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356)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356화
하나같이 근사하고 독특한 그림이나 멋들어진 사진이 담긴 엽서들을 손으로 파라락 소리가 나도록 빠르게 넘겨보았다.
“으, 다 봤다.”
쌓인 양이 워낙 많았기에 엽서 하나하나에 담긴 내용은 짧아도 다 읽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뭐랄까.
동생의 풋풋한 연애편지를 몰래 본 것처럼 간질간질한 기분이다.
하프는 초지일관 마음 잘 맞는 친구 내지는 어린 동생을 대하는 투인 것을 보니 그다지 그런 마음이 없는 것 같지만.
적어도 그 녀석 쪽은 상대방의 이야기만 들어도 어렵지 않게 그 감정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애정이 깊었던 모양이라 나는 괜히 주책없는 웃음을 실실거렸다.
[실제로도 주책입니다. 지혜 –1]……이거 자동화 시스템이냐, 래리냐?
누가 됐든 사랑을 모르는 너희는 조용히 하고.
아무튼 보낸 이의 톡톡 튀는 성미만으로도 퍽 흥미롭게 느껴지는 엽서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읽으며 알게 된 의미 있는 사실은 그 밖에도 꽤 많았다.
‘이를테면…….’
둘 다 우연히도 한국계 미국인이면서 음악이라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다.
그 녀석은 때때로 자기가 구상한 아기자기한 멜로디를 의미하는 악보를 엽서 한구석에 써넣어 하프에게 전했고, 그러면 하프는 그 멜로디를 직접 기타나 피아노로 연주해 보였다.
보여주는 방식은 물론 비대면이었다.
하프는 연주 영상을 위튜브에 업로드하고 그 링크를 담은 QR 코드를 인쇄해 그 녀석에게 보내는 엽서에 붙여주었다.
혹시 해서 엽서에 남은 QR 코드를 타고 들어가 봤다.
‘에이.’
아쉽게도 영상은 모두 비공개되어 지금은 볼 수 없는 상태였다.
멜로디에 대한 하프의 평가를 읽으며 ‘어떤 것이었으려나’ 하고 막연히 상상해 볼 뿐이었다.
또한 이 친밀하면서도 비밀스러운 펜팔을 먼저 시작한 것은 그 녀석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려했을 때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하프였다.
일이 어떻게 된 거냐면.
하프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지만, 도서관 이용객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어떤 책 사이에 ‘이거 봤으면 나랑 친구 하자’라는 당돌한 요지의 첫 엽서를 끼워놓았다.
아마 드넓은 도서관에서 같은 책을 고른다면 취향 맞는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한 듯했다.
어딜 보나 어린 애나 할 생각이었지만 하프는 운이 좋았다.
우연히 그 책을 펼쳐 본 그 녀석이 하프에게 조심스럽게 응답하며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아날로그적 낭만이 느껴지는 인연으로 발전하는 데에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사실 엽서를 막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꽤 놀란 상태였다.
이 일이 예전에 가족관계나 과거사 등을 비롯해 내게 많은 정보를 낱낱이 전달해 주었던 그 녀석의 편지에는 한 줄 언급조차 되지 않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냉정히 말해 제대로 된 친구 한 명 없는 그 녀석 입장에서 이런 얼굴도 목소리도 드러내 보일 필요 없는 펜팔 친구가 생긴 게 얼마나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이었겠는가.
이렇게 소중한 인연을 섬세한 그 녀석이 실수로 빠뜨릴 리는 없을 테고.
그 녀석은 한국에 와서는 하프를 잊었던 걸까?
그럴 리도 없다.
아마 다 기억하면서도 의도적으로 빠뜨린 것일 텐데.
다른 세계의 자신인 내게도 끝까지 숨기고 싶었을 이유라면 역시.
‘사랑이지.’
그 녀석이 본명도 얼굴도 모르는 하프를 좋아했다는 쪽으로 더더욱 심증이 굳어졌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주책입니다. 지혜 –2]아니, 이 정도면 주책이 아니라 타당한 추리 아니냐고.
아무리 다른 세계의 나에게라고 해도 자신의 첫사랑을 밝히는 건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왜 첫사랑이냐고?
평행세계의 동일인물로서 가진 감이다!
‘자식, 귀엽구만.’
순수하고 귀여운 어린애가 수줍고 설레하면서 책 사이에 엽서를 끼워 넣는 장면을 제멋대로 상상할 때.
[왜 점점 망상이 발전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거듭 말씀드리자면 답도 없는 주책입니다. 지혜 –4]인간의 섬세한 마음을 모르는 자식이 순식간에 내 소중한 지혜를 도합 7이나 깎았기 때문에 나는 이쯤에서 만물이 커플로 보이는 렌즈를 빼기로 했다.
‘원래 내 연애에 관심은 없어도 남의 연애는 재밌는 법…….’
어쨌든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게 놀랍고 신기하지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이전 세계에서 유×버로서 성공적으로 활동했던 것처럼 얼굴을 직접 맞대지 않는 한, 누군가와 이렇게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건 잘못된 몸에 들어가 있던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 녀석도 험난하고 팍팍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애정을 붙일 대상을 찾은 거지.
나처럼.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그런 건 쉽게 저버릴 수 없다.
상상 속 그 녀석을 놀릴 때의 유쾌함 대신 약간의 해묵은 울적함이 마음을 적셨다.
실로 오랜만에, 이전 세계에 내가 두고 와야 했던 것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
이 세계를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녀석은 소중한 펜팔 친구를 물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떠나야겠다는 쪽으로 끝내 마음을 정한 거고.
이곳이 그 녀석에게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손을 잡을 수도 없는 반쪽짜리 애정에 기대어 평생을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괴로운 세계였음이 새삼 자명해졌다.
‘….’
가는 빗줄기가 창문을 툭툭 때리는 소리로 채워진 바깥에 잠깐 귀를 기울여 어머니가 아직 오지 않았음을 확인한 나는 뻐근한 눈을 깜빡거렸다.
다른 생각을 하자.
조금이라도 더 시답잖은 생각을.
‘아, 짐 풀어야 하는데…….’
나는 엽서와 상자를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놓은 뒤 기껏 몇 년 만에 집에 돌아가 놓고 하루 뒤에 바로 숙소로 돌아가면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 일부러 고스란히 끌고 온 캐리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혹시 몰라 챙겨온 셀프캠이 저 안 어딘가에 있었다.
이런 기분으로는 그다지 쓸모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멀리서 자동차 바퀴가 물웅덩이를 가르는 소리와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마당 쪽이 훤히 보이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지만, 이쪽을 향해 가까워지던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앞을 지나쳐갔다.
사위가 도로 외롭도록 적막해졌다.
‘B앱이라도 켜서 에어리들이랑 잠깐 수다라도 떨까.’
……시차는 둘째 치고서라도 그다지 현명한 처사 같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감정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가깝고도 멀리 있는 팬들한테 매번 일방적으로 의지하려는 몹쓸 버릇이 들면 안 될 테니 말이다.
나는 결국 깨끗한 침대에 편안한 자세를 누워 눈을 내리감는 것으로 상념을 몰아냈다.
“…….”
사실 이 또한 별로 현명한 짓 같지는 않았다.
* * *
언제 잠들었는지, 눈을 뜨니 이른 아침이었다.
‘옷도 안 갈아입고 잤네.’
비는 잠시 그친 모양이었다.
그러나 날은 여전히 우중충해 아침 햇살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 보니 집에는 잘 도착했냐는 멤버들과 곽상현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나 [잘 도착했고 이제 일어났어]
저쪽은 아직 자는지 잠시 기다려도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텁텁한 입을 가시고 싶어져서 어디 있는지 모를 화장실을 찾아 방을 나섰다.
깨어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아래층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던 걸음을 반사적으로 멈춘 나는 조금 뒤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움직였다.
그 결과 어머니와 곧장 맞닥뜨리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간밤에 아버지에게 했던 것처럼 어색함을 감추며 인사했다.
“잘 잤어?”
어머니도 그렇게 했다.
“네. 언제 오셨어요?”
“새벽에.”
“기다려야 했는데… 먼저 잠들어서 죄송해요.”
“아니야. 늦게 온 내가 잘못이지.”
“…….”
할 말이 떨어졌다.
어머니 또한 그랬는지, 다른 이야기를 했다.
“화장실은 저쪽이야.”
“네. 알아요.”
사실 몰랐지만, 어쩐지 그렇게 대답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이냐고 묻는 듯한 시선이 내게 향했다가, 어머니는 “그래.” 하고 하던 일로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간단히 샤워까지 마치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쯤에는 맛있는 냄새가 1층 곳곳까지 풍기고 있었다.
그 냄새를 따라 주방으로 향하니 6명은 둘러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식탁에 아침으로 먹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운 종류의 음식들이 여럿 펼쳐져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먼저 와 있었다.
“많이 먹어. 네가 없는 사이 에블린 음식 솜씨가 더 좋아졌어.”
에블린은 이 집에서 고용한 가정부겠지.
“네. 잘 먹겠습니다.”
그 말대로 괜찮은 맛과는 별개로 체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아침 식사를 마쳤다.
맛 좋은 음식은 아깝게도 많이 남아 잘 보관해 뒀다가 점심에도 먹어야 할 판이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정해진 것처럼 소파가 놓인 넓은 거실에 모여서 TV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담소를 나누었다.
오는 길은 어땠는지, 오랜만에 집에 온 느낌은 어떤지, 가서 힘든 일은 없었는지, 그간 건강했는지, 멤버들은 잘해주는지.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가져온 선물은 마음에 드시는지, 집에는 무슨 일 없었는지, 형은 어떻게 지내는지, 건강은 어떤지, 요새 취미 같은 게 생기지는 않았는지.
서로 할 이야기를 미리 생각해 두기라도 한 것처럼 용케 끊이지 않고 가늘게 쭉 이어지기만 할 뿐인 대화에는 단순한 정보 이상의 알맹이가 없었다.
“…….”
이건 확실히 우리가 지금 틀어 놓은 가족 코미디 영화 재방송보다도 훨씬 더 웃기는 짓이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라도 불안정한 관계의 최후일지도 모르는 순간을 미루고 또 미루었다.
하지만 영원히 회피할 수는 없다.
“…….”
정리해야만 한다.
어떻게든.
“라온아.”
어울리지 않는 수다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정적 뒤에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드러우면서도 차분하게 불렀다.
전까지만 해도 저들은 한국어로 얘기할 때도 나를 그냥 ‘라온’이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한국식으로 번거롭게 접미사를 붙여가며 ‘라온아’라고 이르고 있었다.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말씀하세요.”
준비되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시선도 어머니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나를 향하고 있다.
“너는…….”
그리고 다시 한참 뒤에 힘겹게 이어진 어머니의 말은.
“너는 누구니?”
어쩌면 내가 짐작하고 있던 물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