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75
475화 준비(2)
보통 인류 대 인류전은 긴 사거리를 가진 기동포탑간의 대립구도다.
맵의 지형에 따라 싸움의 양상이 다르지만, 대체로 상대 기동포탑의 사거리 안으로 먼저 발을 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따라서 보통은 맵을 분할하는 전선이 짜이고, 그 대립 구도 속에서 서로 더 많은 자원 매장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상대의 자원 공급을 망치기 위해 우아한 전략 대결을 벌인다.
그러한 인류 동족전을 길고 지루하다고 싫어하는 팬이 많은 반면, 깊이 있는 고차원적인 전략 싸움 때문에 좋아하는 마니아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인류 플레이어 중 한 사람이 이신이라면 이야기가 사뭇 달라진다.
스텔스 전투기든 항공수송선이든, 일단 지형지물과 전선을 무시하고 건너뛰어서 적진에 테러를 가한다.
그것은 난장판의 서막.
나폴레옹은 일찍이 테러를 ‘전선 없는 전쟁’이라 표현했는데, 딱 그 짝이었다.
수준 높은 전략 대결이고 나발이고,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전선을 우회해 적진에 파고들며 상대를 괴롭혀댔다.
거기에 대응하느라 상대가 정신없이 동분서주하면 이신은 더 날뛴다.
동분서주하느라 다른 곳에 빈틈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러면 그 빈틈을 귀신같이 찾아내 또 파고들어 테러를 가하기 때문.
그때부터는 전략 싸움이고 뭐고 그냥 개싸움이 된다.
이신이 점점 공세에 가속도를 내면, 게임은 더욱 롤러코스터처럼 숨 가빠진다.
여기저기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져 맵 전역이 피를 흘리는 진흙탕!
그런 구도에서 이신은 한 번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 서본 적이 없었다.
이신은 계속 상대가 괴로워할 만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고, 거기에 당하는 상대는 죽을 맛이지만 보는 팬은 그저 짜릿하고 재미있다고 열광한다.
결국은 상대가 이신의 스피드를 쫓아가지 못해 무릎 꿇는다.
그것이 인공지능이 구사할, 전성기 시절 이신의 필승 패턴이었다.
‘지금은 그러지 않지.’
자기 자신의 일이므로 이신은 누구보다도 예전과 현재의 차이점을 잘 알았다.
첫째, 예전에 비해 선수들의 디펜스 능력이 향상되었다.
둘째, 이신에 비견되거나 능가하는 피지컬의 소유자가 등장했다.
셋째, 가장 중요한 요소.
바로 이신의 나이였다.
당연하지만 이신도 나이가 들어 피지컬이 하락했다.
아직도 그의 피지컬은 최상위 수준. 괜히 사람들이 이신을 뱀파이어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신은 늘 나이 들었다며 한탄을 하고 다녔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정말로 팔팔하던 젊은 시절에 비하면 크게 떨어졌기 때문.
이신 본인은 스스로 체감되는 것이 있으므로 당연히 예전과 현재의 차이를 잘 안다.
인공지능은 분명히 맵을 양분하고 전략적인 대결을 펼치는 심플한 구도를 만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여기저기 정신없이 헤집어놓으며 난전을 유도할 것이다.
이에 대해 이신이 택할 수 있는 대응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당하고만 있지 않고 똑같이 보복해 주는 것.
때리는 대로 막고만 있으면 억울하므로 같이 때려준다.
서로 치고받으므로 난전이 된다.
다른 하나는 디펜스.
공격보다 방어가 더 유리한 건 기본이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날카롭게 공격해 와도, 그걸 때맞춰 적절히 막아내면 득실 계산상 이득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이득이 누적되고, 인공지능에게 손해가 누적되면 게임은 이긴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엄청난 스피드로 연속 공세를 펼칠 텐데, 그 템포를 따라갈 수 있느냐다.
‘옛날의 나를 상대로 난전은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이신은 후자를 택했다.
존과 차이는 공격적인 스타일로 이신을 몰아세웠고, 이신은 그것을 막아내며 세를 뻗치는 방식으로 맞섰다.
“이거 괜찮은 것 같아.”
헤드셋 밖으로 존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언뜻 들렸다.
현재 이신은 존과 대전 중.
존은 게임이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앞으로 인류를 만나면 이런 식으로 해야겠어.”
확실히 자신감을 가질 만했다.
존은 예전의 이신처럼 극단적이었고 컨트롤 테크닉에 능했다.
하지만 그런 극단성이 가져다주는 단점을 커버할 수 있는 피지컬은 없었다.
결국 장단점이 매우 뚜렷해 기복이 심하다는 뜻이었다.
그런 존에게 예전 이신의 스타일은 아주 잘 어울렸다.
차라리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편이 옳은 선택일지도 몰랐다.
단점이 뚜렷해 최고는 못 되지만, 때로 최고의 선수도 거꾸러뜨리는 스페셜리스트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 실력 갖고 만족하면 안 되지.’
이신은 호되게 쓴맛을 보여주기로 했다.
맵의 이름은 발화점.
3인용 맵으로, 가장 많은 자원이 매장된 스타팅 포인트는 3곳.
그중 2곳에서 각각 시작한 양측은 나머지 1곳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인다.
서로 맵을 공평히 양분할 수 없으므로, 인류 대 인류의 대결이라 해도 장기전은 나오지 않았다.
상당히 오래 전부터 공식 리그에 쓰였던 이 맵에서 이신은 전설을 썼다.
최고 승률, 최다승, 공식전 최다 출전.
당연하지만 이신은 이 맵에 대한 모든 것을 꿰고 있었다.
‘스텔스 전투기를 몰래 모으는 심리전도 어설픈 주제에.’
이신은 맵 센터를 놓고 대치했을 때, 존의 기동포탑 숫자를 보고 곧바로 스텔스 전투기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기동포탑의 숫자가 생각보다 적었는데, 그건 자원을 다른 유닛을 생산하는 데 썼다는 증거.
아니나 다를까, 3시 구석 지역을 레이더로 찍어보니 어김없이 스텔스 전투기들을 발견했다.
존은 이신이 그곳에 레이더를 썼다는 사실을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스텔스 모드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전투기들을 쓰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그 짧은 틈에 이신은 전광석화로 움직였다.
건설로봇들을 과감하게 투입, 본진과 전방의 전선에 대공포를 설치했다.
기계보병도 5기까지 뽑아서 스텔스 전투기 편대의 대항마로 전방 배치했다.
그리고 지상군 주력을 이끌고 단박에 진격했다.
기동포탑의 숫자에서 우세하다는 것을 안 이상 가만히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9시를 경유하여서 8시까지 우회기동!
단번에 제3의 스타팅 포인트인 8시 지역을 장악했다.
“……!”
그곳을 빼앗기면 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존은 그제야 부랴부랴 스텔스 전투기 편대를 동원했다.
지상군도 접점지역인 맵 센터를 시계방향으로 우회하며 8시로 나아갔다.
하지만 8시를 먼저 장악한 이상, 그 상황의 주도권은 이신에게 있었다.
존은 이신의 발 빠른 행동에 부랴부랴 대응해야 했고, 즉 이신보다 판단과 행동이 반 발짝씩 느릴 수밖에 없었다.
이신은 다시 모든 병력을 모아서 진격시켰다. 목적지는 존의 본진인 4시였다.
-퍼퍼퍼퍼퍼펑!
단박에 다수의 기동포탑이 밀려와 포격을 퍼붓자 존은 눈 깜짝할 사이에 궁지에 몰렸다.
스텔스 전투기 편대는 여기저기 건설된 대공포와 기계보병들 탓에 오갈 데가 없었다.
자원을 투자해 모아놓은 전투기들이 쓸모가 없어졌으니 이신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존은 머리를 긁적이며 GG를 쳤다.
“어떻게 아셨어요?”
“기동포탑 숫자를 제대로 속였어야 했고, 아니면 내가 대처하기 전에 빨리 스텔스 전투기를 동원해서 재미를 봐야 했고, 그것도 아니면 내가 다른 생각 못 하게 계속 견제로 흔들었어야지. 3가지를 모두 못했으니 져야지.”
이신은 속사포처럼 지적 사항을 세 가지나 늘어놓으며 존을 더 기죽였다.
차이가 웃으며 존을 위로했다.
“스텔스 전투기를 괜히 갔어. 센터 먼저 자리 잡아서 8시까지 선점할 수 있었는데 기동포탑 숫자가 부족해져서 놓쳤잖아.”
“아 그러게.”
존은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이걸로는 부족해.”
“선생님을 흉내 내는 건 무리니까요.”
차이가 수긍했다.
하지만 이신은 두 사람의 실력 부족을 지적한 게 아니었다.
존은 몰라도 차이는 실력적으로 이신이 얕볼 수 없는 경지였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인공지능 카이저는 두 사람과 느낌 자체가 달랐다.
‘심리적으로 지고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아주 본질적인 문제.
게임을 하다 보면 상대의 움직임을 통해 어떤 심리를 가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존과 차이가 잘하든 못하든, 역시나 어떤 일련의 생각의 흐름을 느낄 수는 있다.
화가 났다.
겁을 먹었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노리는 게 따로 있다.
지쳤다.
멘탈이 나갔다.
이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눈에 보이는 플레이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이신이 스페이스 크래프트를 할 때 가장 즐기는 부분이 바로 그것.
상대의 생각을 느끼고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공지능 카이저는 달랐다.
기계적으로 내 할 일 하겠다는 냉철함 외에는 느낄 수 없었다.
인간이 아닌, 차가운 금속을 만진 듯한 차가운 느낌이었다.
‘역시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라서 그런 건가?’
그럴 수 있었다.
이 부분은 말로 구체적으로 형용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인공지능에 프로그래밍하지도 못했을 수 있으니까.
그러면 그러한 이질감과 싸워야 하는 이신의 부담감은 더욱 늘어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고민은 뜻밖에도 누군가가 명쾌하게 해답을 들려주었다.
-너 원래 그랬어, 인마.
소속 선수의 안부도 물을 겸 전화를 걸어온 최환열의 말이었다.
“뭐?”
-너 원래 그랬다고. 인간성 없는 플레이.
이신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너무 이질적이어서 너한테서 단 한 세트도 따낸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
“…….”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진짜 제대로 만든 거야, 그 인공지능. 그래, 당해보니까 어떻디? 그때 내 기분을 알겠냐?
그러면서 최환열은 낄낄거렸다.
옛날 이신에게 3-0 셧아웃을 당했던 수모를 떠올렸는지 아주 고소하다는 투였다.
결국 동족 혐오 같은 문제.
수많은 선수가 이신에게 패배했지만, 이신은 자기 자신과 붙어본 적이 없었다.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알게 된 셈이었다.
“형은 그때 날 어떻게 이기려 했어?”
이신은 최환열에게서 힌트를 얻고자 했다.
-체념하고 있었지. 질 걸 뻔히 알았으니까.
“…….”
-농담이고.
그제야 최환열은 진지하게 말했다.
-센터를 잡지 못하면 가망이 없다고 보았다.
“센터?”
-결국 영역 다툼이잖아. 센터를 잡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뭐, 결국 네가 센터 싸움에서도 강하다는 걸 깨달았지만.
결국 최환열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파아아앗!
별안간 눈앞에 블랙홀이 나타났다.
‘뭐지?’
이신은 주변의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이신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마계로 소환된 것이야 한두 번이 아니라서 익숙했지만, 이신이 느낀 의문은 따로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당분간 부르지 말라고 부탁했었는데.’
마계에서 무언가 특별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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