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7
136화 수확(2)
“계약자님, 일어나세요.”
시녀 세리시아가 깨웠다.
눈을 떠보니 어느덧 밤하늘은 어두컴컴해지고, 월광은 더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잠에서 깬 이신은 반지에 마력을 주입해보았다.
[마력: 3,210/3,210]‘정말로 올랐군.’
마력 총량이 2,858에서 3,210으로 약 350 가량 올라 있었다.
수확의 날에 마력 총량이 11% 넘게 상승한 효과를 본 셈이었다.
어째서 오늘이 악마들에게 아주 중요한 날인지 알 수 있었다. 악마들의 정체성이자 근본이나 다름없는 마력량을 이토록 높여주니 말이다.
“효과는 많이 보셨나요?”
시녀 세리시아가 방긋 웃으며 물었다.
“대충 11% 정도 오른 것 같은데.”
“어머, 역시 많이 오르셨네요. 너무 부러워요.”
“많이 오른 건가?”
“그럼요. 일반적으로는 상승 비율이 5% 내외가 대부분이니까요.”
“어째서 나는 많이 오른 거지?”
“그만큼 좋은 영지를 얻으셨기 때문이에요. 그레모리님께서 많이 신경써주신 것이니 감사히 생각하셔야 해요.”
“그런가.”
“호호, 물론 계약자 이신님은 그만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시지만요. 자, 아무튼 준비하세요. 이제 곧 연회가 시작되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이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궁전으로 돌아가 보니, 그레모리는 이미 다 연회장에 입장할 치장이 끝난 상태였다.
화려하게 치장을 한 그레모리를 보니 이신은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저도 그렇게 무언가 따로 꾸며야 합니까?”
“호호, 그럴 필요 없어요. 말씀드렸죠? 악마들에게 겉모습은 큰 의미가 없다고요.”
그레모리는 이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에스코트를 해주셔야죠?”
“예.”
에스코트라는 말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이신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함께 연회장으로 입장했다.
떠들썩한 연회장의 풍경.
온갖 진귀한 요리와 술이 한가득 쌓여 있었고, 온갖 신기한 용모의 악마들이 득시글거렸다.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엉망진창 무질서하게 유흥을 즐기던 악마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거짓말처럼 모두 정돈된 모습과 정숙함으로 두 사람의 입장을 맞았다.
물론 나직하게 악마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언뜻 들렸다.
“저 인간이 그레모리님의 계약자인가? 아, 이제 인간이 아니군.”
“그레모리님의 총애를 받는 인간 출신의 악마지.”
“벌써 각성도 했다는군.”
“궁전 안에 영지를 얻다니, 그레모리님께서 어지간히도 아끼시는군.”
“그럴 만도 하지.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는 계약자니까. 그레모리님께서 지금의 성세를 회복하신 것도 저 계약자의 공로니까.”
악마들의 시선과 관심이 모여들자 이신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러지?’
수많은 인파 앞에 서본 경험이 많은 이신이었지만, 지금은 웬일인지 무대 공포증 환자처럼 부담감이 밀려왔다.
식은땀이 나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악마들이라 그런가?’
그럴 만도 했다.
이 자리에 모인 득시글거리는 존재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모두가 악마들!
수백 수천 명의 악마들의 시선이 집중되는데 멀쩡히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그때, 그레모리가 나직이 속삭였다.
“반지의 힘을 이용하세요. 카이저도 이제는 각성한 하급 악마예요.”
‘아.’
그제야 이신은 반지에 마력을 주입했다.
스르륵―
따스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포근하고 편안한 기분이 들면서 긴장감이 사라졌다.
심장 박동이 진정을 되찾으면서, 이신은 평정심을 회복했다.
함께 손을 잡고 입장한 두 사람은 이윽고 황금옥좌에 이르렀다.
“여기 서 계세요.”
“네.”
그레모리는 황금옥좌에 앉았고, 이신은 그 옆에 섰다.
악마들은 그 두 사람은 우러러본다.
마치 자신이 악마들의 위에 군림하는 듯한 착각이 드는 구도였다.
하지만 반지가 전달해주는 영지의 기운 덕분에 이신은 평상심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위대하신 악마군주 그레모리님께 영광이 있기를―!!”
각양각색으로 생긴 악마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그레모리는 미소를 지어 화답했다.
“모두들 잘 왔다. 오늘은 1년에 단 한 번뿐인 만월의 밤, 수확의 날이다. 그리고 또한 축하할 일들이 많은 날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녀는 보좌관처럼 옆에 서 있는 이신을 가리켰다.
“봐라, 나의 계약자를!”
그렇지 않아도 주목 받던 이신에게 모든 악마의 눈길이 모아졌다.
“서열전에서 그 짧은 사이에 1명의 상급 악마와 6명의 악마군주와 싸워 이긴 나의 대리자를 보아라! 이 짧은 시간 동안 그 누가 이 같은 활약을 할 수 있을까? 그 누가 나에게 이렇듯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위대하신 악마군주 그레모리님께 영광을!”
“지극히 높으신 악마군주 그레모리님께 승리를!”
“계약자 이신 만세!”
악마들의 열광했다.
누군가는 이신의 활약을 칭송했고, 누군가는 경외를, 누군가는 질시를 보냈다.
악마들의 환희와 열광이 전달되었다.
뜨겁게 고양되어 아드레날린이 폭풍처럼 차오르려는 흥분이 반지의 기운에 의하여 진정되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악마라고 했던가?
이신은 하급 악마로서의 힘으로 간신히 그 자리에 버티고 설 수가 있었다.
그레모리는 마력이 담긴 거대한 음성으로 외쳤다.
“먹고 마시고 즐겨라! 만월을 기념하며, 우리의 승리를 기리며!”
“우와아아아!”
“크아아아!”
“그레모리님 만세!”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악마들은 정말로 짐승들처럼 술과 음식에 덤벼들었다.
먹고 마시고 서로 싸우고 탐닉했다.
이신은 이런 난장판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가 세계 e스포츠 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무패로 금메달을 획득했던 순간에도, 이 정도로 난리가 나지는 않았다.
그레모리는 그 혼잡한 난장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카이저도 즐겨보실래요?”
“사양하겠습니다.”
“후훗, 겁나시나요?”
“목숨을 잃을 까봐 두려울 정도입니다.”
“호호호, 인세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쾌락을 다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자, 어서 가서 즐겨보세요.”
“괜찮습니다.”
이신은 절대 사양이었다.
“그래요? 어머, 이를 어짜죠?”
“……?”
“우리 귀여운 아이들 중에서 카이저를 노리는 것들이 한둘이 아닌데.”
“예?”
그때였다.
시녀들 중 한 명이 등 뒤에서 이신을 덮쳤다.
가녀린 두 팔로 목을 끌어안았다.
“잠깐……!”
다른 한 시녀는 그의 턱을 붙잡고 강제로 입을 맞췄다. 입속으로 그녀가 머금고 있던 술이 들어갔다.
달콤한 술이 식도를 넘어 들어가는 순간, 화악 하고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깔깔, 맛 좋죠?”
술 특유의 뱃속이 뒤집어지는 불쾌감은 조금도 없이 알코올의 열기만이 가득한 기이한 술이었다.
그 술 한 모금에 이신은 치유 능력을 사용할 틈도 없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녀들이 계속해서 그를 덮쳤다.
“호호, 이런 자리에서는 정신없이 즐겨야죠!”
“이리로 따라오세요!”
깔깔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인간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마계의 미녀들은 이신을 연회장의 난장판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입을 맞춰 술을 넣어주고 음식을 먹여주고 몸을 어루만졌다.
술이 들어갈수록 이신은 이성을 잃었다.
인체의 모든 감각이 쾌락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온통 난장판이었다.
폭풍우에 휩쓸린 부평초처럼 이신은 악마들에게 이끌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축제를 즐겼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끼이익―
궁전의 문이 열렸다.
한 악마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키는 2미터쯤 될까.
장신에 늘씬하지만 탄탄한 몸매를 가진 아름답게 생긴 미남자였다.
그 악마는 성큼성큼 난장판을 가로지르고 들어가 그레모리의 앞에 당당히 섰다.
그레모리는 자애롭게 웃었다.
“어쩐지 마음이 허전하다 싶었더니. 네가 없었구나, 칼리파.”
“그레모리님, 제 주인이시여!”
악마 칼리파는 그레모리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경배했다.
“뭘 하다가 이렇게 늦게 왔니?”
“서열전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서열전을?”
“예.”
“어디, 이리 와보렴.”
칼리파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레모리는 칼리파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5만?”
“부끄럽습니다.”
그레모리의 권속, 상급 악마 칼리파.
그는 그녀의 휘하에 있으면서 어느새 마력을 5만이나 모은 것이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고 상급 악마끼리 서열전을 펼쳐 이겨나간 덕분이었다.
“부끄럽기는. 이 정도면 악마군주의 자리에 도전할 날도 머지않았구나! 네가 원한다면 내 적정한 대가를 받고 너를 내 권속에서 풀어줄 것이다.”
“악마군주의 지위는 경외하나 언감생심 감히 탐하지 않나이다.”
“후훗, 이 세상에 욕심이 없는 악마가 있겠느냐?”
칼리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제게도 감히 한 가지 욕심이 있습니다.”
“말해보아라.”
“이 세상에 계약자가 꼭 인간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물론이다. 하지만 가장 많은 재능과 가능성을 품은 종족은 인간이지. 그래서 계약자는 인간이다.”
“그리고 꼭 악마면 안 된다는 법 또한 없습니다.”
칼리파는 상관없이 말했다.
그레모리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칼리파, 너 설마…….”
“그레모리님의 계약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레모리님을 위해 싸우고 승리하고 싶다는 소망을 오래 전부터 간직하고 있었나이다.”
칼리파는 결의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를 계약자로 삼아주십시오. 대리자로서 그레모리님을 위해 싸우고 싶습니다.”
“칼리파…….”
“그리고…….”
칼리파는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레모리는 그 뒤에 이어질 뻔했던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레모리님의 반려가 되고 싶습니다.’
아마도 그 말을 하고 싶었으리라.
감히 입 밖에 꺼내지 못했던 진심.
칼리파는 그레모리의 권속으로 오랜 세월 있으면서 그러한 연심을 품어 왔던 것이었다.
“칼리파, 애석하지만 그건 안 된다.”
“어째서입니까?”
“서열전은 악마군주 본인이 치를 수도, 계약자가 대리로 치를 수도 있다. 그리고 네 말대로 계약자는 꼭 인간이라는 법은 없지.”
“그렇다면……!”
“하지만 72명의 악마군주는 대부분 인간을 계약자로 삼아 서열전에 내세운단다.”
“인간의 재능과 가능성입니까?”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단다.”
“그게 뭡니까!”
“이 서열전이 존재하는 이유, 바로 마신께서 품으신 진정한 뜻이지.”
“마신님의 뜻……?”
칼리파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제 주인이시여!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마신께서 정하신 율법상, 저는 그레모리님의 계약자가 되어 서열전에 나설 수 있습니다. 이 칼리파는 수없이 긴 세월을 노력하였습니다. 그 이신이라는 인간보다도 더 잘……!!”
“그렇다면.”
그레모리가 말을 끊었다.
“겨뤄보겠느냐?”
그녀는 앞을 가리켰다.
검지가 가리키는 곳에는 시녀들에게 둘러싸인 채 잔뜩 흐트러진 이신이 있었다.
칼리파는 질투와 좌절감으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시녀들이 둘의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이신을 그들 앞에 가져다놓았다.
그레모리는 그런 이신을 보며 빙긋이 웃더니 손을 뻗어 치유를 가하였다.
대번에 술에서 깨어난 이신은 그제야 정신 차려 그레모리와 칼리파를 번갈아보았다.
무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그는 옷매무새를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미있게 즐기셨나요?”
“……즐거웠습니다.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레모리는 나직이 웃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며 칼리파는 더욱 솟구치는 질투심을 느꼈다.
‘인간 따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