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Dark Master become a Trash RAW novel - Chapter 207
제207화
‘후우, 지친다.’
크리스는 녹초가 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완전히 강행군이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잤다.
피로감에 현타가 와서 한탄했다.
‘내가 왜 이런 개고생을 해야 하는 거야. 으아아. 놀고 싶다. 놀고 싶다.’
옆에서 마리가 살랑거렸다.
[지치신 모습을 보니, 소녀의 가슴이 왓따 아프군요. 소녀가 정성 된 사랑을 담아 안마를 해드릴까요?]“…됐어. 네 안마, 폴터가이스트 현상이잖아. 기분 나빠.”
[그러면 실체화해서 더욱 진한 사랑의 봉사를? 이제 한 10초 정도 실체화가 가능하니, 10초간 뭐든 가능하답니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군요. 오호호.]“무슨 얼어 죽을. 힘드니까 저리 가!”
휘적휘적 쫓아내자, 이번엔 누군가 벌컥 방에 들어왔다.
쥬피엔이었다.
“뭐 해?”
“…넌 왜 왔냐?”
크리스가 힘없이 물었다.
“또 한판 붙자고 온 거야? 너랑 놀아줄 힘 없으니, 그냥 가라….”
축 늘어지며 답했는데, 쥬피엔이 뜻밖의 말을 하였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
“응?”
“유리안 언니가 수상해. 조심해.”
“!!”
크리스는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 보니 유리안 공녀가 이상하게 조용하지. 조사해도 별로 나오는 것도 없고.’
크리스는 유리안을 가만히 내버려두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무언가 수상쩍은 일을 하는 건 없는지, 밴시 퀸으로 저택의 유령들을 지배하고 있는 마리를 동원해 뒤를 캐보았다.
하지만 전혀 없었다.
유리안은 그저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특유의 친화성을 발휘해, 가문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러 사람과 친교를 나누는 정도?
하지만 딱히 불온한 목적이 아니고, 정말 순수하게 친교를 나누는 정도였다.
오죽하면, 이제 다들 유리안이 가문의 대권을 포기했다고 여기게 될 정도였다.
‘도저히 모르겠군.’
크리스는 고개를 젓고는 물었다.
“쥬피엔, 너는 왜 유리안 공녀가 수상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얼마 전, 언니가 나한테 골드 크로스 남쪽의 유적에 환술형 마검이 있으니 가보라는 이야기를 했어.”
“그런데?”
“그 뒤 내가 따로 사람을 써서 조사해 봤는데, 그 말 거짓말이었어.”
크리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유리안 공녀는 네게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거지?”
“나도 몰라. 하지만 이상해. 똑똑한 내가 판단하기에, 언니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어.”
크리스는 그 말에 동의했다.
분명, 유리안은 꿍꿍이가 있었다.
무엇인지 전혀 짐작되지 않지만 말이다.
쥬피엔은 이후 돌아갔고, 홀로 남은 크리스는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뭘까?’
더는 유리안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아니,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직감마저 느껴졌다.
‘어떻게 캐봐야 하지?’
고민하다가 크리스는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에 가십니까?”
멜린이 물었다.
“유리안 공녀에게.”
“!!”
‘뒷조사는 한계가 있어.’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바로 정면 돌파.
‘문제는 방법인데.’
크리스는 유리안의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크리스티앙?”
유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랜만입니다.”
“그러게.”
유리안은 배시시 웃었다.
“반갑네. 그런데 무슨 일이니? 갑자기 찾아오다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흐음?”
크리스는 잠시 물끄러미 유리안을 바라보았다.
이후,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일 저와 성에 다녀오지 않겠습니까?”
“…응?”
유리안은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
“갑자기 왜?”
“이전부터 저와 친해지고 싶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크리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데이트 겸 나들이나 다녀오지요.”
“!!”
크리스가 생각한 정면 돌파.
함정을 파서 유리안의 정체를 밝혀낼 계획이었다.
* * *
유리안은 얼떨떨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유리안이 뭐라고 하기 전에 ‘기대하고 있겠습니다?’라는 식으로 약속을 정하고 나와버렸다.
‘유리안의 성격상 이렇게 밀어붙이면 거절하지 못하겠지.’
물론, 유리안이 순순히 실마리를 드러낼 가능성은 없었다.
크리스가 꿍꿍이를 품고 있음은 짐작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괜찮았다.
생각해놓은 방법이 있으니.
그렇게, 다음 날이 다가왔다.
“…….”
저택의 유리안의 방.
아직 이른 새벽.
유리안은 멍하니 눈을 떴다.
“또 그 꿈이네.”
유리안의 맑은 눈동자에서 주룩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익숙한 일인지, 유리안은 별다른 동요 없이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이후 가만히 눈꺼풀을 닫자 귀에서 환청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그만… 그만… 차라리 죽여주세요.
-제발… 제발… 아이만은….
-왜 우리에게 이런 짓을?
섬뜩한 환청.
오래되었다.
그녀의 귓가에는 늘 저런 참혹한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비단 환청일까?
눈을 뜨면 비참한 몰골로 죽어 있는 시체들이 환각으로 보였으며, 불면에 시달리다가 간신히 잠이 들면 늘 똑같은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어쩔 수 없었다.
이게 그녀의 영혼에 새겨진 상처였으니까.
‘괜찮아. 이제 이 고통을 느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유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오늘 나들이. 역시 거절할 걸 그랬나?’
크리스티앙이 무언가 꿍꿍이를 품고 제의했음은 당연히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 그녀의 속내를 파보려는 것이리라.
하지만 유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러면 어때.’
운명의 날은 이미 코앞으로 다가온 상태다.
아무리 크리스티앙이라도 막기에는 늦었다.
차라리 마지막으로 어울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크리스티앙은 그녀가 이런 처지만 아니었다면, 절대 죽이고 싶지 않은 이였으니까.
* * *
저택을 내려온 유리안은 살짝 눈을 떴다.
크리스티앙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정하게 입은 모습으로.
원래도 잘생긴 크리스티앙인데, 차려입으니 빛이 나는 듯했다.
단, 원래도 재수 없고 오만한 인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긴 했는데, 그게 또 나름의 매력으로 느껴졌다.
“멋지네.”
“공녀도요.”
유리안은 웃었다.
그녀도 차려입은 덕에 꽃이 피어난 듯 아름다웠다.
“공녀가 아니라, 누나.”
“…….”
“자, 따라 해봐. 누나. 아니면 안 간다?”
크리스는 인상을 구겼다.
“…누님.”
유리안은 쿡쿡 웃었다.
“듣기 훨씬 낫네. 갈까? 에스코트해 줄래?”
크리스는 낮게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내밀었다.
“가시죠.”
마차에 올라 성의 시내로 향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유리안은 아리송한 눈빛으로 크리스티앙을 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니?”
“일단, 차를 마시고 식사할 계획입니다. 이후, 정원을 산책하고 간단한 연주회를 관람할까 싶습니다.”
“정석적이네.”
유리안은 웃었다.
“그러면 잘 즐길게.”
이후, 시간을 보냈다.
크리스티앙이 이야기했던 대로 일정을 보냈다.
“이건 라모 차? 쉽게 보기 힘든 차인데?”
“네. 흔하지 않은 차인데 다루고 있더라고요. 맛은 괜찮으십니까?”
“좋아. 향긋하고.”
느긋하게 차를 마셨으며,
“고기는 잘 손대지 않으시는군요.”
“응. 나 원래 육식은 좋아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가문의 식사는 입맛에 맞지 않아. 여기는 샐러드의 맛이 싱싱하게 잘 살아 있어서 좋네.”
식사를 했고, 정원을 산책했다.
“예일 나무가 있네. 나 좋아하는데.”
평범한 데이트와 같은 모습.
나누는 대화도 별달리 특별한 건 없었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다.
유리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냥. 예상외로 너무 평범한 것 같아서.”
함정이라도 파놨을 줄 알았는데, 꿍꿍이가 보이지 않으니 석연치 않아 하는 눈치.
크리스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코스입니다. 들어가시지요.”
소규모 연주회장이었다.
미리 자리하고 있던 관객들이 둘을 보고 눈을 크게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했다.
“대공자님, 공녀님을 뵙습니다!!”
“아아, 괜찮네. 그냥 즐기러 온 거니 편히 있도록.”
유리안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준비한 자리가 하나였다.
“크리스티앙, 네 자리는?”
“전 관람하지 않습니다.”
“음?”
“제가 오늘 공연의 연주자거든요.”
유리안이 놀란 얼굴을 했다.
크리스티앙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제법 들을 만할 겁니다.”
크리스티앙은 단상에 놓인 피아노 앞에 가 앉았다.
이후 흘러나오는 음색.
자신만만했던 목소리처럼 크리스티앙의 연주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과거, 그는 최고의 연주자이기도 했으니까.
관객들은 홀린 듯한 표정으로 크리스티앙의 연주를 들었다. 유리안도 한순간 가슴이 저미는 느낌을 받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런데 중간에 갑자기 돌연 연주가 끊겼다.
“??”
“아아, 이다음은 반주자가 있으면 좋은 부분이라, 이대로 연주하려니 아쉽군요.”
크리스는 유리안을 바라보았다.
“누님께서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어릴 적 배우신 곡일 테니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암흑 마가 정도의 명문가면 기본적인 교양 교육은 다 받는다.
특히 어릴 적 악기 연주는 훗날 마기를 다루는 감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니 필수이다.
‘물론, 높은 수준으로 익히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래서인지 유리안은 머뭇거렸다.
“내 연주 실력은 너에 비하면 훨씬 부족한데?”
“우리끼리인데 무슨 상관입니까? 함께 즐기면 더 좋지요. 다들 그렇지 않나?”
누구의 질문인데 아니라고 하겠는가?
관객들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공녀님의 연주를 들으면 영광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겁니다!!”
유리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도 참. 대신 못한다고 구박하면 안 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맞춰드릴 테니까요.”
크리스의 옆에 앉은 유리안이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렸다.
건반에 오르자 찰나 멈칫하는 손가락.
크리스의 눈동자가 기민하게 그 찰나의 이질감을 포착했고.
“그러면 시작해 볼까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둘의 손가락이 하나의 음색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데이트가 끝나고 돌아가는 마차에서였다.
“오늘 재밌었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군요.”
“응. 이렇게 시간을 보냈던 것도 오랜만이거든.”
“아직 끝이 아닙니다.”
“음?”
“특별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마침, 마차가 멈추어 섰다.
“여기는?”
“누님을 위해 준비한 곳입니다.”
작은 건물이 놓여 있었다.
그냥 황량한 건물이라 고개를 갸웃하는데,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스르릉.
크리스티앙의 검이 돌연 유리안의 목을 겨누었다.
“!!”
“쉿, 가만히 있으십시오. 움직이면 다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흑강기가 넘실거렸다.
유리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게 무슨 짓이니?”
“아아, 누님을 해치려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건 나름대로의 배려입니다.”
“배려?”
크리스는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님께서 편히 쉴 수 있게요. 누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택에 있으면 마음이 복잡해지지 않습니까? 그러니 푹 쉬실 수 있게 일부러 이런 장소를 마련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핑계.
그냥 구금하겠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유리안이 수상쩍다고 해도 무리수인 일이었으나.
‘필요해. 유리안을 가만히 놔둘 수 없어.’
크리스는 방금 나들이에서 깨달은 유리안의 ‘정체’를 떠올리고는 무거운 눈빛을 하였다.
절대 이대로 유리안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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