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62
463화 제르지(1)
한바탕의 세련된 가무를 연상케 했다.
기사단이 돌진. 석궁병도 뒤따라 대포들의 포화 속으로 뛰어들었다.
뒤이어 배치된 투석기가 재조립.
반대편 방면에서는 그리핀 편대가 날아들어서 협공을 가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혼란을 틈타 3척의 열기구가 적진 한복판으로 과감히 뛰어들어 장창병들을 폭탄 투하하듯이 드롭했다.
반대편에서 접근한 열기구에서는 마법사들이 내려서 파이어 스톰을 펼쳤다.
화르르르륵!
“으아악!”
“크헉!”
일대장관!
모든 공격력이 종합예술처럼 집중된 총공세였다.
3시 우회루트 쪽에 주둔했던 원숭환의 병력은 삽시간에 녹아버렸다.
너무나 다양한 공격 수단들이 한꺼번에 몰아치니 모두 다 대처할 수가 없었다.
그 전투로 인하여 승기는 단숨에 이신에게로 기울었다.
전장의 6할 이상을 잠식하고 있었던 원숭환의 영역이 대번에 조각나버렸다.
본진과 최전방의 병력이 분단당한 상황.
최전방에서 전선을 이루던 원숭환의 병력은 사방에 적이 있는 상황이라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발이 묶인 상황이 되었다.
반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요충지를 장악한 이신은 사방으로 공세를 뻗었다.
2시, 12시 본진과 앞마당, 반대편인 9시까지!
이신은 기사단과 그리핀 편대와 열기구를 총동원하여서 신속하게 전 지역을 타격했다.
마법처럼 원숭환이 무너져 버렸다.
3시를 치는 이신의 판단이 신의 한 수였음이 증명된 장면이었다.
“…훌륭하구나.”
원숭환은 눈을 질끈 감으며 중얼거렸다.
[악마군주 이포스님의 계약자 원숭환님께서 패배를 선언하셨습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님의 승리입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님께서 마력 5만을 획득하셨습니다.] [마력 총량 1,834,710으로 악마군주 그레모리님께서 서열 16위가 되셨습니다.] [마력 총량 177만으로 악마군주 이포스님께서 서열 17위가 되셨습니다.]“으음!”
악마군주 이포스가 침음을 흘렸다.
이포스는 역시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 원숭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이번 판은 너무 아쉬웠는데?”
“그렇소?”
“책략에 당했지만 정공법에서는 이겼던 싸움으로 보인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치열한 승부가 될 줄은 몰랐어.”
사실 패배를 어느 정도 예상했던 악마군주 이포스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원숭환이 매우 잘 싸워서 한때 이신을 수세에 몰아넣기도 한 것이다.
이포스는 은근히 기대감을 드러냈다.
“혹시 한 번 더 붙으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포격전에서 밀고 들어가 승기를 잡았으나, 그리핀 편대와 열기구를 활용한 교란 전술에 당해 아깝게 패배한 상황.
그런 책략만 당하지 않는다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사실 이렇게 당하고 그냥 물러나기는 억울한 게 당연했다.
원숭환이 입을 열었다.
“내 실력이 모자랐어.”
“뭐?”
“명백한 실력 차이가 맞아.”
원숭환은 자신이 역전 당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이곳저곳 공격받기 시작했고, 한 번 당하기 시작하자 계속 그 흐름에 말려들었다.
그때부터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평소였으면 마땅히 했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했다.
당황해서 허둥거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니었다.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 당황하여 제 실력을 발휘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끝까지 침착했다.
다만, 벌어지는 상황의 변화가 너무나 빨랐다.
‘아니, 정확히는 저자의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자신의 생각의 속도보다 적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다.
그걸 다 대처하는데도 바쁜데 어떻게 자기 진영을 운영하는 일까지 다 빠짐없이 처리하겠는가?
‘근데 저자는 해냈다.’
그것은 원숭환이 갈고닦은 포격전보다 더 근본적인 부분이었다. 거기서 격차를 따라잡지 못하면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었다.
“끄응, 그럼 어쩔 수 없군. 우린 이만 물러나야지.”
원숭환과 함께 떠나려던 이포스는 문득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신의 시선을 발견했다.
이신이 계속 응시하고 있자 이포스는 그제야 껄껄거렸다.
“아차, 내가 소원 들어주는 걸 깜빡했군?”
“깜빡한 게 맞으면 말이지.”
그레모리가 중얼거렸다.
이포스는 신음을 하고는 이신에게 턱짓했다.
“소원 말해봐. 뭐 들어줄까? 요즘 계약자들은 꼭 소원으로 마력만 챙기던데, 그런 획일적인 사고방식은 좋지 않아. 나는 용기와 대담성을 관장하는 악마군주다.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지? 어찌 보면 수십만 마력보다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지.”
이포스는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곧 이신에게 17,700마력을 넘겨야 했다.
“획일적인 놈!”
이포스는 씩씩거리며 사라졌다.
원숭환은 함께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
“무슨 용건이라도?”
이신이 물었다.
자신에게 용건이 없었으면 여기 남아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네.”
“물어보십시오.”
“내가 왜 졌나?”
“모르실 거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정확히 자네의 관점을 듣고 싶어서 그러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능력이 제가 더 월등했습니다.”
이신은 멀티태스킹을 자세하게 순화해서 들려주었다.
사실 이신이 전성기 시절에 흔히 치른 경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불리한 상황을 끊임없는 견제 플레이로 만회.
불꽃같은 멀티태스킹으로 시시각각 미세하게 격차를 좁히다가 끝내 역전.
거기다가 3시를 찌른 전략적 판단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깊이가 생긴 식견이었다.
하지만 이신은 오히려 원숭환에게 감탄했다.
예전에도 자신을 불리한 상황으로 밀어붙인 상대 자체가 많지 않았다.
애당초 역전이 일어날 만한 불리한 상황에 잘 빠지지 않는 이신인데, 원숭환이 거기까지 몰아붙인 것이 놀라웠다.
‘역시 여기서부터는 다르구나.’
앞으로의 서열전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자네, 요즘 블라드 드라쿨레아가 자주 자네를 찾아간다고 하더군?”
“예.”
“이 위 서열로 드워프를 다루는 계약자는 발터 모델이 있네. 난 그와 붙어본 적도 있지.”
“…….”
“자네의 다음 상대인 서열 15위의 계약자는 제르지 카스트리오티라는 인물인데 마물을 기막히게 다루는 뛰어난 전술가일세.”
이신이 원숭환을 빤히 쳐다봤다.
원숭환이 물었다.
“어떤가? 내가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지 않나?”
“원하는 게 뭡니까?”
“모를 거라고 생각되지 않네만.”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되신다면 모의전 상대가 되어주십시오.”
“좋네.”
그제야 원숭환은 미소를 지었다.
* * *
서열 15위의 악마군주는 레라지에.
투쟁과 승리를 관장하지만 화살로 쏴서 그 상처를 컨트롤하기도 하는 악마군주였다.
그리고 그가 데리고 있는 계약자의 이름은 원숭환도 언급했듯 제르지 카스트리오티.
이신은 제르지 카스트리오티라는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내가 모를 리는 없을 텐데.’
이제 웬만한 역사적 군사가 이름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다.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재목(材木)이라면, 서열 15위나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적인 계약자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때마침 방문한 블라드가 제르지 카스트리오티를 알고 있었다.
“스칸데르베그 말이군.”
“스칸데르베그? 그 사람이 스칸데르베그입니까?”
“그렇지. 동시대의 인물이라 나도 잘 알고 있는 이름이지.”
비로소 이신은 제르지 카스트리오티의 정체를 떠올렸다.
스칸데르베그.
블라드 드라쿨레아와 동시대의 사람이며,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알바니아를 독립시키기 위해 싸웠던 저항군 지도자였다.
동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가져왔던 위대한 술탄 메메드 2세에게 저항했던 지도자들 중 하나이며, 그중 가장 성공적인 저항자이기도 했다.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이었군. 그래, 그의 본명이 제르지 카스트리오티였지. 이제 기억난다.’
알바니아의 실질적인 시조쯤으로 받아들여지는 인물로, 독수리가 그려진 알바니아의 국기도 카스트리오티 가문의 문장에서 비롯됐다.
그만큼 알바니아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영웅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알고 보면 역대급으로 손꼽을 만한 명장이었다.
상대는 전성기의 오스만 제국.
그것도 지금도 터키의 영웅으로 꼽히는 메메드 2세였다.
제르지 카스트리오티는 그런 이를 상대로 악조건에서 맞서 싸우면서 무려 25년간 알바니아를 지켰던 것이다.
그가 병사한 뒤에 알바니아는 다시 오스만 제국에 복속되었지만, 그 뒤로도 알바니아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사상이 번질 때마다 그의 이름이 신앙처럼 오르내렸다.
그의 별명인 스칸데르베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뜻하는 이스칸다르라는 별명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의 군사적 행적을 요약하자면, 2만도 안 되는 알바니아 군대를 이끌고 몇 배씩이나 되는 오스만 제국군을 매번 격파하며 25년간 알바니아를 지켰다.
‘다수를 상대로 싸우는 전술에 있어 거의 달인이라고 표현해도 되겠군. 계약자로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군.’
일단 살아생전의 전쟁 스타일을 아는 대로 요약하자면 기습과 측·후방 교란에 두루 능통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같은 스타일을 마물이라는 종족과 결합한다면…….
‘아주 잘 어울리겠군.’
전성기의 이신 같은 공격적인 견제 위주의 전략이 예상되었다.
물론 그것만 가지고 속단할 수 없었다.
애당초 소수의 병력을 가지고 다수의 적과 싸우고 싶어 하는 지휘관은 없었다.
그리고 악마로서 가진 고유 능력이 무엇이냐에 따라 전략적 체계도 달라질 수 있었다.
‘일단 원숭환의 이야기도 좀 들어봐야겠군.’
블라드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몇 번 모의전을 치른 후에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레모리를 통해 원숭환에게 초대를 하는 뜻을 보냈다.
원숭환은 곧장 응답했으며, 쾌히 이신에게 방문했다.
“생각보다 빨리 부르는군. 벌써 15위로 도전할 생각인가?”
원숭환은 이신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 알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신이 물었다.
“제르지 카스트리오티와 싸워보셨다고 들었습니다.”
“싸워봤다 뿐인가? 그자와 15위를 다퉜지.”
알고 보니 원숭환이 일전에 15위로 올랐을 때의 상대가 바로 제르지 카스트리오티였다.
요번에 16위로 다시 떨어졌을 때도 제르지 카스트리오티에게 15위를 빼앗겼기 때문.
이쯤 되면 블라드와 비스마르크 같은 앙숙 관계였다. 서열이 오랫동안 붙어 있으니 당연히 경쟁 관계일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골치 아픈 상대이긴 하지만 자네와 순위 경쟁을 하느니 차라리 제르지 카스트리오티가 낫지. 내 아는 대로 알려주겠네.”
대신 원숭환은 모의전을 하면서 서로 단점을 지적하며 실력 향상을 도모하자는 뜻을 밝혔다.
합당한 거래였으므로 이신도 이를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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