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44)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44화
내 눈앞에 있던 관리자의 낯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동시에 그것을 질기게 속박하고 있던 사슬이 유리처럼 허망하게 부서진다.
래리인 줄 알았던 것은 사슬을 풀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 직후 조금 전까지 놈이 있던 자리에 펑 하는 귀가 먹먹해질 만큼의 굉음과 함께 불꽃이 치솟았다.
뺨을 거칠게 쓸고 지나가는 열기.
덕분에 완전히 사라지려 했던 현실감이 조금 되살아났다.
놈의 사슬이 도로 재생되기까지의 이 모든 일은 마치 낙엽에 불이 붙는 것처럼 순식간에 벌어졌다.
‘아, 움직인다.’
불현듯 허공에 못이라도 단단히 박힌 것처럼 내내 꼼짝도 하지 않던 팔이 내 의지대로 구부러지는 걸 깨달았다.
그 즉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파악하고 말 것도 없이 냅다 앞에 있던 책상부터 들어 아마도 제로 본인일 놈에게 던져 버렸다.
무거워 보이는 책상을 칠판지우개처럼 가볍게 집어 던지다니.
평소의 나라면 절대 실행할 수도 이런 발상을 해낼 수도 없었겠지만, 언젠가 래리를 날려버린 일이 기억난 것이다. 난 강하다!
“……앗.”
그런데 너무 강했다.
내 힘이지만 내 힘이 아니다 보니 미처 힘 조절을 못 했지 뭔가.
책상은 그대로 멀리멀리 날아가 벽인 듯한 부분에 부딪혀 완전히 박살 났다.
책상 공격이 실패했다고 해서 한복판에 뛰어들어가 싸움에 직접 끼어들지는 않았다. 여기 가만히 있어도 열기 때문에 뜨겁다고.
“■■! ■■! 이 ■■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갑자기 나타나 1문장 1필터링을 자랑하는 저건 아무래도 내가 아는 래리가 맞는 것 같다.
나는 나와 이야기하던 제로(추정)를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래리(추정)를 바라봤다. 사슬을 여러 번 깨뜨리며 민첩하게 도망 다니는 제로의 뒤를 래리의 불꽃이 맹렬히 쫓았다. 이거 정말 현실감이 제대로 사라지는군.
양쪽 모두 뭐가 그렇게 화가 나는지 얼굴 부분을 하나같이 괴팍하게 일그러뜨린 채였다.
‘저러니 내가 구별을 못 하지.’
부술 때마다 끈질기게 재생하는 사슬 때문인지 도망만 다니는 제로 쪽이 더 빠르게 지쳤다.
그러면서도 별다른 반격은 하지 않는 걸 보니 아까 사슬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도망밖에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닌가 보다. 아까 풀어줬으면 큰일 날 뻔했네.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서 나를 흘긋 바라본 제로가 래리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계속할 건가요?”
“왜, 졸렬한 수작질은 말아먹고 쥐새끼처럼 야금야금 꿍쳐뒀던 밑천까지 털리니까 쪼들리냐, 이 ■■ 새끼야?”
“아무리 풋내기라지만 고객 상태 하나 파악하지 못하고 날뛰다니……. 요즘 관리국 수준이 참 심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명백히 무시하는 태도에 욕설을 지껄이며 다시 불꽃을 피우려던 래리가 나를 흘긋 보더니,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험악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꺼져!”
어떤 이유에선지, 래리는 이를 아득바득 갈면서도 녀석을 이대로 보내줄 모양이었다.
“늘 긴장하는 게 좋을 겁니다. 나는 늘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니까.”
제로는 나를 향해 경고했다.
“뭐래. 쥐구멍에 쪼르르 기어들어 가서 너 닮은 엿이나 빨아먹든가.”
* * *
관리자 2320호, 제로의 퇴장과 함께 일련의 상황이 정돈되었다.
전투 도중에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가 파괴되는 바람에 온라온과 래리는 서로 뚱한 얼굴로 마주 섰다.
“고객님은 안에 뭐가 들었을 줄 알고 함부로 받아 마십니까? 나이도 먹을 대로 먹었으면서 남이 주는 건 함부로 받으면 안 된다는 것도 모르십니까?”
“아니, 나는 그게 넌 줄 알고.”
“멍청한 소리. 언제 봤다고 저를 믿습니까? 세상천지에 믿을 존재가 없어서 저를 믿어요? 이래서 인간이란!”
바로 앞에서 아니꼬운 존재에게서 대놓고 욕을 다다다 들어먹은 온라온이었지만, 뭐 하나 틀린 말이 없어서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믿다니? 내가 저 새끼를?’
사실 온라온은 조금 억울했다.
“야, 너 뭔데?”
“관리자 14227호입니다. 고객님이 붙인 웃기지도 않은 이름은 래리고요. 이제 와서 뭘 묻습니까? 그런 의심은 아까 하셨어야죠! 죽는 것보다 더한 꼴을 당할 뻔했다는 걸 알긴 아십니까?”
“꼬우면 자리를 비우지 말든지!”
눈앞에 앉아 있는 게 자신이 알고 있는 래리가 아닌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시끄럽고 빨리 네가 래리가 맞는지 증명이나 하시지!”
“하! 적반하장이군요!”
“방구석 게임 폐인이던 내가.”
“이 세계에선 아이돌?!”
“당신은 까도.”
“내가 깐다.”
“……이 새끼, 저 새끼.”
“개×끼.”
말하다 보니까 왠지 자기가 더 짜증이 났다. 온라온은 왠지 손해 본 기분이 들었다.
온라온이 눈살을 찡그리며 래리 인증 절차를 통과시켰다.
“아까 그놈은 왜 보내준 거야? 네가 몰아붙이고 있던 거 아니었어? 그거 도망치는 것도 힘들어 보이던데.”
“그야 그러지 않으면 고객님이 위험해졌을 테니까요.”
온라온이 “나?” 하고 되물으려는 순간, 그의 시야가 아스팔트 도로 위 생겨난 무지갯빛 기름얼룩처럼 일렁였다.
‘어……?’
몸에 중심이 잡히지 않아 아차 하는 사이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은 온라온을 내려다보며 래리가 설명했다.
“차에 환각 작용을 하는 약이 섞여 있었습니다. 중독성도 강해 이대로라면 아무리 고객님이라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뭐…….
“저라도 담당 관리자가 징계 때문에 자리를 비우고, 귀환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이 절묘한 시기를 놓치지는 않았을 거로 생각해서 급히 돌아왔습니다만…… 역시나 이미 당하셨군요.”
그 시니컬한 말을 들으며 울렁거리는 속으로 정신줄을 잡으려 애쓰던 온라온은 저도 모르게 흠칫 어깨를 떨었다.
‘아까…… 제로가 했던 말과 똑같다.’
제로가 기가 막히게 흉내를 잘 낸 건지, 원래 닮은 녀석들인 건지…….
“완전히 중독된 고객님이 죽으면 저는 자유의 몸이 될 겁니다.”
후잔가? 끼리끼리 노는 건가?
“그러니 제 코어를 드리겠습니다.”
‘뭐?’
“뭐가 됐든 그 ■■ 뜻대로 되게 둘 수는 없지.”
‘그럼 네가 죽는 거 아니냐?’
래리는 무언가를 짜내듯 꽉 쥔 주먹을 조금 벌어진 온라온의 입에 가져다 댔다. 기름처럼 미끈거리면서 묘한 점성이 있는 파르스름한 액체가 입안에 흘러들어 왔다.
온라온은 뱉으려 했지만, 죽을 위기에 처해 있던 영혼이 충만한 에너지를 가진 물질에 먼저 반응해 입안에 들어온 것을 고스란히 삼켰다.
잠시 뒤, 온라온의 눈앞에 시스템창 하나가 떠올랐다.
[관리자의 코어 일부를 획득하였습니다. (코어 완성도: 49%)] [중독 상태가 해제됩니다.]‘진짜냐……?’
얼마간 기다리자 눈앞에 일렁이던 환각이 없어졌다. 메슥거리던 것도 거의 사라져 온라온은 당장에 몸을 일으켜 래리를 마주 봤다.
“너 지금 나한테 뭘…….”
“……고객님이야말로 이게 뭔지 어떻게 알죠?”
제로와 가졌던 대화는 아무래도 래리의 상상을 초월한 범위의 이야기인 듯해, 온라온은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아까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온라온이 래리를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아까 제로를 죽일 기세로 공격하던 모습만큼은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제로를 상대하는 일에서만큼은 래리를 믿어도 될 것이다.
온라온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래리는 망연히 중얼거렸다.
“미쳤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래리도 온라온이 아는 지성체 중에서는 손에 꼽힐 만큼 미친놈이었는데, 제로는 그 배로 돌았다.
자기 입으로 스스로를 엽기적인 사이코라고 칭할 자격이 있었다.
“넌 괜찮아? 코어는 너네한테 심장 같은 거라며.”
“관리자는 반드시 코어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코어를 온전히 간수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는 인간보다는 확실히 고등한 존재거든요. 고객님께는 없어도 괜찮을 만큼만 적당히 떼어드렸습니다. 뭐…… 힘은 좀 약해지겠지만 고객님 죽는 것보다야 낫죠.”
온라온이 그 싹수도 없는 어조에도 불구하고 약간 감동하려는 찰나, 래리가 말을 이었다.
“고객 관리 실패로 고객님 남은 수명만큼 징계받는 사이 그 새끼가 다른 관리자한테 사살당하면 어떡합니까. 그 작자는 반드시 제 손으로 죽일 겁니다. 그리고 설마 고객님 살리겠다고 제가 죽겠습니까?”
“아, 그래.”
감동은 무슨. 관뒀다.
“그런데 만약 그 새끼 목적이 애초부터 내가 아니라 놈을 뒤쫓는 네 힘을 약하게 하려는 거였다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뭐, 제압의 무한고리가 파괴되지 않는 한 괜찮습니다. 그런 버러지 같은 상태의 놈은 제가 새끼손가락만 써도 이깁니다!”
“필패 플래그를 한꺼번에 두 개나 꽂다니…….”
영 믿음이 가지 않아 온라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제로가 고객님께 했던 말은 사실일 겁니다. 원래 그런 치이거든요.”
더 찝찝하구만. 온라온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선언했다.
“그거 할게.”
“예?”
곧바로 반문한 래리는 온라온의 생각을 읽어내고는 입을 살짝 벌렸다.
‘이 인간이 진심인가?’
아까는 말도 통하고 사람처럼 생긴 것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것을 죽이는 것이 꺼려져 제대로 결정하지 못했지만.
이런 어처구니없고 개 같은 일까지 겪고 난 지금, 망설일 모든 이유가 사라졌다.
“한다고. 그 새끼 붙잡아서 간, 아니, 코어 빼먹겠다고. 그러면서 복수랑 몸보신이랑 일신의 안위 확보도 겸사겸사. 와, 일타삼피네. 이걸 왜 망설였나 몰라.”
“아니, 그놈은 고리를 푸는 이득이라도 있었지, 이건 제가 얻는 게 너무 없지 않습니까?”
“싫으면 말든가.”
“하겠습니다.”
제로의 표적인 온라온의 협력이 있다면 래리는 업무 태만에 대한 징계를 감수하면서까지 제로의 흔적을 쫓는 헛짓거리를 하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이제 나는 뭘 하면 되지? 너 따라서 잡으러 다니면 돼? 이 이상 본업에 집중 못 하는 건 싫은데…….”
“그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고객님이 살아계신 한, 특히 행복하게 살아계신 한 놈은 반드시 옵니다. 마침 업으로 삼으신 것도 아이돌. 누구보다도 찬란해 보이는 직업이니…….”
“…….”
“고객님은 그저 놈의 눈을 멀게 할 만큼 빛나는 것에 집중하세요. 아이돌로서 성공하고, 한 개인으로서 다정한 삶을 살고. 그래서 고객님 인생이 정점, 혹은 그에 준할 만큼 완벽한 순간에 다다랐을 때 제로는 행동에 나설 겁니다.”
“그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내가 불안해해야 하나?”
“그 역겨운 낯짝 들이민 순간 남은 코어를 걸고서라도 책임지고 조져드릴 테니 그런 걱정 마십시오.”
어쩌다 저렇게 둘 사이에 깊은 원한이 생겼는지는 모를 일이다.
“이유가 생겼으니 더 열심히 하셔야겠군요.”
“이상한 말을 하네. 원래도 남에게 말할 만한 이유 같은 게 있던 건 아니야.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고.”
순수한 동경, 의욕, 욕망.
그가 온하제였던 날, 처음으로 무대에 섰을 때 온라온을 지배하던 것은 그저 ‘재미있다’는 어린아이 같은 감정.
‘바로 그 점을 용납할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