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19)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19화
일단 스크립트를 들여다보고 있는 견성하는 적어도 겉으로는 몹시 침착해 보였다.
“무대에서는…… 모습… 분들… 뵐 수… 감사…… 그건 멤버… 가 보여드릴…….”
아니다. 중얼거리는 속도가 평소보다 3배쯤 빠른 걸 보니 그렇게 느껴질 뿐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았다.
지진에, 수능 연기에, 데뷔에….
온갖 문제가 한꺼번에 밀어닥쳤으니 툭 치면 치는 대로 반응하는 견성하가 내적으로 우왕좌왕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법도 한데.
“뭘 그렇게 봐.”
아차.
나는 뒤늦게 시선을 내 스크립트 쪽으로 옮겨봤지만, 이미 견성하는 세모 눈을 뜬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하….” 하고 다 들리도록 한숨을 내쉬며 스크립트를 내려놓은 견성하가 그대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나 형들이나,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아.”
이 자식 지금 싹 다 자리 비워서 듣는 사람 나밖에 없다고 막말하는 것 좀 봐. 나는 만만하다 이거냐?
견성하는 책상에 놓여 있던 생수병을 집어 들어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예전에 영화를 찍었는데.”
“영화? 무슨 영화?”
“들으면 아냐? 당장 천만 영화 말해보라고 하면 세 개도 못 말할 거면서.”
“세 개는 알거든?”
“말해봐. 한국 영화로만.”
“난제, 녹색지대. 어…. 하모니…!”
“아네? 그럼 하나 더 말해봐.”
“…….”
밑천을 드러낸 내가 침묵하자 거보라는 듯 견성하의 시선이 따가워졌다.
이쪽 대중문화에 대한 내 지식이 전반적으로 빈약하다는 사실을 견성하를 비롯한 멤버들에게 들킨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다만 한국 대중문화에 한해서는 다들 내가 미국에서 오래 살다 왔기 때문이라고 그럭저럭 이해한 것 같았다.
그런 것치고 바다 건너 문화도 잘 몰라서 문제지만.
상식 없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기에 틈날 때마다 대중문화 공부를, 특히 음악 쪽 위주로 열심히 하고 있기는 하다.
시간이 없어서 영화까지는 아직 체크하지 못했을 뿐이다.
내 표정을 본 견성하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는 듯,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하던 말을 계속했다.
“아무튼…. 나름 비중 있는 역이라 시사회에도 참석했는데.”
“오.”
몰랐다.
“어떤 기자님 질문에 내가 답변하면서 약간 실수…를 했었어.”
실수이니 당연하겠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않은 듯 견성하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거의 10년 전 일이고 그때는 인터넷 발달도 지금보다 덜 돼서 다들 어린애 실수 같은 건 웃으면서 금방 넘어갔지만, 지금은 어리지도 않고… 내가 실수하면 나 혼자 피해 보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계속 준비하고 있는 것뿐이야.”
“…….”
“……왜?”
“아니, 너 지금도 어려.”
“…….”
[어린애한테 어리다는 말을 들은 견성하가 자존심 상해합니다. 견성하 호감도 -0 현재 호감도 +31] [자존심이 상한 견성하의 멘탈이 약간 회복됩니다.]오?
“실수해도 괜찮아. 안 하는 게 제일 좋지만, 오늘 수능 때문에 웬만한 건 다 묻힐걸.”
“그런 걸 격려라고 할 거면 그냥 조용히 해.”
다시금 ‘자존심이 상한 견성하의 멘탈이 약간 회복됩니다’라는 알림이 떴다.
눈앞에 지는 거 싫어하던 견성하의 그간 모습들이 영화의 필름 테이프처럼 파르륵 넘어가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이 과자 같은 멘탈을 가진 녀석을 다루는 방법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 * *
미디어 쇼케이스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기자들은 계속 쇼케이스장 안으로 바삐 들어왔다.
눈은 아직도 그치지 않아 막 들어온 기자들의 머리나 어깨에는 반쯤 녹은 눈이 얹혀 있었다.
조금 전에 도착한 서 기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박 기자가 오자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어휴, 왔어요?”
왔냐고 묻는 서 기자의 말에는 묘한 한탄이나 푸념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박 기자는 피곤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 오는 날에 이게 웬 고생이래요. 하필 또 수능 날에.”
“뭐 어쩌겠어요. 거기가 그러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기’란 트루 엔터를 말하는 것인데.
사실 대다수 기자들은 오늘 오르카의 데뷔 쇼케이스에 참석하기 전, 트루 소속 걸그룹 ‘안네’의 컴백 쇼케이스에도 다녀왔다.
빈말로도 여유가 있다고는 할 수 없는 바쁜 일정이었다.
이렇게 같은 날, 그것도 차이가 별반 나지 않는 시간대에 일정을 잡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연예계 관계자들도 이런 행사는 겹치지 않기 위해 서로 많은 신경을 썼다.
문제는 오르카보다 안네의 일정이 한참 더 나중에 나왔으며 트루가 그 일정을 밀어붙였다는 것에 있었다.
아무리 안네 쪽이 선배라고는 하나 보통 나중에 행사 일정을 잡은 쪽이 시간이나 날짜를 옮겨 조정하는데, 트루는 그런 상도덕이라는 게 없었다.
종일 그치지 않고 내리는 눈 때문에 도로 상황도 나빠 아직 도착하지 못한 기자들도 꽤 되었다.
어쨌든 트루가 대형이고 이럴 때마다 내보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영향력 있는 가수였기 때문에 기자들은 짜증스러워하면서도 트루 쪽에 먼저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수능 날에 이만큼이나 왔다는 건 얘네 화제성이 괜찮다는 뜻이지.’
‘여차하면 브레이커나 리프틴으로 엮어서 내보내면 되고….’
비슷비슷한 생각을 가진 기자들이 낮은 목소리로 잡담을 나누거나 장비를 세팅하다 보니 어느새 시작할 시간이 다 되었다.
“드디어 2017년 11월 30일, 가요계를 세차게 뒤흔들 오르카가 정식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배세일의 유머러스한 소개와 오르카의 단체 인사로 데뷔 미디어 쇼케이스가 시작됐다.
오르카는 곧바로 ‘해방’ 무대를 선보였다. 아직 뮤직비디오나 음원이 공개되기 전이었으니 최초 공개라고 봐도 좋았다.
물론 당장 기사로 나가는 것은 사진뿐이고 영상 자료는 내일쯤에나 올라가게 될 것이다.
뼈를 깎는 연습과 빡빡한 리허설을 거치기는 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다소 긴장된 모습을 숨기지 못하는 멤버도 있었다.
이를테면 서바이벌 경험이 없는 견성하라거나.
그러나 그런 모습은 무대를 하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옆에 있는 다른 멤버들이 무대를 충분히 지탱하고 있음을 여느 때보다 생생히 느꼈기 때문이다.
기실 무대 위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멤버가 다섯이었다. 견성하만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들도 사람이므로 데뷔 무대에서 긴장이란 걸 약간이나마 하기는 했다.
‘신인한테 바로 라이브를 시킨다고?’
‘패기 있네…. 신인은 이래야지.’
기자들은 바쁘게 기사를 업로드했다.
[오르카 지우, ‘안정적인 라이브’] [오르카, 데뷔 무대에서 ‘해방’된 실력] [(포토) 온라온, 믿을 수 없는 비주얼]무대를 마치고.
각자 이름표가 붙은 마이크를 하나씩 든 오르카는 사전에 상의했던 대로 매끄럽게 배세일과 짧은 토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기자들의 질문 타임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무난한 질문이 나오는가 싶더니.
“안녕하세요. 뉴스타 뉴스 박민서입니다. 우선 데뷔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최근 데뷔하는 신인 가수가 많은데요. 특히 바로 어제 오디션 프로그램을 함께했던 연습생들로 구성된 리프틴의 데뷔가 발표되었잖아요. 혹시 앞으로 강력한 라이벌이 될 수도 있는 리프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너희끼리 라이벌로 한번 엮여볼래?
특히 오르카 팬들과 브레이커 팬들의 사이가 조작 이슈로 인해 꽤 안 좋아졌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더 위험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픽하트에 출연하지 않았던 강지우나 견성하가 답하기에는 애매한 질문이기도 했고.
멤버들이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기자의 질문을 시간을 들여 요약하는 배세일의 말이 끝나자 반요한이 자신이 답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아, 네. 요한 씨?”
반요한이 마이크를 들었다.
“우선 질문 감사합니다. 함께 노력했던 친구, 형, 동생들이니만큼 데뷔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리프틴 멤버들도 오늘 쇼케이스 시작 전에 저희를 많이 응원해 줬고요.”
라이벌은 됐고 우리 걔들이랑 친하다.
그 뒤로 아예 픽하트 조작을 언급해 가며 해당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기자도 있었지만, 그거야말로 예상 범위 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웃는 얼굴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짧게 잡혀 있던 미디어 쇼케이스를 마칠 시간이 다 되었다.
* * *
기자 쇼케이스가 끝나갈 때쯤.
쇼케이스장 근처는 팬 쇼케이스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몰려든 팬들로 인해 다소 어수선했다.
팬들의 기대감은 인터넷에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기자들이 촬영한 기사, 정확히는 기사에 첨부된 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부풀었다.
기사 사진에서 멤버들이 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꽤 고무적인 일이었다.
‘실물로 보면 더 장난 아니겠지?’
현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임시로 제작된 응원봉을 비롯한 공식 굿즈를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두꺼운 옷을 입은 팬들이 쇼케이스가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줄을 서 있어서 상대적으로 늦게 도착한 이들은 혹시 재고가 부족하지는 않을까 발을 동동 굴렀다.
공식 굿즈 말고도 픽하트 때처럼 슬로건이나 포토카드를 나누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6시.
‘떴다!’
[ORCA (오르카) ‘해방 (Winter)’ MV]‘해방’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 * *
어두운 시간.
카메라는 이상하도록 잠잠해서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술렁이게 하는 바다를 캄캄히 비추었다.
파도 소리가 잦아듦과 동시에 모래톱 위에서 노래가 시작되었다.
어제와 같은 곳
있는 그대로
널 바라보는 순간
시작은 언뜻 남빛이 도는 흑발을 한 서문결이 열었다.
강줄기 같은 춤이 유려하게 펼쳐질 때마다 목에 맨 넥타이가 보기 좋을 만큼 들렸다가 가라앉았다. 비로소 맞이한 자유 앞에서 확신을 가진 몸짓이었다.
경계는 간단히
뒤집혀 Change up
카메라가 휘릭 돌아가며 서문결 대신 어두운 갈색 머리를 한 견성하를 담았다.
더는 허락받지 않아도 돼
Spark a movement
견성하가 춤을 이어가기 전, 정해진 길이 없어 불안에 흔들리는 시선이 가까이에서 잡혔다.
엉망인 대본에서 벗어나
적당히는 몰라
너도 알지 Set me free
닥쳐올 난관을 일찌감치 예측하고 냉정히 정돈된 눈빛을 하던 반요한은 이내 자신만만하게 입매를 끌어 올렸다.
카메라가 조금 옆으로 움직이며,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이 특유의 무구한 낯을 한 온라온에 초점을 맞췄다.
뒤로는 멤버들이 차례로 대형에 들어오며 안무를 소화하고 있었지만, 초점이 흐린 데다가 중앙에서 장면을 휘어잡은 온라온에게 집중하느라 첫 번에 그것을 알아챌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이제 해방의 시간이야
Winter
그리고 목이 꺾이는 정도부터 발끝이 돌아가는 각도까지 맞춰온 군무가 펼쳐졌다.
눈보라가 기다렸다는 듯
우릴 덮쳐오지만
도전적인 강지우의 노랫소리가 서늘하리만치 단호하게 떨어졌다.
내 심장은 푸르고
데일 듯 뜨거워
이제 막 경기장 안에 발 들여 눈에 보이는 것 없는 풋내기들은 때로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차갑게 얼어붙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자유, 불안, 자신, 무구, 도전.
모두 시작을 맞이한 소년들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