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404)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404화
내가 결정적인 무언가를 꼭꼭 숨긴 채 여태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요한은 이미 확신하고 있다.
반요한이라면 나도 모르는 새 흘린 여러 단서를 놓치지 않았을 테고, 무엇보다 그 녀석의 편지까지 보지 않았나.
내가 처한 상황이 일반인의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는 탓에 아무리 영민한 반요한이라도 그동안은 진상에 다가가기 쉽지 않았겠지만, 이번 일로 대략적인 윤곽이 그려졌을지도 모른다.
평행세계 같은 큼직한 키워드가 몇 개씩이나 주어진 데다가 이젠 온하제로 살아가고 있을 녀석의 흔적이 곳곳에 선명히 남아 있던 픽하트 시절부터 함께했으니까.
‘오래 보긴 했네.’
그런 것치고는 유한 종용인 것도 맞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지나온 과거를 털어놓기에 지금만큼 좋은 기회가 또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사람들이 내 모든 걸 알아준다면 벅차도록 기쁠 거라고.
오래전의 나 자신도 생각하지 않았던가.
“…….”
한편으로 온하제로 살았던 삶을 떠올렸다.
내 부정적인 감정들이 군데군데 흉터처럼 새겨진 필름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감겼다.
꿈으로부터 한 번 도망친 새벽의 서늘한 공기. 성인이 되자마자 알코올 향에 무뎌질 때까지 속에 들이부었던 술의 씁쓸함. 혼자서는 도무지 떨칠 수 없었던 외로움.
그 순간들을 묘사하는 문장들이 목구멍에 턱 걸려 좀처럼 넘어가지 못했다.
래리에게는 그곳에서도 잘 살았으니 내 인생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지껄였던 주제에.
‘정작 나는 그때를…….’
주먹을 꽉 쥐었다 풀며 술렁이는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지금은 아니다.’
언젠가 먼 훗날 말한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었다.
그 대신은 아니지만, 반요한에게는 할 말이 있었다.
나는 반요한의 총명한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형이 예전에 해줬던 말 있잖아.”
“내가 해줬던 말?”
“팬들을 나랑 동등한 개인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
반요한은 잠시 고민하며 기억을 되짚는 시간도 없이 내 말을 듣자마자 아, 하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 표정을 지었다.
“도움 많이 됐어.”
“어….”
“고마워.”
“그래.”
“그리고 형이 하는 얘기 매번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미안해.”
반요한의 표정이 묘해졌다.
“아니….”
“나도 앞으로 형이랑 잘 지내고 싶어.”
“그래…?”
대체로 얄미울 정도로 확실한 반요한답지 않게 반응이 애매했다.
속내를 알기 어렵다는 것만큼은 평소와 같았는데.
적어도 내가 끝내 입을 다물고 말을 돌려 실망한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까지와는 다른 형태로 호감도 알림이 떠올랐다.
상대방의 감정과 구체적인 수치까지 세세하게 알려주던 전에 비하면 많이 간소화됐다.
‘갑자기 이렇게 바뀐 이유라도 있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약간 긴장한 상태로 우리 둘을 주시하던 강지우가 돌연 씩 웃으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막내야, 미안해할 필요 전혀 없다. 이 자식은 원래 예민하게 들을 수밖에 없게 말하는 버릇이 있으니까.”
“하하, 조용히 해.”
반요한이 페이스를 되찾고 강지우를 응징하는 그때였다.
타이머 시간이 ‘00:00’까지 떨어지며 관리국에서 쳐둔 비밀 보호 시스템이 사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아, 시간 됐다.”
그러자마자 이쪽을 향해 터벅터벅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와 정신을 차린 나와 나를 둘러싼 멤버들을 발견했다.
그는 깜짝 놀라 자리에 있던 멤버들을 꾸중했다.
“환자분이 깨어나셨으면 바로 부르셨어야죠!”
“죄송합니다….”
이윽고 내가 깨어났다는 연락을 받은 가족들이 허겁지겁 찾아와 멤버들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라온.”
이게 대체 올해만 벌써 몇 번째로 보는 가족들 얼굴인가.
잠깐 안 본 사이 잘생긴 얼굴이 반쪽이 된 부모님과 피부가 푸석푸석해진 온세하가 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걱정시켜 드려서 죄송해요.]”
“[그래…….]”
비록 서로가 정상적인 부모 자식 노릇을 하게 된 지도 얼마 안 됐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식 된 도리로 이런 사건에 몇 번이나 얽혀드는 건 형식적으로라도 죄송해야 할 게 맞는 것 같았다.
“[몸은. 괜찮은 거 맞지?]”
“[네. 이제 다 괜찮아요.]”
당연하게도 은총으로 회복된 내 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했다.
걱정하는 부모님을 안심시키는 데에는 은총에 관한 걸 밝히는 것만 한 게 없겠지만, 이왕 불효한 거 조금만 더 하기로 했다.
은총은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문제였다.
대신 제로를 격퇴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동안 문제 일으키던 제로도 이번 기회에 잡았어요. 정말 확실히 끝났으니까 제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날 일 없을 거예요.]”
“[정말이냐?]”
“[정말이에요.]”
확신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부모님이 한결 안심한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
약간은 어색한 침묵이 내린 사이, 살짝 열린 문틈 새로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내 숙소 오면 먹고 싶은 반찬…….
-형, 저도 동생인데…….
-형도 아직 컨디션 회복 안 됐잖아. 무리하지…….
늦은 시간이라 사위가 고요해서 그런지 별로 큰 목소리가 아니었는데도 대화 내용이 잘 들렸다.
이야기가 들려오는 방향을 흘긋 본 아버지가 차분히 말했다.
“[낮에 저 애들이 찾아와서 잠시 만나 봤는데 바르고 착한 애들처럼 보여서 안심이 된다.]”
“[네. 정말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있나 싶을 만큼 좋은 사람들이에요. 많이 의지도 되고,]”
다시 침묵.
이분들 성격상 할 말을 마쳤으면 자리를 떴을 텐데 아직 계신 걸 보면 무언가 용건이 남은 것 같았다.
과연 조금 더 기다리자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라온아.]”
“[네.]”
“[혹시…… 우리가 당분간 한국에서 지내는 건 어떻겠니?]”
“[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눈이 크게 뜨였다.
진지한 눈치로 보아 기껏해야 일이 주쯤 한국에 머문다는 게 아니라, 아예 한국에 들어와 산다는 걸로 보였다.
“[저 때문에 괜히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스케줄 때문에 멤버들도 가족 얼굴 자주 못 보는데요. 저희 이번에 해외 투어 나가면 한국에 있는 시간도 얼마 없을 거고…. 그리고 두 분 다 미국에서 일하시잖아요. 형도 그렇고.]”
“[난 계속 미국에 있을 거긴 한데, 어머니 아버지가 한국 들어가도 상관없어.]”
물론 이 인간은 상관없겠지.
“[우리도 괜찮아. 그냥 그렇게라도 네 곁에 있고 싶어서 그래.]”
“[그럼… 두 분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정말 괜찮아? 우리가 그러면 네가 불편하지 않겠어?]”
솔직히 본가가 미국에 있는 걸 알게 된 이래로 부모님이 나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 사는 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지만…….
얼마간 고민한 나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같은 나라에 사는 게 싫은 정도로 두 분이 불편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딱딱했나 싶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도 가족들이 가까이에 있는 게 좋아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아버지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고맙다….]”
얇은 환자복 너머로 전해지는 체온이 낯설도록 따뜻했다.
* * *
온라온이 의식을 되찾은 이후 혼란스럽던 외부 상황도 서서히 정돈되었다.
시드 엔터는 모든 멤버가 무사함을 다시 한번 확실히 알려 에어리들의 걱정을 대폭 줄여주었고, 실종되었던 이영민도 돌아와 기자들의 이목을 끌기 전 사표를 제출했다.
회사는 이제는 정말 쉬고 싶다고 말하는 이영민을 차마 붙잡지 못했다.
사실은 세상 이목을 끌대로 다 끈 몸으로는 더 이상의 관리국 임무 수행이 어렵다는 게 매니저 일을 그만둔 진짜 이유였다.
온라온은 그 개성 있는 몸을 하고 이목을 끌지 않으려 생각했다는 걸 어이없어하면서도 유능한 매니저 하나가 사라져 아쉬워했다.
한편으로는 모 국회의원이 음주운전 처벌 강화 법안을 발의해 매스컴의 이목을 끌고, 그에 따라 내 새끼들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팬들이 분노하고…….
그러는 사이 오르카는 두문불출했다.
시드 엔터는 정말로 무시할 수 없는 위약금이 걸려 있거나 업계 평판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제외한 모든 스케줄을 취소했다.
억지로 우겨서 은총을 쓴 온라온 덕분에 완벽히 회복한 멤버들은 일에 대한 의지를 보였지만 반가을과 곽상현을 필두로 한 회사는 완강했다.
“저희 일하고 싶은데요.”
“어디가 어떻게 됐을 줄 알고! 너희가 이번에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교통사고가 무서운 게 언제 어떻게 후유증이 나타날지 몰라서야.”
“그래. 대표님 말씀 들어. 적어도 한 달은 무조건 쉬면서 컨디션 회복해. 부모님들도 걱정 많이 하신다.”
이번 일로 십 년은 늙었다는 부모님들까지 나서서 아무 생각 없이 쉬도록 압박해 오는 바람에 멤버들은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래도 이참에 리얼리티 같은 거라도 찍으면 좋지 않을까요? 본격적인 촬영까지는 아니어도 적당히 편한 일상 공유 느낌으로 촬영해서 올리면 팬분들 좋아하실 것 같은데.”
“얘들아. 제발 일 생각을 버려. 너네 미리 찍어둔 쇼츠 영상만 업로드해도 한 달 버티고도 남는다.”
덕분에 오르카 멤버들은 세상과 단절된 채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