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89)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89화
“청팀! 성하! 청팀! 성하!”
“흑팀! 지오! 흑팀! 지오!”
씨름판에 올라가기 전 나란히 서 있던 고경윤과 가벼운 고갯짓으로 인사를 나눈 뒤로 팬들 앞에서 보여주던 눈웃음 하나 없이 무심한 얼굴을 한 견성하도 유별나게 고조되는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절대 안 지지.’
특별히 대단한 일은 아니어도, 지면 두고두고 거슬리는 일이 있지 않은가.
이게 바로 그런 일이었다.
그리고 견성하는 상대인 고경윤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싫다는데 왜 남의 멤버한테 와서 친한 척이야?’
엄밀히 따지자면 온라온은 고경윤이 싫다고 한 게 아니라 친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지만, 견성하에게는 그게 그거였다.
그렇다.
좋은 사람이 아니면 나쁜 사람이라는, 이상하지만 믿음직스러운 맏형 강지우의 열띤 괴변에 감쪽같이 넘어간 사람이 바로 여기 있었다.
온라온과 반요한이 알았다면 바보 아니냐고 하루종일 놀렸겠지만, 다행히 견성하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 첫 번째 경기를 치를 청팀 오르카 성하 선수와 흑팀 리프틴 지오 선수는 모두 99년생 토끼띠고, 올해 초에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창이라고 하네요.
– 이야아, 두 사람 키가…….
– 요즘 학생들은 뭘 먹고 저렇게 훤칠한지 모르겠어요.
– 그래도 모든 학생이 저렇지는 않습니다, 장우찬 해설위원님.
캐스터의 말에 다수의 팬이 동의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모든 학생이 저랬으면 자신들이 새벽부터 와서 온종일 이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 그나저나 성하 선수 표정이 살짝 긴장한 것 같은데요.
온라온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저건 저 녀석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고.’
저번에 혼자 나간 스케줄에서 청팀 선수들과 같이 씨름을 배우고 왔다는 견성하의 낯빛에서 떨림이나 긴장 같은 감정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씩씩대면서 어설픈 허당 짓 안 하고, 쫄아서 움츠러들지도 않고, 단순히 차분해지기만 해도 바보 같은 얼굴이 아니라 저렇게 냉하니 잘생긴 본연의 얼굴이 나온다.
자칭 매력감별사 온라온이 냉정히 평가했다.
또한 견성하는 다행히도 전에도 몇 번 보았듯이 이런 신체 능력으로 승부를 보는 상황에 한해서는 오히려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극받는 성격이었다.
이럴 때 보면 승부욕이 중요한 운동선수도 녀석의 적성에 맞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막상 계속 수영 선수로 살아갔다면 이런 상황에서 자신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받았을 견성하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상상되는 온라온이었다.
‘섬세한 자식…….’
이제 심판의 안내에 따라 허리를 숙여 마주 인사한 두 사람이 씨름판 중앙으로 이동해 서로의 샅바를 잡았다.
“…….”
– 이야, 잡는 것부터 기 싸움이 대단합니다.
– 서로 눈도 안 마주치는데요.
어이가 없군.
샅바 잡을 때 누가 눈을 마주쳐?
싸움을 부추기는 듯한 중계진의 헛소리에 온라온이 눈살을 미세하게 찡그렸다가 이내 폈다.
두 사람을 둘러싼 공기가 부드럽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라 목이 터져라 청팀과 흑팀을 연호하는 팬들뿐만 아니라 가수 본인들끼리도 사이가 안 좋다는 말이 나오지는 않을까, 약간 걱정되기는 했다.
‘저 녀석… 너무 흥분하면 안 되는데.’
이런 곳에서 힘자랑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거야말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큰일이었다.
이윽고 왼무릎을 세우라는 심판의 지시가 이어졌다.
“준비.”
“……!”
자세를 잡은 두 사람의 근육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가며 몸이 크게 한 번 진동했다.
중계진이 흥분해서 입을 열었다.
– 어어, 지금 준비라고만 했는데 두 선수 모두 각자 나름 준비한 기술을 걸기 직전까지 갔거든요.
– 첫판부터 팽팽한 긴장감!
삑!
드디어 심판이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 아, 바로 넘어가나요. 넘어가나요?!
‘그렇지!’
힘 스탯 깡패인 견성하가 3초 만에 고경윤을 속 시원히 넘겨버리는 걸 기대한 온라온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고경윤은 씨름 대표로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듯 의외로 선전했다.
– 어, 아! 지오 선수, 잘 버텨냈습니다!
견성하는 시작하자마자 그냥 상대를 쑥 들어 올려 내동댕이치려고 했지만, 고경윤은 185㎝쯤 되는 기럭지 덕분에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쳇.’
온라온이 속으로 혀를 찼다.
이후로 중계진이 씨름 기술 이름을 얘기해주는 것을 온라온은 대강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넘겼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견성하가 끝내 이겼다는 사실이다.
– 아아아! 흑팀 지오가 넘어갑니다.
‘비리비리한 놈이 아무리 버텨도 젊고 팔팔한 우리 애가 이긴다는 사실은 안 변한다고.’
“청팀! 성하! 청팀! 성하!”
자리에 있던 에어리들도 흥분해 청팀과 견성하를 부르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실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리프틴 팬들이랑 소소하게 부딪히는 일이 많았던 에어리들은 견성하가 리프틴의 지주 격인 고경윤을 이기자 속이 다 통쾌해졌다.
– 아체대 현재 상황) 우리 말랑콩떡강강쥐가 씨름 ㄹㅍㅌ ㅈㅇ님 이겼음ㅠㅠㅠㅠㅠㅠ
한 에어리가 SNS에 올린 글은 빠르게 공유되었다.
그사이 바로 나온 리플레이 영상을 돌려보며 중계진이 코멘트를 했다.
– 지오 선수가 이때 한 번에 넘어갈 줄 알았는데, 버텼어요.
– 다리 힘이 대단합니다. 목에 힘줄 선 거 보세요.
– 그런데 성하 선수가 대단한 게, 회심의 공격이 막혔는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다음 기술로 전환한 거거든요.
– 이런 거 한 번은 버텨도 두 번은 못 버팁니다.
– 라온 선수가 지금 굉장히 크게 기뻐하는데요.
– 아, 성하 선수 아까 단거리 달리기 예선전에서 멤버를 빼앗겼던 복수를 하나요! 지오 선수 보라는 듯 라온 선수를 들어 올리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 보통 반대로 이기고 돌아온 사람을 저렇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 뭐, 본인이 고생하겠다는데요. 내버려 둡시다.
언제 진지했냐는 듯 요란한 세레모니를 하는 견성하와 온라온의 분위기가 묘하게 시답잖고 하찮아 오히려 팽팽하던 긴장감을 어느 정도 해소되는 효과를 냈다.
그러나 한 에어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들이 귀엽게 노는 광경을 흐뭇하게 보면서도 한 가지를 직감하고 있었다.
내가 돌판을 뜨기 전까지는 저기 저 리프틴 팬들과는 지지고 볶고 난리가 나겠구나…!
그리고 그건 리프틴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팬덤 사이에도 유독 앙숙 같은 관계가 있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 때문에 팬덤 관계가 악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두 그룹이 성적이라는 민감한 문제와 얽혀 있을 때는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가수들끼리 친하고 성적도 눈에 띄게 차이 나면 팬덤끼리도 데뷔 동기라며 사이좋게 지내는 경우가 더러 있기도 하다.
아까처럼 고경윤이 온라온에게 향했던 일부 예외 상황을 제외하면 오르카와 리프틴은 해당하지 않는 예기였다.
에어리는 각오했다.
다른 데는 몰라도 리프틴한테는 무조건 이기게 해 주기로.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뜨지 않는 법이었다.
물론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아이돌 시장에서 오르카와 리프틴은 규모만으로 따지면 태양은커녕 갓 태어난 새끼별만도 못한 존재였으나 그건 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 * *
견성하가 고경윤에게 첫 승을 거둔 이후 이어진 두 번째 판에서도 우리 청팀이 이겼지만, 그 뒤로 쭉 3연패 해 아쉽게 3:2로 흑팀에게 지고 말았다.
“우승해서 곤룡포 입었으면 멋있었을 것 같은데 아쉽다.”
아이돌 체육대회는 씨름 우승자들에게 옛날 왕이 입는 옷을 입게 해 가마에 태워 경기장을 한 바퀴 도는 세레모니를 하게 해 주었다.
“내년에 이기면 되지.”
견성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자기는 이겼으니 별로 상관없다는 모양새였다.
“저…….”
그러나 잠시 뒤 우리는 씨름에서 예선 탈락한 것과 비할 바 없이 심각한 문제가 청팀에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왜 그래?”
“발목이 좀…….”
“뭐?!”
씨름에 출전했던 온리보이즈 멤버 안희섭이 넘어가려는 걸 무리하게 버티다가 그만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게다가 안희섭은 조금 뒤에 있을 단체 응원전에서 문제의 아크로바틱 안무를 맡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안희섭이 매니저의 부축을 받아 절뚝이며 팬들의 시선이 없는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희섭 씨, 이후 경기 참여 못 할 것 같다고 합니다.”
안희섭이 부상을 대비해 상주하는 의사에게 움직이지 말고 안정을 취하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 스태프를 통해 전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청팀 분위기가 확 어두워졌다.
당장 홍팀과 백팀의 씨름 경기가 끝나면 단체 응원전이 이어진다.
한 명이라도 아크로바틱 안무에서 빠지면 중심을 잡아주는 요소가 사라져 전체적으로 멋이 확 죽어버리는 대형이었다.
안희섭과 같이 아크로바틱 안무를 맡았던 건은 기가 약한지 자기 혼자 주의가 집중되는 파트를 소화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에서 오는 부담감 때문에 안색이 벌써 새파랗게 질렸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내가 해 보면 어때?”
곁에 있는 우리 멤버들에게만 들리도록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 안 돼.”
강지우의 불허는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절대 안 된다, 막내야.”
아마도 저번에 내가 연습하면서 제대로 넘어졌던 게 뇌리에 남아서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저러는 것일 테다.
“나 앞뒤 안 재고 물어보는 거 아니니까 형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침착하게 흘러나온 내 말에 강지우가 움찔했다.
내 스킬창에는 지난 댄싱킹 퀘스트 보상으로 획득한 《아크로바틱(중급)》 스킬이 버젓이 있었다.
게다가 스킬을 받아놓기만 하고 묵힌 게 아니라, 앨범 준비하면서 틈틈이 연습도 했다.
“그동안 안무 쌤한테 제대로 배우면서 체계적으로 연습한 거 형도 알잖아.”
배운 걸 잘 써먹을 기회가 왔는데 가만히 있는 건 바보 같은 짓으로밖에 안 보였다.
“두 사람은 내가 연습하는 거 봤잖아. 나 이거 못 할 것 같아?”
나는 강지우에게 확신을 주고자 함께 자주 새벽까지 남아 연습했던 서문결과 견성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할 수 있어.”
“결아….”
강지우가 한숨처럼 서문결을 불렀지만, 정작 서문결은 뭐가 문제냐는 듯 완전히 내 편인 태세였다.
견성하도 약간 불안한 눈치이기는 해도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강지우를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그때랑은 달라,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