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6)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6화
1등 자리는 괜히 1등 자리가 아니었다.
허리 똑바로 펴고 한껏 바른 자세로 앉아 있어도 편하다.
이게 참 대단한 거다. 몇백짜리 의자도 이렇게 하기 쉽지 않은데.
‘게임 하느라 허리 작살 났는데 이 의자 하나만 집에 들고 가고 싶네.’
천만다행이게도 내 뒤에 들어온 연습생들은 1등 자리를 노리지 않고 얌전히 90등대 의자에 앉았다.
나였다면 ‘온라온’처럼 만만해 보이는 놈이 1등에 앉아 있으면 한 번 찔러보기라도 했을 텐데, 이렇게 패기들이 없어서야.
그렇게 100개의 의자가 빠짐없이 주인을 찾았다.
막간을 이용해 픽하트의 메인 PD인 조인수 PD가 나와 ‘너네 앞으로 죽을 만큼 힘들겠지만 그 이후에 월드 스타 만들어줄 테니까 우리가 좀 많이 빡세게 굴려도 군말 말고 따라라’라는 요지의 일장 연설을 하고 다시 사라졌다.
그 꼰대 같은 말을 대강 흘리고 가장 위에서 연습생들의 이름과 뒤통수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 붉은 하트 로고가 떠 있던 전광판 화면이 바뀌었다.
PD의 등장에 굳어 있던 연습생들이 탄성을 흘렸다.
이미 누가 나오는지 아는 눈치들이었다. 너희만 알지 말고 나도 좀 알자.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와아아아!”
누군지 모습이 확실히 드러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연습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제나]매력적인 외모뿐 아니라 걸음마다 뿜어져 나오는 포스가 제나라는 여자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화면이 바뀔 때부터 연습생들이 치던 박수가 멎자, 레드 정장이 끝내주게 잘 어울리는 여자, 제나가 무대 중앙에 서서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픽 유어 하트 시즌3에 픽하트 엔터테인먼트 이사를 맡게 된 제나입니다.”
다시 한번 제나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진짜 너무 예쁘시다.”
“빛제나. 갓제나.”
출연자들 리액션이 참 좋다. 저렇게 하지 않으면 방송 분량이 확보가 안 되니 그런 거겠지.
“제가 시즌1에 이어 이렇게 다시 픽하트 이사가 되었는데 이번 시즌3에도 어떻게, 100명이 모였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연습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앞선 시즌의 선배 그룹들이 워낙에 잘된 탓에, 어쩌면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시즌1과 시즌2에서 픽 유어 하트는 전적으로 시청자의 뜻에 따라 데뷔 멤버를 선발했습니다.”
거짓말.
“이번 시즌에도 연습생들의 무대 위 모습과 무대 아래 모습, 양쪽 모두를 관심 깊게 지켜본 팬들의 선택을 받은 연습생만이 3차에 걸친 방출 위기에서 살아남아 데뷔의 꿈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방출이라는 냉정한 단어에 한껏 들떠있던 연습생들이 저마다 고개를 숙이거나 한숨을 내쉬거나 표정을 굳혔다.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안타깝다는 듯 눈썹을 늘어뜨린 제나가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1년에 수십 팀의 아이돌이 데뷔하고 그만큼 잊히는 것이 가요계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픽 유어 하트 시즌 3에서는 이전 시즌과는 두 가지 차별점을 두었습니다.”
제나의 말이 끝나자 화면에 ‘GLOBAL’과 ‘SELF PRODUCING’이라는 단어가 나타났다.
“보시는 대로 시즌 3의 목표는 글로벌, 그리고 셀프 프로듀싱입니다.”
연습생들이 가볍게 술렁였다.
“먼저 전격적인 해외 진출을 목표로 이번 시즌에는 외국인 연습생의 수를 대폭 확대하고, 최종 데뷔 그룹의 활동 기간을 2년 6개월로 늘려 원활한 해외 활동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냥 국내에 연습생 부족해서 외국에서 오디션 급하게 보고 데려온 거 아닌가 의심스럽지만 일단 그렇다니 넘어가자.
“이번에는 앱을 통해 해외 팬들도 투표가 가능하다는 점, 참고해 주세요.”
보인다. 앱 서버 먹통 돼서 앱스토어 별점 1점대가 되는 미래가.
자체 프로듀싱과 전문가 평가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퀘스트 설명과 기사에도 언급됐던 전문가 평가가 뭔가 했더니.
“완성된 그룹의 실력 확보를 위해 최종 데뷔 평가 무대에 선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기존 투표에 전문가의 평가를 더해 각각 작사·작곡, 안무 창작, 랩 메이킹 등이 가능한 보컬, 퍼포먼스, 랩 포지션 연습생을 1명씩 그룹 내 서브 리더로서 선발합니다.”
연습생들 사이에 어수선하게 소란이 일었다.
“단순 득표수로는 데뷔권 밖이지만 충분한 실력을 갖춘 연습생이 전문가 평가 점수를 높게 받아 책임감을 가지고 그룹을 이끌 서브 리더로서 10위 안에 들어 데뷔할 가능성 또한 있다는 뜻이겠죠. 모든 연습생은 이 사실을 잊지 말고 모든 평가에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조작하기 참 쉬워 보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나, 비정상인가요?
“이 100명의 연습생 중에서 누가 데뷔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PD는 알겠지.
“여러분 모두가 이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동안, 앞서 참여했던 선배들처럼 눈부시게 성장할 테니까요. 앞으로 그 성장을 있는 힘껏 도와줄 우리 픽 유어 하트의 멘토단을 소개합니다!”
전광판에 ‘픽 유어 하트 멘토단’이라는 말이 떠오름과 동시에 다섯 명쯤 되는 사람들이 연습생들의 박수 세례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름들이… 묵혜성, 한지희, 석수영, 이창연, 주안.
일렬로 서 있는 제나와 멘토단은 속된 말로 있어 보였다.
흥분한 연습생들이 속삭였다.
“라인업 장난 아니다.”
“와, 묵혜성 님은 이런 데 잘 안 나오신다는데. 섭외력 무슨 일.”
“시즌1이나 2에서 화제 되신 분들은 그냥 다 나오셨어.”
아무튼 저 대단한 사람들 앞에서 내 초라한 노래와 춤을 보여야 한다, 이 말이지.
‘미리 죄송합니다.’
“그럼 다 같이 여러분을 지켜봐 주실 픽하트 엔터테인먼트 대표님께 인사할까요?”
여기서는 투표하는 팬이나 시청자를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대표님이라니. 시청자들로 하여금 권력을 쥐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호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픽하트 엔터테인먼트 대표님! 잘 부탁드립니다!”
* * *
뒤이어 시작된 멘토 평가는 소속사별로 연습생들이 나와서 미리 준비해 온 노래나 춤, 랩 등의 퍼포먼스를 멘토들에게 선보이는 1차 평가였다.
그 결과로 저렇게 반이 나뉜다.
“초이 엔터테인먼트 나윤재 연습생은 석수영 멘토, 김세종 연습생은 주안 멘토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해봐요, 우리.”
“네!”
픽하트는 멘토별로 반을 나누고 있었다.
먼저 한지희는 모든 능력치가 준수하고 보다 세세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는 연습생들을 주로 뽑아갔다.
석수영은 평균적인 실력이 크게 나쁘지 않지만 춤이 부족한 연습생을, 이창연은 비슷한 수준이면서 보컬이 부족한 연습생을 데려갔다.
주안은 랩 포지션 연습생과 기초는 어느 정도 있지만 석수영이나 이창연이 뽑기에는 실력이 부족한 연습생을 선발했다.
마지막으로 묵혜성은 누가 봐도 상태가 심각한 연습생들을 데려가고 있었다.
춤이든 노래든, 어느 하나가 수준 이하로 처참하다면 다 묵혜성의 부름을 받았다.
부족한 분야에 따라 반을 나누는 건 제법 효율적으로 보였다.
‘내가 어딜 갈지는 뻔하네.’
연습생 때 배웠던 엉터리 기본기조차 말끔하게 까먹은 데다가 스탯도 그 모양이니.
이번에 무대 위로 올라온 건 일본인 연습생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스타 스테이지의 나가세 리츠.”
“노마 하루토!”
“아즈미 렌입니다!”
알아듣기에는 크게 불편하지 않은 발음으로 소개를 마친 일본 연습생들에게 제나가 따뜻하게 말했다.
“무대 바로 볼게요.”
연습생들이 무대를 준비하는 사이 자료를 들춰보던 멘토단이 저들끼리 뭐라고 말하는데 잘은 안 들렸다.
“일본 친구들이네.”
“얘네는 한국에서 연습한 연습생이 아니라, 그냥 일본에서 바로 넘어온 그런 애들인 거지, 지금?”
“네.”
1등 자리가 다 좋은데 이게 나쁘다. 멘토들이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려.
밑에 쪽 애들은 멘토들이 뭐라고 하는지 다 들릴 거 아니야. 재밌겠지?
그렇다고 90등대 자리에 목숨 걸고 앉고 싶다는 말은 아니지만.
잠시 뒤, 음악이 흘러나왔다.
멘토단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실시간으로 차가워지는 현장 분위기를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았다.
적어도 한국 아이돌로는 절대 먹히지 않을 수준 이하의 무대.
한 파트가 끝날 때마다 연습생들도 멘토들도 아이고, 아이고, 탄식을 내뱉었다.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석수영이 한탄했다.
“어떡하냐, 이걸.”
일찍이 현실에서 일본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한 괴소문을 접한 적이 있던 나는 박자에 맞춰 소리 없는 박수를 치며 호응할 만큼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무대가 끝나고 멘토들 사이에서 막막한 한숨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무거운 침묵이 지나고, 대표로 마이크를 잡은 제나가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아이돌로 데뷔하려면 아직 한참 부족한 게 많아요.”
“지금 뭘 보려고 해도. 제대로 정리된 게 하나도 없거든요.”
“스타 프로덕션 전원, 묵혜성 멘토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묵혜성이 이제까지 어떤 연습생들을 데려갔는지 아는 스타 프로덕션 연습생들은 침울해졌다.
리더 격으로 보이는 나가세 리츠가 그나마 다른 둘보다는 빠르게 정신을 수습하고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비록 지금 어깨를 늘어뜨리고 무대를 내려가는 일본 연습생들은 죽을 쒔지만, 남자편이었던 시즌1으로 이미 상당수의 연습생이 소모되었을 걸 감안하면 외국인 연습생들을 포함한 전체적인 수준은 괜찮은 편이었다.
평균 실력으로 대중한테 까이지는 않을 정도?
“안 피곤하세요?”
무대와 무대 사이의 텀을 타 2등 자리에 앉아 있던 연습생 서찬빈이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며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피곤할 리가.
[침대는 스페이드 침대, 의자는 1등 의자. 피로도 –10]시간이 갈수록 지치는 게 아니라 체력을 회복시켜가면서 앉아 있는데.
덕분에 빙의한 이후로 가장 생기로운 상태가 아닌가 싶다.
몸이 편하니 마음도 여유로워 상냥한 목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워낙에 무대가 볼 게 많아서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안 피곤한 것 같아요.”
“우와. 아직 무대 안 하셨죠?”
“네. 언제 할지 몰라서 좀 떨리네요.”
“파이팅하세요.”
“네. 파이팅.”
속내야 어떻든 서로 훈훈하게 응원해 주던 참에 스태프가 아래쪽에서 지시를 내렸다.
“트루 오현진, 개인연습생 온라온, 웨스 뮤직 김준우, 윤명수 아래로 내려와서 대기하세요!”
드디어 내 차례다. 그런데 오현진이랑 같이 부른 게 과연 우연일까?
“잘하고 오세요!”
“열심히 하고 오겠습니다.”
제가 이제 겨우 레벨 3이라서요. 잘하겠다는 말은 차마 못 드리겠네요.
겉보기에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내게 연습생들의 시선이 몰리는 게 느껴졌다.
예상 등수는 100등 써놓고 1등 의자를 차지한 놈이 드디어 무대를 한다니 관심이 갈 것이다.
가장 아래쪽, 스테이지 뒤쪽으로 향하자 스태프가 이것저것을 설명해 주었다.
“오현진 연습생, 온라온 연습생, 웨스 뮤직 순서입니다. 오현진 연습생은 여기서, 온라온 연습생이랑 웨스 뮤직 분들은 여기까지 오셔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살짝씩 연습하셔도 되는데 너무 큰 소리만 나지 않게 해주세요.”
“네.”
무대 위에서 다른 연습생의 평가가 이뤄지는 동안 인이어를 찼다.
물론 커스텀 이어폰은 꿈도 못 꾸고, 반창고로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한 낡은 이어폰이었다.
“왜….”
나를 보며 무언가 말하려던 오현진은 다음 연습생은 올라와 달라는 제나의 부름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왜, 뭔데. 말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