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688)
1.
백령신군과 사생아왕, 그리고 3대 요괴왕.
그들이 어떻게 패배했는지, 약해빠진 사도 TNT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알리는 전투보고서를 짓밟으며 해응응은 초토화된 회랑을 가로질렀다.
거대한 궁궐.
그 심부에는 허망한 표정의 TNT가 서있었다.
“원망스럽군.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도원향을 부수고 네 힘을 약화시킬 수 있었거늘.”
그의 맞은편에 서있는 것은 옥좌를 지키는 최후의 파수꾼 부기걸.
반요곡의 3대장들의 너머, 마지막까지 TNT를 저지하던 그녀는 모처럼 구한 다종의 배낭과 옷이 무색하게 옷도 배낭도 잔뜩 찢겼다.
방송 중이었다면 틀림없이 자동으로 19금 이상만 열람 가능하다는 설정이 떠올랐을 정도로 천의 면적보다 살의 면적이 많은 차림이지만 그래도 부기걸은 쓰러지지 않았다.
“성장은 자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설마 3대 요괴왕조차도 넘었던 이 몸이 부기걸을 넘지 못해서 묵언검객에게 따라잡힐 줄이야.”
“저도 궁금하군요. 무얼 하느라 이 사도를 저지할 정도로 강해진 건가요?”
전투보고서를 열람하며 해응응조차도 놀랄 정도의 성장력을 보인 TNT였지만 그런 TNT를 막아내는데 성공한 부기걸은 더욱 놀라웠다.
“운이 좋았다.”
“운?”
“내 예전 종족을 잊지는 않았겠지?”
반요곡은 해응응이 가장 뜻 깊게 공략한 게임.
동료인 부기걸의 과거를 까먹을 리가 없다.
“대살귀.”
“맞다. 그리고 이 검의 이름은 살인귀의 마검이지.”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그렇지. 이름이란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본질을 깨우칠 트리거가 되기도 하니까. 대살귀의 흉성을 되찾을 단초가 되어준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말하던 부기걸이 잠시 멀리 상공을 날아가는 철새무리를 노려보았다.
후두두둑
수 킬로미터 너머의 새들이 막다른길에서 맹수 앞에 선 초식동물처럼 벌벌 떨다가 픽픽 땅으로 줄지어 추락했다.
천살성.
거침없이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살인귀의 운명을 지닌 자에게 내리는 별의 가호.
천살성의 운명을 타고난 자에게는 너무나도 막대한 살업 때문에 눈만 마주쳐도 심약한 자는 놀라 죽어버린다는 전승이 있다.
그것을 요괴레벨에서 펼쳤으니 저 먼 곳의 철새들이 줄지어 추락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데굴데굴.
시선을 피하며 난처해하는 해응응과 TNT.
조금 뿌듯해하던 부기걸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너. 왜 내 눈을 피하는 거냐.”
“그냥요.”
“네 수준에 살기가 두려워서 피할 리가 없을 텐데.”
이름이 중요하다는 말에 닉네임란에 ‘헤으응’이라던가 ‘TNT’ 따위를 적어대던 플레이어들이 당당하게 눈을 마주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놀러 온 것이 아니니 언제까지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돌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튼 도원향을 쑥대밭으로 만든 대가를 치르게 해드리죠.”
“나야말로 이번에는 다를 거다.”
“어이. 이제는 무시하는 거냐?”
부기걸의 말에도 어느 한 사람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름 건은 이대로 묻어버리자.
해응응과 TNT의 사이에 암묵적인 이해가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2.
부기걸은 자존심이 상했다.
갑자기 이상한 반응을 보이며 어색하게 자신을 외면하는 두 사람 때문은 아니다.
바로 실력 때문이다.
‘우물 안 개구리 세상 좁은 줄 모른다더니 이 부기걸이 그와 다르지 않은 신세였다니.’
인간이 몬스터를 사냥해서 경험치를 얻고 전승과 경험을 책에 담아 전수받으며 공장처럼 찍어져나오는 귀물을 쇼핑할 수 있는 세상.
에픽판타지의 존재는 부기걸의 세계가 얼마나 비좁았는지를 알려주었다.
“이 정도로 노력과 경험의 가치가 저렴하다면 무엇을 위해 수련을 해야 하지?”
무공의 무궁무진한 힘을 믿고 수련한 끝에 반요곡의 최종전에서는 본신을 잃고도 대살귀 시절의 강함을 되찾은 부기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전장에서는 그녀의 일생을 담은 수련치에 맞먹는 라는 존재들이 매달 1회씩 정기적으로 부활하고 있다.
자신과 대등한 존재도 그러한데 자신만이 예외가 될 리가 없다.
에픽판타지.
이 무시무시한 세계 속에서는 자신도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일생동안 쌓아온 업과 격을 전승이 담긴 드랍템으로 뱉어내는 로서 말이다.
“너무 심려치 마세요. 게임에서 얻은 힘이란 어차피 게임 밖에서는 쓸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인걸요.”
“게임?”
“이쪽 세계를 뜻하는 말이에요.”
그런 부기걸에게 다가와 조언을 해준 이는 플레이어, 그것도 묵언검객의 수제자로 공인받은 이었다.
“이름만큼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자신이 속한 세계 밖을 이야기한들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네가 살아가는 세계는 발이 닿는 이 토지일진대.”
“부기걸님은 언니, 묵언검객을 따라오셨으니까 아시죠? 언니에게 진명을 바치면서 평생을 살아왔던 반요곡 너머의 세계가 있음을. 이런 세계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어요.”
“외계의 차원. 사도를 보내는 성좌들의 모성을 일컫는 것인가.”
“네에, 그런 것들도 포함해서요.”
주아영은 몬스터공장에서 갓 생산된 몬스터가 버튼 하나로 소각되고 한 명의 1레벨 뉴비 플레이어가 800레벨이 되는 모습을 가리켰다.
“방금 막 800레벨 강자가 된 플레이어는 엄청난 힘을 얻었지만 그 힘을 정당한 노력의 성취로 얻은 것은 아니죠. 세계의 법칙을 이용해 지름길에 발을 들이는 편법을 썼을 뿐이에요.”
“사법에 심취하면 당장의 성취는 이를지라도 마지막에 가장 먼저 격을 얻는 자는 왕도를 걷는 자이니… 무공의 마음가짐을 논하고자 하는 것인가.”
“적어도 제 스승인 언니는 그렇게 가르쳐주셨어요.”
묵언검객의 가르침.
그것은 분명한 사실을 담고 있었다.
무공사용자들의 무공은 어느 세계에서도 펼칠 수 있는 플레이어 의 힘이다.
하지만 인게임 속 레벨과 경험치는?
게임 밖에서는 허깨비처럼 사라지는 의 힘, 한 세계의 주민이 자신의 세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다.
플레이어가 현실에서 게임의 힘을 사용하더라도 그 원리는 전혀 다르다.
막대한 업이 담긴 게임세계를 업을 인정받을 합당한 난이도로 클리어하며 그 공적을 인정받은 것이지, 게임세계의 능력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인정받는 것은 로서의 자신이 아닌 캡슐에 탑승한 으로서의 자신.
“그렇군.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어.”
부기걸은 깨달았다.
세계의 규모와 힘의 크기에 압도당했지만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세계의 법칙은 달라졌을 지언정 세계와 세계를 잇는 차원의 법칙은 다르지 않다.
자신만의 무로 쌓아올린 힘은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이 에픽판타지에서도 그 너머에서도 건재하다.
“요괴왕의 유산 급의 귀물을 얻더라도 스스로가 강해지지 못하면 무용지물. 반대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면 귀물의 진정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부기걸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장을 등졌다.
“인간, 썩 괜찮은 조언이었다.”
“도움이 되셨다면 저야 감사하죠. 앞으로도 언니를 잘 부탁드려요.”
무공은 단순히 초식을 반복수련 한다고 무한히 강해지지 않는다.
깨달음이 없는 움직임이란 공허한 몸짓, 무의미한 물장구에 지나지 않는다.
수백 개의 손으로 드는 수백 개의 장비아이템.
하나하나가 귀물이라 불릴 대단한 장비들이 부기걸의 손아래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장비에 깃든 전승.
스킬효과를 정수와 형태로 추출해낸 부기걸.
그녀는 생각했다.
요력을 얻고 요괴들의 움직임과 전승을 무공으로 재정립시킨 묵언검객의 길을 따라갈 수 있을까?
힘들다.
그것은 묵언검객의 길.
자신의 오성으로서는 따라갈 수 없다.
그녀에게는 그녀만의 길이 필요했다.
하나의 손으로는 해낼 수 없는 무공을 여러 개의 손으로 펼쳐내는 강함.
이형의 존재이기에 허락되는 이형의 강함.
그 강함을 정련시켜 창조해낸 이형의 무공.
그녀가 개척해야 할 길 또한 이형의 길이다.
“찾아내야겠군.”
많다고 아무 힘이나 다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플레이어들이 눈여겨보던 스텟보정, 깡 공방력, 특수효과 따위는 전부 무시한다.
눈여겨보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에게 필요한 전승인가, 아닌가.
수많은 장비들이 파괴되며 정수를 만들어내었고, 그 많은 정수들이 그녀의 손아래에서 같은 기운을 먹고 더욱 커지거나 유사한 기운끼리 서로 융합하였다.
정수를 집어삼킨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지닌 고유한 전승이 강화되었음을.
로서의 자신이 아닌 로서의 자신이 강해졌음을.
그런 자신의 힘조차도 반요곡의 강자들을 차례로 꺾으며 찾아온 플레이어에게는 버티기에 급급했음을.
그런 TNT를 능가하리라 추정되는 유일한 존재가 마침내 도착했음을.
부기걸은 산증인이었다.
TNT와 묵언검객의 결전을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면서도 죽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세계의 운명을 가를 결전.
세기의 대결을 목격한 부기걸은 말했다.
“이걸 도망친다고?”
그녀가 역사의 산증인이라면 TNT는 한국 역사상 최고의 도주력을 지닌 선조.
그녀가 본 역사는 선조런이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