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402)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402화
내 말을 들은 제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뭐라고?”
“마음이 변하는 건 당연하다고.”
같은 말에 살을 덧붙여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제로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그는 내게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얼이 빠진 듯 나를 붙잡은 손에서 힘이 약간 풀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어떻게…….”
그저 내 말을 순수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일생을 좌우하던 당연한 명제가 흔들린 사람처럼 아연할 뿐이었다.
“널 이용만 하다가 배신한 인간들은 솔직히 나도 개자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거랑 네가 하는 말이랑은 별개 아니냐?”
제로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어린애처럼 굴고 있었다.
곁에 있던 사람이 언젠가 떠나는 건 이 더럽게 복잡한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는 몇 안 되는 일인데.
“영원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에 한없이 가까운 일이잖아.”
죽을 때까지 나나 우리 그룹을 사랑해 줄 대단한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절대다수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물론 얼마 전까지 내 팬이었던 사람이 더 이상 내 팬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당연히 슬프고 당연히 아쉽고 당연히 그립겠지.”
“…….”
“그렇다고 해서 내가 팬들한테 준 마음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지는 않아.”
나만 내 마음을 준 게 아니다.
“팬들도 나한테 자기 삶을 나눠줬잖아. 네가 알지는 모르겠는데, 누군가의 삶에 들어가는 걸 잠깐이라도 허락받는 건 네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고 벅찬 일이거든?”
누구든 단 한 순간만이라도 날 사랑해 주길 바라던 때를 잊지 않았다.
“그러니까 난 평생까지는 필요 없어. 물론 주면 기꺼이 받겠지만. 그 사람의 일부를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누군가는 그래 봤자 일부에 불과하다고 평할 그 조각들이 모여서 끝내 내 전부를 이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너, 팬들을 너랑 동등한 개인으로 생각하면 안 돼.’
그때는 반요한이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나 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안다.
‘팬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되 그 개개인에게 연연하면 안 된다는 거겠지.’
나는 한 명이고 팬들은 수천수만 명이니까.
겨우 얼마 전에야 이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깨달았는데 그 자식은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니.
‘재수 없는 자식.’
반요한의 통찰대로.
평생을 다해도 모든 팬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아이돌.
언제든 아이돌을 두고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는 팬.
둘은 절대 동등해질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불공평한 관계였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도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행복해. 내 감정을, 내 인생을 네 멋대로 부정하지 마.”
“왜 너는.”
비록 제로는 내 말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 눈치였지만, 애초에 내 말 몇 마디로 생각을 바꿀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녀석을 향한 내 분노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고 이제 끝낼 시간이었다.
[클래스 스킬 《단죄》를 대상: 관리자 2320호에게 사용하시겠습니까?] [예상 쿨타임: 측정 불가]“난 잘 살았고, 잘 살 거다.”
“왜 너만…….”
[Y/N]“그러니까 이제 그만 내 인생에서 꺼져.”
[Y]하얀 굉음과 함께 세상이 갈라졌다.
* * *
《단죄》 스킬의 여파가 지나간 뒤 제로가 있던 자리에는 검붉은 빛을 띤 구슬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게 코어겠지?”
여러 의미로 꺼림칙한 구슬을 조심스럽게 챙겨드는 것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제로가 내 인생의 최종 보스가 맞기는 했는지, 레벨 업 알림이 끝도 없이 울렸다.
[분배 가능한 스탯 포인트가 있습니다.] [분배 가능한 스탯 포인트가 있습니다.] [분배 가능한 스탯 포인트가 있습니다.]렉이라도 걸린 것처럼 연속해서 떠오르는 레벨 업 안내창들을 모두 지웠더니 제일 중요한 알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관리자 14227호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Y/N]고민 없이 Y를 선택했다.
눈앞에 외길이 나타났다.
수직으로 꺾이기도 하고 같은 자리에서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게 하기도 하는 그 길을 따라 얼마간 걸으니 저 멀리 보이지 않는 벽에 기대어 잠든 래리가 보였다.
“야, 코어 가져왔다. 일어나.”
가져온 제로의 코어를 축 늘어져 있는 래리의 가슴 한복판에 바로 푹 밀어 넣었다.
잠시 뒤, 래리가 의식을 되찾았다.
“……그렇게 중요한 걸 그런 식으로 막 다루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난 또, 막 주길래 막 다뤄도 되는 건 줄 알았지.”
몸을 바로 세운 래리가 소리 없이 웃었는데 비뚤어진 기색이 전혀 안 보였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던데, 죽을 뻔해도 변하나 보다.
“이건 왜 남는 거야?”
손톱만 한 크기의 코어가 남아 동동 떠 있는 걸 본 내가 물었다.
“100%를 초과해서 흡수할 수는 없거든요.”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코어 100% 만들게 나 줘.”
그러나 래리는 오히려 코어를 자기 쪽으로 가져갔다.
“왜 안 주냐? 이제는 아깝다 이거야?”
“코어가 완전해지면 사후에 빼도 박도 못 하고 관리국에서 근무하셔야 하는데요.”
“뭐?”
“저야 고객님처럼 유능한 힐러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만, 그런 건 별로 원하지 않으실 것 같아서. 아니면 혹시 드디어 제 힐러 제안에 긍정적인 관심이 생기신 겁니까?”
“당장 치워라.”
그런 블랙 기업에 누가 취직할까 보냐.
모르고 바로 먹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럼 이건 제가 잘 보관해 두었다가, 후에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사용하겠습니다. 신격이 녹아 있어서 그런지 이 정도만 돼도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아서요.”
“그러든지.”
래리가 남은 코어를 갈무리해서 넣는 것을 지켜본 내가 물었다.
“그럼… 이제 다 끝난 거지?”
“그렇죠.”
“뭔가 찜찜하네.”
“왜 그러십니까?”
떠오른 감상이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달싹이다가 툭 내뱉었다.
“제로가 불쌍해서.”
“그 정도로 아량이 넓으신 분인 줄 제가 미처 몰라뵈었군요.”
“나 아직 너로 홈런 날릴 수 있다.”
“죄송합니다.”
주먹을 불끈 쥐며 현실을 일깨워주자 래리가 빠르게 사과했다.
“답지 않게 왜 그런 동정심을 품으신 겁니까?”
“아니, 나한테 한 짓만 제외하면… 제로는 호구였어.”
언사를 한 번 지적받은 래리는 이제 말 대신 표정으로 이견을 표했다.
해석하자면 ‘세상 호구가 다 죽었습니까?’ 정도의 표정이 되겠다.
“아니. 들어봐. 그러니까 물론 팬들이 나를 보면서 기뻐하고 행복해하기를 바라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나를 위해서 아이돌을 열심히 하는 거거든? 춤추는 게 좋고, 노래하는 게 좋고, 팬들이 좋아해 주는 게 좋아서.”
“무슨 그런 당연한 말씀을 새삼스럽게 하십니까.”
“당연한 건데…… 제로는 그걸 못 했어. 배신당하기 전까지 오로지 타인의 행복만을 위해서 산 것처럼 보였거든. 정작 본인 행복은 아무 데도 없던 것 같아서. 그게 좀 불쌍하네.”
그렇게 난동을 부렸으면서 막상 끝은 순순히 받아들인 이유가 뭐였을까.
상처 많은 눈동자와 체념 어린 목소리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동정하시는 건 좋지만, 그 때문에 고객님이나 동료분들이 죽을 뻔했다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야, 그걸 잊으면 내가 그 자식보다 더한 호구지.”
“이래야 제 고객님이죠.”
제로에 대한 감상을 곱게 접어두고 나니.
대체 이번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막해져 왔다.
“이번 일 멤버들한테 얘기해도 되냐?”
“얼마든지요. 가족분들한테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가족은 가족이라 되는 줄. 진짜 해도 되는 거 맞지?”
“예.”
서문결을 살리기 위해 멤버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썼던 은총 정도는 어느 정도 털어놓더라도 원흉인 제로가 속해 있던 관리국 얘기 같은 건 비밀로 해야 할 줄 알았다.
보면 안 될 걸 보고 알면 안 될 걸 알았다면서 래리가 멤버들의 기억을 지워 버리는 것까지 상상했는데, 현실은 꽤 후했다.
“고객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어디 가서 얘기하고 다닐 만큼 혓바닥이 가벼운 분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관리국 정보를 함부로 나불거렸다가는 안 좋은 꼴을 당하게 될 거라고 함께 경고해 주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넌 꼭 한마디가 많아.”
“제 매력이죠.”
음, 익숙한 헛소리군.
“진실을 감출 필요도, 모든 걸 털어놓을 필요도 없습니다. 부디 고객님 마음 가는 대로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더 부담되네. 이렇게 하라고 딱 정해주는 게 편한데.”
하지만 편한 길로만 가면 재미없지.
“잘 얘기해 볼게.”
“행운을 빕니다.”
눈을 한 번 깜빡였다.
다음 순간, 현실에 있는 내 몸에서 예고도 없이 눈을 떴다.
“!”
“막내야!”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