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Dark Master become a Trash RAW novel - Chapter 22
제22화
성검을 굴복시킬 수 있는 건 오로지 크리스뿐이다.
그건 진실이었다.
‘마왕이라도 불가능하지. 성검이 지닌 맹점의 특성상.’
굴복.
사실, 아니었다.
크리스가 성검을 다룰 수 있는 건, 아니, 정확히는 손에 쥐고도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는 건 성검이 마기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원리의 맹점을 이용해서였다.
즉, 편법.
‘굴복시키기는커녕, 편법을 통해 살살 눈치 보며 다루고 있는 거지.’
어쨌든 뭐, 상관은 없었다.
굴복이든 편법을 이용한 거든, 중요한 건 그의 손에 성검이 들려 있다는 거니까.
“대단하군요. 성검을 굴복시키다니. 그런데 굴복시킨 것은 맞나요?”
연무장에 선 멜린이 말했다.
“완전히는 아닙니다. 반쯤…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절반은커녕 반의반도 아닌, 굽신굽신 눈치를 보며 다루는 거지만, 당당히 말했다.
“존경심이 들면, 그냥 제게 충성을 바치셔도 됩니다.”
멜린이 미소를 지었다.
“하여튼, 도련님은 재밌군요. 즐거워요.”
그 말과 함께,
파앗!
멜린이 달려들었다.
빠르다.
일전 1성의 마기를 사용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
‘속도로는 따라잡을 수 없어.’
크리스는 인정했다.
실력의 격차가, 정확히는 ‘체급’의 격차가 너무 컸다.
다룰 수 있는 육체적 능력도, 마기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왜 성검을 고생하며 구해왔는가?
‘위쪽. 내려 베기!’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지만, 예측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면 느린 속도로도 반응할 수 있다.
반응하더라도, 압도적인 힘으로 파쇄하면 무의미하지만, 크리스의 손에 들린 건 바로 성검이었다.
마기의 천적인 무기.
까앙!
멜린이 내려친 검과 부러진 성검이 맞부딪쳤다.
멜린의 검에 휩싸인 마기가 성검의 중화 효과에 사그라졌다. 불과 물이 만나면 둘 다 증발하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제야 멜린은 크리스가 왜 아까 그런 말을 했는지 눈치챘다.
– 뛰어난 무기는 힘의 격차를 줄일 수는 있죠.
크리스는 멜린의 마기를 상대하려는 방책으로 성검을 들고 온 거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어도 강한 마기로 밀어붙이면 승산이 없으니까.
‘그래서 마기만 막을 수 있으면 날 상대할 수 있다고?’
멜린은 피식하였다.
마기는 그저 그녀의 수많은 힘 중 하나일 뿐이었다.
마투를 장기로 하는 마인의 진정한 힘은 바로 극한으로 단련한 무술이었다.
멜린은 본격적으로 크리스를 몰아붙였다.
그녀의 장기인 강맹한 검격이 크리스에게 떨어졌다.
까앙! 깡!
크리스는 뒤로 밀렸다.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금방에라도 무릎 꿇을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멜린의 표정은 점점 오묘해졌다.
‘내 공격을 막아내고 있어? 모조리?’
역부족인 모습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한 번의 유효타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멜린은 그 이유를 곧 깨달았다.
‘내 공격을 읽어내고 있어. 그것도 미리.’
미리.
그게 중요했다.
그녀가 손을 뻗기도 전에, 크리스는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공격이 어떤 식으로 올지 미래를 엿보기라도 한 것처럼.
처음에는 우연인가 싶었다.
아니었다.
우연이면, 같은 일이 이렇게 반복될 리가 없지 않은가?
‘도대체 어떻게?’
멜린은 불가해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경지가 높아져 무에 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상대의 행동이 자연스레 읽히게 되니까.
멜린도 낮은 경지의 상대를 대하면 다음 행동이 빤히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크리스는 그런 경우가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크리스가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건 전혀 다른 방법을 통해서였다.
‘내가 눈썰미가 꽤 좋은 편이라서 말이지.’
검술의 동작에는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면, 하나의 동작을 취하려면 어쩔 수 없이 무조건 취해야 하는 자세가 있다.
내려 베기를 하려면 손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러한 자세 전에는 또 취해야 하는 동작이 있었다.
손을 들려면 어깨와 상완의 근육을 움직여야 하는 법이니까.
이건 고수든 하수든 상관없는 공통점이었다.
그리고 크리스는 과거 익힌 수많은 지식을 통해 인간의 동작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탁월한 눈썰미로 그러한 미세한 동작들을 잡아내 다음 수를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런 둘의 결투를 참관하는 이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놀라고 있는 거다.
“…어떻습니까, 누님? 제가 이야기한 게 맞지 않습니까?”
“…….”
“제 아들이지만, 참 천재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네?”
카자르 백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도 메리안은 크리스티앙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지금껏 저지른 망나니짓 때문에.
하지만 뛰어난 건 사실이지 않은가?
그 누가 저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고작 1성으로 4성 마인의 검을 막아낼 수 있는 이는 본가의 공자 중에서는 아무도 없을 거다.
“저 정도면 누님이 어렸을 때보다….”
“고작 그 정도가 아니란 말이다, 이 바보 녀석아!”
“…무어라 하셨습니까?”
“넌 지금 보이지 않는 거냐? 크리스티앙, 저 아이가 마기를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메리안이 언성을 높이자, 카자르 백작은 눈을 크게 떴다.
그제야 보였다.
크리스티앙의 마기의 움직임이 기이하다는 것을.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았고, 코어의 마기가 기이한 흔들림을 보이고 있었다.
“왜…?”
카자르 백작은 이해가 되지 않아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아는 아들은, 마기의 운용도 1성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훈련 때는 어떤 흔들림도 없는 안정적인 운용을 보였는데?
‘혹시 크리스티앙의 코어에 문제라도?’
하지만 그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카자르 백작은 크리스가 일부러 마기를 저런 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왜?
저러면 마기로 곡예를 부리며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군요.”
“…하, 모르겠다고? 하긴 너는 모르겠구나.”
“누님?”
“성검의 거부 반응을 피하려고 일부러 저런 마기의 움직임을 보이는 거다!”
“!!”
메리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
‘미친, 저런 일이 가능한 인간이 정말 있다고?’
그녀는 마군주 노르디언 공작의 자식이다.
여러 형제 중 가장 노르디언의 총애를 받는 딸.
그래서 노가주가 그루나데를 굴복시키려 할 때 옆에 있었다.
– 안 하련다.
– 가주님께서도 안 되시는 건가요?
– 아니,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더럽고 치사해서.
노가주는 부러진 성검을 보며 투덜거렸다.
– 가능은 해. 마기 운용에 미칠 듯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면.
– 아버지의 마기 운용력도 극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 단순히 뛰어난 경지를 이루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건, 마치 숨 쉬듯 자연스레 마기를 다룰 수 있는 천부적인 감각. 거기에 더해 머리의 뇌가 두 개는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 ??
노가주는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 마기란 무엇이냐?
– 정기를 어둠의 기운으로 바꾼 거죠. 마나는 정기를 빛의 기운으로 바꾼 것이고요.
– 그러면 어둠은 무엇이냐? 또한, 빛은 무엇이냐?
– …….
메리안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알고 있지만, 또한 모르는 게 ‘어둠’과 ‘빛’이었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였다.
– 고위 마인인 너조차 이 문제에 쉽게 답할 수 없지. 그러면 요놈, 성검은 어떻게 어둠과 광휘를 구분하겠느냐? 살아 있지도 않은 물건에 불과한 것이.
– …….
– 특성이다. 마기는 마나와 다른 마기 고유의 특성이 있어. 성검은 여러 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그 특성들을 잡아내는 거다. 보통은 파장을 비교해 잡아내지. 마기와 마나는 근본적으로 파장이 다르니까.
노가주는 그루나데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손이 접촉하였음에도 놀랍게도, 성검은 반응하지 않았다.
– 하지만 요놈은 망가져서 그런 파장을 느끼는 부분이 일부 소실되어 있다.
– 그러면?
– 요놈이 느끼지 못하는 파장으로 마기를 운용하면 요놈을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다. 아마 타락한 용사가 요놈을 쓸 수 있었던 건 그 파장이 일치해서였겠지.
노가주는 장난을 치듯 계속해서 성검을 튕겼다.
성검은 계속 반응하지 않았다.
– 그러면 아버지도 다룰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마기의 파장을 비트는 거야 아버지께 일도 아니니.
– 실전에서 싸우면서 말이냐?
– …….
메리안은 답하지 못했다.
노가주는 얄밉다는 듯 성검을 강하게 튕겼다.
지잉. 성검이 아프다는 듯 흔들렸다.
– 잠깐은 되겠지. 하지만 알다시피 마기는 움직일 때마다 파장이 계속해서 변한다. 즉, 마기를 움직일 때마다 끝없이 요놈이 느끼지 못하는 파장으로 변주를 해야 한다는 거야.
– …불가능하겠군요.
– 그래. 그게 되는 이가 있다면, 날 때부터 숨 쉬듯 마기를 다룰 수 있는 자였을 거다.
노가주가 말을 이었다.
– 또한, 그게 끝이 아니야. 곡예를 부리듯 마기를 운용하면서 전투에 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주화입마에 걸릴 거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노가주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 그놈은 숨을 쉬는 것보다 마기를 다루는 게 쉬운, 감각을 타고난 것과 동시에 뇌도 두 개인 미친 괴물이겠지. 그런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저 게헨나의 악마나… 마룡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그런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다.
메리안은 그 말에 동의했다.
마기의 파장을 바꾸는 건 타고난 감각의 문제였다.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마기를 움직일 수 있는 감각을 타고나야 가능했다.
하지만 그런 이들도 성검을 다룰 수는 없었다.
이 곡예를 상대와 싸우면서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노가주가 했던 말처럼 마기를 운용할 머리, 상대와의 싸움에 응할 머리, 이런 식으로 머리가 두 개로 나뉘기라도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냥 싸우고 있는 것도 아니야. 마기를 저런 식으로 곡예 하듯 운용하면서, 멜린의 움직임을 예측하면서 싸우다니?’
하나만 해도 경악스러운데, 믿기지 못할 일을 동시에 몇 개나 벌이고 있었다.
“…대단하시군요.”
좀처럼 크리스를 함락하지 못하자, 멜린은 뒤로 살짝 물러나며 흑마법을 일으켰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