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8)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8화
아무튼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풍족해지는 얼굴천재를 기껏 불러다 놓고 왜 멋있는 춤이 아니라 그런 뽕짝 마법 소녀 같은 춤을 추게 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수련회 이후 누군가 유×브에 올린 장기자랑 영상이 널리 널리 퍼져서 원곡 제목 뒤에 우리 고등학교 이름이 연관검색어로 뜨게 되었다거나, 특출난 외모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고등학교에서 얌전히 살던 나한테 캐스팅 제의가 여럿 왔다거나 하는 비하인드가 있다.
내가 처음으로 무대에 빠졌던 순간이기도 하고.
이제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이지만.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딱히 어렵지도 않은 데다가 뭘 안 해도 이해도가 90%에 가까운 이 춤만큼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음악은 제작진이 준비해 둔 것 중 아무거나 무작위로 하나를 골라 트는 거라 뭐가 나올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내가 출 수 있는 춤은 이거 하나다. 뭐가 나오든 출 수밖에.
마이크를 바닥에 내려놓고 뭔가 보여줄 것처럼 뒤돌아서자 사람들의 기대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기대에 기꺼이 보답할 것이다. 예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이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창연이 시원스레 외쳤다.
“음악 주세요!”
이윽고 흘러나온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비트감이 강하고 흥겨운 EDM이었다.
춤과 그럭저럭 어울리는 음악을 들은 나는 내성적인 성격으로부터 오는 일말의 망설임까지 내던질 수 있었다.
“하아!”
이 곡의 킬링파트라고도 할 수 있는 카랑카랑한 기합과 함께 뒤돌며 팔을 굽혔다가 펴자 연습생과 멘토의 반이 뒤집어졌다. 팔꿈치 각이 내가 생각해도 예술이다.
임팩트를 주기 위해 원곡보다 조금 더 힘 있고 통통 튀게 췄다.
하지만 일부러 웃기려는 것처럼 과장스럽게 굴지는 않았다.
그런 건 개그 프로에서 하는 거고, 나는 지금 아이돌이다. 아이돌이다!
그저 이 안무의 핵심인 엉뚱발랄하고 갓 낚은 생선처럼 팔딱거리는 도도함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으로 팔을 물결처럼 살랑살랑 휘저으며 끝낼 때쯤 현장은 초토화되어 있었다.
“푸하하하하하!”
“춤선 미치겠다. 와, 눈물 났어.”
이제까지 나왔던 그 어떤 탁월하고 능란한 무대보다도 큰 호응을 끌어낸 내 춤에는 다만 심각한 문제 하나가 있었다.
바로 음악과 박자가 완벽하게 어긋났다는 점이었다.
물론 내 춤이 끝났을 때 음악이 귀에 들어왔을 사람은 거의 없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내 환상적인 춤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저 군상들을 보라.
“온라온 연습생.”
모두가 흐느끼는 와중에 유일하게 예의 그 무표정을 고수하던 묵혜성이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올 게 왔구나.
“엇박이 예술이던데. 춤이 장난이에요?”
“절대 아닙니다.”
준비한 춤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불가피하게 음악의 박자를 무시했을 뿐이다. 정말 불가피하게.
여기서 제일 진심인 사람은 저거든요. 한 번만 믿어주시죠.
[특성 ‘천생가련天生可憐’의 효과로 당신은 비 맞은 강아지만큼이나 불쌍해 보입니다.]특성 효과 조절 안 되냐.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현장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묵혜성도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하….
잠시 뒤 특성 효과가 사라졌는지 옅어졌는지 분위기가 어떻게든 수습되고 한지희가 흥미로워하는 어조로 물었다.
“이건 프리스타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뭐가 나오든 일단 이걸 추자, 하고 미리 준비한 거 맞죠?”
멘토 라인업을 보고 예상은 했지만 역시 이 세계관에 내가 아는 연예인들은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이 춤을 모르는 사람이 적어도 연예계 종사자 중에는 없을 것 같았으니까.
“네.”
“혹시 본인이 다 짠 안무예요?”
“아니요.”
“아니에요?”
나는 심호흡을 하며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제 꿈에 나온 인어가 가르쳐 준 춤입니다.”
“네?”
‘얘가 뭔 헛소리지’ 같은 얼굴로 반문하는 멘토들 앞에서 나는 의도적으로 한껏 진지하게 말했다.
“제가 만든 춤은 절대, 절대 아니고요. 꿈에서 바닷가로 떠밀려온 인어 위에 물을 뿌려가면서 바다로 돌려 보내줬더니 다음 날에 저를 찾아와서 이 춤을 가르쳐 줬어요.”
“인어는… 다리가 없는데?”
“당연히 마녀한테 빌려왔죠.”
굳이 이런 헛소리를 거창하게 늘어놓은 것은 캐릭터 ‘온라온’의 과거를 모르는 나로서는 마땅히 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만든 춤도 아닌데 내가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잖아.
새겨 두자. 내 헛소리에는 다 복잡한 사연이 있다. 내가 헛소리를 하고 싶어서 하겠어?
덧붙여서 불가피하게 인어가 된 이름 모를 안무가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현실로 돌아간다면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너 그렇게 진지하게 부정하고 싶을 만큼 이 춤이 부끄럽니?”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가 이런 말도 안 되지만 말이 되는 말도 카메라 앞에서 하는데….”
자연스럽게 말끝을 흐렸다. 고작 그런 춤 좀 춘다고 민망해하겠냐고.
“그건 맞다.”
“진짜 말도 안 되는데 말이 되네…….”
“이게 설득이 되네…….”
“나는 쟤가 머리가 되게 좋은 것 같아.”
“어. 아까 노래도 그렇고 자기한테 딱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걸 잘 집어내.”
지능 11한테는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이런 게 바로 플레이어 보정 같다.
“본인이 어느 멘토와 함께하게 될 것 같아요?”
“존경하는 묵 선생님 저를 받아주세요!”
내 겁 없는 어필에 연습생들이 헉하는 반응을 보였다. 멘토들도 뜻밖이라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연습생들한테 제일 무서운 멘토를 고르라고 하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할 묵혜성한테 이렇게 들이대는 간 큰 연습생은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내 간 크기는 남들과 별로 다르지 않지만, 나는 전혀, 조금도, 플랑크톤의 눈곱만큼도 묵혜성이 무섭지 않았다.
이게 게임이며 저 사람이 플레이어의 조력자 역할을 수행할 NPC라는 사실은 둘째치고.
아까 노래 부를 때부터 이런 호감도 알림이 계속 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감도라는 게 정수 단위가 아니라 소수 단위로 뜰 수도 있는 건지 ‘소수 단위 호감도는 버림 처리됩니다’라고 개스템이 팁을 주더니 과연 이제까지 뜬 묵혜성의 호감도 변화 알림은 계속 +0이었다.
상여자 갓제나 님은 한 번에 10씩 올려주시던데 이 양반은 입은 터프하기 그지없으면서 호감도는 쫌생이 저리 가라 할 지경이라 이제 겨우 1이 오른 거다.
아무튼 노리는 것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스승과 열심히 노력하는 제자 사이의 관계성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실력이 부족하던 연습생이 멘토한테 멱살 잡혀서 기어 올라가는 서사가 제법 먹히거든요.
까 봤더니 촉촉함은 없고 탄 맛 나는 바삭함만 있으면 어떡하나 싶긴 한데….
어차피 게임인데, 일단 한 번 박아보는 거지. 설마 죽기야 하겠어?
“잠깐 회의 좀 할게요.”
내 답에 미소를 지은 제나가 말했다.
멘토들이 머리를 맞대고 책상을 탁탁 두드려 보이거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기본기가 있는 듯 없는 듯… 매력이 있는 듯 없는 듯….”
“그렇다고 혜성 선배한테 갈 만큼…….”
“스타성이나 끼는 확실히…….”
“긴장 같은 건 아예 안 한 걸 보면 멘탈도….”
스피커와 연결된 마이크를 내려놓고들 있어서 뭐라고 하는지 전혀 안 들린다. 궁금하다. 방송에는 나오려나.
하지만 결과는 얼추 알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보인 실력으로는 열등반 축에 드는 묵혜성 반에 들어가도 크게 이상할 게 없다.
분에 넘치는 반에 가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대놓고 말해버린 이상.
“온라온 연습생은, 묵혜성 멘토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근데 대체 왜 혜성 오빠야? 안 무서워요?”
제나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것처럼 물어서 무대를 내려가던 나는 끼익 멈춰 서서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렸다.
“제 롤모델이십니다!”
[제나가 싹수 보이는 후배를 귀여워합니다. 호감도 +2 현재 호감도 +12] [묵혜성이 당신을 신경 쓰고 있습니다. 호감도 +0 현재 호감도 +1]형님… 호감도가 짭니다…….
무대를 내려와 ‘묵혜성’을 의미하는 ‘M’ 스티커를 이름표에 붙였다.
그다음 스태프가 인터뷰를 해야 한다며 나를 간이 세트가 꾸려진 곳으로 데려갔다.
작가가 카메라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 오현진 연습생 무대 어떻게 봤어요?”
“잘하더라고요. 완성형 연습생이라는 느낌이었어요.”
여기서 말 하나 잘못하면 안 좋게 편집된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부드럽고 유순하게 대답했다.
“두 사람은 원래 알던 사이였어요?”
“네.”
알던 사이였으니까 호감도가 그 모양이겠지. 망한 호감도를 생각하니 다시금 착잡해졌다.
“그럼 오현진 연습생을 라이벌로 생각하시나요?”
“라이벌이라고 하기에는 제가 많이 부족하죠. 근데 오현진 연습생은 뭐라고 했는지 알려 주시면 안 돼요?”
어딜 엮으시려고. 미묘하게 다른 주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비밀이에요.”
“아, 궁금한데….”
딱히 안 궁금하지만 궁금한 척했다.
“수고하셨고 잠깐 저쪽에서 대기하다가 웨스 뮤직 끝나면 자리로 돌아가시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좁은 공간에서 오현진이랑 나란히 어색하게 서 있다가 자리로 돌아갔다.
저 자식 아까부터 뭔가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차마 호감도 -36한테 뭐냐고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라온 씨 완전 대박이었어요.”
돌아갔더니 서찬빈이 쌍 엄지를 들어 올리며 나를 반겼다.
서찬빈의 호감도는 어느샌가 20을 넘었다. 이런 후한 놈.
아까 춤출 때 팔걸이 치면서 제일 신나게 웃더니만 이젠 내 얼굴만 봐도 웃긴 모양이었다.
“형님, 그냥 말 놓으시죠.”
“그럴까? 너도 그냥 형이라고 해.”
그렇게 작게 떠드는 사이 새로운 연습생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와, 대박이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생겼지.”
“그러게. 대박이다.”
서찬빈이 올라온 연습생들을 보고 나직하게 감탄했다. 나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내 얼굴을 보고 사느라 정도를 모르고 높아진 내 눈에도 잘생겨 보일 정도면 진짜 잘생긴 거다.
“안녕하세요. 시드 엔터테인먼트의 반요한.”
“서문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반요한이랑 서문결. 딱 봐도 엑스트라한테 줄 만한 이름도 아니고 외모도 아니다.
쟤네는 무조건 뜬다. 된다.
조작이든 뭐든, 메타적으로 봤을 때 쟤들은 떨어질 비주얼이 아니거든. 잠깐 나오는 비중 없는 캐릭터한테 쏟을 만한 폴리곤 조형이 아니거든.
부드러운 갈색 머리의 반요한은 눈코입이 둥글둥글하고 순한 꽃사슴 상으로, 상냥한 미소와 애교 한 방에 팬들을 대거 입덕시킬 미래가 훤히 보이는 듯했다.
반대로 눈매와 턱선이 유난히 날카로워 조각 같기도 하고, 다소 곱상한 구석이 있어 화려한 미인 같기도 한 서문결은 외국인처럼 입체적인 이목구비를 가졌다.
화면발을 잘 받는다는 건 덜생긴 나한테 할 만한 말이 아니라 저런 놈한테나 해야 하는 말이다.
그리고 내 본판이 아주 약간의 과장을 보태어 저 둘을 합친 것보다 잘생겼다고 다시 한번 말해주고 싶다.
내 얼굴 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