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401)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401화
모르겠다.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건지, 아니면 진작에 삼도천 건너서 저승으로 건너 온 건지.
몽롱하다기에는 아늑하고, 편안하다기에는 불안한 상태로 아슬아슬한 부유감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온몸…이 있긴 한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런 오래된 명제를 새삼 되새기지 않고서는 내 존재를 실감하기 어려울 만큼 감감하고 막막한 공간이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희미한 빛이 가까이, 아주 가까이에서 깜빡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에게 시각이라는 게 남아 있고, 그동안 내가 눈을 감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뜨기 귀찮다….’
눈을 굳이 뜰 필요가 있나?
자고로 잠이란 잘 수 있을 때 자둬야 하는 것인데.
그러나 조금 환해졌다가 도로 어두워졌다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꾸만 정신 사납게 점멸하는 시야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거슬려졌을 때 억지로 눈을 떴다.
“으….”
겨우 눈을 떴을 때 나를 반긴 것은 익숙한 상태창이었다.
[이제 좀 일어나세요!] [주무시랄 때는 죽어도 안 주무시더니 정말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주무시는군요.] [잠은 죽어서 자라는 말을 이렇게 실현하시는 분은 고객님밖에 없을 겁니다.]이 순도 120%로 뺀질거리는 말투…….
“래리냐?”
이미 답을 아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정신을 잃기 전 벌어진 일들이 불시에 떠올랐다.
0시 0분.
교통사고.
서문결.
제로.
“!”
허공에 떠오른 채 둥실거리는 몸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고 정신 상태 역시 여전히 또렷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현실감과 위기감만큼은 찬물에 빠트렸다가 건진 것처럼 확 돌아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여긴 어디고!”
[에픽 퀘스트 도착! [2320>]대답 대신 웬 생뚱맞은 퀘스트가 돌아왔다.
“나도 알아.”
인절미에 묻은 콩가루처럼, 벌이는 짓마다 광기로 범벅이 돼 있는데 모를 리가.
지난번 시체 사건 때도 어지간히 미친놈이 아니구나 싶었지만, 이번 일은 특히 선을 넘었다.
나뿐만 아니라 멤버들까지 건드리다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래된 망집에 사로잡힌 그는 존재가 남아 있는 한 당신과 당신의 주위를 파멸로 밀어 넣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더는 그의 악행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모든 힘을 다해 관리자 2320호를 저지하세요.▶ 완료 조건: 관리자 2320호 제압]
관리국 이 새끼들은 왜 자기들이 할 일을 나한테 떠넘기지?
내가 할 수밖에 없다면 해야겠지만, 아니꼬운 건 아니꼬운 거라 불편한 심기로 퀘스트 설명을 쭉 읽어 내려갔다.
지나치게 간단하게 설명된 완료 조건 하단에 성공했을 때의 보상과 실패했을 때의 페널티가 나와 있었다.
[▶ 성공 시 보상: 관리자 2320호의 코어, 평안한 인생▶ 실패 시 페널티: 관리자 14227호의 사망, 관리자 2320호와 함께하는 가시밭길 같은 여생]
보상은 그렇다 쳐도, 페널티가 상당히 거슬렸다.
그 자식이랑 함께하는 가시밭길 같은 여생은 무슨.
‘그리고… 갑자기 래리 녀석은 왜 죽는 건데?’
타당한 의문을 가지는 순간.
[저쪽 관리자분께서 보내셨습니다.]농담 같은 말과 함께 동그란 구슬 같은 게 돌연 눈앞에 나타났다.
고정된 형태가 없는 것처럼 찰랑이는 구슬은 그대로 내 가슴을 통과해 들어갔다.
곧 가슴 안쪽에서부터 충만한 기운이 흠뻑 차올랐다.
처음 겪는 감각은 아니다.
예전에도….
[관리자의 코어 일부를 획득하였습니다. (코어 완성도: 99%)]시스템창이 변화를 명시적으로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언제였는지 기억났다.
“그래. 저번에 그 녀석 코어 먹었을 때도.”
그러면 래리한테는 본인 코어가 얼마나 남은 거지?
계산은 어렵지 않았다.
시스템창을 보면 바로 나오니까.
[코어 완성도 99%]“……이거 미친놈인가?”
심장이나 마찬가지인 걸 나한테 싹 몰아준다고?
‘실패하면 죽을 만하네.’
[관리국이 당신의 말에 동의합니다.] [관리국이 당신의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당신의 코어가 일시 각성합니다.]그래도 코어 덕분에 좀처럼 내 몸 같지 않던 사지에 힘이 돌아왔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클래스 스킬 《단죄》를 획득하였습니다.] [클래스 스킬 《단죄》 – 당신의 삶은 얼마나 순수한가요? 대상과 삶의 결백함을 견주었을 때 당신이 그보다 깨끗하다면, 그가 지은 죄를 감히 심판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굴복시켰을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해당 스킬에는 대상이 지닌 힘에 비례한 쿨타임이 존재합니다.]
‘좋아.’
제로 잡기 딱 좋은 스킬이다.
모르긴 몰라도 내 인생이 그 자식보다 깨끗할 자신은 있었다.
‘이거 완전 일급수와 하수구 물 비교하는 꼴 아니냐고.’
[퀘스트를 진행하시겠습니까?] [Y/N]다만 최종 보스전에 돌입하는 퀘스트를 수락하기 전에 확인해야 하는 게 있었다.
“네 코어를 나한테 이만큼이나 주면 너는?”
내가 실패하면 래리는 진짜 죽는 건가?
아니면 이미 죽어 있는 건가?
아무리 관리자라는 초월적인 존재라고는 해도 심장이 1%만 남으면 오래 살기 어렵지 않나.
직접 오지 않고 시스템창으로 간접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것만 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게 분명했다.
“설마 희생이라도 할 생각은 아니지?”
시스템창 위에 나열된 평면적인 문자에서 녀석의 비꼬는 목소리가 다 들리는 듯했다.
그동안 미운 정이라도 든 것인지, 녀석의 과감한 투자에 감화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바짝 성낼 수 있을 만큼은 팔팔해 보이니 안심이 좀 된다.
“그럼 제로 코어 털어서 너한테 박으면 만사 오케이라 이거지?”
[맞습니다. 저는 희…어휴. 그런 거 할 생각 따위 없으니 잘 좀 해주시죠.]이 자식은 갸륵한 행동을 해도 꼭 미운 말을 서너 마디씩 더해서 점수를 깎아 먹는다니까.
[누가 할 소릴 하십니까? TP +5]이 자식이?
끝까지 성질을 긁는 녀석을 속으로 욕하면서 퀘스트를 수락했다.
[Y]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그쪽에서 먼저 현실에 있는 고객님을 찾아올 겁니다.] [얼마 전 제로를 상대하면서 고객님과 접촉하면 의식을 강제 전송시키는 주문을 걸어 두었습니다. 육체의 힘보다 영혼의 힘이 우위에 있는 공간으로요.]“내가 널 날려 버렸던 공간 말이지?”
[맞습니다.] [그럼 뒷일은 맡기겠]마지막으로 도착한 메시지의 중간 부분이 부자연스럽게 뚝 끊겼다.
더 부르지 않아도 녀석이 정말 위험한 상태에 빠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딱 기다려. 내가 한 번에 잡아 온다.”
마지막 인사 대신 다짐을 남겼다.
그런 직후.
풍선처럼 가볍기만 하던 내 몸이 천천히.
천천히.
중력을 느끼며 가라앉았다…….
“…….”
언제부터인가 익숙해진 병원 특유의 냄새가 났다.
‘내 몸이다.’
몸이 무거워도 너무 무거웠다.
늦은 시간인지 사방이 어둡고 고요한 와중에 아주 가까이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 자식이다.’
예민하게 곤두선 감각에 철천지원수의 존재감이 선연히 잡혔다.
[현재 각성 상태입니다.]덕분에 내 쪽으로 뻗는 손이 아주 잘 느껴졌다.
“이 × 같은 새끼.”
“어떻게…!”
나를 비춘 채 떨리는 붉은 눈동자를 보자 희열과 분노가 동시에 일어났다.
이 새끼 하나 때문에 지금 몇 명이나…!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제로의 손목을 쥔 손에 힘을 더하는 순간.
눈 부신 빛이 폭발하듯 퍼져 나갔다.
* * *
정신을 차리니 이번에는 눈이 아프도록 새하얀 공간에 떨어져 있었다.
“어떻게….”
저 새끼와 함께.
“아까부터 어떻게긴 뭐가 어떻게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제로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이놈도 완벽한 상태는 아니다.’
나를 해하려던 상대를 홀로 맞닥뜨렸다는 데서 오는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묘하게 반응이 느린 제로의 멱살을 휙 잡아채 바로 바닥에 메다꽂았다.
콰아앙!
무시무시한 충격음이 났다.
“윽…!”
“어떻게 그런 짓을.”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진 서문결이 떠올랐다.
다른 형들의 파리하게 질린 얼굴이 떠올랐다.
“감히 어떻게!”
쓰러진 제로의 몸 위에 올라타 녀석의 상체를 들어 올렸다가 다시 땅에 처박았다.
“너도…!”
반항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던 제로가 처음으로 반격다운 반격을 했다.
“컥….”
“너도! 언젠가는 버려질 거다! 널 사랑한다고 말하던 이들이 너를 떠나는 걸 네 두 눈으로 보고 말 거야. 그 순간이 살덩이가 도려내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는 걸 나는 알아.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하다는 것처럼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그것들에게 함부로 정을 주었던 내 과오가 떠올라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너만은 그 고통을 면하게 해주겠다는데 어째서!”
관리자로서 사용하던 존대도 내던진 제로의 붉은 눈에서 독기와 울분이 줄줄 흘렀다.
“……그건.”
그걸 보니 집 나갔던 이성이 반짝 돌아왔다.
“그건 당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