔이 무어라 말하고자 하는 순간, 통신화면이 끊기며 알림이 떠올랐다.
지상에 곤두박질 친 엄길동의오른팔.
그는 앞서 추락한 부하들과 함께 창공에서 일어나는 섬광과 굉음을 올려다보았다.
좀 전까지의 배신과 절망 대신 감출 수 없는 동요와 혼란에 잠긴 눈으로 묵언검객의 자취를 쫓아 허공을 올려다보던 검객.
“우릴 이용한 상대는 따로 있었군.”
그가 욕설을 내뱉었다.
묵언검객은 진심으로 그의 검에 응해주었다.
그에 비해, 함께 그녀를 치기로 약속했던 플레이어들은 묵언검객을 포위한 채 교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열한 녀석들. 우리가 교전을 벌이는 사이에 묵언검객을 포위했군.”
“어떻게 할 겁니까, 방장님?”
“기체도 조졌는데 이해찬이 수리비 물어내라고 하기 전에 튈까요?”
엄길동의오른팔이 두 눈 가득 투지를 불태웠다.
“아니. 추락한 다른 기체들에게서 수리가 필요한 파츠를 뜯어내 교체한다.”
“설마 저기에 다시 올라가려는 겁니까?!”
“돌아간다. 하지만 이번에 상대할 적은 묵언검객이 아니다.”
수백 기가 넘는 증원기체들에게 포위당한 묵언검객.
자신들로 인해 곤경에 처했으면서도 목숨을 살려준 그녀에게 어찌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짓을 할 수 있으랴.
“큭큭. 노예선에서부터 줄곧 생각했지만 방장님도 보통 또라이가 아닙니다.”
“그러는 니들도 달아나지 않은 시점에서 막상막하의 또라이들 아니냐?”
노예선 감금플레이부터 투기장의 검투사플레이까지, 온갖 컨셉플레이를 섭렵해온 그들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이번에는 조금 거칠고 험난한 컨셉플레이를 시작할 뿐, 평소와 크게 다를 건 없다.
“전속력으로 기체를 수리해라. 수리가 끝나는 즉시 우리는 토벌군에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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