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37
537화 4위(2)
주어진 휴가는 그리 길지 않았다.
소속 팀인 SC스타즈가 월드 SC 그랑프리 단체전에 출장하는데 장기 휴가가 있을 리 없었다.
이신도 닷새 정도의 짧은 휴식기가 주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랑프리 개인전도 준비해야 하는 만큼, 이번 여름은 작년보다 더 바빠질 듯했다.
‘휴가가 끝나면 그랑프리 일정을 다 끝마칠 때까지 마계에 다녀올 겨를이 없겠군.’
한 번 훈련 및 그랑프리 일정을 소화하기 시작하면, 중간에 마계에 다녀올 수 없었다. 그러면 마계에 있었던 동안 게임에서 손을 놨던 것이 공백기로 작용하여서 훈련의 효과가 사라진다.
하지만 이신은 현재 마계에서도 서열 1위를 눈앞에 둔 중요한 시기였다.
그랑프리 일정을 다 소화한 이후로 미루려니, 목전에 둔 서열 1위가 아쉬웠다.
거기다가 여기서 시간이 끌리면, 위 서열의 계약자들에게 준비 시간을 더 주는 꼴이 된다.
‘그러면 일단은 마계 일부터 다 끝낸 후에 휴가를 보내고 훈련을 시작할까?’
이신은 생각 끝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세 명밖에 안 남았다.
나폴레옹, 알렉산드로스, 테무친. 공교롭게도 세계 3대 정복자였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상대인가?
그리고 사실 이신은 요즘 게임보다 서열전이 훨씬 더 재미가 있었다.
‘유닛이 다르니까.’
살아 있는 사람을 지휘하며 싸우는 전투가 게임의 전투보다 훨씬 박진감 넘친다.
서열전이 진짜 군대를 지휘하는 느낌이라면, 게임은 그냥 게임일 뿐이었다.
뭐, 사실 게임 그래픽이 아무리 좋아져도 전장에 직접 들어가서 보는 것만 못한 게 당연했다.
‘그리고 이제 슬슬 서열전에서도 게임 실력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어.’
SC로 이신은 이미 끝을 봤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공지능과의 대결을 통해 한 차례 더 성장한 뒤로는 이 이상 더 잘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서열전에서는 이신의 실력이 계속 성장 중이다.
무엇보다도 이제 2년이었기 때문에 아직 서열전은 질리지가 않았다.
이신의 흥미가 서열전에 쏠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랑프리에 소홀히 하면 예의가 아니지.’
솔직히 말하면 이제 게임은 다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성기 시절의 자기 자신을 그대로 구현시킨 인공지능을 꺾었을 때, 이신은 프로게이머로서의 끝을 보았다.
뭘 해도 가능했던 그 어린 시절의 자신을 이 나이로 이기다니.
이제 게임으로 더 이룰 것이 없었다.
그래도 선수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첫째는 계약, 둘째는 도전자들을 위해서였다.
자신을 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올해 그랑프리는 한 번 더 노력할 것이다.
‘일단은 마계부터 일단락 짓자.’
마계의 일을 남겨놓은 채로 그랑프리에 임하면 완전히 열정을 쏟기가 힘들 것 같았다.
지금도 게임 빌드 오더보다는 서열전의 전략이 더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한 번 흥미를 느끼면 끝을 볼 때까지 멈출 수 없는 자신의 성격을 스스로가 잘 알았다.
‘서열 1위를 찍고 나면 그랑프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겠지.’
결국 이신은 잠깐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마계로 돌아갔다.
“오셨습니까, 주군!”
“어제는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사도들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은 이신이 이룩한 위대한 위업을 칭송하였다.
프리드리히 대왕 격파!
그것도 일대일로 순수한 실력을 겨뤄 이긴 성과였다.
한니발에 이어 프리드리히 대왕까지 일대일로 이기자, 마계는 가히 충격에 빠졌다.
이신의 실력이 뛰어날 거라는 예측은 이미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10위 안으로 진입한 것은 단체전 덕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말이다.
일대일로 10위 내의 계약자와 자웅을 겨룰 정도는 되지 않을 거라는 추측이 강했다.
아무래도 이제 겨우 2년밖에 안 된 계약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벌써 최고로 평가될 정도는 아닐 거라는 편견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웬걸?
오히려 한니발과 프리드리히 대왕이 이신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압도적으로 패배한 나머지, 한니발과 프리드리히 대왕은 전장에 틀어박혀 개인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신은 이제 마계의 서열을 다시 정립시키는 새로운 물결이었다.
“테무친에 대한 소식은?”
이신이 물었다.
그러자 마계의 소식 수집을 담당하는 질 드 레가 답했다.
“현재 서열 1, 2, 3위는 서열전을 모두 중단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 휴먼을 다루는 계약자를 물색해 초빙했다는 소식입니다.”
그 말에 이신은 피식 웃었다.
나폴레옹도 알렉산드로스도 테무친도 이신과의 일전에 대비한 훈련을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마계를 주름잡는 세 계약자도 이신을 강력한 적수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즐거운 일이었다.
자신을 이기기 위하여 어떤 대책을 준비했을지, 상대의 발상과 실력을 느껴보는 것은 이신이 아주 좋아하는 일이었다.
하물며 이번 상대들은 세계사를 주름잡았던 명장들이 아닌가.
“일단 우리도 오크 계약자를 찾아봐야겠군.”
“상대가 한때 초원의 황제였다면 비슷한 사람이 가까운 서열에 있지 않습니까.”
이존효가 나서서 말했다.
이신은 그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들었다.
“바야투르 말인가?”
“예, 저는 테무친이라는 이름은 못 들어봤지만 묵돌 선우는 압니다.”
묵돌 선우.
즉 현재 서열 9위의 계약자 바야투르.
동서남북으로 정복을 펼쳐 드넓은 영토를 지배했으며, 항우를 꺾고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을 박살내어 향후 100년간 공물을 바치게 만든 흉노의 전설.
인지도에서야 테무친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당대 아시아의 지배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같은 유목 민족 출신이니 훈련 상대로 적합하겠군요.”
서영이 거들었다.
‘확실히 바야투르가 가장 좋은 연습 상대이긴 한데.’
조아생 뮈라나 항우 같은 오크 계약자들은 자신의 용맹을 앞세우는 타입이라 테무친과 전혀 달랐다.
테무친은 건물을 옮길 수 있는 오크 종족의 특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줄도 아는 지휘관이었다.
‘그런데 바야투르가 연습 상대가 되어 줄지 모르겠군.’
* * *
“훈련을 도와달라고?”
“그렇습니다.”
이신의 권속이자 단체전의 파트너로 유명세를 떨친 질 드 레가 찾아와 청했다.
한동안 서열전이 없어 한가했던 바야투르는 그 제안에 솔깃했다.
‘언젠가는 이신과 붙어 보고 싶긴 했는데.’
혜성처럼 등장한 이신은 최상위 계약자들의 공공의 적이었다.
단체전으로 10위 안에 진입하더니, 일대일에서도 한니발과 프리드리히 2세를 압도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직접 견식해볼 기회였다.
‘색다른 전략전술을 구사한다던데 같이 모의전을 치르다보면 배울 점이 많겠지.’
바야투르는 혁신적인 발상으로 최강자로 부상한 계약자들을 여럿 보았다.
그때마다 서열전의 풍조가 크게 달라졌는데,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어버린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현재 마계에 변화를 몰고 오는 주인공은 바로 이신이었다.
하지만 바야투르는 짐짓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별로 나에게 득이 없는 제안 같은데?”
“득이 없지 않습니다. 이번에 도와주시면 주군께서도 바야투르님이 필요하실 때 도움을 주실 겁니다.”
“흐음, 보답이라.”
바야투르는 고민하는 척했다.
빚을 지워놓았으니 다음번에 서열전 단체전이라도 치를 때 불러올 수 있었다.
“서로 득이 되는 얘기라고 생각되는데, 승낙하시죠?”
질 드 레가 채근했다. 그만 튕기라는 뜻이었다.
“하핫, 좋지! 까짓것 도와주고말고.”
결국 바야투르도 호탕하게 웃으며 승낙했다.
그리하여 바야투르는 이신과 함께 매일 모의전을 치르게 되었다.
바야투르는 테무친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테무친은 제 12 전장 레틴을 가장 선호하지.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넓게 트인 지형이라 기병을 쓰기 좋거든.”
그 말에 이신도 동의했다.
제 12 전장 레틴은 중앙에 넓은 평지가 있었고, 본진과 앞마당의 거리가 꽤 멀었다.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통로도 넓은 편이라 방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이는 휴먼에게 불리하고, 오크에게는 더없이 유리한 지형적 조건이었다.
“이 전장에서는 휴먼에게 질 이유가 없다는 게 내 솔직한 생각이다.”
“그럼 한 번 해보죠.”
그렇게 시작된 모의전에서 이신은 초반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오크창기병과 오크궁기병으로 몰아치는 바야투르의 기세가 워낙에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지형이 넓다 보니 투석기가 자리를 잡고 싸워도, 양방향에서 습격해오는 기마군단을 막아내기가 까다로웠다.
마법사로 파이어 스톰을 펼쳐도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피하기 용이했다.
‘확실히 싸움이 어려운 지형이군.’
그리핀 편대도 용이하지가 않았다.
이신이 그리핀 편대를 꺼내들면, 바야투르는 오크궁기병의 비중을 늘려서 대응했다.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오크궁기병들은 탁 트인 전장에서는 비행유닛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무엇보다도 바야투르의 기마군단 다루는 솜씨가 탁월한 게 가장 컸다.
테무친도 최소한 이 정도 실력을 갖췄을 터였다.
이신은 계속 패턴을 바꿔가며 바야투르를 상대했다.
대량의 투석기가 모였을 때 진출하기도 했고, 기마 병력이 쌓이기 전에 병영 병력으로 치고 나가 승부를 걸기도 했다.
“능동적으로 나가서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군.”
모의전이 끝나고서 바야투르가 말했다.
“근데 상대가 그렇게 싸워주면 오크들은 편해. 병력이 얼마나 많건 간에 잘 덮치면 몰살시킬 자신이 있거든.”
“덮치기 좋은 지형이긴 하죠.”
“그렇기도 하고. 테무친은 나보다 더 신중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밖으로 나온 상대를 일거에 덮쳐서 격파하기를 즐기는 건 똑같지.”
“그럼 어떤 타입을 가장 싫어합니까?”
“딱 두 가지 유형이지.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로스.”
바야투르는 서열 1, 2위에 포진한 두 계약자를 언급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오크보다 더 빠르고 공격적이어서 어렵지. 반대로 나폴레옹은 철두철미하게 한 발짝씩 안전하게 진군하는 타입이라 덮치기 까다롭고.”
바야투르의 도움으로 이신은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제 12 전장 레틴에서 기동성을 마음껏 펼칠 오크의 기마군단!
상대는 사상 최강의 기마군단을 이끌었던 테무친이었다.
‘그래도 어떤 전략을 써야 하는지는 알았다.’
불리한 맵에서 싸워본 경험쯤이야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계에서도 늘 도전자의 입장이었던 터라 상대에게 유리한 전장에서 싸워 이겨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늘 해답을 찾아냈던 이신이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1위의 고지가 눈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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