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52
151화 에이스(1)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신도 차이도 말이 없었다.
이신은 원래 말이 없었지만, 차이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집에 돌아왔을 때, 차이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어.”
“저랑 게임 하실래요?”
“하지.”
게임을 거절할 이신이 아니었다. 어차피 매일 한 집에 살면서 연습 게임을 하던 둘 사이였다.
“5판 3선으로요.”
이신은 멈칫했다.
차이가 말을 이었다.
“제대로요.”
이신은 잠시 말을 잃었다.
다전제로 제대로 붙자는 말.
그것은 정식으로 실력을 겨루고 싶다는, 이를테면 도전이었다.
“맵은?”
“피의 권좌, 신성한 잔흔, 유혈의 기억, 투지, 다시 피의 권좌요.”
“…….”
“시간을 드릴까요?”
차이가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평소의 이신이었다면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이 곧장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겼을 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30분이면 돼.”
“네.”
차이가 거실에서 장비를 세팅하는 사이, 이신은 서재에 들어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5판 3선승제.
이는 그냥 한 판씩 하고 마는 연습과 달랐다.
다섯 세트 중에서 3승을 거둬야 한다는 것.
상대가 어떤 맵에서 더 잘 하는지, 어떤 맵에서 어떤 프레이를 주로 하는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1세트, 2세트를 순서대로 치르면서 갈리는 스코어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
이기고 있으면 여유가 있으므로 과감한 전략을 시도하기도 한다.
지도 있으면 압박감을 느껴서 플레이가 더 위축된다.
그렇듯 다전제는 심리적인 요소도 있었으므로, 이신은 붙기 전에 먼저 각 세트별로 전략을 구상해야 했던 것이다.
평소에는 즉흥적으로 생각한 빌드 오더와 전략으로 붙어도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그만큼 경험과 기본 역량의 차이가 컸다.
하지만 지금의 차이는 맵까지 다 정해놓고 도전을 해왔다.
단단히 준비를 해왔다는 뜻이었다.
이신은 스스로가 차이에게 했던 말을 되새겨야 했다.
“내 모든 걸 보고 배워. 그리고 날 꺾어.”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차이는 어떤 사명감이 생겼는지 굉장한 집중력으로 훈련에 몰두했다.
이신의 서재에 빼곡하게 쌓여 있는 각 프로게이머들에 대한 분석 자료도 차이가 빠짐없이 훑었다.
이신이 어떤 방식으로 상대를 분석하고, 그 상대를 어떤 방식으로 공략하는지를 공부했다.
이신의 사고방식 자체를 꼼꼼하게 보고 배우며 괴물처럼 성장했다.
그러면서 이신과 매일 연습 게임을 하면서 실전에서 적용까지 실컷 해보았으니, 지금의 차이는 대 이신 결전 병기나 다름없었다.
이는 이신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기도 했다.
이신은 1세트부터 차근차근 전략을 구상했다.
잠시 후, 서재에서 나온 이신은 기다리고 있던 차이에게 말했다
“하지.”
“네.”
그렇게 대결이 시작되었다.
1세트 맵은 피의 권좌.
여러모로 중요한 첫판이었다.
1세트 맵 피의 권좌는 5세트에서도 쓰인다. 피의 권좌에서 누가 더 잘하느냐가 승부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총 다섯 판의 다전제에서 첫판은 누가 스코어를 리드하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의미를 차지한다.
단적인 예로, 1세트에서 이긴 선수가 그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이 80% 이상일 정도였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의 1세트 대결은 시작부터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초반, 1병영 후 곧바로 앞마당 확장 기지를 가져간 차이에게 공격이 들어왔다.
보병 1명과 건설로봇 1기가 함께 나타나 습격을 가한 것.
하지만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차이도 보병 1명이 나와 대응했다.
이신은 보병으로 무빙을 당기며, 앞마당에서 식량 자원을 채집하던 건설로봇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으악!
이신의 보병이 먼저 죽었다. 차이의 건설로봇은 아슬아슬하게 체력이 닳아 있었다.
하지만,
-퍼엉!
이신의 건설로봇이 끈질기게 쫓아가서 그것을 끝내 사살해버렸다.
심지어 보병의 기관총 세례를 맞아가며 본진으로 침투, 기갑 정거장 2개가 올라가는 것까지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차이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시작이 좋지 않았다.
1세트는 40분이 넘는 접전 끝에, 초반에 페이스를 잡은 이신의 승리로 돌아갔다. 아주 조금 벌어진 우위를 절대로 놓치지 않은 이신이었다.
“10분 휴식.”
“네.”
그 이상 두 사람은 대화가 없었다.
물을 마시고 돌아온 차이는 전의를 다시 다지고 2세트에 임했다.
2세트는 이신의 매서운 공세로 시작되었다.
앞마당 확장 기지도 안 가져가고 일찍 기갑 정거장과 항공 정거장을 1개씩 지은 이신.
항공수송선을 활용한 고속전차의 견제가 펼쳐졌다.
구석구석 찔러 들어오는 항공수송선의 드롭.
드롭된 고속전차가 지뢰를 매설하며 질풍처럼 달려 건설로봇을 공격했다.
보통 이 가파른 템포를 쫓아올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차이의 놀랍도록 침착한 디펜스가 시작되었다.
기계보병으로 침투해오는 항공수송선을 공격하고, 드롭된 고속전차를 쫓아다니며 기관총을 난사했다.
곳곳에 매설해놓은 지뢰가 발동되었지만, 순간적인 일점사격으로 제거.
건설로봇의 피해가 잇달았지만, 차이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자원 공급량을 봐가며 건설로봇과 병력의 생산 비율을 조율하며 운영.
계속되는 폭풍을 넘기고 나자, 먼저 앞마당 확장 기지를 가져간 자원 우위가 병력으로 나타났다.
기동포탑과 고속전차, 기계보병이 적절하게 배합된 병력이 한 순간에 치고나갔다.
“쯧.”
이신은 가볍게 혀를 찼다.
그토록 몰아쳤는데도 차이는 끝내 무너지지 않고 버텨낸 것이었다.
***
같은 오피스텔 건물에 사는 주디와 존이 방문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어?”
“연습하신다.”
주디와 존은 거실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입을 꾹 다문 차이가 계속해서 추가 병력을 보내며 이신을 몰아세웠다.
이신은 앞마당까지 타격당하는 위기에 봉착한 상태였다.
그런 두 사람에게서 살기마저 느껴졌다.
그 정도로 분위기가 날 서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해, 누나.”
“쉿. 방해되겠어.”
차이의 한 방은 강력했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폭풍 같은 견제를 버텨내며 모은 차이의 병력은 그야말로 질풍가도로 한 순간에 이신을 수세로 몰아넣었다.
초반 견제에 극도로 힘을 실은 이신의 빌드 오더.
끝내 무너뜨리지 못하자 그 극단적인 전략의 후유증이 시작된 것이다.
차이의 병력이 이신의 앞마당까지 타격을 시도했다.
이신은 급히 방어선을 구축하고 맞섰다.
“선생님이 위험한데.”
“응, 지겠어.”
차이는 그러는 와중에 2번째 확장 기지를 가져가기 위해 건설로봇을 보낸 상태였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다시 이신의 격렬한 저항이 시작되었다.
-퍼엉!
그 와중에 따로 빼놓은 고속전차가 추가확장 기지를 지으러 향하던 건설로봇을 처치했다.
동시에, 항공수송선 1척과 함께 스텔스 전투기 편대가 나타났다.
스르륵―
스텔스 모드로 모습을 감춘 전투기 편대가 차이의 기동포탑을 공격했다.
차이는 레이더를 뿌리며 스텔스 전투기들을 기계보병으로 반격했다.
하지만 기계보병의 숫자가 적었다.
스텔스 전투기 편대가 이리저리 움직여 교란시켰다. 그러는 동시에,
퍼퍼펑!
1척의 항공수송선이 고속전차 4기를 기동포탑들의 머리 위에 드롭했다.
드롭된 고속전차들이 지뢰를 매설했다.
차이는 급히 고속전차들과 지뢰를 제거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계속 공중을 누비는 스텔스 전투기들이 기계보병을 모두 제거했다.
더 이상 지대공이 가능한 유닛이 없었다.
차이는 하는 수 없이 병력을 후퇴시켰다.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기동포탑 몇 기를 더 터뜨린 전투기 편대는, 뒤이어서 차이의 기계보병이 추가로 합류하자 그제야 물러났다.
그러는 와중에 이신은 확장 기지를 가져가러 향하던 차이의 건설로봇을 다시 한 번 커트하는 데 성공했다.
“와…….”
주디와 존은 이신의 날카로운 플레이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이신.
하지만 형세가 너무 불리했고, 이신은 그 국면을 극복하고자 스텔스 전투기에 힘을 실었다.
계속 숫자가 늘어나는 스텔스 전투기 편대가 차이의 진영을 침투해 견제 플레이를 펼쳤다.
초반과 동일했다.
이신의 극도의 공격성.
차이의 초인적인 디펜스.
이신의 견제에 피해를 입으면서도, 그 정도 피해쯤은 만회할 수 있는 운영 능력을 발휘했다.
결국은 2세트는 30분간 이어진 공방 끝에 차이의 승리로 돌아갔다.
귀에서 이어폰을 뺀 이신이 나직이 말했다.
“10분 뒤.”
“네.”
이번에는 이신이 부엌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스코어가 몇이야?”
존이 조심스럽게 차이에게 물었다. 날선 분위기를 통해 두 사람이 다전제로 대결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
차이는 말할 기운도 없다는 듯이 양손의 검지를 하나씩 치켜세웠다.
1 대 1.
하지만 3세트가 시작되고서 25분 뒤, 스코어는 1 대 2가 되었다.
다시 한 번 똑같은 1기갑 1항공 빌드를 써서 극단적인 공격을 펼친 이신.
그리고 거의 동일한 흐름으로 차이에게 또 패배하고 말았다.
3세트가 끝나고서, 이신과 차이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대화가 가능했다.
‘그건 이제 안 통해요.’
‘그 디펜스가 운이 아니었군. 이제 확인했다.’
2세트에서 차이가 보인 놀라운 디펜스. 그것이 본 실력인지 아니면 운 좋게 퍼텐셜이 터진 것이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확인한 대가로 이신의 스코어에 1패가 추가되었다.
……설마.
주디와 존의 얼굴에 긴장이 스쳤다.
이신이 다전제에서 패한다?
두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차이가 거기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세상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다전제에서 이신을 무릎 꿇리는 일을 말이다!
차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한국에 와서 지금까지 이신을 이기는 법을 이신 본인에게 배워왔으니까.
문득 이신은 웃었다.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말이다.
벼르고 벼른 전략을 들고 도전해온 차이.
그에 비해 준비 시간이 없었던 이신에게 불리한 대결이었다.
4세트부터 신족으로 상대하면 보다 유리할 수 있었다.
차이는 정작 이신의 신족을 상대로는 고전을 면치 못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신은 차이가 동경해왔던 그의 인류로 도전에 응해주고 싶었다.
대결이 속행되었다.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차이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주디도 존도 그 엄청났던 대결을 끝까지 지켜보고는 놀란 얼굴들이었다.
“완전히 벼르고 준비했는데도, 준비가 안 된 선생님을 넘어서지 못했네요.”
차이는 아쉬움을 감춘 채 해맑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랬다.
4세트와 5세트는 이신의 역전극이었다.
2, 3세트와 반대로 이신은 극단적으로 자원 우위를 차지하는 ‘째는’ 운영을 펼친 것이다.
선제 공격권을 넘겨받은 차이는 여지없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신의 엄청난 공격성을 막을 생각만 했지, 먼저 공격할 엄두는 내지 못했던 것.
결국 차이가 무엇을 준비했고, 무엇을 준비하지 않았는지를 꿰뚫어본 이신의 승리였다.
“다음부터는…….”
이신은 차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미리 예고하고 도전해. 나도 준비할 시간을 갖게.”
“네.”
차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사제대결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야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날 차이의 실력을 똑똑히 본 이신은 한 가지 결심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