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73)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73화
무슨 맥락에서 나온 욕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단지 오현진은 안 그런 척하지만, 몹시 초조해 보였다.
내가 단번에 ‘낮과 밤’ 안무를 숙지해서 트루 소속 안무 트레이너에게 “감 돌아왔구나!” 따위의 격한 칭찬을 들어서인가?
뭐가 됐든 꺼지라는 소리가 달갑지는 않아서 나는 아까 반요한이 했던 짓을 모방해 안면근육 하나하나가 피곤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웃으며 나긋나긋하게 답했다.
“너 때문에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야겠다.”
오현진의 호감도가 떨어졌다.
알 바 아니었다.
오현진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시간이 늦어 최소한의 조명만 켜 놓은 로비로 나왔을 때였다.
“라온아.”
캐주얼하면서도 너무 격 없어 보이지는 않는 차림을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나오는 나를 발견하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나도 아는 사이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화답했다.
물론 모르는 사람이었다.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을 통해 남자의 이름이 길준용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잠깐 얘기 좀 하자.”
“일행이 있어서요.”
나는 앞서가느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반요한을 흘긋 보며 답했다.
“섭섭하구나.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인데 잠깐 얘기도 못 하겠어?”
글쎄. 내 직감에 따르면 별로 좋지 못한 사이였을 것 같은데.
나는 바쁜 티를 내듯 핸드폰으로 시간을 슬쩍 봤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5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도 오랜만에 봤는데 5분은 너무 짧지 않냐.”
“막차 시간 때문에 더는 안 돼요.”
거북할 정도로 새까만 눈동자가 서서히 움직여 나와 시선을 맞췄다.
“자리를 옮기자.”
“시간도 없는데 여기서 하시죠.”
“어른 말을 잘 듣는 아이였는데.”
“일행을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현재 호감도가 애매하게 플러스인 게 더 기분 나쁘다.
그동안 겪어본 결과 호감도는 단순히 나를 좋아한다, 싫어한다로 나뉘는 게 아니었다.
‘이 자식 호구 같아서 다루기 편하네?’처럼 악의적인 인식을 가져도 호감도는 상승할 수 있었다.
즉 현재 호감도가 플러스라고 무조건 내게 이롭거나 호의를 가진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호감도가 50이 훌쩍 넘은 사람은 정말 말 그대로의 호감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았지만.
길준용은 그런 것도 아니니 나를 ‘만만해서 다루기 편한 애새끼’ 정도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았다.
[놀라운 통찰! 지혜 +1 직감 +2]제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죠.
오늘따라 시스템이랑 죽이 잘 맞는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오는구나. 감개가 무량하다.
“춤은 다시 출 수 있게 된 거야?”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을 때, 길준용과 눈이 마주쳤다.
새까만 빛으로 번들거리는 눈이 흡사 키틴질로 이루어진 곤충의 껍질 같다고 생각한 찰나, 내 시야가 크게 울렁였다.
과거 체험의 전조 증상이었다.
‘지금요? 여기서요?’
웬일로 죽이 잘 맞는다 싶었던 시스템은 전처럼 내 의사를 크게 고려하지 않고 과거를 재생했다.
– 라온아, 요즘 대체 왜 그러니?
……아까 내게 감이 어느 정도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던 댄스 트레이너다.
그 옆에는 ‘온라온’이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팔다리로 체중을 지탱하는 엎드려뻗쳐 자세로 기합을 받고 있었다.
핏기없이 하얀 얼굴이 우울에 잠식된 게 느껴졌다.
– 기대 많이 했는데…. 너 이대로 가다가는 이번 월말 평가도 최하점 맞을 게 뻔하고, 그럼 퇴출이야, 퇴출!
댄스 트레이너가 답답하다는 듯 고함을 쳤다.
온라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더욱 푹 떨궜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는지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보였다.
쌤들이 챙겨준다고 욕먹었던 지난번 과거랑은 차이가 너무 크지 않냐?
‘이건 챙겨주는 게 아니라 갈구는 거잖아.’
이번에 보여줄 기억은 여기까지라는 듯 물속에서 쭉 끌려 나오는 기분이 들었고, 나는 환상에서 벗어났다.
“왜 대답이 없어.”
길준용이 ‘다시’ 출 수 있게 되었냐고 묻는다는 건 추지 못했던 적이 있기라도 하단 건가?
트레이너들이 챙겨줄 만큼 실력이 좋았던 애가 월말 평가도 연이어 망하고, 퇴출 이야기까지 나올 만큼 벼랑 끝으로 몰릴 이유가 뭐가 있지?
슬럼프? 부상?
정보가 단편적이라 자세한 내막까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지금의 내가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은 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네.”
다행히 영영 회복 불가능한 종류의 원인은 아니었는지 길준용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애초에 춤출 수 있는 거 다 알면서 왜 물어본 건데.
“한국말도 잘하는구나. 가르쳐 줄 땐 그렇게 안 늘더니.”
그따위 환경에서 말이 느는 게 오히려 신기하지 않나.
한국어로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발음 왜 그러냐고 뭐라고 했을 새끼들이 한 트럭인데.
“환경을 바꾼 게 도움이 됐나 봐요.”
묘한 뼈가 느껴지는 길준용의 말에 나는 최대한 성질을 죽이고 단조롭게 대꾸했다. 죽인 거 맞다.
트루가 온라온에게는 최악의 환경이었다는 건 엄연한 사실 아닌가.
[부자연스럽지 않은 연기로 당신을 아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속였습니다. 연기력 +3]입매를 움찔거렸던 길준용이 조금 뒤 입을 열었다.
“그 환경 말인데.”
이게 본론이구나.
“다시 우리 회사로 돌아오는 건 어떻냐.”
옆에서 곽상현에게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던 반요한이 고개를 들더니 우리 쪽으로 일별을 던졌다.
“…무슨 말씀이세요?”
“너도 알다시피, 네가 회사를 나갈 때 상황이 여러 가지로 나빴잖니. 나는 너를 계속 안고 가고 싶었는데 회사 내부 상황이 안 좋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예… 뭐.”
그러시겠죠.
이로써 ‘온라온’은 타의로 트루를 나왔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내 반응이 심드렁하자 길준용의 말이 약간 빨라졌다.
“그래도 그때 네 모습이 우리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했다는 건 인정하지? 이사님도 네 부족한 모습 보고 많이 실망하셨는데, 우리가 또 트루 패밀리 아니냐. 가족끼리 부족했던 일들은 얼마든지 묻어줄 수 있다. 우리도 그럴 거고, 너도 그래줬으면 좋겠고.”
이렇게나 시대에 뒤떨어진 가족 타령이라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개소리다. 직감 +1]개소리의 달인인 시스템까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얼마나 개소리였던 거야?
웃으면 안 되는데, 웃겼다.
나는 간신히 길준용을 비웃지 않고 입을 열 수 있었다.
“지금은 픽 유어 하트에 집중하고 싶어요.”
“그래. 당연히 그게 끝났을 때 이야기지.”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왜 제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직은 모르는 일이지만, 제가 10위 안에 들어서 데뷔 그룹에 합류할 수도 있잖아요.”
내 말에 길준용이 냉소를 머금었다.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냐?”
염치도 없는 반문은 어떠한 선고와도 같았다.
이곳이 현실이 아닌 것도 어느샌가 잊어버리고 한 번 놓았던 꿈을 홀린 듯 바라보던 나와, 열 있는 땀과 눈물 흘리며 데뷔를 향해 달리던 연습생들과, 몸과 마음과 시간과 통장을 바쳐 그들을 응원하던 팬들을 향해 부조리한 판결이 무자비하게 떨어졌다.
나는 마치 그 사실을 처음으로 안 사람처럼 의식적으로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생각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내 목소리가 약간은 아득하게 들렸다.
“그래. 아직 시간 있으니 천천히 생각해 봐. 바로 다음에 런칭할 보이그룹 데뷔조 합류하는 조건이고 다른 사항도 되도록 맞춰주겠다고 약속하마.”
“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회사 연습생답게 좋은 모습 보여주길 기대한다.”
내 어깨를 한 번 격려하듯 두드린 길준용이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나를 빤히 바라보던 반요한을 툭 쳤다.
“미안. 얼른 가자.”
방문증을 반납하고 트루 사옥 밖으로 나왔을 때, 반요한이 가라앉은 어조로 물었다.
“안 갈 거지?”
“당연하지.”
내 답에 반요한은 어쩐지 자기가 더 안심한 표정을 했다.
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그전까지는 아무 관심 없다가 내가 픽하트에서 인기 좀 끄니까 바로 태도를 바꾸는 게 같잖고 우스웠다.
“조건이 정말 좋다고 해도?”
“계약금으로 100억 줘도 안 가.”
반요한이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럼 그냥 가….”
왠지 뒤에 ‘네가 언제 100억을 벌겠니….’ 같은 말이 와야 할 것 같은 어조였다.
사실이라 조금 짜증 났다.
* * *
밤이 깊어지고, 남은 ‘낮과 밤’ B-1그룹 조원들도 슬슬 연습을 마무리 지었다.
트루 직원이 들어와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는 오현진에게 말을 걸었다.
“현진아, 길 팀장님이 부르셔. 갈 때 뵙고 가.”
“네.”
오현진은 머리가 복잡해진 상태로 팀장실을 찾았다.
똑똑.
“팀장님, 현진입니다.”
“어. 들어와.”
길준용은 모니터에 온라온의 진단서 스캔본을 띄워 놓고 있었다.
물론 타인의 진료 기록을 이런 식으로 열람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치료 내용 및 향후 진료에 대한 소견 | 위 환자는 우울감, 불면, 불안, 체중 감소, 기억력 저하, 인지력 저하를 주소로 2016. 10. 5. 본원 내원 (중략) 일정 기간 동안 휴식 및 정신건강의학과적인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됩니다.]진단서는 온라온이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온라온은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기억력을 비롯한 인지능력이 일상생활이 어려운 수준으로 저하되었다.
옛날 일을 떠올리려 하면 머릿속은 안개가 낀 듯 흐리멍덩했다. 불과 어제 일을 물어봐도 잘 기억하지 못했고, 심지어 바로 조금 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도 깜빡깜빡 잊어버렸다.
우울증의 인지 증상 중 하나인 정신운동 기술 장애로 인해, 그토록 섬세하고 유연하던 춤조차 엉망으로 흐트러지고 나서야 직원들은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끝에 이르러서는 셀 수 없이 반복해 몸에 익고도 남았을 기본기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기준 미달의 실력으로 온라온은 트루에서 방출되었다.
마지막으로 챙겨주는 거랍시고 길준용이 제안했던 개인 연습생으로서의 픽하트 출연을 온라온이 무슨 생각으로 받아들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려한 외모와 감각적인 춤으로 시선을 단번에 빼앗았을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그 실력으로 나가봤자 욕밖에 더 먹지 않겠는가.
어쨌든 우울하되 체념하지는 않은 그때의 온라온은 제안을 수락했고, 이야기는 지금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