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80)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80화
“아, 온라온한테 따지는 건 아니야. 원흉인 너네한테 따지는 거……. 뭐 하냐?”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말하다 보니 14227호는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처럼 어디선가 나타난 손수건으로 눈가로 추정되는 부분을 콕콕 찍듯 누르고 있었다.
“고객님의 말씀이 인상 깊어서 그만…. 아무튼 이제 이해했습니다.”
이상한 놈이었다.
“그런데 너 내 생각 읽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예상 범주 내의 사고만 읽을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방금 고객님의 말씀은 대단히 의외로웠습니다.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고나 할까요.”
14227호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외계인이 불시착한 세계에 애착을 느낄 수 있다니 굉장히 흥미로운 발견이네요.”
머리 같은 부분을 갸우뚱거리던 14227호는 특유의 기묘한 목소리로 단언했다.
“그리고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몇 번 말씀드렸듯 이곳은 게임 속이 아닌 고객님이 마땅히 살아가야 할 현실입니다. 온하제 고객님이 원래 계셨던 곳으로 돌아갈 방도는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됩니다.”
나는 그 말을 예상했던 것보다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약간의 후련함마저 드는 걸 보니 내가 살았던 곳에 정을 붙였던 것만큼 미워하는 마음 또한 컸나 보다.
내 삶을 완전히 싫어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조차, 떠나오고 나서야 알지 않았던가.
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리워할 것이다. 사람은 원래 손에서 한 번 놓친 걸 두고두고 아까워하니까.
그러나 그곳에서 내가 가졌던 것 중 여기 있는 것으로 완전히 대체되지 못할 것은 얼마 없었다.
돌이켜 보니 제법 슬픈 말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나는 생각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걸 좋아하면서, 어쩌면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게 가능한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일지도 몰라.
* * *
그 이후로도 우리는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내 인생을 20년쯤 날려 먹은 것에 대한 피해 보상의 일종이라는 게임 시스템에 관하여 궁금한 게 많았다.
“능력치랑 실제 능력이랑 정비례하는 게 아니라고?”
“네. 간단하게 말하자면 x축을 능력치로 하고 y축을 발휘되는 능력으로 하는 로그 함수 관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뭔 함수? 나 고등학생 때 수학 공부 안 해서 몰라.”
“쉽게 말하면 스탯을 0에서 10으로 올렸을 때는 능력이 이만큼 늘어나는데.”
14227호가 팔을 넓게 벌렸다.
“100에서 110으로 올렸을 때는 이만큼밖에 오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번에는 엄지와 검지가 거의 붙어 있는 손을 보여줬다.
“고렙으로 갈수록 레벨 업 할 때 필요한 경험치 늘어나는 거랑 비슷하네.”
일단 초반에는 몰빵보다는 밸런스로 찍는 게 효율이 좋으려나.
“그럼 왜 똑같은 수치인데 스탯마다 수준이 달라?”
예를 들어 똑같이 초기 수치 10이었을 때 내 매력, 그러니까 외모는 사회적인 기준에서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체력은 두말할 것 없는 똥쓰레기였다. 물론 지금도 쓰레기고.
“저희가 귀환 시 본래 있던 몸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동기화 작업을 해서 능력을 얼추 비슷하게 조절하는데…….”
“뭔 소리야?”
14227호가 마치 ‘이래서 인간이란…’이라고 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처음 귀환하셨을 때 보셨던 에러 메시지 기억나시죠? 온하제 고객님은 빙의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가 발생한 케이스입니다.”
“너넨 뭐 제대로 하는 게 없냐?”
“흠흠, 이게 돼도 왜 되는지 모르고, 안 돼도 왜 안 되는지 모를 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일이다 보니 불확실 요소가 많아 확답은 못 드리지만, 기존 능력치가 수치로 정확하게 입력되는 게 아니라.”
설명이 길어질 것 같았는지 14227호가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복잡한 설명은 생략하고, 고객님이 궁금해하시는 것만 말씀드리자면 아마도…….”
14227호는 중요한 얘기를 할 것처럼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온하제 고객님의 기존 체력이 쓰레기였고, 그러한 경향이 현재 데이터에 상당히 반영된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매력은 그 반대의 경우고요. 말하자면 체력은 기본 점수가 백 점 만점에 1점, 매력은 기본 점수가 88점 정도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게임 폐인의 신체 능력이란 뻔했기에 쓰레기라 불려도 할 말이 없었다.
“온하제 고객님의 데이터를 대략적으로 조사해 본 결과 매력, 의지, 민첩과 지능, 지혜 순으로 능력치 비례 효율이 좋고, 체력이나 힘은 적당히 포기하심이…….”
“닥쳐!”
나는 14227호에게 최적의 성장 루트를 뜯어냈다.
원×맨 뺨치는 위력을 보였던 주먹을 들고 협박하니 말을 잘 듣더라.
맞았을 때 아프긴 아팠나 보다.
앞으로 레벨이 오르고 스탯 포인트를 벌 때마다 녀석이 알아서 스탯을 찍어줄 것이다.
귀찮게 고민할 일을 하나 덜었다.
한계치가 정해진 체력과 힘을 보완할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덤으로 관리자의 권한으로 그냥 모든 스탯을 최대치로 만들어줄 수는 없냐고 슬쩍 물어봤는데, 여러 사유로 인해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게 보기보다 어렵거든요. 잘못 건드리면 고객님의 정보가 오류 때문에 완전히 삭제될 가능성도….”
기대는 별로 안 했지만 역시 무능한 놈이었다.
지금쯤 내 몸으로 살아가고 있을 ‘온라온’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당시 온라온 고객님은 편지가 아니라 차라리 유언장을 적는 사람처럼 보일 지경으로 상태가 안 좋았습니다. 외계에서 15년 넘게 살았는데 상태가 좋은 게 오히려 이상하죠.”
“뭐? 그래도 편지는….”
“발랄하기까지 한 편지 내용은 저희도 의외였습니다만, 뭐, 죽기 전에 잠깐 반짝하고 생명력을 불태우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 멋대로 죽이지 마.”
“그래도 걱정 마세요. 지구 기준 약 3달이라는 시간 동안 저는 온라온 고객님이 상상 이상으로 질기고 독하고 의지가 강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고생이 심했는지 14227호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외계에서 20년 가까이 버틴 그 정신력이라면 본래 있어야 할 세계에서는 마음먹은 일은 뭐든 해내실 겁니다.”
“그럼 됐고.”
“이건 온하제 고객님께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잘못된 세계에서 버티다 못해 애착을 가지다니, 그런 경우는 여태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고객님 역시 뭐든 해내실 거예요.”
서비스직 직원의 서비스 멘트라고 해도 기분은 좋았다.
앞으로도 시스템이 이렇게만 말해준다면 우리는 나쁘지 않은 관계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핵주먹을 가진 나를 코앞에 둔 지금이야 저 새끼가 예의를 차린다지만.
미친 상사 때문에 말아먹은 성품을 하루아침에 쓸 만하게 고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 별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군요. 1차 면담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누구 맘대로.”
물어볼 게 아직 많이 남았는데!
“돌아가면 선물이 있을 겁니다. 그럼, 만나서 즐거웠고 또 뵙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고객님.”
14227호의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예고도 없이 한순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내 현실.
그 사실이 괜히 새삼스러워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물이 뭐…… 어?’
14227호를 만나러 가기 전에는 없었던 수첩 같은 것이 책상에 놓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여권이었다.
그런데 여권이….
“파란색?”
[ONDAMIAN RAON
UNITED STATES OF AMERICA]
이건 설마…….
[설마가 그 설마. 행운 +50]어디선가 폭죽이 펑펑 터지는 것 같았다.
비록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지만, 나는 지난 몇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일랑 순간 말끔하게 잊고, 펄쩍펄쩍 뛰어가 창문을 열어젖힌 채 세상을 향해 행복하게 외쳤다.
“나 군대 두 번 안 가도 된다아아아아아!”
아름다운 밤이었다.
* * *
“너 어제 뭐 했길래 얼굴이 그 모양이야? 설마 밤새웠니?”
다음 날, 마지막 연습을 위해 그때 그 소년 조가 루이젠 사옥에 모였을 때 반요한이 물었다.
“아니?”
온라온이 남겨둔 편지를 마저 정독하고 생각을 정리하느라 새벽 4시가 다 돼서 잠들기는 했지만.
‘4시간 정도 잤으니까 샌 건 아니지.’
남은 편지에는 온라온에 대한 정보가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녀석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미국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것과 가족으로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이 한 명 있으며, 가족 사이는 서먹서먹하고, 형제 관계는 특히 나쁘다는 것, 미들네임인 라온은 가족이나 친척에게 불리던 한국 이름이고, 한국에 와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현지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퍼스트 네임인 데미안 대신 라온을 주로 사용했다는 것 등등.
내가 방금 나열한 것보다는 훨씬 많은 내용이 자세하고 꼼꼼하게도 적혀 있었다.
억울했다.
‘애초에 첫날부터 거기로 보냈으면 지금까지 집 문제랑 과거 문제 때문에 고생할 필요는 없었잖아?’
[그랬다면 집에서 나오지 않고 게임이나 했겠지….]너무나도 맞는 말이라 반박하지 않았다. 극한 상황에 내몰리지 않고 사람이 갑자기 바뀌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시스템이 준 선물은 파란 여권이 아니었다.
그건 원래 있던 온라온의 것을 내가 발견하기 쉬운 위치에 가져다 둔 것뿐이었고, 진짜 선물은 따로 있었다.
바로 능력치 동기화권이었다.
맨 처음 한국어 능력을 가져왔던 것처럼 한 가지 능력을 동기화할 수 있다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매력을 골랐다.
시스템은 이번이 마지막 동기화일 거라고 말했다.
상관없었다.
매력이야말로 나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그걸 가졌다면 더 필요한 건 없다고 봐도 좋았다.
애교? 얼굴만 돌아온다면 그런 것쯤이야 수치심 따위 없이 아침, 점심, 저녁마다 꼬박꼬박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안타깝게도 스텟량이 워낙 많아 내 얼굴이 단번에 돌아오는 건 아니고, 완전히 패치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린단다.
지금도 매력 수치가 한 번에 2씩 느릿느릿 올라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300을 돌파할 것 같았다.
‘이거 완전 숨만 쉬어도 잘생겨짐 아니냐…….’
내 정보창을 켜놓고 매력이 오르는 걸 멍하게 지켜보고 있자니 김준우가 짝짝 박수를 쳤다.
“자자, 연습합시다.”
“합시다아아.”
“내일이면 끝이다….”
나도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현실을 이곳으로 삼았다고 해서 이제까지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늘은 오늘의 연습을 하고, 내일은 내일의 리허설을 하고, 모레는 모레의 무대를 하면 그만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테고.
문득 내가 지금 무척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서 더 행복해져도 되나?’
약간 불안했지만, 괜찮을 것 같았다.
“너 괜찮아?”
오늘 만났을 때부터 나를 관찰하듯 보던 반요한이 지나가듯 물었다.
“괜찮아.”
그래.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