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337)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337화
몇 달 전.
고경윤은 출국을 앞두고 받은 휴가 날에 친할아버지, 고수종의 집을 찾았다.
해외 일정이 길게 잡혀 있어 한동안 못 볼 테니 가기 전에 안부 인사라도 드릴 셈이었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어서 와라.”
한때 온라온이 장기 체류했던 공간에서 조손은 함께 식사하고 한담을 나누었다.
저녁.
“경윤아, 나 텔레비전 좀 봐야겠다.”
“네. 리모컨 여기 있어요.”
손자에게 리모컨을 건네받은 고수종은 공교롭게도 온라온이 고정 패널로 나오는 지상파 예능 방송을 틀었다.
사실 그때까지도 고경윤은 자신이 온라온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좀처럼 갈피를 못 잡은 상태였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낯선 죄책감은 고경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고 그건 어떻게 해도 영영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굳이 화면을 보려고 하지 않더라도 때때로 온라온의 목소리가 들리니 고경윤의 마음이 자연히 불편하고 불안해졌다.
그나저나.
‘원래 이런 거 잘 안 보시는 분인데…….’
밤에 뉴스를 볼 때를 제외하면 TV를 인테리어 소품 정도로 사용하는 고수종이 굳이 예능을 챙겨 본다는 걸 고경윤이 다소 의아하게 여길 때였다.
“경윤아, 너 쟤랑 친허냐?”
손자에게 귤을 까주며 때때로 온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방송을 보던 고수종이 물었다.
“네?”
난데없는 소리에 고경윤이 고수종과 현란한 TV 화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화면에는 주어진 미션에 성공하고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는 온라온의 얼굴이 막 지나가고 있었다.
“저번에 그 왜, 추석 때 운동회에서 서로 장난도 치더니만.”
작년 ‘아이돌 체육대회’에서 고경윤이 단거리 달리기 경기를 마친 온라온을 포옹한 장면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건 왜요?”
“아니, 아는 사이면 오며 가며 잘 좀 챙겨줘 보라고. 애가 보기에 영 안쓰럽다.”
예상치 못한 말에 고경윤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일단 방송 속 지금의 온라온은 딱히 안쓰러운 모습은 아니었다.
모 방송에서 온라온에게 시도 때도 없이 농락당하는 다른 출연자, 이를테면 신석우가 안쓰러우면 안쓰러웠지.
그러면 어디선가 온라온이 겪었던 일을 들었나?
아니면…….
“아는 사이기라도 하세요?”
고경윤의 입장에서는 별 뜻 없이 한 질문이었지만 답으로 돌아온 것은 고수종이 온라온과 몇 주간 이 집에서 함께 살았었다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선배가 여기서 지냈다고요?”
“그려.”
“언제요?”
“재작년 봄에 잠깐 지내다 갔다.”
셈해보니 픽하트 초반이었다.
“선배가 할아버지 댁에는 왜요?”
“갈 데가 없다기에 받아줬지.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집에 들이시면…….”
만약 고수종이 들인 게 무해하기 짝이 없는 온라온이 아니라 무언가 악의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큰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기에 걱정하는 말부터 나왔다.
“네가 아는 걸 나라고 모르겄냐. 속없는 얼굴로 졸졸 따르는 게 강아지 새끼 같은 놈이 추운 날에 밖에서 갈 곳도 없이 나도는 게 안쓰러워서 도무지 그냥 보낼 수가 없더라.”
고수종이야 그 말을 믿고 온라온을 집에 들였다고 쳐도, 온라온은 대체 왜 멀쩡히 서울에 있는 자기 집을 두고 생판 남인 고수종의 집에까지 들어와 살았단 말인가.
그러다 고경윤은 유출된 온라온의 진단서에 기억력이 저하됐다는 말이 버젓이 적혀 있던 것이 불현듯 기억났다.
그 뒤에는 자기 집을 못 찾아 길을 헤맸다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여러 일화들이 연속해서 떠올랐다.
‘설마…….’
트루 엔터에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정신이 불안정해 길을 헤매다가 사람 좋은 고수종을 따라갔다는 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다 치면 그때 위험했던 건 고수종뿐만이 아니었다.
만약 온라온을 데려간 게 아닌 척 다정하고 현명한 고수종이 아니라 달리 악의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마찬가지로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
진실과 착각이 뒤섞인 오해는 점점 깊어져만 가고 고경윤의 수심도 함께 깊어졌다.
“그래서 친해, 안 친해?”
“친…….”
– 다음에 나 보러 올 때는 제대로 각오하고 와. 전에 네가 했던 나랑 진짜 친해지고 싶단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너랑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니까.
하려던 말을 멈춘 고경윤이 언젠가 자신에게 큰코다칠 거라고 경고했던 할아버지를 보았다.
“왜 말을 하다 말어?”
몇 달간 자신을 괴롭게 한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다.
“할아버지.”
“왜.”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 * *
한 고급 식당의 룸.
나는 내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고경윤과 고수종 할아버지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니까…… 고…경윤이 할아버지 손자라고요?”
“그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지?
설마 이런 관계일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다.
그야, 세상에 고씨 성을 쓰는 사람이 고경윤이랑 고수종 할아버지뿐인 것도 아니니 말이다.
나와 묵혜성의 관계를 알게 된 사람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왜 이렇게 비쩍 말랐냐.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는겨?”
내 놀라움은 아랑곳도 없이 고수종 할아버지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과 팔을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오늘 휴가받아서 저녁에 멤버들이랑 고기 먹으러 갈 거예요.”
반가을 대표의 카드가 활약할 예정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고수종 할아버지와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소외되었던 고경윤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얼굴 보셨으면 이제 가세요.”
눈치를 보아하니 고경윤이 원해서 고수종 할아버지와 함께 나온 것은 아닌 듯했다.
“뗴잉. 나이 먹더니 업어 키운 할아버지는 이제 뒷전이라 이거지. 기껏 한심한 얘기 다 들어줬더니만…….”
“할아버지…….”
고경윤이 난처한 목소리로 고수종 할아버지를 불렀다.
“흥. 됐다. 나도 싫다는데 억지로 있을 생각 없어. 그리고 라온이 너는 언제 한 번 또 장기나 두러 와라. 너만 한 적수가 없어서 요새 영 시들시들해.”
“네. 다음에 휴가받으면 꼭 갈게요.”
잠시 뒤 고수종 할아버지가 자기 친구들을 만나러 사라지고 자리에는 둘만 남았다.
고경윤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계속 고민했어요. 할아버지에게 조언을 듣고 제 나름대로 결론을 낸 뒤에도, 오늘 만나러 오기 직전까지도 계속요.”
그렇게 낸 결론이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내치라고 고경윤이 말했다.
“저는 그때 이미 그 모든 일이 지나갔고, 그렇게 끝난 일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서는 그걸 제 좋을 대로 이용하려고까지 했고요. 왜 그때는 그걸 몰랐는지 저조차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게 잘못이라는 걸 알아요.”
“…….”
“그래놓고 이런 말을 하니 선배로서는 뻔뻔하게 느껴지겠지만, 저는 그래 봬도 제 그릇된 언행에 지당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 이제는 그게 제게도 괴로운 일이 되었어요. 다른 이유 없이 종종 제 잘못 그 자체가 생각나 내가 왜 그랬을까, 견디기 어려운 후회가 될 만큼…….”
“…….”
“미안해요.”
용서를 구하는 고경윤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침통하게 들려 나는 입을 작게 벌렸다.
“정말, 진심으로 미안해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사실 이런 건 아무리 내가, 아니 그 녀석이 괴로웠다고 하더라도 웬만해서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고경윤이 모른 척 외면하고 가 버리면 끝나는 일이라는 거다.
안 돼. 이런 걸로 이만큼 기뻐하지 말라고.
“그래놓고 선배랑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제 말이 얼마나 기막히게 들렸을지 모르겠어요. 원하시면 익명으로든 실명으로든 제 행동에 대해 알려도 괜찮아요. 어떤 식으로든 부정하거나 모면하지 않을게요.”
“너…….”
“선배는 사람이 좋아서 이대로 사과를 받는 것도, 받지 않는 것도 아무래도 곤란하실 테니 저 먼저 가볼게요.”
“야, 앉아.”
“…네.”
한참 뒤.
“…….”
“할아버지 얼굴 봐서 봐주는 거야.”
“……네.”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들에 대해서는 처음 받는 사과였다.
나는 그 애가 아니지만, 그래도 빙의 후 고경윤이 내게 한 짓도 포함되어 있으니 사과를 받을 자격이 반 정도는 있겠지.
* * *
시간이 흘러 날이 봄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더워질 때쯤 대학 축제 시즌이 찾아왔다.
작년에 여러 행사에 많이 불려 다니기는 했지만, 대학 축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다행히 작년의 부진을 만회하려는 듯 올해는 여러 대학에서 축제 공연 섭외가 줄줄이 들어왔다.
행사 섭외 관계자가 말하길 원래 축제에는 남자 아이돌을 잘 안 부르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노래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아직 신인이라 행사 섭외 단가가 엄두도 안 날 만큼 높지도 않으며, 불렀을 때 장내가 통제 불가능 수준으로 혼잡해질 만큼 팬덤이 거대한 것도 아니라 지금 오르카는 딱 부르기 좋은 위치라고 들었다.
물론, 이건 다 작년에 들어온 행사를 하나하나 소홀함 없이 열심히 뛰어 업계 평판을 올려둔 덕분이기도 했다.
축제 시즌을 앞두고 곽상현은 하루에 많으면 세 군데까지 다닐 수 있도록 최적의 동선을 짰다.
스케줄 직전까지 조율할 일이 많은 모양이었다.
처음 있는 종류의 행사이고 우리와 비슷한 나이의 대학생들이 관객으로 오는 만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특히, 이번에는 반요한의 학교인 그 이름도 유명한 S대 축제에 우리가 가게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형, 대학교 축제에서는 뭐 해?”
서문결과 강지우도 데뷔 전에 대학을 다니기는 했지만, 축제를 즐긴 적은 따로 없다고 하고, 우리 중 유일한 대학 생활 경험자인 반요한에게 시선이 쏠렸다.
“글쎄……. 보통 부스 돌아다니고 술 마시고 그러는데 우리 학교 축제는 전반적으로 재미없어서 나도 1학기 축제만 가보고 2학기 축제는 따로 안 갔어.”
역시 뭐든 한 번 해보고 별로면 가차 없이 버려 버리는 녀석다운 말이었다.
알고 보니 거기는 비슷한 규모의 다른 대학에 비해 축하 공연 라인업이 약한 축에 들고 관객 호응도 비교적 얌전한 편이라고 들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반요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녀석네 대학 축제를 노잼 축제로 끝낼 수는 없다는 강한 사명감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