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16
316화 작별(1)
“젠장!”
박영호는 주먹으로 키보드를 때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뭘 화를 내?”
“너무 분해서요.”
“분해?”
“내 전용 키보드와 마우스였다면 더 처참하게 탈탈 털어버렸을 텐데! 운 좋은 줄 알아라, 짜식!”
박영호는 언제 화냈냐는 듯이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박영호는 결국 SC스타즈의 에이스였다는 지우펑을 상대로 3-1로 이겼다.
중국 최고의 프로게이머를 꼽으라면 반드시 포함된다는 지우펑을 격파한 것이다.
물론 그저 온라인 대전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대단한 일이었다.
‘상성이 안 좋았군. 종족도 스타일도.’
이신은 그렇게 평가를 내렸다.
그가 보기에 지우펑의 피지컬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단연 현존 최강의 피지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박영호와 견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우펑은 그런 느린 손과 부족한 피지컬을 전략성과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커버하는 스타일이었다.
실제로 이신과는 3-2로 마지막까지 치열한 접전을 치렀었다.
다만 종족 특성상 신족은 괴물에게 약했다.
그리고 박영호는 기본기 위주로 종족 본연의 특성을 끌어 올리는데 능한 신족 플레이어에게 아주 강했다.
신족으로 박영호를 이기려면 최소한 피지컬에서 밀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전투든 컨트롤 기교든 초월적인 센스가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함께 ‘쌍영’이라 불리는 라이벌 최영준처럼 말이다.
“이 자식 제법이긴 한데 나한테는 안 될 것 같네?”
“스타일상 그럴 것 같군.”
“흐흐, 괜히 쫄았네. 이제 2인자는 내 차지다. 어휴, 못 이겼으면 어쩔 뻔했어? 체면 구길 뻔했잖아.”
내심 쫄긴 했던 모양이었다. 사고방식이 참으로 현실적인 박영호였다.
박영호는 내친 김에 채팅 러시까지 시전했다.
-Runner: It’s not my keyboard. You are so Lucky! 🙂 🙂 🙂 🙂
지우펑은 결국 열 받았는지 한국 서버에서 접속을 끊고 나가버렸다.
박영호는 배를 잡고 낄낄거리다가 문득 심각하게 말했다.
“형, 얘 설마 나중에 나 때리거나 하진 않겠지?”
“모르지.”
“에이, 그래도 어른인데 설마…….”
“내가 본 중국 선수들은 다들 성격이 과격하던데.”
이신이 그동안 만났던 중국 선수들은 다들 졌을 때 격하게 분함을 표출하곤 했다. 대표적으로 월드 SC 올스타전에서 만났던 왕펑카이가 있었다.
그 말에 기세등등할 때는 언제고 안색이 해쓱해진 박영호.
“형, 걔가 나 때리려 하면 형이 말려줘야 해?”
“몰라, 알아서 해.”
“아 쫌!”
“그러게 왜 맞을 짓을 해?”
“에이, 됐어! 내, 내 연봉이 얼만데 서, 설마 폭력을 쓰겠어.”
애써 위안하는 것치고는 목소리가 떨리는 박영호였다.
“그건 그렇고, JKT는 어쩌겠대?”
이신이 화제를 돌렸다.
“뭘 어째?”
“너 빠졌잖아. 전력 공백은 어떻게 채우겠다는 거야?”
“실력이 확실한 선수를 영입하려고 하더라. 솔직히 그동안 우리 팀이 좀 괴물에 치우쳐져 있었잖아. 이참에 인류 플레이어를 보강할 생각인가 봐. 마침 나 팔아서 이적료도 많이 챙겼으니까 자금은 충분하고.”
박영호는 말하다 말고 뭔가가 떠올랐는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올도어 측에도 오퍼 넣었을 걸?”
“우리 팀에? 누구?”
“차이랑 존.”
“팔겠냐? 차이는 우리 팀 차기 에이스야.”
차이는 언젠가는 세계 톱이 될 천재였다. 지금도 이미 그 높이까지 꽤 근접했다.
차이 본인도 야망이 있으니, 더 성장해서 역량 면에서 완성체가 된다면 더 넓은 세계로 해외 진출을 시킬 생각이었다.
그런 이신의 스승으로서의 플랜은 후임 감독인 최환열이 이어 받았다.
즉, 해외로 보내면 보냈지, 절대로 국내 팀에 넘겨줄 수는 없었다.
“누가 모를까봐? 차이는 그냥 한번 찔러나 보는 거고, 제대로 노리는 건 존이지.”
이에 이신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럴듯하긴 하군. 존의 입지가 그렇게 탄탄한 상황만은 아니니까.’
올도어SCC는 이신이 떠났음에도 여전히 주전급 선수가 차고 넘쳤다.
더블 에이스급인 차이와 장양.
역시나 웬만한 팀에 가면 에이스 취급을 받을 유진영과 사나다 료.
꾸준히 안정적인 승률을 보이는 주디.
그렇게 탄탄한 5인의 주전 라인업에, 각자 뚜렷한 스타일과 개성을 가진 존과 한태화가 백업 멤버로 받쳐주고 있었다.
2군 선수 중에서는 김재호가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언젠가는 주전급으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얼마 전에 올도어SCC는 선수를 추가 영입했다.
바로 손지훈.
만성적인 손가락 관절염이 낫자 오랫동안의 부진을 깨고 최근 폼이 돌아온 손지훈이 올도어SCC에 새롭게 합류했다.
그렇게 되니 어딜 가도 붙박이 주전을 해먹을 선수가 8인이나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다른 팀에서 불만이 많았다.
올도어SCC의 독제 체제가 될 거라며 우는 소리마저 나왔다.
그래서였을까.
여러 팀에서 자꾸만 올도어SCC에 오퍼를 넣고 있었다.
좋은 선수를 다 쥐고 있지 말고 몇 명은 좀 풀라는 뜻 같았다.
JKT는 박영호의 말처럼 존을 영입하려 하고 있고, 쌍성전자는 괴물 보강을 위해 유진영과 한태화를 노렸다.
에이스 이철한의 원 맨 팀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라인업이 망해버린 CT는 유망한 2군 선수인 김재호를 달라고 오퍼를 넣은 상태.
장양 같은 경우는 중국 팀을 위주로 전 세계의 강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었다.
전략연구팀과 선수의 피지컬 관리를 위한 메디컬 팀까지 갖춘 세계적인 명문팀들은 장양의 천재적인 자질을 이미 귀신 같이 알아본 지 오래였다.
물론 올도어SCC의 새로운 수장이 된 최환열은 장양을 절대 내줄 생각이 없었다.
해외 진출을 하더라도 조국인 중국에 돌아가는 게 맞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때까지는 올도어SCC에 남아 연승행진의 선봉이 되어주어야 했다.
밴쿠버SCC 또한 주디와 존 남매를 모두 노리고 있었다.
본래 노렸던 이신은 물 건너갔고, 실력도 안정된 데다가 캐나다에서는 셀러브리티에 속하는 남매라도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원한다고 다 줬다간 우리 팀이 해체되겠지.”
“그래도 존 정도는 줄 수 있잖아? 올도어는 대체 백업 멤버만 몇 명이야? 다른 데서는 다들 2군 선수로 백업을 하거든?”
친정팀인 JKT가 걱정되었는지 한 소리를 하는 박영호였다.
“존도 얼마 전에 4킬까지 한 걸 보면 정말 많이 성장했고, 이제 주전으로 뛰면서 경험 쌓을 때도 되지 않았음? 그냥 JKT 줘.”
“왜 나한테 그래? 환열이 형이 알아서 하겠지.”
“글쎄? 내가 볼 땐 제자들 문제니까 스승인 형의 의견이 중요할 것 같은데…….”
박영호는 마치 예견이나 하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이신은 자신의 가산을 하나둘 처분했다.
일단, 현재 살고 있는 용인의 집은 제자들이 쓰게 그냥 놔뒀다.
어차피 돈이 궁한 것도 아니고, 선물 받은 집이라 딱히 처분할 필요도 없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면 지낼 곳이기도 했고 말이다.
롤스로이스 팬텀은 더 이상 타고 다닐 일이 없으므로 처분을 하기로 했다.
이신을 럭셔리함을 상징하는 이 푸른색 롤스로이스 팬텀은 꽤 많은 이들이 노렸다.
대표적으로 부사장 지수민.
한때 수년간 해외를 방랑한 이력도 있는 그녀는 직접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걸 더 좋아했다.
그런 주제에 오직 ‘신님의 것은 모두 수집하고 싶다’면서 웃돈을 얹어주겠다고 요구해왔다.
역시나 같은 이유로 이신교의 돈 많은 대사제들도 경매에 붙여달라며 탐냈다.
어디 그뿐인가?
“선생님, 그냥 저 주세요. 출고가의 2배 쳐드릴게요.”
차이가 가볍게 제안했다.
이에 질세라 존이 딴죽을 걸었다.
“돈이야 우리도 어디 가서 섭섭하지 않게 있거든?”
차이와 존이 으르렁거리며 경합을 벌였다.
캐나다 굴지의 재벌 레벨린 가문의 셋째인 존.
그리고 태국 재벌의 아들내미 차이.
금수저들이 격돌했다.
당연했지만 롤스로이스 팬텀 자체를 노리는 게 아니었다.
이런 중고차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새로 출시된 신차를 구할 수 있다.
제자들은 다만 이신의 것을 물려받는다는 상징성을 탐내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신이 가장 아끼는 애제자가 이 차를 물려받을 수 있다는 이상한 의미까지 부여되었다.
그러자 멀뚱히 있던 장양이나, 관심이 전혀 없던 주디까지 끼어들었다.
이신의 애제자 자리는 다들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국,
“5판 3선 종족 랜덤으로 승부해.”
이신의 말에 제자들이 한 판 승부를 벌였다.
놀랍게도 결과는 존의 승리였다.
피지컬이 좋은 차이나 장양의 승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존은 신족과 괴물에서도 기이한 컨트롤 센스를 보이며 다른 셋을 모두 격파했다.
“아자!”
기뻐하는 존을 보며 이신은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괴물을 할 때는 실수 한 번 없는 쐐기충 컨트롤을 보였다.
신족을 할 때는 거신병기 무빙이 기가 막혔다.
운영은 서툴렀지만, 컨트롤을 이용한 순간적인 돌파로 승부를 내버리는 칼날 같은 센스는 영판…….
‘나를 닮았군.’
최근 맞춤 훈련으로 급성장한 존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 MBS를 상대로 4킬을 했을 때, 플레이가 이신의 전성기 시절을 연상케 해서 진정한 후계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단점을 보완한 맞춤 훈련 결과 그런 스타일이 되었다는 게 놀라웠다.
어찌 보면 존은 누구보다도 이신을 닮은 사람인 것이었다.
이겼다고 기뻐하는 존을 보며, 이신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날 밤, 존은 조용히 이신을 찾아와 상담을 청했다.
“선생님, 혹시 제 얘기 들으셨어요?”
“JKT?”
“네.”
“환열이 형은 뭐래?”
“둘 중 어느 쪽을 택하든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제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하시는데, 그것 때문에 더 고민이에요.”
JKT로 가면 붙박이 주전이 되기 쉽다.
출전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 우승이 유력한 팀은 올도어SCC.
커리어에 프로리그 우승과 내년에 월드 SC 그랑프리 단체전 출전이라는 기록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맞춤 훈련을 통해 급성장한 터라, 이 팀에 남았을 때 성장할 여지가 있고 JKT로 갔을 시에는 미지수였다.
때문에 존은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가지 마.”
이신의 단호한 말.
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정말요?”
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단호히 말했다.
“절대 가지 마.”
이럴 땐 맘대로 하라는 대답이 이신이라는 스승의 평소 태도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칼 같이 잘라 말한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차이는 머지않아 해외진출을 할 거야. 실력적으로도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그렇게 야망 있는 애가 언제까지고 한국에 남을 리 없지.”
존이 수긍하는 가운데 이신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유진영이나 새로 합류한 손지훈이나 적은 나이가 아니야. 언제 부진에 빠져도 이상할 것 없어. 그때 그 빈자리를 채우는 1순위가 너야.”
“아…….”
“무엇보다 넌 아직 한참 성장하고 있어. 네 한계를 아직 조금도 꺼내지 못했다고 생각해.”
“…모르겠어요. 사실 차이나 장양과 비교하면 전 언제나 제 한계를 느끼곤 해요.”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장담하지. 넌 언젠간 나와 같은 수준으로 성장할 거야. 그러니 그때까지 딴 데 가지 말고 여기 있어. 내 스승 격인 환열이 형이라면 널 잘 이끌어줄 거야.”
“정말… 제가 선생님처럼 될 수 있다고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넌 디펜시브 지뢰 컨트롤을 구사했지. 그걸 똑같이 흉내 내는 사람은 너밖에 못 봤어.”
“…….”
이신은 미소를 지으며 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급해하지 마. 난 20세에 데뷔했고, 넌 그 나이 되려면 한참 멀었지.”
“…….”
“어쩌면 언젠간 우린 그랑프리에서 만날 수도 있을 거야. 그때까지 서로 힘내자.”
“…네.”
왜인지 존은 눈시울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선생님. 너무 감사해요.”
“알고 있어.”
그렇게 그들은 작별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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