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355)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355화
미국 가정집에서는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어떡해야 하나 걱정했다.
다행히 이 집에서는 한국식을 따르는지 마중 나온 아버지는 실외화가 아닌 실내용 슬리퍼 정도만 신고 있었다.
서문결네가 제공했던 임시 숙소와는 다른 의미로 너른 집은 나와 아버지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것처럼 사뭇 조용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도 느낀 건데 곧 비가 내리려는지 집안을 채운 공기에서도 얇고 투명한 무게감과 습윤한 냄새가 피부에 은근히 와닿았다.
나는 그게 약간은 답답하기도 했다.
답답함의 이유가 비단 높은 습도만은 아니겠지만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는 것으로 또 다른 원인을 외면했다.
그때 앞만 보고 걷던 아버지가 몸을 내 쪽으로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엄마는 조금 늦게 올 거다. 퇴근하다가 급한 일이 생겼다고 연락 왔어.”
“아, 네. 저도 들었어요.”
확실한 기억은 아니어도 택시에서 어머니에게 비슷한 내용의 연락을 받았던 것도 같다.
“……그러냐.”
그리고 형 온세하는 독립한 지 오래라 언제 올지는 알 수 없다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근처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으니 아마 내일쯤에 한 번은 들를 것 같다는데 이마저도 불확실했다.
“네 엄마 올 때까지 집 구경이라도 하고 있어. 네가 갈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여전히 낯선 가족과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는 아버지의 언사가 냉대라기보다는 차라리 나만큼이나 이 상황을 난감해하는 것처럼 보였던 탓도 있다.
그대로 캐리어를 들고 내 방으로 향하려 했는데.
‘……내 방이 어딘데?’
이 넓은 집 어디에 내 방이 있는지 알 리가 없다.
그런 난감함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아버지가 덧붙여 말했다.
“네 방도 그대로 2층에 있다.”
나이스 어시스트이기는 한데.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의 구조를 알지 못하는 수준으로 옛날 기억이 없다는 걸 저 사람에게 말한 적 있던가?
그런 새삼스러운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굳이 따지고 드는 것도 이상해 보일 걸 알아 “네.”라고 답한 뒤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말 없이 침묵하는 것은 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올라가 볼게요. 이따 봬요.”
“그래.”
괜히 도움이 필요해 보이지 않도록 묵직한 캐리어를 안 무거운 것처럼 힘주어 들고 계단을 걸어 2층으로 올라가고 나서는 다행히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
내 것이 아닌 향수를 미진하게 느끼며 고요한 복도를 조금 걸으니 누가 만든 건지 ‘Damian’이라고 적힌 아기자기한 문패가 달린 방이 보였다.
누가 쫓아오기로 하는 것처럼 방으로 곧장 들어간 나는 캐리어를 문 근처에 세워놓고 안을 둘러봤다.
내가 오기 전에 청소했는지 넓은 편에 가까운 방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깨끗했다.
그 녀석 특유의 얌전하면서도 묘하게 명랑한 분위기가 부산에 있던 집의 방보다 훨씬 짙게 느껴지는 방이었다.
가구나 벽지 같은 것들이 내 나이에 비해 약간 어린애 같은 취향이기는 하지만, 그거야 그 녀석이 한국에 올 때의 나이를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방을 앞으로 몇 년이 지나더라도 그대로 보존하기로 마음먹었다.
희고 깨끗한 커버가 씌워지고 튼튼해 보이는 침대, 머리맡에 베개와 함께 가지런히 늘어선 캐릭터 인형 여러 개, 지금의 내가 쓰기에는 높이가 한참 낮은 책상과 의자, 벽에 걸린 동그란 보름달 모양 시계, 수년 전에나 의미 있던 달력, 만화 잡지 등 가볍게 눈으로 둘러볼 건 다 둘러본 다음.
또 뭐가 있나, 하고 기웃거리면서 열어본 옷장 안쪽에는 상자 하나가 있었다.
‘뭐지?’
대수롭지 않게 열어본 상자 안에는 엽서 카드가 수북이 들어 있었다.
‘얘한테 엽서 수집하는 취미라도 있었나.’
왠지 이미지가 어울린다고 한가롭기 짝이 없게 평하며 가장 위에 있던 몽실몽실한 분홍색 구름이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하나 집어 들어 별생각 없이 뒤집었다.
‘어.’
카드는 새것이 아니었다.
손에 무심코 힘이 들어가 조금 떨렸다.
[하제에게]왼쪽 위 끝에 영어로 ‘To. Haze’라고 적혀 있는 게 가장 먼저 보였고 그 아래로 꼬불꼬불한 영어로 내용이 길게 적혀 있었다.
“안녕, 잘 지냈어?” 하는 의례적인 인사말까지 무심코 읽어내려간 나는 더 읽는 것을 일단 멈췄다.
‘그 녀석이 내게 남긴 편지가 더 있었나?’
한순간 울적한 시기에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쁜 생각이 들었다가 곧 이성이 되돌아왔다.
‘그건 아냐.’
그 녀석이 내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한국에 있을 때였는데 내게 보내는 편지가 난데없이 미국에 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날카롭고 뻗치는 필체 또한 익히 보아온 그 녀석의 것과 확연하게 달랐다.
실눈을 뜨고 상자 안에 들어 있던 다른 엽서 중 몇 개를 빠르게 확인해 보니 대부분 비슷한 상태였다.
‘이걸 읽어? 말아?’
나는 일단 전에 내 편지를 읽던 도중 멈춘 반요한을 나중에 더 칭찬해 주기로 했다.
지금 나부터가 여기에 뭐라고 적혀 있을지 장난 아니게 궁금한데, 반요한 그 호기심 해소 못 하면 죽는 녀석은 이걸 어떻게 참은 거냐.
나는 여러 가지를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몇 개만 읽어 보기로 했다.
일단 편지 첫머리에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 내 옛 이름인 하제라고 적혀 있는 게 대단히 신경 쓰이기도 했고
이렇게 남의 물건을 함부로 들춰보는 거나 편지를 읽어 보는 게 실례라는 것은 물론 알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런 게 뭐 얼마나 중요한가 싶었다.
이 세상에 그 녀석의 물건을 떳떳하게 사용할 자격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뿐일 것이었기에.
‘대신 너도 내 방에 있던 일기장 읽어라.’
닿지도 않을 허락을 괜히 허심탄회하게 내리며 최종적으로 합리화를 마친 나는 마침내 엽서를 똑바로 보았다.
[안녕. 잘 지냈어?네가 이제는 여기 오지 않을 거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 이게 정말 끝이야? 너 이 편지를 가져가기는 하는 거지? 나 말이지 너 말고 누가 이걸 볼까 봐 갑자기 불안해졌어.
※만약 당신이 하제가 아니고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이 편지를 갈기갈기 찢거나 태워 버려주세요.
그러지 않는다면 최근 무시무시한 오컬트학을 깊이 있게 공부한 내 저주로부터 평생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이거 사실 뻥임. 보면 좀 어때?!)]
오렌지나 자몽처럼 톡톡 튀는 새침함이 묻어나면서도 글줄에서 어린 티가 확 날 만큼 격의 없고 약간은 정신없는 어조에 잠시 당황했지만 계속 읽었다.
[폰 번호나 이메일도 안 알려주고, 스타텔 계정도 없고. 대체 왜 이 축복 받은 디지털 시대에 혼자만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건데?그래서 너랑 이런 낡은 방식으로 얘기하는 게 좋았던 거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니?
됐어. 그만둬. 나도 알려주지 않을 거야. 우린 끝이라고.
하지만 하제, 이런 식으로 친밀했던 관계를 끝내버리는 게 몹시 매너 없는 일이라는 건 알아두는 게 좋을걸.
‘날 버리고 가시는 임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이 부분은 한국어로 적혀 있었다.)는 말 너는 모르지?
몰라도 돼. 곧 알게 될 거니까. 아파서 죽어 버리면 내 탓이나 해.
잘 지내지는 말고.
안녕.
가 버리는 너를 저주하며, 하프]
나는 왠지 낯간지러운 기분에 손에 들고 있던 엽서 뭉치를 를 확 내려놓았다.
‘이거 뭔데? 뭐… 너희 사귀냐? 연애하냐?’
아무튼 그 녀석이 쓴 편지는 확실히 아니었다.
왠지 흥미가 샘솟아 빠르게 다음 엽서를 읽었다.
뒤로 갈수록 더 오래된 시기에 받은 걸로 추정되는 편지는 길 때도 있고 너덧 문장으로 짧을 때도 있었는데 주로 짧았고 대부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여하튼 궁금해 죽을 것 같다고! 앞으로 도서관에서 매일매일 대기하면서 누가 이쪽으로 오는지 확인해 버리고 말 테다.] [네가 이번에 보낸 엽서 참 예쁘다. 어디서 샀어?] [하제, 공원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에는 절대 가지 마. 그 자식 나를 ‘트윙키’라고 불렀으니까.]
우표 같은 건 따로 보이지 않으니 우체국을 거치는 게 아니라 정해진 곳, 아까 한 엽서에서 언급했던 도서관 어딘가에 가져다 두고 또 가져가는 식으로 엽서를 주고받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같은 사람, 즉 스스로를 ‘하프’라고 칭한 이로부터 온 엽서들이었다.
아무래도 이름으로 쓰이기에는 조금 이질적인 단어라 일종의 닉네임이 아닐까 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하제’ 또한 그 녀석이 썼던 닉네임일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왜 하필 하제인 건지는…….
뭐,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라온’이라는 이름을 여러 곳에서 닉네임으로 사용했던 것과 같은 이유 아닐까.
아무튼 다 떠나서 왠지 내용 자체가 귀엽고 재미있어서 새로운 엽서를 계속 읽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