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79)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79화
잠시 뒤, 나는 14227호와 함께 달큰한 향이 나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짜증 나게도 입맛에 맞았다.
“고객님이 저를 어떻게 갈길지 내내 고민하고 계신 것은 잘 알지만 일단 설명부터 드리겠습니다. 매뉴얼이라서요. 그전까지는 어떤 폭력 행위도 용인되지 않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애초에 폭력을 써야 할 정도로 성질을 긁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일단 알았다고 했다.
왠지 잠깐만 참으면 한 대 정도는 순순히 치게 해줄 것 같은 어조였기 때문이다.
“기초부터 설명 드리겠습니다.”
지루한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요약하자면(요약을 또 요약해 한 줄로 낸 결론은 맨 끝에 있으니 참고하길), 상상 가능한 모든 가능성을 실현할 만큼 우주가 무한히 존재하는데, 사실 온라온과 온하제는 다른 평행우주에 사는 동일인물이었고, 편지에 적혀 있던 대로 우리는 영혼이 뒤바뀌었고, 그래서 우주 전체가 외부에서 온 영혼인 우리를 배척했고, 그렇게 된 원인은 시스템, 아니, 관리자 새끼가 속해 있는 빌어먹을 차원관리국에 있다는 것이다.
결론.
차원관리국이 끝내주게 무능하다.
“요약 솜씨가 탁월하십니다.”
“아부해도 살살 안 친다.”
14227호가 슬퍼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저 새끼가 나한테 맞아주는 건 확실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온라온 고객님도 그렇고 자꾸 무능하다 하시는데 저희 차원관리국의 위신을 위해 덧붙이자면 이런 경우가 자주 있는 건 절대 아닙니다.”
“나 같은 경우가 또 있어?”
“제가 관리자 14227호인 이유는 고객님이 14227번째 피해자이기 때문…….”
“너네 왜 아직 안 망했냐?”
내가 황당해하자 14227호는 적반하장으로 억울해했다.
“상상해 보십쇼. 지구에는 수십억 명의 인간이 존재하죠. 그런데 지구에 평생 그 인간들만 삽니까? 아닙니다. 인간은 죽고, 또 태어납니다. 그런 우주가 무한하게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인류 탄생 이후 고작 14227번의 실수밖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차원관리국이 대단히 우수한 기관임을 입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 고등학생 수준으로 단순하게 생각해 봐도 분모가 무한이니 분자가 만 단위 정도면 오차율이 0%가 되는 거란 말입니다.”
내가 말을 (필요에 의해) 주절주절 늘어놓았을 때, 상대방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이제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됐고, 온라온한테는 영혼을 바꾸면 꽃길만 걷게 해준다고 설득한 것 같더니 내 대접은 왜 이 모양이지?”
“죄송합니다. 하지만 온라온 고객님과 온하제 고객님의 영혼을 잘못 처리한 장본인인 ■■ 같은 상사 ■■ 새끼가 일을 저한테 떠넘기고 다른 지부로 튀는 바람에 제 기분이 아주 ■■ 같아졌지 뭡니까. 업무 강도를 한국식으로 표현해 보자면 하루에 24시간씩 주7일을 연중무휴로 근무하는 거라 할 수 있죠. 하… ■■ 해도 시원찮을 ■■ 새끼……. 제 ■■ 같은 기분으로 인해 피해를 보셨을 고객님께는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2교대는 물론이요 3교대만 해도 사람이 갈려 나가며 성격이 더러워진다고, 간호사로 일하다가 퇴사한 게임 지인한테 들었는데 이 자식한테는 교대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잠깐 정도는 블랙 기업에 다니는 이 새끼의 만행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주 잠깐.
“그런데 네 분풀이를 왜 나한테 하는데, 미친놈아!”
“그건 제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접촉할 수 있는 지적생명체가 고객님밖에 없기 때문에 자연히….”
“염치가 있으면 닥쳐!”
한 대 치고 싶었는데 아직 매뉴얼이라는 것이 끝나지 않았는지 14227호와 나 사이에 반투명한 막이 생겼다.
“진정하시죠. 중대사를 앞두고 릴렉스 하시라고 힐링 타임까지 선사해 드렸는데 효과가 없었나요?”
“넌… 정말 내 마음이 안정되길 원하면 말 되도록 짧게 해라, 진짜.”
왜 마사지부터 시작해서 빙수까지 먹여놨는지 알 것 같았다.
독대를 앞두고 그런 걸로 내 환심을 급하게 좀 사려고 했나 본데, 역효과였다.
쉰 덕분에 기운이 이렇게나 팔팔해졌으니까!
14227호는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사 스위치는 고객님이 누른 겁니다.”
“뭐?”
“온라온 고객님은 아직 동의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고객님께 보내는 장문의 편지까지 쓰기는 했지만, 저희에게 확실한 동의를 표하지는 않았죠. 거의 직전이라 봐도 좋았겠습니다만.”
이 미친, 설마…….
나는 뒷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맞습니다. 이전에 보여드렸던 약관 기억하십니까? 제 11조 ■■ 서비스…. 아, 실수. 필터링이 걸려 있네요. 다차원영혼환원 및 피해 보상 서비스와 관련된 조항이 포함된 약관 말입니다. 온하제 고객님이 그 약관에 동의함으로써 저희가 온라온 고객님의 동의 없이도 일을 진행할 수 있었던 거죠.”
14227호는 우리의 영혼을 교환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를 얼마 앞두었을 때 내 세계와 접촉할 수 있었고, 적시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런 편법을 써서라도 일을 급하게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너네가 사기꾼 새끼라는 거잖아.”
“읽으라고 만들어 놓은 약관을 제대로 안 읽은 고객님 잘못도 있으니 책임 소재를 따지자면 저희가 9, 고객님이 1이라고 할 수 있죠.”
“지랄하고 있네. 애초에 너네 실수니까 너 10 나 0, 이 미친놈이!”
“인정합니다. 그냥 해본 말이었습니다.”
“야, 너… 일단 맞아라. 내가 폭력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너는 사람도 아니고, 착한 놈은 더욱 아니고, 싸가지는 더더욱 없으니 한 대 정도는 쳐도 죄가 아닐 것 같다.”
“예, 뭐. 치시죠.”
막을 없앤 14227호는 겸허한 태도로 답했다.
“맞을 짓을 한 건 맞으니까요.”
알면 됐다.
나는 눈 딱 감고 명치로 추정되는 곳에 주먹을 날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 많이 아파해서 당황스러웠다.
14227호는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저 멀리까지 날아가 보이지 않는 벽에 여러 번 부딪히고 튕겨 나갔다.
‘내 힘 달랑 38인데? 아직 여우 새끼도 못 이기는 힘인데? 별로 안 아파할 줄 알고 친 건데?’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14227호가 비척거리며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으윽…. 여기서는 육체의 힘이 아니라 영혼의 힘이 적용되기 때문에…….”
14227호는 뭐라 중얼거리며 쿨럭거리더니 울컥 피를 토했다. 미친….
“내가 존나 세다는 걸 일찍 말해 줬어야지. 안 그러면 그렇게 세게 안 쳤지!”
“고객님의 기분이 풀리셨으면 저는 만족, 쿨럭쿨럭….”
“님 걱정 아니고 내 걱정이요! 사람 살인범으로 만들 일 있어?!”
14227호가 눈에 띄게 서운해했다.
어쨌든 미친 새끼는 곧 멀쩡해졌고 녀석이 흘린 피로 얼룩졌던 책상도 말끔해졌다.
‘이거 쇼 아니야?’
그래도 녀석이 괴로워하는 건 진짜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동안 시스템 때문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았다.
‘사람이 폭력적인 행위로 스트레스를 풀면 안 되는데…….’
잠시 뒤, 우리 사이에는 다시 차분한 분위기가 돌아왔다.
“왜 온라온에게는 나한테 했던 것 같은 방법을 쓰지 않은 건데? 너네 사람 차별하냐?”
나는 정말 차분했다.
“오해십니다. 일단 저는 온라온 고객님을 설득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울 줄 몰랐습니다. 이런 제안을 거절하는 외계인은 거의 없기도 하고. 고객님도 아시다시피 그분이 조금 유약한 인상이지 않습니까.”
면전에서 외계인이라는 말을 들으니 과연 기분이 여간 더러운 게 아니었다.
“일을 서두르느라 내린 오판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온라온 고객님은 이미 저희를 극히 경계하고 계셨습니다. 어중간한 편법은 통하지 않을 정도로요.”
14227호는 “놀라운 일이죠. 보통은 설득에 한 시간도 걸리지 않거든요. 기존 최장 기록이 일주일인데 무려 3개월을 버티시다니. 우유부단하신 건지 신중하고 강단 있으신 건지!” 하고 질린 듯 덧붙였다.
온라온과 내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들은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나는 후자 쪽에 표를 던졌다.
“이번에는 제가 묻겠습니다.”
14227호가 손짓하자 홀로그램 영상이 내 앞에 하나 떠올랐다.
현실에 있던 내 모습이었다.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니 그리 좋은 꼴은 아니었다.
“아무리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어도 온하제 고객님은 그들에게 외계인에 불과한 존재였을 겁니다. 그 세계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는 고객님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시겠죠.”
“뭐….”
“본능에서 나오는 배타적 반응 때문에 우호적인 면대면 상호작용은 꿈도 못 꿨을 거고, 그나마 비대면 상호작용이 원활하게 이뤄졌을 테니 게임에 빠진 것도 당연합니다.”
“…….”
“게임 중독은 21세기 외계인의 전형적인 특징이죠. 저희가 21세기 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피해 보상 서비스를 게임 시스템 형식으로 개편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여과 없는 막말에 할 말 잃은 나를 앞에 두고 개자식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온하제 고객님이 몸을 되찾은 뒤의 모습입니다.”
새로운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14227호의 말처럼 내가 온라온의 몸에 빙의한 이후에 있었던 일들이 보였다.
“……내가 저랬어?”
“네. 저랬습니다. 본래 귀환 초기의 외계인은 극도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생명의 위협 정도의 자극이 아니면 큰 행동을 보이지도 않는데. 고객님은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사방팔방 쏘다니셨죠. 너무 잘 적응하셔서 저희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나도 놀랐다.
나는 정말로 내가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고, 가만히 앉아서 게임이나 하는 걸 제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영상을 보니 생각보다는 그렇지 않은 것도 같았다.
“그렇기에 당신을 이 세계에 적응시킬 의무가 있는 저로서는 더더욱 이해가 안 갑니다.”
“…….”
“대체 왜, 이런 멀쩡한 세계를 두고. 당신을 이물질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을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겁니까?”
기분이 상한 만큼 정신은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나야말로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어떻게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어? 나는 거기서 좋아하는 게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도, 심지어 최근에 얼굴 보고 세 마디 이상 대화한 사람은 가정부 아줌마밖에 없었는데도 내 집이 그리운데, 대체 어떻게?”
아마 앞으로 소설이든 영화든 차원이동물을 재밌게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두고 온 것들을, 그래서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것들을 조금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너는 내가 거기서 불행하게만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니야. 나는 거기서 내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살았다고. 뭐라도 해보고 싶어서 유×브를 시작했고, 꽤 괜찮은 성과도 냈고. 또….”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아무튼 내가 23살이 될 때까지 한 일이 그것뿐일 것 같냐? 그 모든 시간을 한순간에 없던 일로 하고 살라고? 왜? 나는 그렇게라도 살 생각이었는데?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싫어해도 내가 날 싫어하지 않겠다는데, 러브 마이셀프 좀 해보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싫고 이상해?”